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요 3:14~18

  • 잡초 잡초
  • 925
  • 0

첨부 1



제 목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본 문 : 요 3:14~18
설 교 : 하용조 목사 (온누리교회)

 
◆ 신앙의 기초, 거듭남

예수님께서는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이 얼마나 중요한지 두 번이나 강조하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고, 5절에서는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행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흔들리는 까닭은 기본이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기초 없이 세운 집은 높이 지을수록 위험합니다. 태풍이 불고, 폭풍이 치고, 비바람이 불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에서도 ‘거듭남’의 기초를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는 종교적인 선행을 베풀고, 도덕적인 삶을 살고, 율법적인 행위를 하면 할수록 불안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거듭남이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육체로 거듭나거나 인간적인 방법이나 종교적인 행위로 난 것은 가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진짜로 거듭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말씀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는 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여러분이 설교를 듣거나 성경을 읽을 때, 그것이 여러분을 찌르지 않고, 도덕적 교훈이나 수양을 쌓는 데 불과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세상적인 것과 영적인 것, 하나님의 것과 인간적인 것을 섞어서 살고 있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칼이 되어 들어와 혼돈되어 있는 것을 날카롭게 쪼개고 분리할 때 우리는 말씀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예레미아 선지자는 말씀이 방망이가 된다고 했습니다. 방망이를 내리치듯 내 영혼을 내리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울이 되어 자신을 돌아 보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등불이고 빛입니다. 영혼이 송두리째 변하고 내가 거듭나는 겁니다. 또한 말씀은 썩지 않는 씨앗입니다. 씨를 뿌리면 새싹이 나듯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오면 새로운 생명이 탄생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거듭남입니다.
여러분이 예수 믿고 거듭났다고 하면 반드시 두 가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이루어졌는지, 성령으로 거듭난 것인지 말입니다.


성령님은 연약하고, 부족하고, 미숙한 우리를 완성시킵니다. 처음에는 불완전하지만 말씀과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 믿음은 성숙해집니다.


이것은 한 여인이 나이가 차서 결혼하여 남자의 씨를 받아 임신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신비로운 경험입니다. 처녀 때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여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처음에는 본인도 깨닫지 못하지만, 곧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합니다. 입맛이 달라지고, 감정이 달라지고, 육체에 변화가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아십니까? 육신의 생명도 한 여자의 몸에서 잉태하기 시작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생명은 성장하지 않으면 죽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임신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없다면 죽은 겁니다. 육신의 생명도 그러한데, 영적인 생명이 내 안에 잉태했다면 처음에는 변화가 없을지 모르지만, 1년이 지나고 2, 3년이 지나가면서 영적인 생명이 성장하여 나중에 해산하는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 잘 기억하십시오. 예수 믿은 지 10년이 지나도 변화가 없다면 당신의 거듭남은 가짜라는 겁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정말 내 안에 들어왔다면, 그분이 나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변하지 않았다면 죄송하지만, 거듭나지 않은 겁니다. 그냥 거듭난 척하고 교회에 다닌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 거듭남의 본질은 생명
그러면 거듭남의 실체란 무엇인가? 새생명입니다. 남자의 씨가 여자의 몸에 들어와 새로운 생명체로 자라듯이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이 들어와서 접촉이 된 것입니다. 거듭남의 핵심은 생명체입니다.


여러분 중에 오늘 아침 혹시 계란을 드시고 오신 분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계란이라고 다 계란이 아닙니다. 암탉이 혼자 낳은 계란은 무정란이고, 수탉의 씨를 받은 것은 유정란입니다. 이 둘은 겉으로 봐서는 모릅니다. 깨어 봐도 모르고, 삶거나 영양가 분석을 해봐도 전혀 분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미 날개 밑에 들어가서 20일이 지나면, 결정적으로 차이가 생깁니다. 한 계란에서는 생명이 나오고, 다른 계란은 썩어버립니다.


우리 모두 똑같은 사람처럼 보이지만, 예수의 생명이 수정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60평생 80평생 살 때는 전혀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이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이렇게 질문 합니다. 여러분 안에는 예수의 생명이 있습니까? 로마서 8장 2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님 안에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그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내게 무슨 일이 생깁니까? 예수님 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의 세력인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합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거듭남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거듭남입니다. 영의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거듭남입니다. 다시말해, 거듭남은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자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특징은 자라는 겁니다. 성장하지 않는 생명은 죽은 겁니다.


나는 여러분 안에 예수의 생명이 날마다 성장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고 물을 마셔 육신이 건강해지듯, 말씀을 먹고 기도를 먹고 내 안에 있는 예수의 생명이 더욱 풍성해지고 강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연약한 그리스도인과 강한 그리스도인으로나눠집니다.


예수님이 도덕적 삶을 살았기 때문이라거나 윤리적 수준이 높기 때문에 믿는 게 아닙니다. 그분 안에 있는 생명이 중요한 겁니다.


