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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농어촌교회의 현주소와 그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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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 12:17-21
제목 : 농어촌교회의 현주소와 그 가능성
대한예수교장로회 삼거리교회

우리 한국 교회는 선교 120년만에 비약적인 부흥과 발전을 이루었다. 세계 50대 대형교회 중 절반이 우리 한국 교회에 있다. 전국민 25%가 복음화가 되었다. 새벽기도회의 열심과 회집 인원수는 세계 어느 나라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모인다. 전세계에서 세 번째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고 있다. 국토 넓이에 비하면 교회수가 제일 많은 곳이 한국 교회다. 그러니 전세계가 놀라고 인정할 정도로 우리 한국 교회는 부흥과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 부흥과 발전의 이면에는 날이 갈수록 그늘이 지는 곳이 있다. 날이 갈수록 상처를 받는 곳이 있어요. 바로 농어촌 교회다. 도시 교회는 사람들이 마구 모여든다고 좋아하지만 농어촌 교회는 점점 더 줄어드는 교세를 생각하면서 한숨짓는 교회들이 많다.
우리 한국 교회 역사상 농어촌 교회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일제 탄압과 핍박 속에서도 농어촌 교회가 중심이 되어 한국 교회 성장을 주도해 왔다. 미국의 농어촌 사회학자 브루너 박사는 한국 선교상황 조사를 하면서 한국이 일본에 비해 고도의 교회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를 도시보다 농촌 전도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농촌 교회 덕분에 한국 교회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농어촌 교회는 도시 교회의 모판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국 교회 성장을 주도해 오던 농어촌 교회가 이제는 갈수록 줄고 문을 닫는 교회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 반대로 도시 교회는 날로 더욱 비대해져 가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의 거센 물결을 따라 많게는 80% 이상의 농어촌에 거주하던 인구가 도시로 대이동을 했다. 그 결과 농어촌 지역은 노동 인구가 감소하고, 노령화되었고,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없어졌고, 학교는 폐쇄되었다. 그러니 이제 농어촌 지역은 살기에 불편한 곳, 고달픈 곳, 떠나야 할 곳, 정착 희망이 없는 곳으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농어촌 교회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지금 전국에는 1500여 읍면이 있고, 68,000여 마을이 있다고 한다. 이런 농어촌 지역에 1만5천여 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다. 그러니까 대략 네 다섯 개의 마을마다 교회가 하나씩 서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1만5천여 농어촌 교회 중 대략 절반이, 즉 7,500여 교회가 미자립 교회다. 경제적으로 자립을 하지 못해 대부분 도시 교회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7,500여 미자립 교회 중 1년 예산이 500만원 이하의 교회가 절반 가까이 된단다. 이 중 30명 이하의 교세를 가진 교회가 절반이고요. 특히 IMF 이후 농어촌 교회는 재정이 더욱 빈곤해졌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농어촌 교회 대부분이 일꾼이 부족하다. 훈련받은 일꾼은 더더욱 없는 실정이고, 게다가 청년들이 거의 없는 것이 농어촌 교회의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10년, 또는 한평생 농어촌 교회를 섬겨오던 기성 교인들도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도시 교회로 빠져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교회가 멀다느니, 교인수가 적어 분위기가 냉랭하다느니, 교회의 미래가 어둡다느니 해서 농어촌 교회 섬기기를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번 농어촌 교회 목회자 부부 세미나에 참석해서도 몇 몇 목사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금 농어촌 교회는 현상 유지만 해도 성공적이라고 말하더라. 사실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도 농어촌 지역을 빨리 떠나고 싶어한다.
저는 이런 농어촌 교회의 현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의 성경구절 단어가 절박하게 떠오른다. "상한 갈대, 꺼져 가는 심지." 지금의 농어촌 교회를 이런 상태로 비유하면 적당할 것이다. 지금까지 농어촌 교회는 험한 세파에 의해 시달리고, 험한 세월에 수없이 상처를 받아왔다. 빈곤한 교회 재정 때문에 시달리고, 일꾼 부족으로 시달리고, 교인들이 떠나서 상처받고, 금방 금방 교역자가 바뀌어서 상처받고, 이게 농어촌 교회들의 현주소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제 농어촌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농어촌 지역의 복음화를 포기하고 모두 도시 교회로 흡수되어야 하는가? 이대로 농어촌 지역의 교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하는가? 그럴 수 없다. 그 대답은 농어촌 교회는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또 살아 있어야 한다.
