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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하시고 / 창 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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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자 : 고신일목사 (기둥교회)
제  목 :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하시고
성경본문 : 창세기 39장 1~6절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하시고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창세기 39장 1~6절) 
<목회기도>
 
범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무더위와 장마를 통해… 봄 가을의 서늘함과
겨울의 추위를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함에도 원망과 탄식,
불평과 한심함에 절망하며 살았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 오늘 예배드림으로
하나님 만난 감격이 있게 하시고
세상이 알 수도 없고, 줄 수도 없는 평안을 얻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낙심한 이들은 새 힘 얻게 하시고
평범하고 습관적인 믿음을 가진 이들은
확신과 기쁨이 있는 믿음을 갖게 하시며,
영육간에 병들고 지친 이들에게는 발과 발목에 힘을 주시옵소서.
치료의 기쁨을 주시옵소서.
일어나게 하시고 걷게 하시며 뛰게 하여 주시옵소서.
군대에, 외국에, 병상에 누웠음으로 이 자리에 있지 못한 이들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 여기 구경왔어도, 목적이 다르게 왔어도…
복음 듣게 하시고 예수님 영접하고
하나님 사랑하는 체험하는 감동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 전하는 부족한 종의 목소리에 기름 부어 주셔서
성령께서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은혜로운 찬양을 해 주신 찬양대와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감사합니다.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배를 위해 봉사하는 많은 분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예배드림으로, 말씀 들음으로… 가슴 뜨거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아침에 e-mail을 확인했습니다.
초등학교 어린이가 제게 편지를 썼는데 아직 답장은 못했습니다.
그 편지의 내용이 "저는 여름성경학교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어요.
첫째날에 바울에 대해 설교하실 때 제 가슴이 뜨거웠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유명한 강사도 아닌 제가 설교했는데 초등학생이 가슴이 뜨거웠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매주일 예배 드리면서 어떠십니까?
오늘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에 가슴 뜨거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참으로 신기하게 만드셨습니다.
어떤 환경에도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흔들리고 절망하고 포기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살다 보면 건강이 나빠질 때도 있습니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안들 때도 있고, 안정감이 흔들릴 때도 있으며,
사랑이 깨지는 것을 경험할 때도 있습니다.
부서지고, 무너져서 절망적인 상황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저 높은 곳을 향해 나갈 때
사막 같은 절망 속에서도 샘을 보는 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은 기쁨과 감격에 벅차
그 기쁨을 춤을 추며 찬양으로 표현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 하나님이 보여 주신 환상,
하나님이 갖게 해 주신 비전(Vision)이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이상하게도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지 못했습니다.
외로움과 고독, 고통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오늘 본문(창39:1~6)의 주인공 "요셉"입니다. 
저는 요셉에 대해서 이미 여러 차례 설교 했습니다.
지난주간에는 [기둥 같은 인물]이라는 주제로 어린이 여름성경학교를 했는데
첫째날은 '바울'에 대해서, 둘째날은 '요셉', 셋째날은 '고넬료'에 대해 설교했습니다.
오늘도 요셉에 대해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큰 은혜의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보여 주신 꿈에 젖어 살면서 그 꿈 때문에 엄청난 대가를 치뤘습니다.
미움 받고, 팔려 가고, 고통 당하고… 오랜 세월 눈물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사람들 대부분이
외롭고 힘들게 인생을 살며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습니다.
그들은 인정받지도, 환영받지도, 칭찬 받지도 못했습니다.
재미있고, 멋지게, 신나게 인생을 살지 못했습니다.
세상적 가치로 볼 때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사람들은 재미없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힘이 들고 어려워도 찬송하며 가야하는 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자세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그랬습니다.
 
 
요셉은 꿈꾸는 사람,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복잡하고 자랑스럽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어린이들에게 설교할 때 요셉의 가족배경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기가 곤란했습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4명의 아내를 두었습니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살면서도 지지고 볶고
때로 싸우기도 하며 복잡하게 사는데
요셉의 가정이 얼마나 복잡했겠습니까.
요셉은 4명의 여인에게서 낳은 배다른 형제
12명의 아들 중에 11번째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에게는 사랑 받았으나 형제들에게는 미움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요셉은 복잡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의 꿈은 특별했습니다. 요셉이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우리가(요셉과 형들이)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창37:7)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창37:9)
요셉은 편애하는 아버지 때문에 미움 받고 있었는데(창37:3~4),
꿈 이야기를 함으로 인해 형제들에게 더 미움 받았습니다(창37:5).
요셉은 꾼 꿈 때문에 아버지에게 꾸중도 들었습니다(창37:10).
요셉이 꾼 꿈은 요셉이 꾸고자 작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꾸게 해 주신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그 꿈 때문에 형제들에게 미움 받았습니다.
책망 받고 그것 때문에 고통 받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이 보여 주신 꿈을 통해
자신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 비록 내가 이런 환경에 살지만 어느 때인가 하나님이 나를 세우시고
내 형제들까지도 내게 고개를 숙일 만한 자리에 나를 있게 하실 것이다'라는
비전을 마음 속에 갖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무엇인가 '되고 싶고,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야망(ambition)과
신앙적인 표현의 비전(vision)은 다릅니다.
- 야망이 "자신의 만족을 위한 꿈"이라면
-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루어 가는 꿈"을 말합니다.
 
