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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무 많다 아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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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삿 7:1-8
제목 : 너무 많다 아직도 많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삼거리교회

"사람이 많다."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는 분명 좋은 것 같다. 사람이 많다는 것은 곧 힘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단결력을 의미하기에 일단 사람이 많은 것은 분명 좋은 의미를 던져주는 것이다. 그것도 부정적이고 좋지 못한 일이 아닌 긍정적이고 좋은 일에 동참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적군과의 전쟁이라는 민족적으로 중요한 그런 일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태도를 보이시는 듯 같아 보인다. 나라를 위한 일에 사람이 많이 모였다면 그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이 많은 것에 오히려 싫어하시는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것처럼 말씀하신다. "너무 많다 아직도 많다"고 말이다.
지금 미디안 군과 연합한 적군이,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하니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12절)라고 표현할 정도로, 엄청난 군대를 동원하여 이스라엘로 쳐들어왔다. 이 군대는 분명 제법 준비한 후에 쳐들어온 군대이기에 잘 훈련된 군대요 조직화된 군대일 것이다.
이들과 싸우기 위해 이스라엘의 사사 기드온은 전국에서 군사를 소집했다. 그러나 소집된 군사는 고작 32,000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도 제대로 훈련받지도 못한 군대다. 이것은 분명 그 많은 적군과 비교한다면 얼마 안 되는 적은 숫자였다. 그 많은 적군과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다시 추가 소집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말씀하신다. "너를 좇는 자가 너무 많다." 허허, 이 무슨 말씀인가? 우리가 볼 때도 분명 적지 않는가? 너무 적지 않는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너무 많다"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드온으로 하여금 1차적으로 군대를 축소시키게 하신다. "두려워하는 자들을 돌려보내라." 그러고 나니 몇 명이 남았는가? 22,000명이 돌아가고 10,000명이 남게 되었다. 이제 1만 명의 군사는 적군과 비교하면 너무나도 적은 숫자일 것이다.
기드온이 이렇게 적은 숫자의 군사로 어찌 싸워야 하는가 하소연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또다시 말씀하신다. "아직도 많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것은 참으로 어이가 없는 그런 말씀이다. 1만 명, 이 얼마나 적은 숫자인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아직도 많다 하신다. 그러니 이거 기가 찰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2차적으로 다시 군대를 축소시키신다. 손으로 물을 핥아먹는 자만 선발하고 나머지는 돌려보내라. 기드온은 마음속으로 이중에서 어찌 하든지 많이 선발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해서 선발된 군대의 숫자는 고작 300명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게 적은 군사로 '메뚜기의 중다함 같이' 많은 적군을 상대하라는 것이다. 물론 오늘 본문 다음을 보면 이 300명의 용사로 이스라엘은 대승리를 거두게 된다.
오늘 우리가 생각할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왜 '너무 많다, 아직도 많다', 많다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시고 숫자를 줄이려 하셨는가? 자꾸 많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중심은 무엇인가? 기드온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려고 하시는가?
1.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있다는 것은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다.
현대전에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세 가지의 요소를 든다면 그것은 최신 무기, 군대 숫자, 훌륭한 작전일 것이다. 누가 가공할 무기를 소유하느냐 하는 것이 전쟁의 승패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군대 숫자도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모두가 중요하지만 다 변수가 따른다. 어떤 경우는 무기만 좋아도 승리하는 경우가 있다. 또 어떤 경우는 작전이 좋으니까 승리하더라. 하지만 또 다른 경우는 작전도 사람도 무기도 다 좋고 많았는데도 패하는 경우를 본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다 좋아도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한다는 법은 없는 것이다. 이길 수도 있고 패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무기, 사람 숫자, 작전 이것들은 상대적 요소라는 것이다.
영적 전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영적 전쟁에서는 무기가 좋고 안 좋고의 문제는 다 2차적인 문제다. 사람이 많고 적음도 2차적인 문제요, 인간의 능력, 은사, 이거 다 2차적인 문제인 것이다.
