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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끝까지 이르도다 / 시 19: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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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시편 19:7-14
제 목 : 끝까지 이르도다
설 교 : 임대식 목사 (평화교회)


10월은 본격적인 가을의 계절입니다. 세상은 열매 맺고 성숙할 때, 우리의 믿음 역시 성숙하고 열매를 맺어야 할 계절입니다. 특별히 우리 신앙이 하나님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깊이 체험하는 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봉독한 이 시편 19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모양으로 그 자신을 나타내고 계시는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첫째는 우주 만물을 통해서입니다. 우리는 이 가을 아름답고 깊이를 더해가는 자연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매일 볼 수 있는 것을 통해서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의 존재는 우주 만물 가운데 너무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의 영광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늘에서, 전체의 구조와 그 아름다움에서, 그 질서 가운데서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우주 만물이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는가, 바로 우주의 질서가 말해 줍니다. 이 질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루 24시간, 1년 365.2444일, 여름이면 그리도 더워도, 10월이 되면,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 질서를 주관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참으로 아름답게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3절 말씀,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크고 크지만, 소리가 없습니다. 소리가 없는 가운데 하나님은 활동하십니다. 태양은 온 우주를 밝힙니다. 이 태양이 동녘에 떠오를 때, 무슨 굉장한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수십억의 인류를 태운 지구가 쉬지 않고 돌아가지만, 돌아가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것들은 소리가 납니다. 요란합니다. 자동차는 굴러가는 소리가 납니다. 시계도 째깍째깍 소리를 냅니다. 기계는 아무리 적어도 소리가 납니다. 그러나 소리 없이 움직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키 크는데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나무가 클 때에도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과일이 탐스럽게 열매를 맺는데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기계는 소리 없이는 움직이지 못하나, 생명은 소리 없이 큽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소리 없이 들려오고, 소리 없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영의 눈이 열린 사람은 만물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배우는 눈이 열리고, 영의 귀가 트인 사람은 바람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태양이 저물고 별이 뜨고 다시 달이 지는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시편 시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소리 없는 음성을 들었다’ 얼마나 귀한 시편 말씀인지 모릅니다. 시편 37편 7절에 보면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62편 5절에 보면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노래합니다.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이 가을에 놀라운 생명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도 말없는 가운데 일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5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노래합니다.

이제 시편 시인은 태양 하나를 들어서 설명합니다. 해는 구름에 가리워 있습니다. 구름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신랑이 장가를 들기 위해 나오는 모습과 같이 희망과 웃음을 안고 나타납니다. 그리고 장사같이 불끈 솟아올라서, 힘차게 하늘을 운행합니다. 방해할 자가 없습니다.

이렇게 용사처럼 달려가면서 힘을 쓰지만, 그 열을 땅 위에 보낼 때에는 사랑의 온기만을 보냅니다. 태양은 불덩어리이지만, 세상을 태우지도 않고 ,생명을 키우는 따뜻한 사랑만을 베풉니다. 이 가을 따스한 햇빛으로 만물을 여물게 합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태양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태양이 모든 만물에 온기를 주고, 생명이 자랄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해서 태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위대한 태양도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이 정해주신 궤도와 그 법칙대로 움직이는 그 순종하는 모습에서 태양의 위대함이 있음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즉 태양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그 태양을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위대하다는 하나님 찬양의 시편인 것입니다.

즉 시편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는 것입니다. “영의 눈을 뜨고 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영의 귀를 열어 보니, 하나님의 음성이 소리 없는 중에 웅변처럼 들려오는구나.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귀로 들으니, 우주 만물은 교과서로구나. 믿음의 눈으로 보기만 하면, 우주 만물이 전부 나의 스승이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는구나.” 우리도 소리 없는 만물 중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웅변처럼 들어야 합.

이 시편 19편 1절에서 6절까지의 말씀은 자연을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했습니다. 이제 7절 이하의 말씀은 하나님의 특별 계시, 즉 성경에 대해 말씀합니다.

진정 우리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말씀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 말씀이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은혜와 사건은 말씀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귀한 말씀을 시편 시인은 참으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 “여호와의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

여기서 말한 여호와의 율법, 증거, 교훈, 계명,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 여호와의 규례라는 말은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고 온전합니다.

사실 천지 만물은 완전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천지만물은 자라다가 병들고 그 다음에는 죽습니다. 자라고, 병들고, 죽고, 그 다음에는 썩는 냄새를 피우고 없어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영원불변, 일점일획도 변경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모자람도 없고, 변동도 없는 완전한 계시입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우선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합니다. 이 세상에는 책이 많습니다. 그 많은 책들은 우리에게 지식을 가르칩니다. 기술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책을 통해 감동도 받고, 정보도 얻고, 실력도 얻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책 중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책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로 병들었던 영혼의 병을 고쳐서 죄와 사단의 노예의 자리에서 해방의 기쁨을 줍니다. 그리고 낙심과 실의에 빠져있던 심령에 평안과 새로운 소망을 줍니다. 새 힘을 얻어 힘차게 살게 합니다. 우리 영혼을 소성케 합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때의 일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이 포로로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아내가 늘 걱정 가운데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유치원 다니는 아이가 그림을 그리는데, 보니까 울타리를 그려놓고 사람 하나를 그린 것입니다. 엄마가 묻습니다. “얘, 너는 뭘 그리니?” “아빠가 계신 포로수용소예요.”