비전은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은 없지만…,  당장 손에 잡을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꿈꾸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비전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며,
- 지금 확인할 수 없는 [천국에 간다는 사람]이고,
- 인류 역사를 통해 아무도 증명해 내지 못한 [영생을 산다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천국에 간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까?
•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증명되지 않은 것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비전의 사람입니다.
• 히브리서 11장 1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vision을 담은 고백]입니다.
 
 
비전(vision)은 보는 것입니다.
 
비전(vision)은 보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망막에 착상된 형상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 안에 비친 모습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한 대로 보는 것입니다.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을 가졌는 지,
어떤 믿음을 가졌는지에 따라 보는 것이 달라지며 보여 지는 것이 달라집니다.
• 민수기 13장 30절~14장 10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 광야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12지파의 족장들을 보냈습니다.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족장들이 돌아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그 중에 열 명은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입니다.
거기는 성이 견고하고 거기 사는 사람들은 키가 크고 굉장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거기에 갈 수가 없습니다."라는 절망적인 보고를 했습니다(민13:32~33).
 
그런데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 사람과 함께 갔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같은 땅을 보고 똑같은 사람을 만나고 와서
"그 땅은 아름다운 땅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함께 갔던 열 명은 "거기 갈 수 없다"고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민14:9).
 
똑같은 것을 보고 왔는데 열 사람의 말과 두 사람의 말이 달랐습니다.
우리의 눈은 눈에 비쳐진 모습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속에 어떤 생각, 어떤 믿음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같은 상황도 가능한 것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다르게 보는 것입니다.
비전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눈으로 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미래와 사람, 그리고 사건을 봅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목표를 향해 나가는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비전(vision)을 가진 사람은 방해와 따돌림, 반대와 낙심,
어려움과 고통, 실패와 눈물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믿고
목표를 향해 나가는 단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실패하게 하신 것, 눈물 흘리게 하신 것, 어려움을 겪게 하신 것…
모두에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다"고 믿고 낙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비전(vision)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슴에 품은 요셉은
마음에 "하나님께서 나를 들어 쓰실 것이다.
형제들조차도 내게 절하는 때가 올 것이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 받아 팔려가면서도 비전을 품고 갔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인간의 굴레에 억압되지 않습니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 팔리고
요셉을 산 사람은 요셉을 애굽 사람 보디발에게 팔아버립니다.
보디발은 바로의 신하였고 시위대장이었습니다.
시위대장은 <왕궁경호대장>을 말합니다.
  창 37:25, 28, 36절에 보면 요셉의 형들에게 요셉을 사서
보디발에게 판 사람은 [미디안]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나 창 37:27~28, 창 39:1절에 보면
[이스마엘]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이스마엘 사람은 하갈에게서 비롯된
          아브라함의 후손이었고(16:15),
미디안 사람(37:28)은 그두라라는 첩에게서 비롯된
          아브라함의 후손이었다(25:2).
이스마엘 사람이라는 용어는 사막에 거하는 족속들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가 되었으며,
따라서 미디안 상인들 역시 이스마엘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렇게 두 종족의 이름이 함께 기록된 것은
이들이 같이 동행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때 그의 나이 17세였습니다(창37:2).
이제 그는 완전한 노예입니다. 그에게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묶였습니다.
 
우리들 모두에게는 요셉과 똑같은 굴레가 있습니다.
지금 어쩔 수 없는 굴레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배움의 굴레에, 돈의 굴레에, 직장의 굴레에
다른 사람의 굴레에 얽혀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엇엔가 팔려서 쩔쩔매며 노예처럼 사는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요셉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요셉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고, 아무리 천한 일을 하며,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 해도 당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러한 인간의 굴레에 억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삶을 형통케 하셨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요셉은 너무나 힘들게 살았습니다.
요셉은 선하게 살았지만 그 대가는 항상 억울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너무나 당당했습니다.
요셉은 노예였지만 노예가 아니었고, 죄수였지만 죄수가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형통케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며 기도하고
어느 곳에 가서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던 요셉이
왜 형제들에게 미움 받고, 형제들 손에 의해 종으로 팔리고
모함 받아 감옥에 갔을까…
그게 무슨 형통이고 그게 무슨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인가?' 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보통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런 일이 왜 일어나겠습니까?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 라는 생각을 가진 분이 있다면
그분은 아직도 믿음이 없거나 이미 믿음에 실패한 것입니다.
 
