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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열매 (절제) / 갈 5: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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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성령의 열매(절제)
본 문 : 갈 5:22-23
설 교 : 박봉수 목사 (상도중앙교회)
 

영동고속도로 대관령-강릉 구간에 새 도로가 개통이 되었습니다만 구도로 시절 이 구간을 운전하여 내려갈 때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낯선 시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관령에서 글자그대로 아흔 아홉 구비를 돌아 길이 나있는데 주요 지점 곳곳에 장벽을 치고 모래를 채워 놓은 시설이 있습니다. 알고 보니 브레이크에 문제가 생긴 차들이 이 장벽에 부딪혀서 정지하라고 세운 시설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간은 대관령 정상 870미터 고지에서 해발 10미터 수준의 강릉까지 99구비를 돌아 내려갑니다. 30분 넘게 걸리는 이 긴 기간 계속해서 브레이크를 밟아야 합니다. 그래서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든지 노후한 브레이크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런 차들이 응급 상황을 만났을 때 차를 이곳에 정지하라고 만든 시설이랍니다.

만일 이 구간을 내려가는데 브레이크에 문제가 생겼고, 이런 시설도 없다고 생각해 보면 정말 아찔합니다. 갈수록 속도는 가속이 붙고, 브레이크는 말을 듣지 않고, 도로는 구비 치고... 자칫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수밖에...


비유컨대 절제란 인생의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다가 과속이 되면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입니다. 인생 길에서 과욕이 생겨서 어떤 일에 오버할 때 절제하여 과욕을 줄입니다. 달리는 차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브레이크를 밟아 정지합니다. 인생 길에서 큰 문제가 생기면 절제하여 그 일을 멈춥니다.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필수적인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 인생의 브레이크가 절제입니다.

저는 돼지가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져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 먹는 것 절제하지 못해서 과체중으로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개미가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과로로 쓰러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 과로로 쓰러지거나 심지어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원숭이가 알코올 중독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갖가지 중독으로 치료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그 어떤 동물들도 살기 힘들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는 살기 힘들다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담 하와가 타락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뒤에 인생의 브레이크가 마음먹은 대로 작동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브레이크를 밟아도 속도가 줄지 않습니다. 브레이크를 작동해도 차가 제대로 서지를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 인생의 문제가 바로 여기서 생겨납니다.


오늘 본문에서 절제의 위치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즉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맨 마지막에 열거되어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아홉 가지 중에서 제일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 가지 열매들이 다 풍성히 맺혀져도 절제가 없다면 그 열매들은 빛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이 넘치는 사람인데 말이 너무 많다면 그 말 때문에 사랑이 빛을 잃게 됩니다. 충성하는 사람인데 감정의 절제를 하지 못해서 쉽게 화를 낸다면 그 충성이 빛을 잃게 됩니다. 마치 화가들이 그림을 다 그린 뒤에 낙관을 찍듯이 절제는 그 모든 성령의 열매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절제해야 할 것들

