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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자들의 기쁨' / 눅 2: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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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목자들의 기쁨'
본 문 : 누가복음 2:8-20
설 교 : 김흥규 목사 (성루가연합감리교회)


덴마크의 철학자요 신학자 중에 죄렌 키르케고르(Soeren Kierkegaard, 1813-55)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기독교 진리를 아주 쉬운 비유를 통하여 설명하곤 했습니다. 그의 비유 중에 '왕과 하녀'(The King and the Maid)는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전달해 줍니다.

옛날 옛적에 왕이 하녀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엄청난 신분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왕은 그 하녀와 결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문제는 자기가 그 하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으며 또 결혼까지 하고 싶다는 사실을 어떻게 전하는 가였습니다. 왕은 자기 나라의 유명한 현자들과 학자들을 다 모아서 이 사실을 털어놓고 자문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한결같이 "임금님,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임금님은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분이십니다. 이 나라 전체가 다 임금님의 것이며 임금님의 권위에 도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임금님 마음에 드시는 그 하녀를 불러 세우시기만 해도 그 여종은 임금님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왕을 진실로 괴롭힌 것은 신하들이 제안한 바로 이 생각이었습니다.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그 하녀를 자기의 아내로 삼을 수 있지만 이 왕은 자기의 사랑만큼 하녀도 자기를 사랑해주기를 바랬습니다. 왕이 마음 깊은 곳에서 바란 소원은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라 쌍방 간의 사랑이었습니다. 자기의 권위와 영광이 아닌 자기가 사랑하는 하녀의 권위와 영광을 먼저 구했던 것입니다. 이 문제로 밤낮으로 고민하며 식음을 전폐하던 왕은 마침내 사랑의 진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유를 주려면 그와 똑같이 되어야만 해."――"Yes, freedom for the beloved demands equality with the beloved." 어느 날 밤 왕은 마침내 남루한 종의 옷으로 갈아입고 궁궐을 몰래 빠져 나와 자기가 사랑하는 하녀가 거하는 비천한 곳으로 가서 청혼을 하였습니다. 하녀의 사랑을 구하기 위해서 왕은 하녀와 똑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우리와 똑같이 되신 날입니다. 우리의 사랑을 얻기 위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신 날이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크리스마스 절기 동안 우리의 사랑을 구하시는 하나님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맞아들여야만 할 것입니다.

저는 지난 대강절 3주 동안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면서 우리의 마음을 아름답게 장식하자고 호소했습니다. 첫 째 주일에는 '요셉의 의로움'이라는 재료로 마음장식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둘 째 주일에는 '마리아의 믿음'을 우리 마음 곳곳에 수놓을 것을 권하여 드렸습니다. 두 주 동안 이 재료들로 여러분의 마음을 열심히 장식하셨습니까?

이제 오늘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목자들이 가졌던 기쁨을 여러분들께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다음 주에 말씀드릴 동방박사들에 관한 이야기와 목자들의 이야기를 비교해 보면 몇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는 지혜롭고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별을 열심히 연구하다가 예수님이 탄생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메시아가 오리라는 큰 기대가 사방에 퍼져 있었기 때문에 큰 별 하나가 메시아의 탄생과 연관된 것을 발견하고 그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갔습니다. 다음 주에 살펴보겠지만, 더욱이 이들은 아주 정성된 예물까지 준비해서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한 마디로 동방박사들의 이야기는 치밀하게 잘 준비된 모습으로 예수님을 맞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방박사들을 찾으셨다기보다 동방박사들 스스로가 열심히 연구하다가 아기 예수님을 발견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동방박사들과 달리 목자들은 형편없이 무식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자들은 양이나 소를 돌보는 사람들입니다. 아마 가장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들이 목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노상 짐승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까 옷도 아무렇게나 막 입고 다니고 먹는 것 역시 변변치 못했습니다. 옷은 언제나 땀 냄새가 진동했기 때문에 오랜만에 동네 사람들이라도 만나는 날에는 다들 코를 틀어막고 피하려고 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시대의 목자들은 주로 유대 광야에서 늑대나 들짐승들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돈 많은 부자들로부터 고용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생활은 늘 집을 떠나 짐승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그 외로움 때문에 술과 음담패설에 젖어 잊기가 일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직후에 이 근처들판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다는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목자들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스스로가 메시아와 관련된 별을 연구하다가 예수님의 탄생을 알게되었지만 목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직접 보내셔서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동방방사들이 스스로 예수님의 탄생을 알아차린 사람들이라면, 목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들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능동적으로 발견한 사람들이라면, 목자들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자신들의 의지와는 아무 상관없이 수동적으로, 즉 전적인 은혜로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은 사람들입니다.