요셉은 하인이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 소속된 노예였습니다.
자존심도 지킬 수 없는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보여 주신 꿈을 가슴에 담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요셉은 신뢰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잘했으면 보디발이 노예 요셉에게 다 맡겼겠습니까?(창39:6)
요셉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았으면
요셉의 주인이, 요셉이 믿는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계신 것을 보았겠습니까?
이는 요셉이 비록 노예생활을 했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을 드러내며 바른 신앙생활을 했다는 증거입니다.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여러분, 지난 월드컵 때 축구 선수들 가운데 신앙생활 하는 선수들이
골을 넣고 나서 잔디 위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셨을 것입니다.
경기가 끝난 후에 선수들이 손에 손을 잡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셨을 것입니다.
브라질 선수들도 우승한 뒤에 셔츠를 들춰
"나는 예수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예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삶의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나는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라고 드러내며 사셨습니까?
어쩌면 우리들의 믿음은 축구선수들의 믿음 보다 못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믿음은 남의 집에 팔려가 하인으로 종살이했던
요셉의 믿음 만도 못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셨다면…, 하나님이 요셉을 사랑하셨다면…
요셉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았다면
왜 하나님이 요셉을 노예가 되게 하셨을까요?
왜 종살이를 하게 하셨을까요?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의 삶의 역사를 막지 않으셨습니다.
요셉이 노예 되는 것을 그냥 두셨습니다.
다만 믿음대로 살려고 애쓰는 요셉이 믿음을 가졌음으로
그 상황을 극복할 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살다가 노예가 되는 것 같은 답답함과
감옥에 떨어지는 것 같은 절박함이 느껴지십니까?
그 상황을 극복할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미움은 받았으나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미움은 받았으나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죽임을 당하는 것 같은 상황에서도…  남의 나라에 하인으로(종으로) 팔려가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도… 요셉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 정도가 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목사를 원망하고, 교회를 원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신앙의 소유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요셉은 매고 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미움 받고 고통을 당해도… 힘든 세월을 보내면서도…
미워하거나 원망하거나 매고 살지 않았습니다.
 
우리라면 어떨까요?
형제들이 다른 나라에 팔았습니다. 그로 인해 인생을 망쳐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을 가지시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내가 가만히 두나 봐라." 이를 부득부득 갈며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는 너무 잘 삐지고 토라집니다.
"쟤는 안돼. 쟤는 틀렸어. 상대하기 싫어. 이래 싫고, 저래 싫고,
삐지고, 토라지고, 안보고…"
잘 삐지는 분들은 잘 들으세요.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마음에 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다 풀고 사시기 바랍니다. 펴고 사시기 바랍니다.
• 마태복음 18장 18절에 보면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얽어매고 사는 것을 풀어야 하나님 나라에서도 풀리는 것입니다.
내가 묶고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들의 삶을 풀어 주시지 않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꿈에 보여 주신 그 비전,
"어느 때인가 하나님께서 형제들도 내게 머리를 숙일 만큼
높은 자리에 나를 두실 것이다"
라는 비전을 가진 채 그 비전을 바라보며 마음을 묶고 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피흘리시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는 우리는
풀고 살아야합니다. 펴고 살아야 합니다.
움켜 쥐고 얽혀 살아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 안에서 믿음의 비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비전은 현실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믿음의 비전은 때로 친한 사람이나 가족들조차 이해해 주지 못합니다.
믿음의 비전은 시련을 몰고 올 수도 있습니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미움 받는 다고, 버림받았다고, 억울하다고, 힘이 든다고 
주저앉지 말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답은 하나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든 요셉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형통케 하실 만한 믿음'을 보이면 됩니다.
어떤 환경일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도록, 하나님이 나를 형통케 하시도록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록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롬:28).
요셉은 멸시당하고, 고난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노예로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던 비전대로 애굽의 총리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눈에 보이는 현실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말씀을 믿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세상을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부족한 종이 이 시간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요셉처럼 무엇엔가 묶이고 얽혀서
노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들이 그 환경을 극복할 만한 믿음과 능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하여 주시옵소서.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발견한 담대함으로
이 세상을 승리하며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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