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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가 높아 지는 법 / 약 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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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 1987년 1월 24일 토새
제목: 성도가 높아 지는 법
본문:야고보서 5장 7절∼11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 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베드로전서 5장 5절∼11절

젊은 자들아 이와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권력이 세세 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1. 겸손과 교만의 사례(事例)

베드로전서 5장 6절에 “그러므로 하나님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히시리라” 여기에 ‘그러므로’ 하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은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하는 말입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그러면 여기에 교만한 자는 어떤 것을 주의시켰으며 겸손하라 하셨는가? “장로들에게 순복하라” 또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우리 교회에는 장로라면 제일 높은 사람들을 가리켜서 장로라 이랍니다. 성직자로서 성직적으로 제일 높은 사람. 목사님이 장로요, 또 장로님이 장로요 다 같은 직분으로 이렇게 성경에 말했습니다. 그랬는데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그래 놓으시고 “때가 되면 높이시리라” 또 높인다는 말씀을 또 해 놨습니다. 그러면 겸손과 높임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또 그 다음에는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또 그런 말씀을 해 놨습니다. 그 다음에는 “잠시 잠깐 고난을 받은 후에 너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또 이런 말씀을 이렇게 해 놨는데 좀 문맥이 맞지 않고 연락이 안 되는 것 같은 그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잘못하면, 이 겸손이 없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고 하니 장로는 단점을 자기에게서 찾지 안하고 상대방에서 상대방의 단점을 찾고, 단점을 자기에게 찾지 안하고 상대방에게 단점을 찾고 또 평신도는 단점을 자기에게 찾지 안하고 또 상대방 장로님에게 찾습니다. 그러면 그 결과가 무엇이 되겠는가?

‘장로님은 내게 대해서 좀 내게 대해서 잘못한다’ 그래 될 것이고, 그러면 장로님은 내게 대해서 잘못한다 그렇게 생각이 되는 것은 장로는 정상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말이고, 또 자기는 정상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 하는 그런 말이고, 또 장로는 있다가 ‘나는 정상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교인들이 대우하지 않는다’ 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겸손한 것이 무엇이 겸손한 것인고 하니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나는 이렇게 하는데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대우가 불공평하다. 나는 하나님에게 대해 이런데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대우가 이거 좀 섬소하다. 또 우리는 장로님에게 대해서 할 일 다 하는데 장로님이 우리에게 대해서 하는 대우가 좀 섬소하다.’ 또 이제 장로님 목사님은 ‘나는 이렇게 충성하게 하는데 이 교인은 내게 대해서 하는 일이 섬소하다.’ 이렇게 교만이 들어올 때에는 모든 상대방이 내게 대해서 하는 것이 그것이 정상적이 아니다. 그게 섭섭하다 이렇게 되고,

또 겸손은 ‘나는 이렇게 내가 뭐 이 장로라는 이름만 가졌지 목사라는 이름만 가졌지 참 목사 노릇을 늘 못하는데, 장로 노릇을 못하는데 장로와 목사에 대한 이 대우는 크다. 너무 지나친 대우를 받고 있다. 내가 일한 것은 별로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게 너무 후대하신다.’ ‘나는 일한 것은 많은데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대우가 성글다.’ 이게 있기 때문에, 이 문제기 때문에 “때가 되면 너를 높인다”

이러니까 미리 안 높여 준다고, 이 교만, 교만 높여 주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는 것이고 겸손은 너무 과히 높여 준다고 이제 마음에 부끄러워서 미안해 못 견디는 요것이 교만이요 겸손이니까 그 다음에 “때가 되면 너를 높이리라”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교만이 들어오면 모든 면에 대해서 상대방에 대해서 단점만이고 불만 불평이 돼지고, 또 겸손이 되면은 전부 잘못된 것은 자기에게 있는데 상대방이 내게 대한 대우는 너무 과분하다. 하나님에게 대해서도 그러하고 교인들에게 대해서도 그러하는 데 우리가 그렇기 쉽습니다.

나도 얼마 전에 교만 마귀가 들어와 가지고 내가 교만해 가지고 시험에 들었는데, 나만 교만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까지 내 교만으로 그만 훌 쓸어 가지고 교만하게 만들어서 범죄케 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래서 어제 밤에 내가 만나 가지고 좀 회개를 할라고 내가 만날라 했는데 그만 다른 이 만나다 보니까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말씀을 내가 깨닫고 이거 회개를 하는 마음으로 이 말을 증거해야 되겠다 해서 증거합니다.

