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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모여야 하는 이유 / 히 10: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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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교 자 : 고신일목사 (기둥교회)
제   목 : 모여야 하는 이유
성경본문 : 히브리서 10장 23~25절


모여야 하는 이유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않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서 10장 23~25절) 
<목회기도>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
오늘 [맥추감사주일]과 [기둥교회 창립 31주년 기념주일]을
맞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31년 전 이 땅에 기둥교회를 세우시고 지금까지 인도해 주심 감사합니다.
여기에 머물지 말게 하시고, 주안에서 성장하고 성숙하여
주님의 뜻을 드러내는 교회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동안(31년 동안)
- 기둥교회에서 세례 받은 이들
- 기둥교회에서 직분 받은 이들
- 기둥교회에서 성장하여 목회자가 된 이들
- 기둥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다가 하나님 나라에 간 이들…
지금 어디 있든지 저들 모두가 하나님 마음에 합한 평강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시간 힘들고 어려웠던 사람들이
말씀을 듣는 중에 가슴을 펴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소망 중에 현재의 고난도 감사하며 살기 원합니다.
연약한 우리에게 "넉넉히 이기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당당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 <병상에 있는 환자들, 군대에 간 이들,
외국, 객지에 있는 기둥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상함이 없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주장하실 줄로 믿사옵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은 기둥교회 [창립 31주년 기념주일]이며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오늘은 보리를 추수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주일이며
전반기의 우리의 삶을 감사하는 주일입니다.
옆의 분들과 "행복해 보이십니다." 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워 행복하지 않더라도 잘 될 줄로 믿고,
천국의 소망으로… 행복한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부터 2002년 후반의 삶이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처음 지킨 절기입니다.
그들은 중심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마음으로
맥추감사절을 지켰습니다(출23:14-17).
 
맥추절은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기 때문에 초실절(初實節)이라고도 하며,
유월절을 지나 일곱째 주일에 지킴으로 칠칠절(七七節)이라고도 합니다. 

 
맥추절은 수고하여 얻은 처음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감사를 마음으로, 입술로(찬양과 기도), 생활로, 물질로,
몸으로… 표현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이란 한 마디로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 잘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인지 불평하며 사는 사람인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힘들고 어렵지만 천국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왜 맥추감사절을 지켜야 할까요?
▶ 성경에 하나님께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4장 22절에는 칠칠절 곧 맥추절을 지키라고 했고,
• 신명기 16장 9-10절에서는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왜 맥추감사절을 지켜야 할까요?
▶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처음 익은 열매(초실) 주심에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자와 불평하는 자는 전혀 다른 심령상태를 가지게 됩니다.
감사하는 영혼은 기쁨이 충만한 생활을 하나
불평 불만을 토하는 사람은 언제나 어두움의 생활을 합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복(福)의 문을 여는 열쇠이고
          "불평"은 복(福)의 문을 잠그는 자물쇠입니다.
 
왜 맥추감사절을 지켜야 할까요?
▶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 출애굽기 20장 6절에는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리라"고 했고,
• 요한계시록 1장 3절에는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맥추감사절을 지켜야 할까요? 
▶ 감사는 감사를 낳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몽골에 다녀왔습니다.
몽골 울란바토르 공항에 내리면서부터 여행 하는 내내
그리고 그 공항을 떠날 때까지 "감사합니다"라고 감사 기도를 했습니다.
몽골에 가서 보니 그동안 제가 얼마나 잘 살았는지,
제가 자는 잠자리가 얼마나 편했는 지,
제가 사는 동안 맛있는 음식을 얼마나 많이 먹고 지냈는 지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몽골에서는 먹는 것도 잠자리도 얼마나 불편했는 지 모릅니다.
여러분 지금의 삶에…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에게 감사의 조건을 더하십니다.
사람들은 감사한 것과 좋은 점을 보기보다는 나쁜 점과 흠을 더 잘 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범사에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 감사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음에만 담아 두면 안됩니다.
- "감사합니다"라고 입으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만 담아 두고, 입으로만 표현해서도 안됩니다.
- 감사한 마음은 물질로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삶에서도, 하나님께도 물질로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물질의 감사는 미국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 자주 표현하는 말씀을 빌리자면
"first -  첫 번째 것을 드려야 합니다.."
"best - 최고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last - 마지막인 것 까지도 드려야 합니다."
과부는 두 렙돈으로 자기의 소유의 마지막까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가장 첫 번째 것으로, 가장 최고의 것으로, 마지막까지도 드리는
감사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 생활속에서 감사가 표현되어야 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10:31)하면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하며 감사를 드러내는 감사절이 되어야 합니다.
 
