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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크리스챤 가정 (3) / 엡 5:2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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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는 두 개의 구조로 조립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하드웨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소프트웨어입니다. 하드웨어는 그 컴퓨터를 대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든지 하드웨어를 눈으로 직접 확인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컴퓨터를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소프트웨어가 무가치하지 않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아주 중요합니다. 소프트웨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소프트웨어가 있어야 컴퓨터가 가동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3주에 걸쳐서 그리스도인의 부부관계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성경은 부부 관계를 말씀하실 때 마다 늘 먼저 권면을 하는 대상이 있는데 그는 남편이 아니라 아내라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창조 질서이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창조 질서를 무너뜨린 핵심이 여자였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여자가 원래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만큼 여자가 영적인데 관심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자가 영적인데 민감하기 때문에 영적인 존재인 사단이 남자를 택하지 않고 여자를 택한 것입니다. 또 한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왜 성경에서 부부에게 권면 할 때 먼저 여자에게 아내에게 먼저 말씀하시고 이어서 남편에게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여자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여자는 약하지 않습니다. 약하게 보이는 여자는 강하게 보이는 남자를 콘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컴퓨터가 작동되는 것은 하드웨어가 있어서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있어서 작동되는 이치와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가 성경 어느 곳에서나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 관찰해 보기로 합시다. 먼저 5장22절을 보십시오. 남편이 아니라 아내에게 입니다. 그리고 6장 1절을 보십시오. 부모에게가 아니라 자녀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6장 5절을 보십시오. 주인에게, 상전에게가 아니라 종들에게 권면 하시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바울은 지금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음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여자. 자녀. 종입니다. 남편. 부모. 사장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들은 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결코 힘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강하게 보이는 남편일 뿐입니다. 이렇게 강하게 보이는 남편이 약하게 보이는 아내 말을 들을 때 실 수하지 않습니다. 또한 강하게 보이던 부모들이 돋보이는 이유는 자녀 때문입니다. 강하게 보이던 부모도 나이가 들면 자식의 말을 따라야 평안 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섬기는 직장도 보십시오. 아무리 사장이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도 종업원이 움직여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담임 목사가 아무리 못나도 다른 교역자들이 헌신하면 그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이 세계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움직여서 우리로 하여금 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이렇게 옷을 입고 나와서 여러분에게 설교 할 수 있는 것은 제 아내가 옷을 다려 주었기 때문에 보이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옷을 다려 입고 나왔다면 이렇게 깔끔하게 나오지 못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누가 더 위대한 존재냐 라고 논쟁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논쟁은 마치 소프트웨어가 강한 것이냐 하드웨어가 강한 것이냐를 가지고 논쟁하는 것과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소프트웨어가 그 컴퓨터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그 컴퓨터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처럼 남편이 그 가정을 대표하고 부모가 그 가정을 대표하고 사장이 담임목사가 그 회사와 교회를 대표한다 할지라도 소프트웨어가 없으면 헛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남편 여러분! 여러분은 강하게 보이는 존재지만 결국 나를 움직이는 존재는 여러분의 아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여러분! 여러분의 남편은 강하게 보일 뿐 내가 섬겨주지 않으면 남편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남편이 밖에서 아내를 위하여 자녀들을 위하여 사냥감을 찾으러 다닐 때 받은 상처는 실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밖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위로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내 되신 여러분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남편을 잘 컨트롤 하셔야 남편이 다음날 아침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힘을 얻고 일터로 나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31절