1차적인 문제, 절대적 문제는 오직 하나님이 그 전쟁에 개입하셔서 역사하고 계시느냐 안 계시느냐의 문제다. 이것만이 영적 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절대적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절대적 개입 없이는 어떤 영적 전쟁에서도 승리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왜 자꾸 많다고 하셨는가? 왜 자꾸 줄이라고 하셨는가? 그것은 전쟁의 승패는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적 문제라는 것이다. 사람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 진정으로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집된 사람들을 시험하여 군사의 수를 300명까지 줄이신다. 사람 머리 숫자 의지하고 싸우지 못하게 하시려고, 많은 수의 군사로 싸워 이기면 자고할까 하여 숫자를 줄이고 또 줄이고 계시는 것이다. 그래서 "너무 많다 아직도 많다" 하시는 것이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모습도 한번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우리도 사람 숫자 타령하지 않는가? 프로그램 타령, 분위기 타령, 내 능력과 은사 타령, 적절한 시기와 때 타령, 얼마나 많이 하는가? 뭐도 없고 뭐도 적고 뭐도 안되고 그러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다 2차적인 요소요, 상대적 요소요, 인간적인 요소들이다. 영적 일에 승리하기 위해서 제일 우선적으로 있어야 될 것들이 아니다.
우리 다시 생각해 보자.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승리하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이 사람 숫자인가? 영적 일에 승리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있어야 할 것이 좋은 분위기인가? 진정한 승리를 이루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이 내 능력인가? 아니다.
여러분에게 한번 물어보자. 확실하게 대답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역사하셔야 모든 일에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절대 사실로 받아들이시는가? 이 절대적 전제 없이는 어떤 영적 일에도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는가? 진정 이를 믿으신다면 이제 앞으로 사람 숫자 타령, 분위기 타령, 내 능력 타령하지 말자.
오히려 모든 영적 일의 승패가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음을 우리가 믿는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하겠는가? 기도다. 모든 일의 승패가 하나님께 달려 있다면 기도해야지요. 승리하게 해달라고, 이루어 달라고 말이다.
저는 단언한다. 오늘 우리 교회 안에 모든 영적 일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믿고 기도하고 부르짖는 성도 몇 사람만 있어도 우리 교회는 결코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승리의 열쇠는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그분 앞에 나아와 무릎을 꿇는 성도 몇 명만 있어도 우리 교회는 거룩히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사람 숫자가 문제가 아니에요. 문제는 진정한 승리의 열쇠가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여러분, 우리 삼거리교회는 그 어떤 사람보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이를 기억하시고 오늘부터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일에 개입하시고 역사하여 주시기를 바라고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2. 전쟁에 참여한 자 중 하나님 마음에 합당치 않은 사람이 너무 많다는 말씀이다.
처음 기드온이 군사를 소집했을 때 32,000명이라는 숫자의 군대가 소집되었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국가에서 소집하니 어쩔 수 없이 끌려온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합당치 않은 자들을 돌려보내라 하신다.
어떤 자들이 하나님 마음에 합당치 않은 자들인가? ①두려워하는 자들이다. 3절에서 하나님은 두려워서 떠는 자는 다 돌려보내라고 하신다. 이들은 전쟁을 무서워하거나 전쟁 중에 도망갈 가능성이 있는 자들을 말한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싸워야 할 군사가 가져야 할 첫째 마음가짐은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모세가 죽자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이라는 대 사명을 주시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두려워 떠는 자들은 분명 하나님 마음에 합당치 않은 자들인 것이다.
②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들이다(5-6절). 이는 전쟁태세를 갖추지 않고 물을 마시는 자들을 의미한다. 이들도 하나님 마음에 합당치 않은 자들이다.
