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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의 밤 / 출 12: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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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여호와의 밤
본 문 : 출 12:37-42
설 교 : 박봉수 목사 (상도중앙교회)

 
오늘 본문을 포함하여 출 12장 29-42절에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애굽 땅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모두가 잠든 한 밤중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집집마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장자가 다 죽은 것입니다. 바로의 궁전에서부터 저 시골 오막살이 집, 심지어 옥에 갇힌 죄수의 집에까지 예외가 없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가축들 가운데서도 초태생이 모두 다 죽었습니다. 애굽 땅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로는 죽은 장남의 시신을 안고서야 더 이상 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급히 모세를 불러 지금까지의 태도와 달리 오히려 빨리 떠나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여호와의 위대한 능력을 체험한 애굽 사람들은 또 무슨 일어날까를 두려워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대로 은 금 패물과 의복을 다 내어주었습니다.

이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여호와의 명령이 모세를 통해서 하달됩니다. “출발!” 애굽 곳곳에 흩어져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밤에 라암셋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서로가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여호와의 위대한 역사에 놀라며 찬양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통곡소리로 가득 찬 애굽 땅을 떠나 저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 가나안 땅을 향해 힘 찬 발걸음을 내 딛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말 길고도 긴 밤을 보냈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니 자자손손 잊을 수 없는 놀라운 밤을 겪었습니다. 그들이 이 밤을 ‘여호와의 밤’이라 불렀습니다.

요즘처럼 날씨가 무더워지면 영화나 TV 프로그램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것이 소위 ‘납량물’들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옛날 납량물들 예를 들어 ‘전설의 고향’이나 ‘월하의 공동묘지’ 같은 것들은 주무대가 무덤 가입니다. 그리고 꼭 등장하는 것이 흰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이 머리를 산발로 늘어뜨리고 입가에는 피를 머금고 나타납니다. 으스스한 배경음악에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며 나타납니다.

‘여고괴담’이니 ‘폰’이니 하는 현대 납량물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주무대가 무덤이 아니라 학교나 마을이나 회사와 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입니다. 흰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 대신 여러 종류의 캐랙터들이 괴기스런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배경 음악도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공포감을 배가시킵니다.

그런데 고전 납량물이나 현대 납량물의 공통점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 모든 사건들이 어둠이 짙게 깔린 한 밤중에 일어난다는 점입니다. 또한 동서양을 막론하고 귀신이나 도깨비나 드라큐라 같은 공포의 대상들은 모두 밤에만 활동한다는 것입니다. 흰 소복 입은 귀신은 절대로 대낮에 길거리 한 복판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드라큐라도 절대로 백주대낮에 등장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사탄의 세력, 악의 세력,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 세력들은 모두가 어둠 속에서 활동한다는 의식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반면에 우리를 축복하고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세력은 빛 가운데서 활동한다는 의식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밤을 무서워했습니다. 그 반면에 여명을 기다려왔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여호와의 밤’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밤에도 활동하신다는 것을 강조하신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악이 지배하고, 어둠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한 밤중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멈추지 않으시고 역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실제로 하나님께서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신 시점이 주로 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을 구원해 내실 때 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다에 빠져 죽게 된 제자들을 구원하실 때도 밤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차 주님께서 신랑이 되셔서 다시 오실 때도 밤일 것이라고 예언되어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한 밤에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니 크고 놀라운 구원은 오히려 한 밤중에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진실로 하나님의 역사는 여호와의 밤에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여호와의 밤은 여호와께서 친히 역사하시는 밤을 뜻합니다.

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 보셨습니다.
창세기 마지막 부분을 보면 야곱의 일가는 계속되는 가뭄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을 갑니다. 마침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어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애굽에 정착하여 이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요셉을 모르는 새 왕이 등장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가 정말 딱하게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부리는 노예가 되고 만 것입니다. 게다가 애굽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나 그 능력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경계하게 되었고, 견디기 힘든 핍박을 가해왔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견디기 힘든 세월이 무려 430년이라고 두 차례나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끔찍한 고통의 세월을 보내면서 저들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르짖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없었습니다. 저들에게 이 긴 세월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짙은 어둠이었고, 그야말로 역사의 길고도 험한 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의 긴 밤을 보내고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결코 버려두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출 2:23-5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당할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7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에 이르려 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고통의 긴 밤을 보내고 있는 동안 저들을 지켜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가 되자 저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서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의 밤이 구원의 밤으로, 저주의 밤이 축복의 밤으로, 절망의 밤이 소망의 밤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세계 제 2차 대전 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들 가운데 깊은 절망의 고통의 긴 터널을 견디고 이겨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수용소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네 단지 조금 늦을 뿐이라네." 하는 노래를 부르면서 마음과 육체를 단련시켰습니다.

이 수용소에 한 젊고 유능한 외과 의사가 수용되어 있었습니다. 매일처럼 가스실과 인체실험실로 끌려가는 동족들의 죽음의 행렬을 바라며 머지않아 자신도 가스실의 제물이 되고 말 것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감방에서 밖으로 나가 작업하는 시간이 되면 흙 속에 몰래 파묻어 둔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꺼내 그것으로 면도를 하며 얼굴을 단정히 하였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한 상황 속에서 그의 외모를 가꾸는 일은 정말 어리석은 일인지라 남들은 손가락질했지만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얼굴을 다듬었습니다.