2. 때가 되면 높여 주심

“때가 되면 높이리라” 사람이 “겸손하라” 겸손하라 그러면 “하나님께 대해서 겸손하라” 그러면 “사람에게 대해 겸손하라” 사람에게 대해서 겸손하면 때가 되면 높일 것이고 하나님께 대해서 겸손하면 하나님이 때가 되면 높일 것이고,

겸손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에게 대해서 겸손은 내가 나를 바로 알고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베푸시는 일 내가 평가할 때에 ‘하나님께서 내게 대해서 너무 이렇게 과분하게 대우해 주신다. 내가 뭐 일한 것이나 또 내가 무엇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런 대우는 내가 해당치 아니한데 이렇게 지나친 대우를 해 주신다.’ 요래 되면 자기 하나님이 자기에게 대우해 주시는 것이 과분하다 만족하다 하니까 그 사람 그것도 행복이고 그리되면 하나님께서 자꾸 그에게 이제 더 주고 더 줘 가지고 때가 되면 높이시게 된다 하는 그것을 요게 말씀하신 것인 것을 제가 깨닫고 증거를 합니다.

또 사람에게 대해서도 ‘나는 저 사람에게 대해서 아무 이런데 그 사람은 내게 대해서 참 너무 과분히 대우하고 있다.’ 그래 내가 어떤 사람 보니까 자기 남편이 예수 믿는다고 핍박을 많이 하는데, 그분이 있다가, 그때 내가, 여기 있습니다. 여기 있는데 양을 먹이라고 이랬더니마는 양을 먹이요. 양을 먹이는데 그 남편이 그저 예수 믿는다고 뚜드려 패기도 하고 핍박도 하고 이라는 사람인데,

한번 내가 거기에 몇이 같이 심방을 가니까 좋아서 막 그분이 입이 벙긋거리면서 막 좋아서 못 견뎌 해요. 그라면서 무슨 큰 별일 있는 것같이 자랑을 해요. 무슨 자랑을 하는고 하니, 내가 그때 조사인데 ‘조사님,-자기 애기 아빠라 하던가 뭐 자기 남편이라 하던가 뭘 표시, 자기 남편을 말해요.-그런데 그 어른이 지나가다가 양마구를 슬그머니 들여다 봐요.’ 자기 양 먹이는 마구를 한번 들여다 본 데 대해서 어떻게 과분해 놨는지 좋아 놨는지 뭐 영 큰 경사 닥친 것같이 그래요.

나는 그 소리를 들을 때 그 뭐라고 들었느냐 하면은 그 처음에는 아니꼽게 들었어요. 아내가 양을 먹이면 풀을 베어다 주고 사료를 주고 뭐 좀 양사(羊舍)를 소제를 하고 그래도 ‘당신이 돈 벌어다가 이렇게 거석하지 내가 이렇게 할 것이 무엇이냐?’고, 이래도 감사하지 못하고 ‘생활이 곤란하니 양 먹이는 것 아닌가?’ 이래 가지고 원망 불평이 있을 터인데 자기 혼자 다 먹이고 양사도 소제하고 전부 다 해 주는데 그 남편이 늘 욕하고 있다가 양마구 한번 슬그머니 들여다 봐 준다고 해 가지고 그 대우에 대해서 어떻게 만족을 하는지,

이래서 내가 처음에 들을 때는 ‘참 남편 되게 놀리네’ 속으로 말이지요. ‘그뭘 그래 가지고 되는가? 남편이 할 일 안 하고 그라는데 원망 불평하고 안 되면 뭐 박지기를 긁고 싸워야 될 터인데 양마구 한번 들여다 봐 주는 것이 무엇이 좋아서 그럴까?’ 이랬으나 그 뒤에 내가 오늘까지 잊어버리지 안합니다. 잊어버리지 안하고 ‘저분은 언젠가 저 가정에는 성공이 있다.’

