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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분노를 쉬게 하라 / 잠언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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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잠언 15:1-3
제 목 : 분노를 쉬게 하라
설 교 : 임대식 목사(평화교회)


장마도 그치고 태풍도 물러나 본격적인 무더위가 펼쳐지는 여름입니다. 낮에 뿐만이 아니라 밤까지 더워 밤잠 쉽게 못 이루는 열대야 현상 속에 지내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밤은 18-20도가 적절한데, 밤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 되면 잠을 잘 못 이루는 열대야 현상에 빠진다고 합니다. 밤잠을 설치면 생체 리듬이 깨어져 건강을 유지하기 힘들어 집니다.

그래서 열대야에서 불면증을 막으려면 기온이 떨어지는 저녁에 한 30분정도 걷거나, 자전거 타기, 맨손 체조 등 가볍게 운동을 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또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차가운 물보다 미지근한 물로 씻어서 신체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더욱이 날씨가 덥거나 불쾌지수가 높으면 쉽게 짜증이 납니다. 그리고 별 것 아닌 일에도 쉽게 화를 내게 됩니다. 이 여름에 건강관리와 더불어 우리 마음과 영혼 관리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합니다.

교회에서 경건하게 예배드리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옆에서 가던 차가 아무런 신호도 없이 갑자기 끼어들기를 해서 나도 몰래 입에서 욕이 나오는 경험을 이 여름에 더 하기 쉽습니다. 조금 전에는 찬송하고 감사하였는데, 불과 30분도 못 되어서 조그만 사건 앞에 어처구니없이 화를 내고 격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 참 부끄러워집니다.

또 교회 모임에서나 어떤 건설적인 회의를 하다가 그만 목소리가 높아져서 화를 내고 끝내고 마는 일들을 이 여름에 겪기 쉽습니다. 날씨가 더우니 내 감정을 내가 잘 다스리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사람은 여러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이 감정의 종류를 몇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우리 동양에서는 특히 7정이라고 해서 일곱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것은 희로애락애오욕입니다.

건강한 삶이란 어떤 삶인가? 이 7가지 감정을 잘 표현하고, 다스리고, 균형 있게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감정 하나라도 소홀히 하거나 지나치게 하지 말고, 적절히 감정을 다스려 나갈 때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날마다 좋은 일만 일어나서 웃고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지만, 사람이 계속해서 웃기만 한다면 그것도 우리 몸에서 병을 일으킵니다. 지나치게 웃게 되면 심장의 기가 상하게 된다고 합니다. 기와 혈이 흩어져서 기운이 빠지고, 정신이 흐려지며, 심하면 실신이나 광란을 일으키게 됩니다.

가끔 가수들의 공연장에서 여학생들이 흥분한 나머지 실신하기도 하고, 지난 월드컵 축구 경기에서 광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를 봅니다. 바로 이러한 현상이 지나친 기쁨의 감정에서 오는 신체의 병적인 변화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웃지 말고 살자는 것이 아니라, 7가지 감정을 골고루 조화 있게 갖추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분노, 화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흔히 분노, 화를 나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세상에는 꼭 필요한 분노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악을 보았을 때, 그것을 참지 못하는 의분, 공분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노하시는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노하신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불신하며 하나님 영광을 가리우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타락과 범죄를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진노도 바로 이런 분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적절한 분노, 필요한 분노는 참 중요합니다. 그리고 분명 분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 화, 분노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일입니다. 그 처리 방법에 따라서 죄의 여부가 결정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화를 내라, 그러나 그 화가 죄로 변할 때까지 화난 마음을 품고 있지는 말라.