행 1:8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다. 예루살렘은 도시다. 예루살렘 도시뿐만 아니라 "온 유대"라 그랬다. 온 유대 땅, 즉 전국 방방곡곡, 모든 마을, 가가호호 구석구석마다 복음이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이 예수님의 소원이다. 이를 생각한다 할지라도 농어촌 교회는 반드시 존재하여서 농어촌 복음화를 위해 헌신해야 될 줄로 믿는다.
그렇다면 여러분, 농어촌 교회가 다시 일어나야 하고 부흥해야 하고 살아 있어야 하겠는데, 문제는 아직도 소망이 남아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 농어촌 교회가 죽어가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다시 농어촌 교회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을까? 그 대답은 하기 나름이다. 농어촌 교회는 지금 기로에 서 있다. 이대로 문을 닫을 것이냐? 아니면 도시 교회 못지 않게 살아 있는 교회를 만들 것이냐? 그 선택은 농어촌 교회 교인들 자신들이 해야 하는 것이다.
농어촌 교회가 도시 교회 못지 않게 살아 있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1. 상한 갈대, 꺼져 가는 심지 같은 농어촌 교회를 주님이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시는 분이라고 하신다. 여기서 "상한 갈대, 꺼져 가는 심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범죄한 인생을 가리키고, 연약한 교회를 의미하며, 병든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약하고 상처받고 보잘것없는 인생, 교회, 가정도 주님은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이다.
지금 농어촌 교회들은 상한 갈대 같고, 꺼져 가는 심지 같이 연약하다. 험한 세상에서 이리 저리 시달렸고 상처받았다. 그러다 보니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듣고, 또 변화를 싫어하는 모습, 타성에 젖어 그저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신앙 생활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야말로 겉으로 볼 때는 보잘것없는 교회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농어촌 교회도 주님이 세우신 교회라는 사실이다. 주님의 뜻이 있어서 세워진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라는 사실이다. 그런 교회를 주님이 버리실 리가 없는 것이다.
저는 농어촌 교회가 점점 죽어가고 문을 닫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교회가 되는 첫 번째 이유는 믿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주님은 베드로의 믿음의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 하셨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교회, 주님을 기쁘시게 할만큼의 믿음을 가진 교회는 결단코 주님으로부터 버림받지도 않고, 또 문을 닫는 일도 없다고 믿는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요한계시록 3장에 나오는 빌라델비아 교회는 진정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적은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교인 숫자가 적은 교회였다는 의미요, 재정 상태가 약한 아주 가난한 교회란 의미요, 세상적으로 신분이 낮은 비천한 신분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라는 것이다.
이렇게 적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지만, 빌라델비아 교회는 주님을 최고로 기쁘시게 하는 교회였고, 한 가지도 책망 받을 것이 없는 교회로 인정받았다. 왜인가?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교회를 주님은 극찬하신 것이다. 이 교회는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러므로 농어촌 교회가 주님의 사랑을 받고 은총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믿음이 중요하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주님은 상한 갈대 같고, 꺼져 가는 심지 같은 우리 교회를 결단코 버리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믿음이 있는 교회가 망하는 법은 결단코 없어요. 교회가 망하고 문을 닫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점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2. 내가 먼저 농어촌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지금 부흥하고 있고 그런 대로 살아 있는 농어촌 교회를 가 보세요. 뭔가 달라도 다른 게 있어요. 그 중 하나가 뭐냐하면 성도들이 자기 교회를 끔찍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농어촌에 있는 고향 교회들이 숫자적으로, 재정적으로 약하여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이야기들을 듣고는 자기가 섬기던 도시 교회를 포기하고 농어촌 고향 교회로 들어와 봉사하고 헌신하는 그런 뜻 있는 젊은 성도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고 듣고 있다. 굉장히 아름다운 일이다.