동방박사들은 먼 길을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아기 예수님 나신 곳까지 왔습니다. 많은 노력을 거친 뒤 아기 예수님께 이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와 달리 목자들은 아무런 노력도 없이, 너무나 쉽게,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 하나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에 아주 평화롭게 이를 수 있었습니다. 박사들은 많은 고생과 노력 끝에 예수님을 보았지만, 일자무식의 목자들은 아무 연구나 노력 없이 예수님을 쉽게 보았습니다.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대조입니까?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차이는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정성껏 예물로 준비해서 주님을 맞은 반면, 목자들은 아무 선물도 드리지 못했습니다. 빈손으로, 그러나 천사가 일러준 아기 예수님에 대한 기쁜 소식을 마음으로 전했습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이나 목자들은 모두 다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했고"(마 2: 11), 목자들은 천사가 전해준 기쁜 소식을 다 말한 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눅 2: 20) 자기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했다는 사실에 공통점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방박사들과 목자들을 비교해 보면 참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습니다. 어떤 점에서 우리의 신앙생활도 '동방박사형 신앙'과 '목자형 신앙'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형 신자들은 치밀한 준비와 꾸준한 노력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목자형 신자들은 어떤 준비나 노력 없이 순식간에 하나님을 체험하고 어떤 진리에 이르는 사람들입니다. 불교적인 용어로 한다면, 동방박사형은 '점수지향적'(漸修指向的)이며, 목자형은 '돈오지향적'(頓悟指向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거나 궁금한 것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소식이 왜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알려졌을까요? 왕이나 권세 가진 자들, 제사장들, 부자들, 똑똑한 사람들이 아닌 미천한 목자들에게 왜 최초로 알려졌을까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신분이 낮고, 힘없고, 연약하고, 못 배운 사람들을 더 사랑하셔서 그럴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봅니다. 먼저, 메시아, 아기 예수의 탄생은 일차적으로 정치적으로 억눌리고, 경제적으로 착취 받고, 종교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제일 기쁜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헤롯왕과 같이 권세 잡은 자들이 한결같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나납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메시아가 나신 소식이 'bad news,' 즉 '나쁜 소식'이었지만, 힘없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good news,' 즉 '기쁜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자들은 그 당시 중심부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 즉 천대받던 하층민들을 대변하는 사람들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나심은 바로 이와 같이 낮은 신분의 사람들에게 큰 기쁨의 소식이었기에, 짐승들이나 돌보던 천한 목자들에게 이 소식이 제일 먼저 전해졌던 것입니다.

둘째로, 양을 치는 목자는 우리 인생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요한 10: 11에서 당신을 스스로 '선한 목자'라고 부르셨습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은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험한 산과 물을 건너시는 분이십니다. 선한 목자인 까닭에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하셨습니다. 또한 시 23: 1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예수님 역시 선한 목자이신 까닭에 목자들에게 '선한 목자의 탄생'이 가장 먼저 전해진 것이 아닐까요? 목자들에게 아기 예수의 탄생이 가장 먼저 알려진 것은 장차 선한 목자가 되실 예수님의 운명을 미리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므로 목자들은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자기를 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목자가 목자를 본 것입니다. 양들의 이름을 다 알고 양들의 목소리까지 다 알아서 그 양들을 위하여 기꺼이 목숨까지 버리실 '양의 큰 목자'(히 13: 20)를 보았던 것입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이제 우리 설교의 본론으로 돌아옵시다. 대강절 기간 동안 우리의 마음을 예쁘게 장식하자고 지난 3주 동안 연달아 강조했습니다. 그러면 목자들 하면 퍼뜩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쁨입니다. 본문 10절을 보세요.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good news of great joy for all the people)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천사가 전하여 준 기쁜 소식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아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목자들은 얼마나 기뻤든지 듣자마자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15절을 보세요.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now)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목자들은 이 기쁜 소식이 사실로 이루어진 모습을 확인하기 위하여 즉시 베들레헴으로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천사의 말이 사실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발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다시 양치는 현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이들은 빈손으로 아기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이 목자들의 심령 깊은 곳에는 아기 예수님으로 인한 기쁨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쁜 마음을 주님께 선물로 드렸던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보러 가기 전에나 본 후에나 기쁨이 마음 가득했습니다.

성탄절은 기쁨의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나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날, 이보다 더 기쁘고 좋은 날이 또 어디에 있습니까? 기쁨은 전염성이 있습니다. 한 사람, 두 사람이 조용히 기쁨으로 마음을 채우면, 우리 교회 전체, 우리 동네 전체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성탄절을 맞는 우리 모두는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뻐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여러분의 마음을 기쁨으로 장식하시기 바랍니다.

불란서에서 눈을 다치거나 실명하는 제 일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샴페인 병마개입니다. 파티 석상에서 무엇인가를 축하하기 위하여 샴페인을 터뜨리다가 눈을 다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성탄절과 연말연시 시즌이 되면 이런저런 파티에 갈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세상 잔치가 주는 기쁨은 일시적일 뿐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을 때로 상하게 하고 피곤케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베풀어주시는 하늘잔치에 참여하면 시들지 않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과 혼과 영, 전체를 새롭게 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하늘잔치입니다. 이 신령한 잔치에 기쁨으로 참여하십시오!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여러분, 기쁘지 않습니까? 이 소식에 대한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장식하십시오.

이제 저는 본문 14절을 여러분과 함께 읽고 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가져 온 사건이 크리스마스입니다. 특별히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고 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모든 무리들에게 평화가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뻐하시면 평화가 임합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과 평화가 함께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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