 
공사중인 교회
 
우리 기둥교회만 생각해봐도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기둥교회는 1971년 7월 1일에 창립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부터 30년 동안 기둥교회가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해 왔는 지
사진으로 엮어 <기둥교회 30주년 기념집>을 출판했습니다.
이 책을 보면 교회의 형태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처음에 우리 기둥교회를 다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기둥교회는
  1971년  7월 1일에는 <소사중앙교회>였습니다.
  1973년  7월 1일에  <부천중앙교회>로 개명했습니다.
  1993년  4월 21일에 <기둥교회>로 다시 이름을 바꾸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고 해서 완전한 모습이 된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라는 단어에는 '완성' 또는 '완전'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의미의 교회도 완성된 곳이 아닙니다.
지어져 가는 곳입니다.
어느 교회도 완성된 곳은 없고 "공사중인 교회"입니다.
'공사중'이라는 말은 변화가 있고 계속 성장하고 발전하며
전진해 가는 살아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지저분하고 더럽고 추한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기둥교회>에 완전한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우리 기둥교회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 기둥교회를 자세히 보면 허물과 흠이 많습니다.
정말 형편없는 신앙생활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뭐 저런 사람이 교회를 다녀?"라고 할 만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고신일목사>를 비롯해서 기둥교회의 어떤 사람도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기둥교회는 아직도 지어져 가는 '공사중인 교회'입니다.
다만 우리는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기둥교회가 순결한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순수함을 지켜 사람들로부터 '골동품, 보수적'이라는 말을 들을지라도
교회가 지켜야 할 순수함을 지키고 싶습니다.
- 단결한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고집이나 판단을 접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 즐거운 교회이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워도 말조심하고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용기 주고 칭찬하며 자랑하는 믿음의 형제와 자매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기둥교회에서 신앙생활하며 쓰임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미 기둥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땀흘리고 봉사하는 것 그것이 쓰임 받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기둥교회가 순결하고 단결하고 즐거운 교회,
평안하고 풍성하여 일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하는 뜻을 담아
<기둥교회 노래> 가사를 만들었습니다.
 
♬ 오늘 창립기념주일입니다. 다함께<기둥교회가> 를 부르시겠습니다.
 

 
 
 
교회에 등록하고,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신앙생활하는 우리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하는 사람은 교회에 등록하고,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예배드리기 위해 꼭 교회에 나가야 하는가?",
"공적인 예배에 참석해야만 하는가?",
"꼭 교회에서 예배드려야 하나?",
"교회를 정하여 등록하고 적을 두어야 하는가?"… 등의
질문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도 경건하게 살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깊은 산 속에서 또는 외딴 섬에서 성경을 읽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때묻지 않게 살려는 수도 생활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특정한 장소에 모여 예배드리는 공중예배(공적인 예배)는
개인적인 예배의 삶과 구별되게 취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사람들이「모여」예배드렸다는 내용을 찾아 나열하자면 많습니다.
 
