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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헛된 신앙 생활 / 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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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헛된 신앙 생활
본  문 : 전 5:1-7
설교자 : 박봉수 목사 (상도중앙교회)


  저 유명한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 대왕은 같은 시대를 살았습니다. 특별히 아리스토텔레스는 알렉산더가 왕자이던 시절 어느 기간 동안 가정교사 노릇을 했었습니다. 그 때 두 사람 사이의 대화 가운데 하나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왕자께서 왕이 되시면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그리스를 통일하겠습니다.’ ‘그 후에는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소아시아를 정복하겠습니다.’ ‘그 후에는 또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팔레스틴과 이집트를 정복하겠습니다.’ ‘그 뒤에는?’ ‘페르시아와 인도까지 손에 넣겠습니다.’ ‘인도까지 점령하고 나면 또 무슨 일을 하시겠습니까?’ ‘그 때쯤 저도 죽겠죠’ ‘그렇다면 그렇게 멀리 돌아다니다 죽으나 지금 죽어버리나 별로 큰 차이게 없겠습니다.’

  이 후 알렉산더는 12년 8개월 동안 왕노릇을 하다가 33살 이른 나이에 죽었습니다. 그는 어릴 때 꿈처럼 소아시아, 팔레스틴, 이집트, 페르시아, 인도까지를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다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그가 죽을 때 관의 양옆에 구멍을 내서 자기 시신의 빈손을 드러내라고 명령을 하고 죽었습니다. 그렇게 넓은 영토를 정복했지만 죽을 때는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더 이 두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 인생의 허무를 깨달았는데 비해서 알렉산더는 죽기 직전에 인생의 허무를 깨달았다는 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찍 인생의 허무를 깨우치고 그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더는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 후회가 돼서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자기와 같은 과오를 범하지 말라고 관 밖으로 빈손을 내놓았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인생의 허무를 느끼게 됩니다. 일찍 이 인생의 허무를 깨닫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을 때 가서야 인생의 허무를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허무를 일찍 깨우칠수록 인생을 의미 있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허무를 일찍 깨닫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길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고 의미 있고 보람된 인생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길을 찾은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전도서의 저자 솔로몬입니다. 그가 찾은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길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그는 누구보다도 인생의 허무를 깊게 깨달았습니다. 전 1:2을 보면 그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도서에서 무려 37번이나 헛되다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 그 자체가 헛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여러 차례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나름대로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애써 보지만 그 모든 노력이 잡으려해도 잡히지 않는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헛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인생이 이토록 허무하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전도서를 살펴보면 여러 차례 ‘해 아래서’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러 곳에서 인생이 헛되다는 표현과 함께 나옵니다. 그는 인생이 헛된 이유를 바로 이 ‘해 아래서’라는 표현에 담아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해 아래서’라는 표현은 ‘태양 아래’라는 물리적 공간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거하시고, 사람은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고 방식에서 나온 문학적 표현입니다. 그러니까 ‘해 아래서’라는 말은 이 땅을 말합니다. 해 위에 계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이 인간 세상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외면당하시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미치지 않는 인간들이 주도하는 이 세상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서 짧은 인생을 죄와 짝하며 고통 중에 살아가는 인간 세상을 말합니다.

  결국 솔로몬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허무의 본질은 해 위의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채 해 아래서 살아가고 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뜻과 섭리가 계셔서 우주 만물과 우리 인간들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지다 보니 우리 인간은 물론이고 우주 만물들도 자기들이 존재하는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출세가 인생의 목적인 줄 알고 땀 흘려 수고해서 출세 해 보니 그것이 아니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헛되다고 탄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 버는 것이 인생의 목적인 줄 알고 땀 흘려 수고해서 돈을 벌고 보니 그것이 아니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헛되다고 탄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쾌락이 인생의 목적인 줄 알고 몸부림 쳐서 쾌락을 탐닉해 보니 그것이 아니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헛되다고 탄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수고가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결국 솔로몬이 찾은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는 길은 해 아래서의 삶을 청산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솔로몬이 제시하는 것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생활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다보면 인생의 목적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다보면 하나님의 뜻과 섭리 안에서 인생을 의미있게 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와 보면 솔로몬은 놀랄만한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헛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해 보지만 잘못하면 이것도 한낱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신앙생활을 해 보지만 나중에 보니 하나님께서 모른다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기 만족을 위한 신앙생활에 몰두하다 보면 이 신앙생활 역시 해 아래서의 몸부림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9:27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우리도 이 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지만 나중에 그 모든 노력이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신앙생활이 헛된 것입니까? 어떻게 하면 그런 헛된 신앙생활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첫째, 헛된 예배

  헛된 신앙생활의 첫 번째 요소는 바로 헛된 예배입니다.

  우선 5:1을 보면 “너는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찌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삼가다는 말은히브리어 원어 성경에서는 ‘솨마르’(rm'v;)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원래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다’라는 뜻입니다. 철저하게 지키고 보존하라는 뜻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예배는 영이신 하나님과의 영적인 만남이 핵심입니다. 예배 현장에 영으로 임재하신 하나님께 신령한 노래로 찬양을 드립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고백과 기도를 드립니다. 영으로 임재하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받습니다. 하늘의 평안을 맛봅니다. 감격하며 우리의 영이 새 힘을 얻고 소성함을 입게 됩니다.