‘다른 사람은 다 월급  가만히 앉혀 놔 줘도 마음에 더 자기 소원대로 안 해 주면 더 원망 불평이 있는데 저분은 그 남편에게 대해서 얼마나 부부간에 관계에 있어서 자기의 얼마나 단점을 보고 남편의 얼마나 장점을 보고 이렇게 그 참 겸손이 굉장한 겸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러니까 언젠간가 하나님이 높이실 것이고 성공하게 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지금 집사 됐습니다. 그 남편이 집사가 되고, 뭐 지금은 아주 신앙 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이 참 겸손이 복이 있다. 상호간에 겸손이라 하는 것은 쌍방이 상호 관계를 가지는 것인데 상호 관계를 가지는 데에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한 것과 다른 사람이 내게 한 것과 비교해서 자기 한 것은 부족하고 상대방이 자기에게 해 준 것은 너무 과분하다 하는 그 사람은 그 마음이 겸손이고, 그러면 그 겸손에서 항상 감사하고 항상 만족할 것이고 또 때가 되면은 점점 높여서 “때가 되면 너를 높이시리라” 그리 될 것이고,

그와 정반대로 자기는 지나치게 평가하고 다른 사람은 과소평가해서 ‘나는 이렇게 하는데 다른 사람은 나에게 이렇게 대우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원망하게 될 것이고 불평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교만한 자이니 그리 되면은 그 상대방이 자기에게 대해서 점점 대우하는 것은 적어질 것이고 자기는 불만 불평이 자꾸 많아질 것이고 그러면 “때가 되면 낮아지리라” 때가 되면 인제 저 밑에 처박히리라. “때가 되면 너를 높히리라” 이래서 이 겸손이 참 복이 있고 교만이 이거 불쌍한 자겠다 하는 것을 느껴봤습니다.

3. 고난을 주신 목적은 온전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키는데 이 사자는 마귀인데 어떤 자를 삼키는가? 이 마귀에게 삼켜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상호간에 상대방과 자기와의 상호 관계에 있어서 자기는 지나치게 평가하고 상대방은 또 지나치게 적게 평가하고, 자기는 지나치게 많이 평가하고 과대평가하고 또 상대방은 지나치게 적게 평가하고 이런 시험에 들기 쉽다. 마귀는 이 사람 만들라고 애를 쓴다 이랬는데 내가 얼마 전에 마귀 노릇을 상당히 했습니다. 마귀 노릇을 상당히 해서 나 때문에 다른 사람도 손해를 많이 본 사람이 있습니다.

이래서, 그러면 우는 사자가 뭘 삼키는고 하니 이 겸손을 삼켜서 교만케 하는 이 일을 하기 쉬우니 이 겸손을 뺏기지 않고 내가 견고히 잡아라. 그러면 때가 되면 너를 높히리라.

너를 모든 은혜, 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이거 고난을 먼저 준다 말입니다.  “고난을 받은” 고난을 뭣 때문에 주는가?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이러면 고난이 온전케 하기 위해서 고난 주신다 말입니다.  온전케 하기 위해서 고난 주신다.

이 어려움이 오는 것은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어려움 오는 것이니까 고난에 대해서는 우리 할 일이 뭐인가? 내가 무슨 흠점이 있는가? 온전케 하기 위해서 고난 주시니까 온전해지면 그 고난 없어질 것이고 온전 안 해지면 자꾸 고난이 계속 할 것이고 더 온전치 못하면 고난이 더 클 것이고, 이 목적이 온전케 하기 위한 것이니까,

고난이 커지는 것은 온전이 점점 작아지면 커질 것이고, 온전이 자꾸 커지면은 고난이 자꾸 적어질 것이고, 또 하나님께서 사랑이 많고 희망이 크면 고난이 클 것이고 사랑과 희망이 하나도 없고 이것은 마구잡이니까 그만 될 대로 돼 버려라 하면 고난이 하나도 없을 것이고,

그러면 이 고난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고난이 커지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온전케 하려 하심이 큰 것이고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온전케 하려는 것이 없는 것이고, 또 고난이 점점 커지면 나에게는 고칠 것 온전치 못한 것이 더 많아져 가는 것이고 고난이 있던 고난이 차차 물러가 버리면 그 고난을 인해서 나를 고칠라 하는 그 고침이 없어지니까 이제 고난이 물러가는 것이고 이 고난에 대해서 우리가 참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정평해야 되겠습니다.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이러니까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잠시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에게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까 이 고난에 대한 정평을 우리가 못 하면,

고난에 대해서도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힘써야 되겠고 또 인인 관계에 대해서도 소망을 가지고, 인인 관계에 대해서는 자기를 과대 평가하는 이 일을 하지 안하고 상대방을 과소 평가하는 이 마귀 시험에 들기 쉬우니까 이 시험에 들지 안하도록 노력해야 되고,

