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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 히 1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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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성 경 : 히브리서 10:11-18
설 교 : 강동수 목사
 

에딘바러 공원에 있는 리빙스턴(David Livingston)의 동상에는 그의 어깨에 총이 있고 목에는 만원경, 손에는 성경책이 들려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그가 아프리카 선교의 전 재산이며 또 선교에 절대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횡단하는데는 율법과 장막 그리고 모세의 기도, 구름기둥이 절대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이 광야는 인생이 살아가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인생에게도 이것 등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상의 네 가지는 율법과 제사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이 율법과 제사를 완성하셨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Ⅰ. 예수그리스도는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구약의 율법은 두 가지 기능적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합니다. 율법은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며 회개하게 합니다. 또한 율법은 인간 스스로는 다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합니다. 둘째로 율법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에게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는 율법을 몽학선생이라고 하였습니다. (갈 3:24, 25)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였습니다. 이 율법의 정신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지상에 오심과 지상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사랑을 보여주시고 실천하셨습니다. 또한 그의 십자가상에서 죽으심으로 이 두 가지 정신을 완전히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성취로 율법이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새 율법을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기록한다고 하셨습니다. (16절) 그러므로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새 계명을 실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계명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요, 또는 모세 시대와 같이 돌비에 적어 법궤에 모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의 동기가 되는 마음과 삶의 길이 되는 생각에 기록한다고 하셨습니다.

Ⅰ. 예수그리스도는 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제사 제도는 하나님과 인간이 교제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 제도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이 제사를 받으시기도 하시고 받지 않을 수 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제사로 드렸습니다.

구약에서는 여러 가지 제사 제도가 있습니다. 번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소제, 등이 있습니다. 이 제사 제도 속에는 중요한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다음은 속죄의 사실입니다. 짐승의 피는 드림으로 속죄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뜻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제사입니다. 물론 제사에는 그 외에도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도 제사 제도에 숨겨져 있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제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완성하셨습니다. 구약시대의 모든 제사를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드리는 절대적인 제사로 만족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우리가 거룩함을 입었도다…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10-14)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이후에 모든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또한 그에게 예배하므로 그 은혜를 입게 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힘입어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제사 제도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예배하는 새 형태로 변화되고, 그 정신과 뜻을 더욱 만족하게 완성하신 것입니다.


Ⅲ.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의 죄와 불법의 모든 허물을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다시는 기억도 아니하신다고 성경말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고 그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다. 필라델피아의 콘웨일목사는 그가 외교간이었으나 예수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에 감격해서 전적으로 주의 일을 하기 위해 목사님이 되셨다고 합니다. 주께서 우리의 죽을 수밖에 없는 죄는 속량하시기 위하여 죽기까지 하셨는데 우리는 무엇을 아끼며 무엇을 주저하시겠습니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주님께 봉사하여야 합니다. 사자는 동물의 왕이라고 합니다. 사자가 토끼 한 마리를 사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여우가 비웃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쥐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놓치는 사실을 보고 곰이 여우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사자가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기에 동물의 왕이 된 것이니라” 우리들도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독립선언문을 작성한 33인이 누가 먼저 자기 이름을 쓸 것인가에 대해서 긴장하고 있을 때 어떤 분이 “제일 먼전 죽을 각오가 되어져 있는 사람부터 자기 이름을 씁시다” 라고 해서 숙연해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도 주님을 위하여 제일 먼저 죽을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이 교회의 중직자가 되고 책임 있는 직분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내에 있는 교회중에 부흥하고 화평한 교회는 한결같이 중직자들이 앞서서 봉사한다고 합니다. 속죄함을 받음에 대하여 감사하며 이를 인정하는 사람은 이에 상응하는 그리스도인의 책임 있는 삶이 요구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의 은혜가 이런 분들에게 더욱 풍성하게 임하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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