본문의 헬라어 원어를 보면 ejgkravteia(엥크라테이아)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을 영어 성경에서는 self-control(자기 조절)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니까 ejgkravteia 라는 본문의 단어는 절제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그 뜻은 ‘자기 스스로 알맞게 조절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다고 하는 것도 알맞아야 좋지 지나치면 해가 됩니다. 보약도 너무 많이 먹으면 독약이 됩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도 지나치면 오히려 병을 부릅니다. 그래서 절제가 필요합니다. 자기에게 알맞도록 모든 것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특별히 절제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첫째, 우리의 감정입니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살아가면서 순간순간 이 감정이 요동칩니다. 때론 신나고 기쁘고 행복하고, 때론 슬프고 화가 나고 짜증이 납니다. 이런 감정이 풍부할 수록 우리 인생이 정서적으로 풍요롭습니다. 그래서 감정이 메마른 것보다는 감정이 풍부한 것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조건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감정이 지나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주전자에 물이 끓어서 넘치는 것처럼 감정이 폭발하면 인생이 엉망이 됩니다. 이성을 잃고 감정의 지배를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약 1:19-20에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일에 화가 났을 때 그 화를 절제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의를 이룰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참 많습니다. 부흥회에 참여하여 정말 큰 은혜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따라 남편이 안 하던 말로 시비를 걸어옵니다. 자존심을 건드리고, 자기의 약점을 공격해 옵니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풍랑이 일 듯이 감정의 호수에 분노의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화를 벌컥 냅니다. 한 바탕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은혜 받고 남편을 전도하겠다고 다짐했던 그 모든 결단이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우리가 감정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의 욕망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에게는 욕구가 있습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을 채우고, 불필요한 것을 떨쳐내고자 하는 생리 심리적 과정이 있는데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욕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도가 넘는 것입니다. 살아가는데 충분한 것을 채웠는데도 더 채우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는 이것을 욕망 또는 욕심이라고 부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약 1:15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을 절제해야 우리가 죄도 짓지 않고 결국 죽음도 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땅에 욕심이 많은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임금이 이 소문을 듣고 그 노인에게 말을 타고 해가 질 때까지 달려서 출발했던 지점으로 돌아오면 그 달려 온 땅을 모두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욕심이 생긴 노인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달렸습니다. 그래서 정말 넓은 땅을 다 돌았지만 도착해서는 지쳐서 말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왕이 이 노인의 묘비에 이런 글을 써서 교훈으로 삼게 했답니다.

“ 이 무덤 속에 있는 사람은 이 나라 반이나 되는 땅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소유는 한 평 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욕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이 절제되지 못하여 욕망이 되면 도리어 우리를 망하게 만듭니다.

어떤 글을 읽다가 재미있는 글귀를 발견했습니다.


손톱이 길면 때가 끼듯이 욕심이 자라나 때가 끼네.

손톱을 깎고 나면 개운하듯이 욕심을 잘라내니 개운하네.

한동안 잊고 지내다 보면 어느새 자라있는 손톱

한동안 잊고 지내다 보면 어느새 또 자라있는 욕심

수시로 들여다보고 잘라야겠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욕망을 절제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풍성해 집니다.


절제하기 위해서

그러면 우리가 절제를 실천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훈련해야 합니다.

절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운동선수들이 철저하게 훈련하여 경기에 임하는 것처럼 절제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딤전 4:7-8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운동선수들이 육체적으로 훈련하는 것도 유익이 있지만 경건의 훈련은 그 보다 더 큰 유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절제를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큰 유익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을 지탱하는 엘리트를 와스프(WASP)라고 부릅니다. white 백인이며, Anglo-Saxon 앵글로색슨족이며, Protestant 개신교도들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케네디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이 와스프입니다. 그런데 이 와스프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왕처럼 강력한 위엄을 가진 어머니로부터 철저한 절제의 훈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부시 전대통령과 현 부시 대통령 역시 대표적인 와스프입니다. 한번은 부시의 동생 조나단이 야구경기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며 어머니를 불렀답니다. '어머니, 제가 홈런을 쳤어요.' 그러자 어머니 도로시가 엄하게 꾸짖었답니다. '네 자랑은 하지 마라. 중요한 것은 네 팀이 어떻게 됐느냐는 것이다. 개인보다는 전체를 생각하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단다.'


그렇습니다. 절제의 훈련은 한 사람의 인물됨을 세워갑니다. 지도자가 되게 하고,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절제의 훈련을 쌓아 가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현재 지도자 위치에 있는 분들은 더욱 철저하게 그리고 중단 없이 절제의 훈련을 쌓아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장차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시는 분들 지금부터 철저하게 절제의 훈련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분들을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둘째,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고전 9:25를 보면 바울 사도가 귀중한 교훈을 전해 줍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니까 경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절제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들마다 절제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경기에 참여한 선수를 비유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우리 그리스도인의 절제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하나님 앞에 쓰임 받고자 하는 비전이 있는 사람은 절제할 수 있습니다.