지난 번 여차 교회를 방문하여 목사님과 대화하던 중 들으니까 저기 옥포에서 한 젊은 부부가 고향 교회를 섬기겠다고 여차까지 들어와서 주일을 지키고 또 많은 부분에서 봉사하고 있대요. 율포 교회 목사님도 그런 이야기를 해요. 고현에서 몇몇 젊은 성도들이 학생까지 합쳐 겨우 20명밖에 안 되는 그런 약한 고향 교회까지 들어와서 주일을 지키며 봉사하고 간대요.
고성의 삼산 교회 하면 농어촌 교회로서 크게 부흥한 모델이 되는 교회인데, 초교파적으로도 이름이 나 있는 교회다. 그 교회 목사님의 이야기도 그래요. 교인 중 ⅔가 고성읍이나 통영, 심지어는 진주에서 주일을 지키러 그 바닷가 외딴 마을로 들어 온대요.
보세요. 이 얼마나 자기 교회를 끔찍이 사랑하고 있는가? 이렇게 농어촌 교회를 사랑하고 아낀다면 농어촌 교회의 미래는 확실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교회를 사랑치 않고 아끼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 교회를 사랑해 주겠는가?
오늘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 오늘 처음 나왔든지, 몇 번 나온 새신자든지, 기존 성도이든지 간에 오늘 작정하세요. 오늘부터 일평생 삼거리 교회를 가장 사랑하고 아끼겠다고. 일평생 오직 삼거리 교회만 섬기고 봉사하겠다고 작정하시기 바란다.
여기 우리 청년 여러분, 직장이나 그 밖의 여러 사정에 의해 혹 거제도를 떠나는 일이 있어도 고향 교회를 잊지 마세요. 적어도 두 세 시간 정도 거리라면 여기까지 들어오세요.
3. 농어촌 교회도 변해야 한다.
지금 우리 교회는 교회가 처음 세워졌던 1909년도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가 아니다. 1970년도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도 아니다. 바로 오늘 이 시대, 정보화 시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에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하며 신음하며 살아가는 인간들을 구원하고 끌어 앉기 위해 우리 교회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옛날' '옛날' 하면 안 된다. '전통' '전통'을 강조해서 자꾸 옛날로 돌아가려 해서도 안 된다. 교회는 변해야 한다. 지금 이 시대 사람들, 도시와 정보화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저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어 들이기 위해서 교회는 날마다 변신해야 되는 것이다.
그 뿐인가? 교회의 분위기도 바꾸어야 한다. 타성에 젖어 아무렇게나 신앙 생활하던 그런 모습들, 우물안 개구리 식으로 좁은 식견으로 살아가던 모습들을 벗어버리고 저기 도시 교회들, 아름답게 부흥하는 교회들이 어떻게 열심히 신앙 생활하고 예배드리고 일하고 있는지 보고 배우고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도시 사람이든 농촌 사람이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우리 교회를 방문해 보고는 이 정도의 교회라면 내가 몸담고 신앙 생활해도 괜찮겠다 싶을 정도의 교회 분위기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교회는 분명한 목적과 방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목회 철학이 뚜렷해야겠지요. 우리 교회가 왜 존재하는지 그 목적과 이유를 알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되겠는가에 대한 성경적인 분명한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를 교회 되게 하라." 그러면 교회는 산다. 부흥한다는 이런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있을 때 교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또한 농어촌 교회는 일꾼이 부족하다고 불평만 하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을 모아 훈련시켜서 일꾼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저기 밖에서 일꾼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려서는 미래가 없는 것이다. 기존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좋은 일꾼이 되어야겠다는 각오로 훈련받기를 자청해야 되는 것이다.
사실 제자화 훈련이란 금방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엔 한 사람의 훈련받은 훌륭한 일꾼에 의해 교회가 좌우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인내 가운데 훈련시켜야 되는 것이다.
자, 이렇게 교회가 변하고 성도가 변하고 분위기가 변하고 목적과 방향이 변하고 일꾼이 만들어진다면 그 교회가 망할 수 있겠는가?
자, 이제 여러분, 확신하자.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진 교회를 버리시지 않는다. 먼저 내가 우리 교회를 사랑하자. 그리고 교회를 변화시키고 나를 변화시키자. 그리하여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 교회가 주님 안에서 부흥에 부흥을 거듭하는 좋은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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