비유로 이런 얘기를 듭니다. “새가 우리 머리 위로 날아갈 수는 있지만, 새가 내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것은 내 책임이다.” 무슨 말입니까? 내 속에 분노가 치밀고 화는 내는 것은 자연적 현상이지만, 이 분노가 내 마음을 지배하고, 분노로 말미암아 죄를 짓는 것은 내 책임이다, 내가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에베소서에도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분노, 화가 잘 조절되면 참으로 위대한 결실을 맺게 됩니다. 흔히 용기라고 부르는 것은 잘 조절된 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웅이나 위인은 화를 안 낸 사람이 아니라, 화를 잘 조절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에게서 화를 빼어버리는 것은 뼈를 빼어 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습니다. 맥없이 주저앉는 무골인간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운동선수가 자기의 실력을 최고로 발휘할 때에는 적절하게 화가 났을 때라고 합니다. 아주 화가 안 나 있거나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갔을 때는 자기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분노, 화는 우리 삶에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자, 내가 어떤 이유로 화를 벌컥 내었습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웬지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불안해 집니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됩니다. 화가 지나치면 갑자기 쓰러지면서 정신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크게 화를 내면 간의 기가 거꾸로 상충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기가 계속 지속하면 간에 쌓이게 되는데, 이것은 우리가 보통 울화통이 터진다고 하듯이 울화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 통계 자료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의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암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마음의 평정을 찾아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털어놓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개 ‘한 3년전에 몹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가슴에 피멍이 들고, 입맛도 일고 잠도 자지 못하고, 몇 날 몇 밤을 괴로워했는데, 3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그만 불치병에 걸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기분 나쁜 감정, 곧 마음에 응어리져있던 그 분노가 2,3년 지난 오늘에 무서운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문제는 빵의 문제, 이론의 문제라기보다 바로 이 감정의 문제입니다. 이 감정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 문제가 생기고, 건강이 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의 한 심리학자는 그래서 “모든 정신 질환의 8,90 %는 분노와 관계된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문제의 근본을 따지면 경제의 문제나 정치의 문제라기보다는 결국 감정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기분 나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서는 죽지 않아도, 기분 나쁘면 목숨을 건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교회가 부흥되려면 교인들의 기분이 좋아야 한다. 기분 나쁘면 천당도 마다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기분 나쁘면 교회에 안나옵니다. 지옥 가든지 천당 가든지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조건 기분 나쁘면 교회에 나오지 않습니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보다도 기분이 먼저입니다. 감정이 먼저입니다.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예수 믿는 사람이 그래도 돼?” 하고 신앙의 문제를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참지 못하면 “당장 예수 믿는 것 그만두겠다”고 아직 믿음이 적은 사람은 반응합니다. 죄를 짓게 만드는 격이 되고 맙니다.

또 우리가 안 믿는 사람 전도할 때, 이 감정을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상대방이 택도 없는 말을 하고, 하나님을 비방하는 말을 해도, 감정싸움으로 가서는 절대 전도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아예 전도의 문을 막아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상대방이 화를 내지 않도록, 내 마음 속에 슬그머니 솟아오르는 분노를 내가 억제하면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실 이 화, 분노는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나 성경 속의 영웅들에게도 있었던 인간의 근본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그 뿌리는 깊어서 이 땅의 첫아이 가인에게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인류가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자, 가인은 어땠습니까? 하나님이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형인 자기의 제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그때 가인이 심히 분해서 안색이 변했다고 했습니다. 즉 자기의 잘못이 어디 있는가 생각해 보려고 하지는 않고, 화를 냈습니다. 분해 했습니다. 그래서 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자기 친동생을 그만 살인하는 참극을 빚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분노를 이기지 못한 결과는 너무나도 비극적입니다. 이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계속될지도 모릅니다.

이 분노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몇 가지 지혜가 필요합니다. 첫째 화가 날  만한 환경을 피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부부싸움을 하려고 할 때, 슬그머니 그 자리를 피했다가 한참 후에 돌아오면 어떻습니까? 내 마음도 그렇고 상대방의 마음도 어느 정도 진정됩니다. 서로 부딪치는 자리를 피하는 것이 화를 이기는 길입니다.

둘째, 종종 휴식을 취하는 일입니다. 피곤하면 사람은 짜증이 더 나는 법입니다. 셋째 화가 날 때는 자신의 마음을 드려다 보아야 합니다. 내가 왜 화를 내는가 하고 스스로를 분석해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에 화를 낼 때가 많습니다.

