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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눈을 갖게 하소서 / 왕하 6: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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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믿음의 눈을 갖게 하소서
설 교 : 조갑문 목사 (대광교회)
본 문 : 왕하 6:13-20


(왕하6:13)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보내어 잡으리라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리사가 도단에 있나이다
(왕하6:14)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왕하6:15)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 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왕하6:16)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왕하6:17)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왕하6:18)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왕하6:19)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의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저희를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왕하6:20)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저희의 눈을 여시매 저희가 보니 자기가 사마리아 가운데 있더라





[본문내용] 10725K bytes
믿음의 눈을 갖게 하소서
왕하6:13-20  주일낮/조갑문 목사/http://isermon.com.ne.kr

주전 팔백 여 년 전 이스라엘 나라에는 엘리사라고 이름 하는 아주 유명한 하나님의 선지자가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하나님 한데 받은 특별한 능력을 활용해서 하나님과 나라를 위해서 큰일을 했던 사람입니다. 엘리사가 하나님께 받은 능력 중에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도 먼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소상히 알 수 있는 기막힌 능력도 있었습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그 능력을 이스라엘을 자주 괴롭히는 아람 나라 왕궁의 사정을 살피는데 사용을 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그 당시 아람 왕이던 벤하닷 2세가 아무리 신하들과 기발한 작전을 짜가지고 이스라엘을 쳐 들어가도 여지없이 패하고 마는 기현상이 반복해서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는 벤하닷 2세가 신하들을 불러 놓고서는 왜 번번 히 전쟁에서 지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는 회의를 열었다고 했습니다. 거기서 밝혀진 사실이 무엇인가 하면 이스라엘에는 아람 왕궁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샅샅이 알고 있는 엘리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벤하닷 2세는 엘리사를 먼저 없애야 하겠다는 판단을 하고서는 밤을 틈타서 잘 훈련된 정예 부대를 이스라엘에 침투 시켜서 엘리사 선지자가 머물고 있던 도단 이라는 작은 성을 겹겹이 포위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날이 밝으면 곧 바로 성을 점령하고 엘리사를 체포할 요량 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이 일 까지도 모두 알고 있어서 그 일에 완벽한 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날이 밝아올 무렵 엘리사를 시중들고 있던 사환이 거처에서 나와서 성 아래쪽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이 사환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람의 군대가 그야말로 물 샐 틈도 없이 도단 성을 에워싸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놀라 처소에 뛰어든 사환은 위급한 밖의 사정을 엘리사 선지자 한데 보고를 하면서 ‘이제 우리는 꼼짝없이 죽게 되었으니 이일을 어쩌면 좋겠는가?’ 라고 하면서 한탄을 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엘리사 선지자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16절을 다시 봅니다.
왕하 6: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엘리사 선지자가 놀라지 않은 이유는 그 자신이 인간적인 배짱이 두둑해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말씀처럼 엘리사 선지자는 사환이 보지 못하는 영의 세계를 보고 있었기 때문 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보내신 하늘의 군사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이윽고 엘리사 선지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사환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어떤 내용의 기도 이었는지 17절 봅니다.
왕하 6: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엘리사가 기도를 마치자 사환의 눈이 활짝 열려서 조금 전까지 만 해도 전혀 보이질 않던 영의 세계가 보이길 시작 했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보신대로 엘리사를 호위하고 있는 하나님의 군사의 수가 얼마나 많은지 온 산을 뒤 덮을 정도로 가득한 것을 보게 되었다. 는 것입니다. 그것도 보통 군대가 아니라 ‘불로 된 말과 불로된 마차를 탄 군대’ 가 엘리사 선지자를 호위하고 있는 것을 똑똑히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제서 야 그 사환은 안심을 할 수가 있었고 엘리사처럼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담대한 모습으로 아람 군대를 바라 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후 이런 하나님의 보호가 엘리사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리 없는 아람 군대는 계획대로 엘리사를 체포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을 했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아람 왕인 벤하닷 2세나 군사들은 엘리사는 ‘독안에 든 쥐’라고 생각해서 체포를 확신하고 엘리사가 머물고 있는 거처를 향해서 돌진을 했을 것으로 봅니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었고 더 없이 큰 죄악을 범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볼 것도 없이 아람 군대의 작전은 힘도 한번 써보질 못하고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작전이 어떻게 실패 했는지 말씀을 통해서 살펴봅니다.
왕하 6: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엘리사의 기도가 마쳐짐과 동시에 놀라운 이변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말씀처럼 엘리사를 체포하려고 달려오던 군사들 모두가 갑자기 앞을 전혀 못 보는 소경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어서 모든 군사가 앞을 못 보고 우왕좌왕 하니 무슨 수로 엘리사를 붙잡을 수가 있겠습니까? 엘리사를 붙잡기는커녕 자기들이 도리어 이스라엘의 포로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상 설명을 드린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의 주요 줄거리 입니다.
여러분!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서 교훈을 받으려고 초점을 맞춘 것은 사물을 보는 기능을 하는 ‘눈 (目)’에 관한 내용입니다.
눈이라고 할 경우에 보통은 얼굴에 있는 이 눈을 말 합니다만 영적인 면에서 본다면 사람은 얼굴에 있는 이 눈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외에도 몇 개의 눈을 더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략 사람들 한데 있을 수 있는 눈은 ‘세 종류’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주신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세 종류의 눈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을 드리면서 은혜를 나누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1.아람 군사들과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이 있다. 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말씀에 보신 것처럼 아람 군사들이 가지고 있는 눈은 ‘보이지 않는 눈’ 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이런 소경의 눈을 가지지는 않았습니다. 아주 밝은 눈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어두운 밤임에도 불구 하고서 이스라엘 나라 깊숙이 있는 도단 성까지 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밝던 눈이 갑자기 어두워짐으로 해서 엘리사를 체포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고, 도리어 자신들이 포로가 되어서 이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대목에서 우리들이 주목할 것은 왜 이들이 갑자기 앞을 못 보는 소경이 되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은 그것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란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사를 잡으려고 달려들다가 이렇게 되고 말았다. 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이 소경이 된 것은 ‘하나님을 대적 하는 큰 죄악’을 범했기 때문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표면적인 면으로 본다면 ‘엘리사’ 라는 사람을 체포 하려고 했던 것처럼 보였지만 기실 그 일은 하나님께 도전 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의 멀쩡한 눈들을 멀게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실을 주목 할진데 그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죄악’을 범하게 되는 경우에는 영적인 면에서 이들처럼 소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소경이 된다.’ 라는 것은 얼굴에 있는 이 눈이 먼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영적으로 소경이 된다. 는 말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 사단의 뜻을 분간 하지 못한다든지 또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에 대한 판단력을 잃어버린다.’는 뜻인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경험 하는 바이겠지만 저나 여러분이 죄악을 범한 까닭에 분별력을 잃고 우왕좌왕 하는 일이 벌어진다고 해 보십시오. 이것 보다 더 큰 불행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점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들은 ‘죄악’ 으로 인해서 앞을 못 보는 소경처럼 되지 않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사는 여러분들이 되길 축원 합니다.

