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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 속에 강하라 / 딤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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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은혜 속에 강하라
본 문 : 딤후 2:1~7
설 교 : 김동국 목사 (온누리교회)
 

오늘은 12월 30일 마지막 주일입니다. 내일이면 2001년도가 다 지나가는데 여러분은 마음이 어떠십니까? 속이 시원하십니까? 아니면 답답하십니까? 2001년을 시작하면서 세운 계획을 다 이루신 분이나 스스로 평가하기에 만족할 만큼 이루신 분은 기분 좋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2001년을 열심히 최선을 다해 수고하였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분은 마음이 가볍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2001년을 보내면서 여러분과 어떤 말씀을 나눌까 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디모데후서로 정했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보내는 가장 친밀한 개인적인 편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사랑하는 내 아들아’라고 부릅니다. 오늘 2장 1절 말씀도 역시 ‘내 아들아’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으나"
바울에게 편지를 받을 당시 디모데의 상황은 썩 좋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떠나간 에베소 교회를 섬기고 있던 디모데는 지도자로서 역량을 의심받으면서 다른 교회 지도자로들로부터 견제를 받았고, 에베소 교회는 이단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씁쓸한 한 해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자기의 후임으로서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디모데야 내가 너를 믿고 교회를 맡기고 떠나왔는데, 네가 그렇게밖에 못하니 섭섭하다”라고 질책을 하거나 혼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적인 아버지로서 많은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해를 보내면서 혹시 여러분 마음 가운데 씁쓸함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결코 질책하거나 따지거나 혼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사랑과 넓은 품으로 우리를 격려하시고 복 주시는 분임을 믿으십시오.


이렇게 바울은 고난 가운데 있는 디모데에게 위로와 권면의 말을 하고 있지만, 편지를 쓰고 있는 자신 또한 디모데보다 더 큰 고난과 역경 가운데 거하고 있었습니다.


1장 15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의 상황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렸으나.” 바울은 예수의 부름을 받고 사도로서 사역을 해왔지만, 감옥에 갇히고, 환난과 역경을 만나고, 자신의 사람에게 버림받는 경험을 했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두 번쯤은 버림받은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거나 형제로부터 배신을 당한 경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충성을 다해 일했던 직장에서 하루 아침에 권고사직을 당하는 경우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연을 당하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필요한 것은 소속감입니다. 우리는 소속감을 얻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좋은 팀에 소속되면 자신감을 갖게 되고, 자신감은 곧 용기가 되고, 용기는 곧 고난을 이기는 능력이 됩니다. 반면에 자기가 속한 공동체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무시 당하고 버림받는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일 겁니다. 그로 인해 거절감과 열등감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그 전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던 사람과 비교하게 되고, 분노하게 되고, 그들과 싸우고 싶은 마음이 영혼 가득 내면을 채우게 되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그런데 많은 사람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바울에게는 상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당당하고 의연함으로 따돌림과 위기감에 빠져있는 디모데에게 위로와 권면을 합니다. “내 아들아 사람으로부터 버림받은 일로 두려워하고 염려하지 말아라. 너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심으로 너는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선포하고 외치고 있는 바울은 자신의 존재를 어디에 두고 있습니까? 사람은 자기의 소속을 단체에 두고, 사람 사이에 두지만, 바울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자신의 존재를 두고 있습니다. 자신을 구속하고, 회복시키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하신 주님 안에 자신의 모든 것을 소속시키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가말리엘 문하에서 학문을 한 자요, 촉망받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당시 젊은이들의 지도자였고, 스데반과 쌍벽을 이루는 미래의 꿈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으로 인해 스데반을 핍박하고 죽인 것에도 분이 안 차서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그리스도를 극적으로 만납니다.