어느 가정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오늘 저녁 반찬을 뭐해줄까?”하고 물으니, 남편이 “나 혼자 저녁 먹느냐, 뭐해 줄까가 뭐야, 뭘 해 먹을까라고 해야지”라고 화를 내서 큰 부부싸움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별건 아닌 것을 가지고 화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내가 왜 화를 내는가, 내가 꼭 화를 내야만 하는 일인가, 이렇게 자기 자신을 자꾸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넷째 절제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분노의 극복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절제의 훈련을 통해 쌓아 나가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 나가도록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다섯째로 무엇보다도 이 분노를 처리하는 창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화 날 때 이 화가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잘못이지만, 무조건 참고 견디어 속에서 쌓이면 이것도 정신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그 분노, 화를 발산해 버려야 합니다. 쏟아 부어야 합니다.

문제는 어디에 누구에서 그 화를 쏟아 붇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그 화를 하나님께로 가져왔습니다. 그 분노를 하나님께 내려놓습니다. 기도함으로 그 분노를 처리하는 것이 신앙인의 태도입니다.

자, 우리가 대부분 화가 날 때 그 화를 어디로 가져가서 처리합니까? 사람들은 손쉬운 상대에게로 그것을 가져갑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줍니다. 참 특이한 것은 분노는 전이된다는 사실입니다.

직장에서 야단맞고 기분이 나쁜 남편은 집에 와서 아내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부인은 애꿎게 아이들한테 신경질을 부립니다. 아이들은 강아지를 발로 차 버립니다. 강아지는 고양이를 물고, 고양이는 쥐를 물어 뜯습니다. 그러나 이런 화풀이는 남에게 상처를 줄 뿐 아니라, 바람직한 해소 방법도 아닙니다.

분노를 가장 잘 이기는 길은 분노를 표현하는 것이지만, 이 표현은 다른 사람에게로 가 아니라, 하나님께 호소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호소하는 일은 신앙적으로가 아니라, 심리학적으로 보아도 정신 건강에 참 좋은 일이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분노를 이기는 길은, 성경 말씀을 사모하여, 말씀의 가르침에 도움을 받는 길입니다. 성경은 뜻밖에 화와 분노에 관한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 가운데도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 하느니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우리가 자주 듣게 되면 우리가 말조심을 하게 되고, 나의 화 잘 내는 성품을 이겨 나갈 수 있게 됩니다.

성경 도처 도처에서 이런 교훈의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분노를 당장 나타내거니와 슬기로운 자는 수욕을 참느니라”고 합니다. 잠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16:32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특별히 우리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하는 말씀과 같이 상대방의 분노를 삭게 하는 유순한 대답이 필요합니다. 대체로 상대편에서 기분 좋게 말하면 나도 기분 좋게 말하고 상대편에서 화를 내면 나도 화를 냅니다. 상대편에서 목소리를 높이면 나는 더 크게 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과격하게 나올 때 내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한마디 하면 그 험한 분위기가 사라집니다. 내가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감정적인 소리로 분노를 격동하게 만드나 지혜로운 자는 부드러운 말로 분노를 잠재우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친절한 말을 해야 합니다. 한 통의 쓴 약보다 한 방울의 꿀이 더 많은 파리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언제나 상대방을 존경하는 태도로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신중하고 정중하며 조심스러운 말이 필요합니다. 내 분노부터 쉬게 한 후에 말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평화로운 마음이 되기 전에는 입을 열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벽에다 이런 글을 써 붙였다고 합니다. “화가 나면 열까지 세자. 죽이고 싶으면 백까지 세자.”

그리고 때로는 침묵의 지혜도 필요합니다. “입으로 나오는 말은 뱉지 않고 꿀꺽 삼켜도배탈이 나는 일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남을 화나게 하는 경우는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을 참은 것은 후회될 일이 없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분노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죄가 되지 않도록 분노를 다스리는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로는 분노를 다스리고, 참고, 조절하며 살아야 하겠으며, 적절히 분노를 표현해야 마음이 건강합니다.

하나님께 기도로 분노를 표현하고, 말씀으로 나를 잘 다스려 나가는 가운데 분노를 그치게 하고, 분노로부터 승리해 그리스도를 닮아 나가는 신앙인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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