◆ 그리스도의 생명은 빛이라
어떤 사람은 기독교 윤리 실천 운동을 합니다. 중요하고 좋은 일입니다만 본질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기독교는 윤리 실천 운동을 하는 곳이 아니라 생명 운동을 하는 곳입니다. 생명이 있으면 윤리가 있는 것이지 윤리가 있다고 해서 생명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생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랑을 나눠주게 되어 있습니다. 남에게 사랑을 나눠주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 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식이 있다고 사랑을 하지 않습니다. 돈이 있거나 건강하다고 남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내 안에 사랑이 흘러 넘칠 때, 그 사랑은 남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어야 남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이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이라”고 하는 것이 윤리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는다는 본질을 성경에 나오는 말씀으로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5장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 영생의 조건은 믿음
그러면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오는 방법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3장 14, 15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생명이 어떻게 사람에게 들어오는가 하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구약의 한 사건을 예로 듭니다. 민수기 21장 4절에서 9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홍해를 건너게 한 뒤 광야에서 훈련을 시키십니다. 먹을 것과 마실 물도 없이 지치고 고달픈 환경을 주어 훈련을 시킵니다.


고난이 없으면 영광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시련을 겪을 때 하나님이 연단시키는 방법이라는 것을 기억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이 나를 골탕먹이고 괴롭힌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들은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비스러운 것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에 처하자 은혜를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작은 고난 앞에 큰 축복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하나님 앞에 대들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은 독사에 물립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정신을 차리고 교만과 불신앙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지 못한 채, 하나님의 연단에 상처받았다고 소리 지르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찾아가서 우리가 잘못했으니 하나님께 중보기도해서 살려달라고 간청합니다.


하나님은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응답하십니다. 장대 위에 구리뱀을 만들어 매달아 그 뱀을 바라보는 사람은 다 살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상식에 맞지 않는 방법을 주셨을까요? 여기에는 비밀이 있습니다. 먼 훗날 온 인류의 죄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살을 찢기고, 조롱 당하여 죽을 것이니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구원의 비밀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을 기독교 복음의 핵심이라고 하는 16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구원의 동기는 사랑
거듭남이란 무엇일까요? 말씀이 믿어지고 깨달아지는 겁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인다면 16절의 사건이 우리에게 임할 것입니다.


16절을 다음과 같은 각도로 다시 보겠습니다. 구원의 주체는 누굽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인간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대신 인간이 주인이 된 겁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고, 내가 역사를 주관하는 겁니다. 이는 말씀과 정반대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여러분의 구원의 주인공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십니다. 그러면 구원의 대상은 누구십니까? ‘세상’입니다. ‘세상’이란 세상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여러분, 주어와 목적어를 바꾸지 마십시오. 이것이 타락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입니다. 또한 구원의 넓이, 높이, 크기는 어떻습니까? ‘이처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그림이 들어 있는 액자에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How much do you love me.” “This much.” 십자가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겁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넓이요, 깊이요, 높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이만큼’입니다.


구원의 동기는 무얼까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입니다. 그 구원의 동기는 당신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방법은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는 것입니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무한한 사랑을 받는 사람 편에서 조건은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그 사랑을 내게 베풀어주셨어도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위한 사랑은 이런 겁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예수를 위해 무엇을 하는 게 아닙니다. 그분이 이미 나를 사랑하셨고, 구원의 대가도 이미 다 치렀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원하는 것은 우리에게 약속한 모든 축복을 누리는 겁니다. 그리고 남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인생을 멋지게 살라고 하십니다. 남을 축복하라고 합니다. 할렐루야! 이런 게 구원의 삶입니다.


◆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세상을 위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사랑을 세상에 나누어주고 변화시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앞장서서 좋은 세상을 만드는 주체가 교회요,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질지어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은 독생자를 주신 것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믿음입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입니다. 지식인이냐, 무식한 사람이냐, 부자냐 가난한 사람이냐가 아닙니다. 조건이 있다면 ‘믿음’입니다.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가 아닙니다. “당신 예수를 믿습니까?” 라고 하지 “당신 예수를 아십니까?”라고 하지 않습니다. 안다고 구원이 오는 것이 아니고, 믿어야 접촉이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너무나 크신 분이기 때문에 인간의 지식으로는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절대 하나님을 다 알려고 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다 알려고 하면 오만입니다. 내가 이해해야 믿을 수 있다고 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여러분의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을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만큼 알 뿐입니다. 내가 이해해야만 하나님이 계시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께 예배하고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이지, 하나님은 나의 종이 아닙니다. 그래서 구원의 방법은 ‘믿음’입니다. 겸손하게 무릎 꿇고 경배하고 찬양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독생자를 보내신 겁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소극적인 결과는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적극적인 결과는 영생을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요점입니다. 만일 당신이 이것을 믿고 받아들인다면 거듭남은 이미 당신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났습니까? 이것은 중요한 뿌리입니다. 내가 아직 도덕적으로 미숙하고, 신앙의 경륜이 짧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 있는가 없는가 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의 기초를 분명히 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습니다. 거듭나셨습니다. 그 기초 위에 여러분의 믿음을 키워가십시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예수님이 주시는
놀라운 이 축복, 새생명, 구원의 메시지가
저들의 가슴에 완전히 확실하게
접붙여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