반면에 물을 손으로 떠서 물을 혀로 핥아먹는 자들이 있었다.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세 가지 해석이 있다. ㉠전쟁태세를 갖춘 자 곧 깨어있는 영적 군사를 의미한다. ㉡자기의 사리사욕에 휩쓸리지 않고 일하는 자를 의미한다. ㉢민첩한 신앙생활을 하는 자를 의미한다. 머뭇거리거나 느린 면이 없다는 것이다. 질질 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닌 누구보다도 더 민첩하게 앞서서 일하고 뛰는 영적 군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들인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하나님 마음에 합당치 않은 자들이 예상외로 많았다는 사실이다. 1차 관문인 두려워하는 자는 돌아가라 하니 "아이고 좋아라" 하면서 돌아간 군사가 22,000명이나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소집된 군사의 2/3에 해당한다. 이제 하나님은 두 번째로 시험(test)해 보신다. 2차 관문에서는 물을 손으로 핥아먹는 자만 뽑아라 했는데 뽑힌 자가 300명뿐이었다. 다시 9,700명이라는 대부분의 군사가 하나님 마음에 합당치 않는 것으로 판정이 났던 것이다.
결국 32,000명의 군사 중 300명만이 하나님에 의해 뽑혀졌다. 결국 99%는 합당치 않은 자였고 겨우 1%미만의 군사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군사였다는 사실이다.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인가를 시험하여 보니 합격한 자가 300명밖에 되지 않았고, 나머지 31,700명은 모두 퇴짜를 맞고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무 많다 아직도 많다"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마음에 합당치 않은 자들이 "너무 많다 아직도 많다"고 하시는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하겠다.
그러면서 오늘 나 자신을 한번 돌아봐야겠다. 나는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퇴짜를 맞고 되돌아가는 31,700명의 군사에 속한 사람인가? 아니면 합격 판정을 받은 300명의 용사에 속한 사람인가?
3. 정병 한 사람을 찾고 계시는 말씀이다.
"너무 많다 아직도 많다"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정병 한 사람을 찾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사실 처음 소집된 32,000명의 군사를 돌려보내지 않으시고 그대로 사용하사 전쟁에 임하게 하셨더라도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한 승리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합당치 않은 자들을 꼭 돌려보내시고자 하셨다. 이제 1차 관문인 두려워하는 자들을 돌려보내고 난 후 남은 10,000명의 군사는 그래도 쓸만한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에 머무르지 않고 더욱 냉정하게 시험하여 정병으로서의 철저한 자세, 싸울 준비가 철저하게 된 사람 300명의 용사만을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두려워하던 말던 일단 소집된 군사들을 그냥 다 사용하사 전쟁치 않으시고 왜 시험하여 돌려보내고 계시는가? 꼭 그렇게 하셔야만 했는가? 하나님은 좀 까다로운 분이 아니신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사건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정병 한 사람을 찾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진정 헌신되지 않은 자 99명보다 헌신된 자 1명을 찾고 계시는 분이시다. 기도하지 않는 99명의 사명자보다 기도하는 1명의 사명자를 찾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99명의 사람보다 순종하는 1명의 성도를 찾아 사용하시고자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이다.
두려워하는 자 99명보다 두려워하지 않는 자 1명을 찾는 분이시요, 자기 이익을 위해 일하는 자 99명보다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는 1명의 성도를 찾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이다. 질질 끌려 다니는 99명의 사람보다 모든 일에 자원하여 민첩하게 행동하는 1명의 그리스도인을 찾고 계시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진정으로 정병이 필요한 시대다. 무조건 많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고, 집에 기둥이 많으면 실내가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교회는 진정으로 정병이 많이 일어나야 미래가 있고 소망이 있는 것이다.
오늘날 저기 건전한 기독교 선교 단체들이 그렇고, 심지어 사이비 이단에 속한 단체들도 그러한데, 저들은 마치 군대 훈련을 방불케 하는 맹훈련을 시켜 정병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들보다 더 중요한 사명을 가진 교회는 왜 이토록 정병 한 사람 길러내는데 투자하지 않는지, 왜 이토록 성도들이 태연하게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이렇게 신앙생활 하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하나님은 찾고 계신다. 모든 영적 일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고 그분 앞에 나아와 승리하게 해달라고,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는 그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정병 한 사람을 찾고 계신다. 언제까지 태연하게 신앙생활 할 것인가? 언제까지 교회 일에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할 것인가? 삼거리교회 성도 우리 모두가 바로 기드온의 300 용사 중 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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