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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을 줄꼬"에 답함 / 왕상 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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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무엇을 줄꼬"에 답함 
본 문 : 왕상 3:5-14
설 교 : 김희승 목사 (일산소망교회)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왕상 3:5-14)”

약관 20세 정도에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사실상 모든 것을 얻은 사람일 수 있었습니다. 이집트의 왕이 결혼을 통해 동맹을 맺을 정도로 위세를 떨치던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도 태평하고 부강하였으며, 그를 해할만한 군벌 역시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 앞에 구할 것이 없어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제 그는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안락함에 이르게 되면 그 안락함을 누리기 위한 방법을 찾기에 골몰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하나님을 찾아 천번의 번제를 통해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왕의 역할에 헌신할 것을 소원합니다.

그의 소원은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라는 하나님의 따스한 제의에 대한 그의 답변에서 더욱 명백해 집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백지수표 위에 이렇게 씁니다. “선과 악을 식별하여 백성들을 재판하고자 하는 ‘레브 샤마아’ 곧 ‘들으려는 마음’’을 주옵소서.”(9절).

백성들에게 있어 정의를 위한 최종적 심판의 주체는 솔로몬 왕 자신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에게 맡겨진 백성들이 자신의 역할을 통해 불의에서 오는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되기를 하나님께 구합니다. 의와 정의가 다스리는 나라를 소원하는 것, 그것이 그의 관심사였습니다.

솔로몬은 그 지위 자체를 복으로 여기기 보다 그 지위에 오른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소원하였습니다. 그가 지체 없이 구했다는 것은 그것이 평소에 그의 사고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시장 가면 무엇을 사다 줄까?” 할 때 여러분의 자녀들의 입에서 이내 과자 종류가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솔로몬에게 있어 백성들은 자신의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신은 그들을 위해 택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 다윗이 그것을 인정했지요(2:6,9). 그럼에도 그는 백성들의 안녕과 평안을 위해서는 단순한 재치 이상의 신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언젠가 보았던 다리를 저는 아프카니스탄의 청년의 꿈은 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낮에는 노동으로 밤에는 재봉틀로 여러 명이나 되는 동생들을 부양하면서도 그는 일신상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의사가 되어 자신과 같이 고통 당하는 이들을 돌아 보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사람인 그 조차도 이러한 감동의 삶을 꿈꾼다면 우리가 소원해야 하는 바가 무엇일까는 명확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있어도, 장애와 같이 과거 자신에게 미쳤던 한스러움과 그 어떤 원한에 사무침이 없어도 자신의 역할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선한 역할을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장수 부, 원수의 생명과 같이 누리는 것을 목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른 이들이 누리도록 돕는 역할 가운데 덤으로 주어지는 영광의 부산물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같은 그를 사랑하셨음에 분명합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 나라 백성들을 위한 소원을 아뢰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에 그에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심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구하지 아니한 것도 주십니다(마 6:33). 그것은 “이미 주셨다”고 표현됩니다. 그것은 그의 소원만큼이나 현재적인 복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는 자명한 일입니다. “내가 누리도록 해 주십시오”가 아닌, “나로 다른 이들이 누리도록 돕는 기쁨을 주십시오”가 우리의 기도 내용인 줄 압니다. 그 기쁨을 주십사 소원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최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이미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약 17년 전 공군학사 장교 훈련시절(80기) 늘 부대교회에 함께 가던 세 살 형 이호영 후보생이 몸살이 걸려 교회에 같이 가지 못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아마도 3주간의 특별 교육 기간이었던 때로 기억됩니다. 담배도 못피우고, 심지어 건빵도 주지 않던 때였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소령이셨던 부대 교회 목사님은 야구르트를 준비해 주시곤 했습니다. 당시 후보생들에게 그 요구르트 하나는 정말 귀한 것이었을 때입니다. 그런데 요구르트를 받아 든 순간 제 머리에는 이호영 후보생이 떠 올랐습니다. 그리고 주머니에 잘 넣고 단추를 잠갔습니다. 다시 내무반으로 돌아오던 때의 그 15분간의 흥분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내가 이것을 건낼 때 그가 얼마나 마음에 위로를 받을까?”

오늘 그렇게 한 가족의 가장이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지 알 수 없습니다. 아내와 어린 자녀들이 저의 보호와 위로 밑에 세상을 불안해 하지 않고 살아 갈 수 있게 하는 역할이 주어졌다는 것 얼마나 귀한 일인 지 알 수 없습니다. 내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때, 아내와 자녀들에게 세상은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가장의 역할은 누리기 보다 베푸는 역할일 때 더욱 빛이 나는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직장에서의 역할을 통해 그 직장에 속한 이들의 안녕을 묻는 사람입니다. 내가 일년 동안 얼마의 이익을 남겼는가 보다 나의 역할로 얼마나 많은 내 동료들이 기쁨을 누리게 되었는가에 대해 손익을 헤아려 보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더욱이 믿음의 사람에게 있어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께서 내 옆에 두신 성도의 삶을 풍요케 하기 위해 어떤 노력으로 또 내년을 살아갈 수 있을까를 물을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고자 하는 이에게 하나님은 역할을 주십니다. 역할이 없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래 보이지 않는 성도에게 따스한 위로의 전화 한마디 해 주는 것, 어린 심령들이 교회 나오는 것을 문 앞에서 반겨 맞아 주는 것, 매일의 기도에서 성도들 가정의 이름을 부르는 것, 교회의 운영 전반에 대해 같이 기도하고 지혜를 모으며 봉사하기 위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 등이 그것들입니다.

혹 오늘 밤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네게 줄꼬” 하신다면 우리는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교회와 가정과 직장에서의 역할을 위한 지체 없는 간구의 내용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구하고자 하는 의에 대한 갈망이 있는 한, 구하지 아니한 모든 것들을 하늘 아버지께서 가득 더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산 소망교회 김희승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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