다메섹 도상으로 가는 그에게 갑자기 광명한 빛이 비쳐옵니다. 순간 그는 그 빛이 하나님의 임재라는 것을 느끼고 이렇게 묻습니다. “주여 당신이 누구십니까?” 그때 그의 귀에 들려오는 음성은 바울의 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말입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결코 해석할 수 없는 음성이었지만, 바울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핍박한 예수가 자기의 구주요, 창조주요, 모든 인류를 구원한 진정한 메시아라는 사실 앞에서 자신의 삶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깨닫는 순간입니다. 자신이 생명을 얻고, 누릴 수 있고, 영원한 생명으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근거와 이유가 자기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됩니다. 그 이후로 바울은 육신의 모든 것을 죽이기 위해 노력합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의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날마다 새롭게 거듭나는 삶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바울의 제2의 인생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 가운데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저는 오늘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많은 것을 열망해 왔고, 많은 것을 추구해 왔지만, 이 한 해를 마감하면서 내가 여기 있을 수 있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 속에서 강한 그리스도인
은혜 속에서 강한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자신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날마다 자신을 드리는 것이요, 세 번째는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모든 일을 감당하고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은혜 속에 있는 충성된 사람으로서 정체감과 소속감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 바울은 세 가지의 비유를 들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3절과 4절을 보겠습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첫 번째가 ‘예수의 좋은 군사’입니다. 감옥에 갇혀 있었던 바울은 로마 군인을 접하면서 군인이라고 해서 다 같은 군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는 군인이 있는가 하면, 후방에서 잡일을 하는 군인이 있습니다. 이들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상처를 받느냐 아니냐의 차이와 목숨이 걸려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전쟁터에 나가서 상처 없이, 목숨의 위협과 두려움 없이 돌아온 군인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화살이 날아다니고, 칼을 휘두르는 전쟁터에서 몸 하나 다치지 않고 돌아온 사람은 어딘가 꽁꽁 숨어 있다가 돌아온 사람일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서 있을 것인가? 복음의 최전선에 서 있다면, 마땅히 세상으로부터, 사단으로부터 집요한 표적이 되고 공격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몸이 힘들고 지칩니까? 저는 그것이 여러분의 상급이라고 믿습니다. 2001년 한 해를 최선을 다해 일했는데도 아무 사건도 없고, 좋은 일만 있었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진리를 붙잡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면 여러분은 멍들었고, 상처를 받았고, 많은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겪은 환난과 고통으로 인해 자신이 부족하다거나 어리석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그런 모습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시며 어쩔 줄 몰라하십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할렐루야, 저는 여러분이 이 한 해 동안 얻은 것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의의 싸움, 진리의 싸움, 인내의 싸움, 사랑의 싸움을 하였기에, 다시 용서하고, 도전하고, 그래서 멍들고 지친 전투의 흔적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될 것을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경기자’로 비유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군사는 고난을 자처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예상했던 고난일지라도 이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고난이 다가올 때 피하고 싶어집니다. 사단은 예수님에게까지 고난을 피해 이 땅에 온 목적을 이루라고 유혹합니다. 예수께서 40일 금식하신 후에 사단에게 세 가지 시험을 당하는데, 마지막 시험이 이렇습니다.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단 한 번만 눈 감으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고난 가운데 있으면 그런 유혹이 더없이 달콤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은혜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자신을 세워나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바로 규칙대로 경기하는 것을 말합니다. 경기자가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두고, 일등을 했다 할지라도 규칙을 어기면 무효입니다. 우리에게 면류관을 주시는 경기의 심판관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의 끝날이 되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미 약속 받았지만, 주님은 구원 이후의 우리 삶을 평가할 것입니다. 그 기준이 있다면, 주의 말씀대로 규칙대로 살았는가입니다. 내가 할 수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없을 때,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얼마나 절제하고, 희생하고, 자기를 부인하여 주의 말씀을 지켰는가? 그것이 바로 천국의 상급을 정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주의 말씀대로 선한 싸움을 싸우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 1초까지 포기하지 않는 소망
세 번째로 바울은 ‘농부’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수고하다’는 헬라어로 ‘코피아노’입니다. 그 뜻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하는데, 어디까지냐 하면 여러 가지 노력을 다 기울이다가 녹초가 되어서 톡 건드리면 넘어질 정도로 열심히 일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게 최후의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일터를 떠나지 아니하고 수고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까지 수고했습니까? 분명한 목적과 진리의 길에 서 있다면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5장 7절과 8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야고보서에서는 수고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분별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작정 수고한다고 좋은 열매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농부는 씨를 뿌릴 때와 밭을 갈아주어야 할 때를 정확히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모세는 40세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스데반은 사도행전 7장 22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그렇습니다. 40세의 모세는 자타가 공인하는 하나님의 민족에게 보낸 지도자였습니다. 그런 모세가 거리로 나가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려고 자신의 능력과 힘으로 애굽사람을 쳐죽입니다. 그러나 그때가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기에 모세는 광야로 도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주셨지만, 꿈을 주신 때에 국무총리로 세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기름 부으셨지만, 소년 다윗에게 왕의 자리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그들을 역경 가운데로 던져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도록 방치했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한 해를 마감하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따질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루어 주지 않으십니까? 왜 하나님께서는 기도 가운데 확신을 주신대로 행하지 않으십니까?” 만약, 그런 기도를 드리고 있다면, 오늘 자신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 나의 때인가? 하나님의 때인가?”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준비한 풍성한 복, 풍성한 삶을 마음껏 받아 누릴 수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농부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기다리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수고하고, 때를 따라 일도 다 했지만 마지막 곡식을 거두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합니다. 가을의 햇살이 푸른 과일에게 마지막 단맛을 줄 수 있도록 그 기간이 가득 차도록 기다리는 것입니다. 만약 조급함으로 섣불리 수확한다면, 농부는 수고의 대가를 충분히 받지 못할 것입니다. 마지막 햇빛, 마지막 은총, 그 모든 결과를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위탁하고, 인내함으로 기다리는 것이 바로 농부의 삶이요,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저는 그저께 새벽기도 시간에 이런 묵상을 했습니다. 주님 이 한 해가 이틀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주님 저에게 마지막 1초의 인내를 주옵소서, 이 한해의 계획된 모든 일이 부족하고, 시간이 며칠 남지 않았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마지막 1초까지 하나님께서 나의 삶을 완성시키는 그날까지 신뢰하며 기다릴 수 있도록 나를 인도해주옵소서. 마지막 햇살의 은총을 나의 삶에 부어주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삶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소원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과 함께 계시고, 모든 것을 주기 원하시는 그 하나님 사랑 앞에 신실하게 마지막 1초까지 머물러 있는 믿음의 사람, 소망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고,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고 말씀하신 주님
감사합니다.

이 한 해를 보내면서, 저희 가운데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것을 바라봅니다.

주님 우리가 세상의 가치와 기준으로
이 한해를 평가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 말씀의 기준대로
자신을 드릴 수 있도록 도우소서.

아버지 하나님, 혹시 디모데처럼
고난과 역경과 환난 가운데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주의 은혜 안에서 강하게 하시고,
풍성한 것을 거둘 수 있도록 도우소서,
마지막 1초 안에도 역전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은총 안에
머물 수 있도록 복을 내려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망이 되시고,
전부가 되심을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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