하나님은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예배드리도록 하셨을까요? 
이런 저런 단어와 성구를 동원해서 설명할 필요 없습니다.
답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원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여서 예배드리는 공적인 예배를 위해, 하나님의 임재를 위해,
때와 장소에 따라 성막과 성전을 짓게 하셨고 제사장을 두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시대가 지나고 사람들이 달라지면서 예배를 위한 모임의 방법과
예배의식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모여」예배드리는 것을 없애려는 시도에 대해서
'그리하지 말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히10:24-25).
세상에서 활동하시던 예수님도 그 당시에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구별하여 모였던
공식적인 자리에 친히 참석 하셨습니다(눅4:16).
초대교회 성도들도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행2:46-47).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건 여행을 했던 사도들과
초기 전도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모여 예배드리는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초기 3세기 동안 대부분 교회는 예배를 위해
지어진 특별한 건물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고린도인들은 그들의 집에서 모였고(고전16:19, 골4:15),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세상직업으로 인해
서로 모일 수 있는 곳(빌4:22, "황제의 집 사람들")에서 만났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면서
모여 예배드릴 교회를 위해 예배드리는 집-교회-를 짓기 시작했고
그 구별된 집인 교회를 중심으로 모여 예배드리며 신앙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보낸 서신들에도 보면 지역교회에 속한 성도들에 대한 관심과
지역교회의 평안을 위한 권면 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대부분의「교회」라는 표현은
"지역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사람들이 모여 예배드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쉬는 날, 편한 날 예배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날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달력에 보면 주일은 주말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일을 주말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주일은 한 주일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그 시작하는 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날이 우선이며,
예배의 날에 맞추어 달력이 만들어졌습니다.
예배와 주일성수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필요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샤머니즘적인 생각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렇게 공적인 장소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날
예배 드리기를 원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셨기 때문이지
우리가 이런 저런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왜 하필이면 주일입니까? 왜 하필이면 교회입니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적인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는 것'과
'주일을 소홀히 하는 것'은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람은 '교회에 꼭 등록하고 다녀야 하느냐?'고 말합니다.
이 교회, 저 교회 돌아다니면서 편하게 신앙생활하면 안되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도 누가 교인이며,
누가 교인이 아닌지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행2:47, 행5:13). 
 
초대교회가 집사를 세우고 감독을 세워 일을 맡기고 감독을 하게 했다면
누구를 위해 일하고 누구를 감독했겠습니까?
일을 맡은 집사, 일하는 사람들을 감독하는 사람들 모두
교회에 적을 두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몇 가지만 살펴보아도 예수 믿는 사람이
교회의 일원이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교회에 적을 둔다는 것은
'자신이 구경꾼이 아니고 정확한 그리스도인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며,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임을 보여 주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고전5:12~13).
 
교회에 소속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예수께서 세우신 유일한 단체에 소속되어 섬기기를 거절하는 것" 입니다.
교회에 적을 두고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공적인 예배에 참석해야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필요 없는 일을 왜 성경이 가르치겠습니까?
필요 없는 일을 왜 기독교 2000여년의 역사를 통해 계속하며
그것을 위해 순교하는 희생을 하겠습니까?
 
 
모이기를 권해야 합니다.
 
루터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찾고자 하면  교회를 찾으라'고 했습니다.
오순절 이후 초대교회는 항상 모이기를 힘써 친교를 나누며,
예배를 드리고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행2:42~47 참조).
그러나 그런 믿음이 교회에 대한 핍박과 함께 다소 식어졌습니다.
그러자 교인들 중에 교회 출석은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는 자들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예는 예나 지금이나 세상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 교회를 부정하고,
- 교회의 예배를 부정하며
- 주일에 주일성수하는 것을, 모이기를 부정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본문 24~25절에 보면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고"
모이기를 힘쓰기 위하여 서로 "권하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권하고, 먼저 믿은 자는 나중 믿은 자에게 권해야 합니다.
낙심한 사람에게 권해야 합니다.
 
주일이 되면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렸는 지, 안드렸는 지
지역장과 교구 담당전도사님들과 담당목사님들이 확인을 합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교회에 잘 나오다가 안보이면 담당전도사님과 목사님에게
'왜 안나오는 지, 예배를 안드리는 지 전화하고, 가 보라'고 합니다.
어떤 때는 교역자들이 권하러 갔다가 문전박대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목사님, 전도사님들이 심방갔다가 쫓겨 오기도 합니다.
"이제부터 교회 안나갑니다."라고 모멸감을 줄 때도 있습니다.
제가 다 압니다. 저도 경험을 해 보았고 그런 보고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래도 가야 합니다. 권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권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모이기를 힘쓰라"고 하면서
왜 그래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주님의 날이 가까워 오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이 언제일런지
아니 우리가 주님이 오시기 전에
하나님께 부름 받아 갈 날이 언제인지…모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종말은, 주님의 날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내일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몇 살 까지 살 수 있을 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언제 다시 오실 지 아십니까?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날은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고 하셨습니다.
 