아무나 국가 대표선수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무나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절제하며 철저하게 준비한 사람들 그들이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처럼 절제하고 철저하게 준비한 사람 그들이 하나님의 종이 됩니다.


개그우먼 출신 MC 박미선 집사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낳고 체중이 약 20키로 이상 늘더랍니다. 시간이 지나도 전혀 살이 빠질 생각을 하지 않더랍니다. 이제 방송에 다시 출연하도록 요청이 오기 시작하는데 체중이 늘어 도저히 TV 화면에 나설 수가 없더랍니다.

‘이러다가 내가 퇴출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더랍니다. 그 순간부터 단식을 시작했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체중을 빼기 시작했답니다. 한 달 조금 지나면서 원래 체중으로 돌아왔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생각을 한다면 절제할 수 있습니다. 삼손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다가 절제하지 못해서 버림을 받게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을 비전을 가진다면 절제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 앞에 상 받을 비전을 가지면 절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마라톤의 영웅 손기정 옹이 향년 90세로 타계했습니다. 이분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셨는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때 동메달도 우리 한국 선수가 따셨습니다. 그분이 남승룡이라는 분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남승룡 선수가 기록이 더 좋았답니다. 국내 대회에서는 이분이 앞선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경기 당일 작전에 차질이 있어서 순위가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베를린 시내의 도로가 아스팔트와 돌로 된 길인데 당시 우리나라에 이런 길이 많지 않아서 무릎에 무리가 올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남승룡 선수는 개의치 않고 아스팔트 위를 달렸는데 비해 손기정 선수는 최대한으로 아스팔트 길 주위의 맨 땅을 찾아서 달렸답니다.

그 결과 남승룡 선수는 역사에 잊혀졌지만 손기정 선수는 길이 길이 역사에 남는 선수가 되지 않았습니까? 금메달과 동메달 차이가 이렇게 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상은 좋은 것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저 하나님 나라에 가면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상에도 차이가 있는데 큰상을 받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없이 겨우 구원받기에 급급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상 받는 삶을 꿈꾼다면 절제할 수 있습니다. 금메달을 꿈꾸는 선수들이 먹을 것, 쉴 것, 놀 것 다 절제하고 땀 흘려 운동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서 절제하며 살 수 있습니다.


셋째,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절제 역시 성령의 열매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땀 흘려 훈련을 받아도, 비전을 세우고 다짐을 해도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나를 사로잡으실 때만 절제할 수 있습니다.

마 4장을 보면 주님께서 40일 금식하신 뒤에 사탄에게 시험받으시는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세 가지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는 돌로 떡이 되게 하여 먹으라는 것입니다. 40일 금식 뒤에 얼마나 시장하셨을까요? 식욕에 대한 유혹을 물리치신 것입니다. 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인기를 얻으라는 것입니다. 저 갈릴리 촌 출신인 이름 없던 청년 예수로 하여금 유명해 지고 인기를 한 몸에 받게 해 주겠다는 유혹입니다. 이것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리고 셋은 자기 앞에 절하여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얻으라는 것입니다.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고 배경도 없던 청년 예수로 하여금 권력을 주겠다는 유혹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유혹들을 가볍게 물리치셨습니다. 그렇게 된 원인이 중요합니다. 이 사건 직전에 주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시는 체험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러 가시는 것도 성령에 이끌려 가셨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성령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해야 절제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충만하게 역사하실 때만 절제를 온전히 이룰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때로 과속하게 됩니다. 적당하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합니다. 때론 급하게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세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브레이크는 어떻습니까? 작동이 잘 됩니까? 식욕을 잘 절제하고 계십니까? 명예욕을 잘 절제하고 계십니까? 권력욕을 잘 절제하고 계십니까?

철저하게 훈련하시기 바랍니다. 비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성령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기도/

절제의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이를 위해 힘쓰게 하옵소서.

비전을 갖게 하옵소서.

성령께 맡기게 하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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