나치들은 면도질로 말끔한 절망하지 않은 그의 모습을 보고 그를 일찍 죽이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하고 죽을 차례를 자꾸 뒤로 미루었습니다. 그러다가 나치가 패망하는 날을 맞았고 그는 죽지 않고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그가 죽음의 수용소인 아우슈비츠를 떠나던 날 그의 소지품은 단 한가지, 그것은 바로 깨진 푸른 유리 한 조각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스웨덴에서 병원을 개업하여 성공하였습니다. 그는 유월절이 올 때면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부르던 노래의 가사를 다음과 같이 약간 수정하여 불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결코 늦는 법이 없다네. 다만 우리가 너무 성급할 뿐이라네." 그는 이 노래를 부르며 수용소의 깊은 절망의 밤 한 복판에서도 자기와 함께 하시고 자기를 돌아보셨던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때로 인생의 고통스러운 밤을 보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지금 나를 돌아보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내 부르짖음을 듣고 계시고 나를 위해 이미 일을 시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2.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고통 중에 있는 이스라엘을 지켜보시다가 정하신 때에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끈질긴 바로의 저항을 끝내 물리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능력으로 놀랍게 역사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와있는 출애굽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해 나온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단지 지리적인 이동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또한 포로에서 풀려난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의미는 저들이 노예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 가장 귀중한 민족 문학서로 꼽는 책 가운데 “학가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 안에 유대인들의 최대 축제인 유월절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 부분은 이런 구절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애굽에서 바로의 노예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을 두고 두고 자자손손에게 알리고 깨우쳤습니다. 다시는 남의 종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롬 6:16을 보면 원래 우리는 죄의 종이었다고 했습니다. 롬 5:21을 보면 죄가 왕 노릇했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 노릇했던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의 종이었던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재미있는 시 한편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천주교 신부가 쓴 시입니다. 그는 신부이면서도 알콜 중독자로 오래 고생하다가 치유가 돼서 지금은 천주교 알콜 사목센터 소장으로 있는 분입니다. 이 분은 한 밤중까지 술을 마셨고, 아침 미사 시간에도 술에 취해 흐느적 거렸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던 그가 {그 때 술을 마시지 않았다면...} 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그 때 술을/마시지 않았더라면/아름다운 세상을 보았을 텐데

그 때 술을/마시지 않았더라면/좋은 친구들을 만났을 텐데

그 때 술을/마시지 않았더라면/건강한 몸으로 살고 있을 텐데

그 때 술을/마시지 않았더라면/맑은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을 텐데

그 때 술을/마시지 않았더라면/하느님을 좀더 사랑했을 텐데.

알콜 중독자들은 이렇게 술에 종노릇하며 살던 사람들입니다. 하고 싶은 것 하지 못하고 그저 술에 이끌려 사는 사람들입니다. 술이 그에게 왕노릇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원래 죄의 종노릇하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러시아 일국을 다스릴 줄은 알지만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다”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내 마음 속에 죄의 세력이 던져 넣은 탐욕, 교만, 거짓, 시기, 불신앙, 비겁, 음란 이런 것들을 뿌리칠 능력이 없습니다. 늘 이런 것들에 끌려다니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로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켜주셨습니다. 바로를 물리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로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 더 이상 애굽에 마물러 있지 않도록 애굽으로부터 출애굽시켜주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롬 8장에서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되었다고 선포했습니다.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리지 못하도록 죄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셨다고 말씀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의 법을 따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되었다고 선포했습니다.

이제 성령의 인도 따라 우리는 내 마음 속에 죄가 뿌려놓은 온갖 악한 마음을 이겨낼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단호하게 죄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과거 죄가 나를 지배할 때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내게 거절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죄의 유혹과 죄의 지시에 단호하게 “No"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대신 자원하는 마음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거룩한 욕망을 이루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밤에 우리를 이렇게 변화시켜주셨습니다.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새 출발을 허락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을 할 때 특별한 지시를 하셨습니다. 출 12:2에 “이 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달력을 사용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고대에 나라가 바뀌거나 왕이 바뀌면 년호가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이 바뀌었습니다. 바로가 왕이었다가 하나님께서 왕이 되신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 여호와의 밤이 새로운 시대를 활짝 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영접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고 나면 우리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우선 인생의 목표가 달라졌습니다.
과거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인생의 목표가 없었습니다. 430년 동안 노예로 살아온 민족에게 무슨 꿈이 있었겠습니까? 아무리 땀흘려 노력해도 노예일 뿐입니다. 너무도 긴 세월 노예로 지냈기 때문에 노예 근성이 뼛속까지 깊이 배어있어서 해방을 위한 그 어떤 시도도 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나안이라는 목표가 주어졌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향해 진군하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거룩한 나라를 이루는 꿈을 꾸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사는지 목표가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저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동안 삶의 의미도 잃어버린 채 마치 다람쥐 체 바퀴 돌 듯이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업을 해도 사업하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공부를 해도 공부하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자식을 키워도 자식을 키우는 이유가 생겼습니다. 하루하루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의미있는 삶, 이유 있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삶의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애굽에서 바로의 지시를 따르며 살았습니다. 바로의 채찍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노예로 복종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바로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더 이상 바로의 노예가 아닙니다.

특별히 본문 41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의 군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위해 싸울 거룩한 군사들이라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함과 동시에 이들은 거룩한 여호와의 군대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군대의 특징은 우선 철저한 복종입니다. 여호와의 군대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여호와의 군대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며 살아야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다른 군대의 특징은 충성입니다. 여호와의 군대는 여호와께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여호와의 군대입니다. 여호와께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모든 영광을 여호와 하나님께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은 잊을 수 없는 여호와의 밤을 겪은 사람들입니다. 그 크신 은혜로 죄의 종으로 비참한 삶을 살던 우리를 돌아보셨습니다. 그 놀라우신 능력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새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향해 새출발하게 해 주셨습니다. 새로운 인생의 목표를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군대로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 기도/ 우리를 돌아보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잊지 말게 하옵소서. 여호와의군대로 늘 승리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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