그렇습니다. 부부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은 서로 다른 두 개의 몸이 하나되게 하심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가장 큰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집에서 많은 돈을 가지고 살아도 혼자 사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좋지 못하게 보인 아담에게 하나님은 돕는 배필을 주신 것입니다.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은 결혼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동의하십니까? 지금 여러분이 여기에 동의하시면 이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시면 안됩니다. 부부 싸움 할 때 반드시 하는 말들이 있지요? 그 말이 무엇입니까? 에이 혼자 살 걸. 내가 왜 결혼 해 가지고 이렇게 속썩이며 사는 것인가? 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축복을 거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어요. 혼자 사는 것이 좋지 못하다. 그래서 내가 아내를 남편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3차 대전 같은 부부 싸움을 한다 할지라도 혼자 사는 것이 좋게 보여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그리스도인도 부부 싸움 할 수 있어요. 그러나 아무리 무시무시한 싸움이라 할지라도 그 싸움은 싸움일 뿐 세상처럼 흉내내서 혼자 살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큰 축복은 관계 맺음이기 때문입니다. 관계는 축복이지 저주가 아닙니다. 관계는 절대로 포기 할 수 없고 포기되어져서도 안됩니다.
하나님을 보십시오.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관계가 무너지자 하나님은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모양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와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아내는 서로 힘들어하는 것일까요? 결혼하기 전에 서로 교제를 할 때에는 너무나 행복했던 사람들이 왜 결혼을 하면 힘들어하는 것일까요? 특히 결혼 후에도 직장 생활을 하다가 직장을 그만 두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게 될 때 왜 극도로 힘들어하는 것일까요? 자기가 줄 수 있는 역량을 오버했기 때문입니다. 교제 나눌 때에는 내가 상대방에게 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역량 이상을 남편에게 아내에게 주어야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 보니 나에게는 줄 여유가 없어요. 여기서 사람은 지치는 것입니다. 기업도 직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어야 그 기업은 생존합니다. 월급을 줄 수 없을 때 그 기업은 도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가지고 있어야 상대방이 필요한 것을 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으려면 자기가 줄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은 적은데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이 가진 것 이상으로 달라고 하면 남편은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없으면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무조건 상대방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달라고 합니다. 이렇게 일방적인 희생을 상대방에게 요구할 때 어떤 누구도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내가 남편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 줄 수 있으려면 남편이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가진 것으로 상대방에게 줄 수 있다는 생각은 절대로 틀린 말입니다. 회사가 기업으로 존재하려면 자금을 공급받아야만 합니다. 내 돈으로 기업을 운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은 언젠가 바닥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부 관계를 말씀하시기 전에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공급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늘이 주시는 공급이 나에게 있어야 우리는 넉넉하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부부 관계는 단순히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아니라 진정한 부부는 성령님과 함께 관계하는 부부가 참된 부부인 것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가 물 위를 걷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잘 걸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풍랑이 일었습니다. 물 위를 잘 걷고 있었던 베드로가 갑자기 이는 풍랑을 보자 더 이상 물 위를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믿음이 적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관계입니다. 베드로가 처음에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물과 베드로의 관계가 아니라 베드로와 주님의 관계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풍랑을 보게 된 베드로는 주님과의 관계가 깨지면서 물 속으로 빠지게 된 것입니다.

우리 부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물 위를 걸어야 하는 아슬아슬함이 있습니다.
살얼음을 걸어야 하는 위기도 있습니다. 그 때 우리가 이런 위기 앞에서 걸을 수 있는 능력을 어디서 공급받아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주님이 공급해 주시는 능력으로 물 위를 걸어야 하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부부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까? 남편이 출근해서 늦게 들어오거나 출장간 남편이 걱정이 되십니까? 살얼음을 걷고 계십니까? 물위를 걷고 계십니까? 이런 불안함이 내 마음에 생기면 직장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을 것입니다. 수시로 전화해서 확인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과 함께 한 부부라면 아내가 어디 있든지 남편이 어디 있든지 안심이 되고 신뢰가 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이성교제를 할 때 우리는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간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이 성령님과 함께 교제를 나누도록 권면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를 하면 아주 건전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신림교회 모든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살얼음 같은 위기의 삶을 살게 된다 할지라도 그 위를 걸을 수 있도록 공급해 주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십시오. 성령이 공급해 주시는 에너지가 부부의 사랑을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아십니까? 바울은 결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비밀을 알았다고 32절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공급받지 않으면 결국은 줄 수 없습니다. 하늘이 주시는 공급함이 없으면 부부관계는 삭막해 지는 것입니다. 긴장의 연속입니다.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이 주시는 공급이 없으면 교회도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교인들은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부부가 되십시오.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내 여러분! 성령 충만함으로 성령이 공급해주시는 것으로 남편을 섬기십시요. 남편 여러분! 성령 충만함으로 아내에게 자녀들에게 주십시오. 성령 충만함으로 이웃에게 주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 성령충만함의 사모함이 있습니까? 그렇게 살고 싶습니까? 여러분 가운데 이런 사모함이 있다면 남편과 아내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같이 교회에 나와 같은 설교를 들으십시요. 설교는 인간의 사상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아서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같이 시간을 갖게 될 때마다 아내는 저에게 설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새롭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일대일을 하실 때마다 서로 이번 주일에 들었던 말씀을 서로 나누어 보십시오. 다시 한번 성령이 공급해 주시는 기쁨과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큐티 모임에 나가셔서 각자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것도 큰 은혜의 통로입니다.

그래서 오늘 31절 말씀처럼 하나가 되십시오. 부부 사이에는 어떤 것도 개입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성령이 연합하게 하시는 것 이외에 어떤 것도 부부사이를 하나로 만들 수 없습니다. 부부가 돈으로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사상으로 하나 될 수 없습니다. 가문의 영광으로 하나될 수 없습니다. 이런 모든 것에서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자라왔던 환경에서 떠나야 합니다. 사상에서도 떠나야 합니다. 습관에서도 떠나야 합니다. 결혼 전에 사귀었던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하고도 떠나야 합니다. 결혼 전에 지은 카드 빚이 있다면 그것도 청산해야 합니다. 오직 우리를 하나 되기 하시는 진정한 힘은 성령이 주시는 거룩이요 순결입니다. 날마다 성령 충만이 나에게 부어 줄 때 금가려고 하던 부부사이가 씻겨지고 태워져서 다시 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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