그날에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을 입증 받기 원한다면
예배와 기도와 봉사의 자리에 빠짐없이 참여해야 합니다.
교회의 모임은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스스로 확증하는 공적인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가 완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짜증나는 일도 있고, 미운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일 때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모일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행2:1~13 참조).
예수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교회>라고 할 때는 그 어원이 '불러낸 자들의 무리',
즉 구원받은 백성의 무리를 의미합니다.
그들이 모여 조직과 체계를 갖춘 것이 곧 교회입니다.
따라서 모임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회는 자멸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임에 참여하는 것을 습관화시키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모여서
① 예배드리고
② 말씀 배우는 곳입니다.
모여서 예배 드리고 말씀을 배운 사람들이 나가서
③ 전도하고 (천국소망을 전하고) 
④ 섬기며 봉사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입니다.
 
여러분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과 아벨의 삶이 무엇 때문에 달라졌습니까?
예배 때문이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운명과 그 후손의 운명은 '예배'로 결정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예배를 드린 아벨과 그 후손,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 예배를 드린 가인과 그 후손들의
갈라진 운명의 원인은 예배였습니다.
예배가 그들을 다른 인생으로 갈라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도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모여서 예배드린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었습니다. 
그들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발각되면 처형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예배 드렸습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 죽기를 각오하고 오신 분은 안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예배를 귀중히 여기며 참석했어야 합니다.
 
지난 월드컵기간 동안에 축구를 보기 위해
2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축구장에 입장하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여러분은 예배드리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애쓰셨습니까?
기둥교회 주일낮 3부 예배 시간은 10시 45분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11시 15분쯤 예배실에 들어옵니다.
아마 찬양대원들은 아실 것입니다.
찬양대원들이 나와 찬양하는 시간과 마지막 축도 전에 찬양할 때와
예배석에 앉은 인원이 다를 것입니다.
그만큼 늦게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예배의 자세가 이래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은 예배를 위해 정성 된 예물을 준비하고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예배에 합당한 복장을 갖추십니까?
비싼 옷, 새 옷을 입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적어도 예배(禮拜), 예를 갖추어 절하는 것 같은 복장이어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교회에 올 때 여기가
'기둥 수영장'으로 알고 오시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수영장에 가는 사람의 복장으로 교회에 옵니다.
어떤 사람은 목욕탕에 가는 사람의 옷차림을 하고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부모님에게 인사드리러 갈 때도 그런 차림으로는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했던 대학교에서는 복장이 불량하면
식당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유럽 여행을 해 보신 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바른 복장이 아니면 들어 갈 수 없는 식당이나 공연장... 등이 많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마음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 [교회 창립31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기둥교회에 모인 이유와 모일 이유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바르게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여기 강단에 꽃이 장식 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매주 금요일에 꽃꽂이 위원회에서 꽃을 구입하고
토요일에 정성스럽게 오랜 시간 땀흘려 강단에 꽃장식을 합니다.
우리 기둥교회 꽃꽂이는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이렇게 아름답게 장식해 놓은 꽃도 다음주가 되면 대부분 버립니다.
왜냐하면 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강단에 큰 나무화분이 있습니다. 모두 조화(造花)입니다.
어떤 분은 진짜로 착각하고 화분에 물을 주기도 했던 일이 있습니다.
강단에 있는 나무들은 가짜이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열매 맺지 못합니다.
아름답지만 열매 맺지 못합니다.
그리고 뿌리를 내린 나무는 함부로 옮길 수 없습니다.
그 자리를 지켜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기둥교회에 뿌리를 내렸습니까?
뿌리 없이 잠시 꽂혀서 물만 빨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에 뿌리를 내렸습니까?
뿌리 없이 잠시 꽂힌 꽃처럼 그냥 물만 빨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신앙의 뿌리를 내릴 때 영적인 열매를 맺고
신앙생활하는 사람으로서 빛되고 소금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잘려져 꽂힌 꽃은 잠시 아름다워도 비가 내리면 끝나고 맙니다.
그러나 뿌리가 있는 나무는 비가 내리면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기둥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여러분,
하나님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기둥교회에 뿌리를 내리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승리의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연약한 우리들을 붙들어 주시고
거룩한 주일에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말씀대로 살며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배 드리고 말씀을 귀로만 듣고 가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가슴에 담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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