2.엘리사의 사환과 같은 눈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사환의 눈은 한 쪽만 볼 수 있는 눈일 뿐 다른 한 쪽은 전혀 볼 줄을 모르는 반 쪽 눈이었던 것입니다.
그 날 엘리사와 사환은 같은 처소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볼 수 있는 반경도 똑 같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환은 아람의 군대를 보고서, 곧 죽을 것처럼 놀라고 낙망을 했다. 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같은 군대를 보면서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라고 했습니까?
왜 이렇게 상반된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원인을 찾는다면 이 사환의 눈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한쪽만 보는 ‘편향적인 눈’ 이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즉 힘들고 문제되는 부정적인 면만 보았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승리와 보호와 축복 같은 긍정적인 면은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니 사환이 쳐들어온 아람의 군사들을 보고서 놀라고 당황하고 낙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눈은 지금 어떻습니까?
혹시 사환처럼 어렵고 힘들고 문제투성이인 것들만 보이는 편향적인 눈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또 다른 한쪽도 볼 수 있는 눈으로 고침 받게 되길 바랍니다.
그렇게 편향적인 눈을 고치지 않는 다면 평생을 그렇게 ‘힘든 것만 보면서 한숨을 쉬어야 할 것이고 문제투성이인 환경만 보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잘못된 사환과 같은 눈을 고치는 방법이 무엇인줄 압니까? 오늘 말씀에 보니까? 사환의 눈을 고치기 위해서 엘리사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사실이 나오는 것입니다. 바로 그 기도로 말미암아서 편향적인 사환의 눈이 고쳐지게 되었고 그때까지 보지 못하던 영의 세계도 비로소 보길 시작 한 줄 믿습니다.
여러분!
이런 사실을 주목 할진데 반쪽만 보는 눈을 열어서 온전히 볼 수 있게 하는 데는 ‘기도’ 밖에 없는 줄 압니다.
우리도 이 일을 위해서 쉼 없이 기도함으로 말미암아서 온전하고 건강한 눈으로 고침을 받고 살게 되길 축원 합니다.

3.엘리사와 같은 눈을 가진 사람이 있다. 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군사들이 가지고 있던 눈이나 사환이 가지고 있던 눈은 온전치 못한 눈들입니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엘리사는 온전한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엘리사의 눈은 ‘죄악’ 때문에 어두워진 눈도 아니었고, 사환처럼 당면한 어려운 현실만 보는 편향적인 눈도 아니었습니다. 엘리사는 군사들이나 사환이 보지 못한 영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기에 엘리사는 그 눈으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보내신 불 말과 불 마차를 타고 있는 하늘의 군사를 보면서 그렇게 담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온전한 눈을 갖게 되길 축원 합니다.
여러분!
엘리사가 가졌던 눈은 영적으로 해석을 하면 ‘믿음의 눈’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를 보호 하시고 계시고 인도 하고 계시며 돕고 계시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담대한 사람’ 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다윗도 그런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이었잖습니까? 그랬기에 왜소한 소년의 몸으로 거인 ‘골리앗과 맞서 싸우겠다,’ 고 나갔던 것 아닙니까?
이런 그의 믿음을 증명하는 시편의 고백이 있습니다.
시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들은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도우심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시험, 환난, 풍파를 만난다 할지라도 흔들림이 없이 담대한 모습을 지킬 수가 있을 줄 믿습니다.
원하기는 지금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부정적인 면들만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긍정적이고 축복 된 면들’을 보면서 늘 힘을 얻고 담대한 모습으로 살아서 사단을 비롯한 모든 대적들을 끝까지 물리쳐 이기는 승리의 주인공들이 되길 축원 합니다.

결론/
오늘은 주신 말씀 통해서 ‘세 종류의 눈’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리는 것으로 결론을 맺겠습니다.

첫째, 죄악으로 말미암아서 영적인 소경이 되어서 분별력을 잃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둘째, 힘들고 문제 많고 부정적인 면들만 보는 편향적인 눈을 쉼 없는 기도 생활로 고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도 함께 볼 수 있는 온전한 눈을 가지고 사는 여러분들이 되길 축원 합니다.

셋째, 엘리사가 가졌던 것과 같은 온전한 믿음의 눈을 가지고서 언제나 함께 하시며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봄으로 끝까지 강하고 담대한 그리스도인으로 승리하는 여러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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