얼마가 기가 막히겠습니까? 그 소리를 듣자마자 그냥 슬픔이 북받치면서 “흑!” 하고 눈물이 주르르 쏟아져 내렸습니다. 엄마가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는 아이가 말합니다. “엄마, 왜 울어? 여기에도 하나님이 계시쟎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쟎아?”

그렇습니다. 세상 일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을 볼 줄 모르는 인생에게는 한숨이 있고, 염려가 있고, 저주가 있고, 어둠이 있고, 절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감격이 있고, 확신이 있고, 담대함이 있고, 찬송이 그 입술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합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리라,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여호와를 바라보며 사는 자는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이 힘찬 힘과 능력을 얻으리라, 이런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 때 우리는 영혼에 새 힘을 얻어, 얼마든지 이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미련한 자를 지혜롭게 합니다. 과연 지혜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시행착오를 하지 않고, 먼저 깨닫고 먼저 아는 것입니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서 배웁니다. 자신이 직접 체험해서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이 길이 성공의 길인지 실패의 길인지 깨닫습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을 다 경험하기에는 인생은 짧고 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또한 실패를 경험하고, 어려움을 체험한다는 것은 참으로 쓰라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경험을 중요시합니다. 다른 이들의 체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하지 않고 깨닫는 지혜를 터득합니다. 특별히 현대 사회는 정보화 사회입니다. 좀 더 빠른 정보를 좀 더 먼저 얻겠다고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 붓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의 가르침 자체가 우리에게 가장 귀한 지침이 되고, 안내자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인류의 경험의 축적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살기만 하면, 시행착오 없이, 지혜롭게 이 세상을 살아 나갈 수가 있습니다.

땅콩 박사라고 일컬어지는 부커 박사가 한번은 미국 상원에 가서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분은 평생 땅콩을 연구해 품질 향상을 가져왔고, 땅콩으로 각종 영양제와 기름과 공업 제품을 생산해 내었는데, 이 분은 강의하기를, 성경이 나에게 가르쳐 준대로 나는 실천했을 뿐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강의를 들은 한 의원이 “성경 어디에 땅콩 재배하는 법이 나와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성경은 나에게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의 단을 거두리로다,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가르침대로 나는 열심히 살았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세상에 많은 책들이 있어서 우리에게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참 지혜롭게 살아가도록 우리 삶과 영혼을 인도하는 책은 오직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리석은 자를 지혜롭게 하기에,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내 것으로 터득하시는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성경의 말씀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기쁘게 합니다. 우리의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있습니다. 성경의 가장 큰 글씨는 뭐니뭐니해도 하나님이란 단어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나오는데, 4067번이 나옵니다. 그래서 성경의 주제는 하나님이십니다. 두 번째로 많이 나오는 단어는 사람입니다. 3541번, 하나님이란 단어보다는 520번 부족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행하신 가장 위대한 일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신 일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역사에 나타난 사건이 곧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신 십자가 상에서 지신 사건입니다.

마틴 루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성경은 어린 아이가 누워있는 침대와 같고, 누워있는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껍질만 읽는 것이요,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 그 말씀에서 인생의 변화와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나라 선교 초기에 선교사가 시골 농가에 기거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이 집 주인은 선교사에게 함께 닭장으로 가 보자고 했습니다. 둥지에 암탉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날개 밑에서 새끼 병아리들이 뾰죽뾰죽 밖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집 주인이 선교사더러 암탉을 만져 보라고 했습니다. 만져보니 암탉은 죽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집 주인이 말합니다. “머리에 난 상처를 보십시오. 간밤에 족제비가 피를 몽땅 빨아 먹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새끼들이 족제비에게 당할까봐 꼼짝도 않고 가만히 있었던거죠.”

그 때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이건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꼭 같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자신의 몸을 맡기시고, 모든 고통을 다 당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움직일 수도 있었고, 몸을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님이 움직이셨더라면 선생님과 나는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또 “너희가  이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내게 대하여 증거 하는 것이니라.” 하십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성경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돌이켜 보면 이 하나님 말씀은 내가 고독할 때 친구가 되어줍니다. 어두움에 헤맬 때 참된 빛을 비추어 줍니다. 두려울 때 나의 갑옷이 되어 줍니다. 병들었을 때 나를 고쳐주는 양약이 되고, 실패했을 때 다시 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바라기는 우리 성도님들 말씀을 사랑하시고, 말씀과 함께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은, 안타깝게도 이 세상 사람들은 이 가을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자연의 소중함을 노래해도,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껍데기만 알고 알맹이는 모릅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성경 말씀이 바로 우리 삶의 지침이요, 생명의 근원이며, 예수님께로 우리를 인도하는 안내자가 됨을 알지 못합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이 가을에 우리도 열매를 맺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전도의 열매를 맺는 일이 참 소중합니다. 오늘부터 우리 교회에서는 비전 30 전도 축제를 시작합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전도해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하나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남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일은 가장 귀한 하나님을 소개하는 일입니다. 이 일에 힘써서 신앙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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