고난에 대해서는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와같이 하시는 것이니까 이미 시작된 고난이 물러가는 것은 그 안에 목적이 이루어졌으니까 차차 그 필요 없는 고난이 없어지는 것이고 또 그것이 물러가지 안하고 있는 것은 주님이 나를 사랑해서 요구하시는 것이 이루어지지 안하니까 자꾸 그 계속하고 있는 것이고, 그 고칠 점이 많아 가면 고난이 커질 것이고 이제 시작되어 있는 그 고난에 대해서는 평가를 이래 해야 되겠고,

또 처음으로 시작되는 고난에 대해서는 당신이 내게 기대하고 요구하시고 희망하시는 것이 크기 때문에 큰 고난이 왔으니 그 큰 고난으로서 이것은 나를 고치게 하고 온전케 하고 견고케 하기 위해서 하시는 것이니까 ‘큰 고난 왔다. 이제 주님께서 나에게 크게 고칠 것, 크게 희망 있는 것, 크게 성공되는 이것을 지금 원하고 계시니까’ 그 고난은 하나님이 내게 대해서 큰 소망을 기대를 가지고 하시는 것이요 내게 대해서는 지금 큰 유익을 볼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되는 것이고,

이미 있는 고난은, 이미 시작된 고난은 어서 고쳐서 없어지는 것이 좋고 또 없던 고난은 생기는 것이 좋고, 고난이 생기면은, 고난이 생기면 어서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 여기에 대해서는 요구가 무엇이며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온전케 할 면이 어떤 것인가? 고거 찾아 가지고 고거 하면은 이게 물러가니까, 이미 있는 고난은 물러가도록 만들어 가지고 물러가는 재미를 봐야 되겠고 또 처음으로 시작되는 고난에는 이제 이 소망으로써 큰 기대에 큰 재미를 봐야 되겠고 그렇게 되지 안하면은 이 마귀에게 삼켜진다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그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4. 욥의 인내를 본 받자

“욥의 인내를 보았거니와, 주께서 그 결말 주신 것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 욥기를 볼 때에, 욥기를 볼 때에 욥이 자기는 하나님에게 대해서 흠이 없는 의인인데 하나님이 욥에게 대해서 대접한 것은 아주 섭섭했습니다. 그뭐 그만 그 재산을 다 없애버렸지 또 자녀를 뭐 절단내 버렸지, 또 자기의 몸에 말할 수 없는 그런 병이 들게 해 버렸지,

이래도, 아내가 있다가 ‘여보, 자기가 하나님을 섬긴다 하는데 하나님이 이렇게 해도 또 하나님이가? 이래도 하나님을 찬양한다 말이가?’ 이럴 때도 욥이 원망하지 안하고 불평하지 안하고 ‘하나님께서 나를 없는 것 냈으니까 또 당신 뜻대로 당신이 쓰시고 또 처리하시지, 당신이 나를 만들었기에 당신이 내게 대해 당신 뜻대로 하시지 내 뜻대로 할 것이냐?’ 이렇게 말하는 데에서 참 그에게 아주 아름다운 향기가 나왔고 셋 친구가 말할 때에 나중에 조금 원망스러운 말이 나올 때에는 그것이 욥에게서 하나님이 찾아서 고칠라 하는 그 치료의 재료였습니다. 욥이 나중에는 거기에 대해서 회개하고 겸손하게 할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물리치시고 이제 만고에 신앙의 표본으로 세워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거 오늘 아침에는 제 간증입니다. 이거 교만과 겸손에 대해서, 또 높아지는 것은 뭣이 때가 되면 높아지느냐? 자꾸 ‘이거 나는 이거 참 이런 대우 받을 만한 자가 못 되는데 이거 너무 대접이 과분하다.’ 하는 것은 자꾸 대접이 올라가게 되고 ‘나는 이거 이런데 너무 대접이 너무 박하다.’ 하는 자는 자꾸 내려가기 마련이고 이러니 이게 마귀가 삼키는 거라. 마귀에게 겸손이 삼켜지면 절단나고 또 교만을 만들어 줄 때에 교만이 들어오면 망하고 하는 그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자유로 돌아갑시다.

오늘 아침에 이것이, 목회자가 많이 모였는데 목회자의 목회가, 교회가 부흥되는 비결이요 교회가 내려가는 비결입니다. 겸손하면 자꾸 교회가 올라가겠고 교만하면 자꾸 교회가 내리빵수로 내려가게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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