  바로 ‘네 발을 삼가라’는 말은 이런 영이신 하나님과의 만남을 잘 지키고 보존하라는 말입니다. 이런 영적인 만남이 사라진 예배야말로 헛된 예배라는 말입니다.

  사실 예배를 제대로 드리기 가장 어려운 사람을 손꼽으라면 목사들일 것입니다. 저만해도 주일에 네 번 이상의 예배를 드립니다. 특히 똑 같은 주일 아침 예배를 세 번 드리게 되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예배자로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으로 예배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으로 예배에 참석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그 옛날 제사장들이 자기 제사가 아닌 남의 제사를 위해 봉사했던 것처럼 내가 드리는 예배라는 생각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예배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마음에 예배 전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예배 인도자 이전에 설교자 이전에 예배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내 영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해 달라고 정말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저는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 발을 삼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 현장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발을 삼가야 하겠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과의 영적 만남을 잘 지키고 보존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을 잃어버리면 바로 그 예배야말로 형식주의 또는 의식주의에 빠진 예배 다시 말해서 헛된 예배가 되고 말 것입니다.

  다음으로 5:1을 보면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말씀을 듣는 다는 것은 예배 도중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나아가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매자의 제사라는 것은 제물을 드리고 제사의 의식에만 몰두해서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 현장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대표적으로 설교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심령에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기억하고 순종해서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일전에 중국교회 예배에 참석한 일이 있습니다. 거의 설교를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예배 순서를 따라 기도도 하고 찬송도 하고 헌금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예배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했던지요...

  우리가 예배드리는 도중에 내게 주시는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이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깨달음을 주시는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예배는 헛된 예배가 되고 말 것입니다.


둘째, 헛된 기도

  헛된 신앙생활의 두 번째 요소는 헛된 기도입니다.

  본문 2절을 보면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함부로 입을 연다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따지고 하나님 하신 일에 대해 원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급한 마음으로 말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은 생각지 않고 정욕에 따라 간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청구서를 내밀 듯이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기도는 하나님과 나누는 대화입니다. 대화는 인격적인 두 존재가 만나서 서로 자기의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할 때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우리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리챠드 포스터라는 분은 [기도]라는 책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 안에서 상처를 받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지 않은 채 너무도 먼 거리에서 일방적인 요구를 해 댈 때 하나님께서 상처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무엇인가를 떼쓰듯이 간청할 때 하나님께서 상처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준비해 놓으신 것은 외면한 채 무조건 많은 것, 무조건 큰 것만을 요구할 때 상처를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기도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기도는 아닙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기도는 헛된 기도입니다.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목사님이 쓴 기도라는 책을 보면 충격적인 부제가 붙어있습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부분은 하늘나라에서 잡동사니 우편물처럼 취급당합니다” 요즘 제 E-mail을 보면 정말 쓰레기 같은 메일이 수 없이 날아옵니다. 그래서 읽어보지도 않고 지워버립니다. 스펨 메일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나라에서 이렇게 취급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헛된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나라에서 소중하게 읽혀지는 편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쓰레기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 까요?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되고 완전한 기도는 사랑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께서 귀하게 받으시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사무엘 코울리지라는 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을 잘하는 사람이 기도도 잘한다” 그리고 “진정한 기도는 사랑에 빠짐으로써 나온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에 앞서서 우리가 점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에 대한 내 사랑을 받아주시는가? 우리가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그 마음 위에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사랑 없이 드리는 기도 그것이야말로 헛된 기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 헛된 서원

  헛된 신앙생활의 세 번째 요소는 헛된 서원입니다.

  본문 4절 이하를 보면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말라 하나님은 우매자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서원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나다르’(rd"n)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약속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원이라는 말은 자기가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약속을 한 것을 말합니다.

  구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자발적으로 서원을 드리고 또 그 서원을 갚으며 믿음의 삶을 이어갔습니다. 대표적으로 야곱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창 28:20 이하를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외삼촌 집으로 피신하여 가는 도중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난 뒤에 스스로 하나님께 서원을 드리는 내용입니다.

  창 31:13을 보면 야곱이 20년 만에 외삼촌 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나는 벧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20년 전에 야곱이 하나님께 드렸던 서원을 기억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이 서원을 갚기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바로 서원을 갚으려 벧엘로 가지 않았습니다. 세겜으로 가서 거기서 안주하려 했습니다. 서원을 피해 세겜으로 갔던 야곱에게 큰 시련이 닥칩니다. 외동 딸 디나가 성추행을 당하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이를 본 디나의 오빠들이 세겜의 남자들을 죽이는 복수극이 벌어졌습니다. 죽음의 냄새게 그 가정에 드리우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가나안 여러 족속들이 야곱의 가족들을 공격할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서원을 갚지 않고 엉뚱한 길로 나아갈 때 그의 인생은 정말 험난한 가시밭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도움을 청하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 35:1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게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한 마디로 말하면 서원을 갚으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그제서야 서원을 갚기 위해 벧엘로 올라가서 단을 쌓고 서원을 갚자 하나님께서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35:9을 보면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라고 말씀했습니다. 서원을 갚자 복된 삶의 펼쳐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원을 드리고 갚지 않으면 그것은 헛된 서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인생은 가시밭길로 변하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하지만 기쁨이 없고, 감사와 감격이 없고, 고통만 가득찬 인생길이 될 것입니다. 서원을 했으면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이 헛될 수가 있습니다.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의 허무는 더욱더 깊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헛된 신앙생활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기 위해 헛된 예배, 헛된 기도, 헛된 서원을 극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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