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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벧전 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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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본 문 : 벧전 5:5-6 
설 교 :  임경택 목사 (종로교회)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어떤 사람이 어거스틴에게 '신앙생활에 있어 첫째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자 그는 '겸손이요'라고 대답했다. '그럼 둘째는요?' '겸손이요' '그럼 세번째는요? ' '겸손이요'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겸손은 기독교의 모든 덕 중에서 제일 큰 덕입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 보다 봉사를 많이 하는 것보다 겸손이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이 겸손을 강조하는 이유는 겸손은 그리스도인의 본질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겸손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겸손의 삶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
예수님의 모습 중에 수건을 가지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모습을 기억합니다. 역시 겸손한 모습입니다
반대로 마귀의 성품을 잘 나타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교만입니다. 스스로 높아 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했던 자가 마귀였습니 다.
이사야 14장 13-14절을 보니까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우리 성도들이 겸손해야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겸손’은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교만한자를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은혜없이 살 수 없다. 지금도 은혜로 살고 하나님의 은혜의 파이프가 막힌다면 참으로 막막하고 한탄스럽고 가장 저주스런 인생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형통함을 주시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이 겸손이란 무엇인가.
유럽과 아프리카와 미국에 대 부흥을 일으켰으며 성경학자로서 70여 권을 저술한 앤드류 머레이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 앞에서 칭찬받고 축복의 소리를 들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배아파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닐것입니다.
그는 또 "겸손이란 스스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믿음의 경건훈련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겸손이란 시기심이나 경쟁심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무익을 고백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되는 귀한 덕목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고는 이런 성품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사람은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나 겸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받은 사람이 겸손할 수 있습니다. 능력받은 사람이 겸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충만케 받은 사람이 겸손케 됩니다.


1. 겸손은 자기를 아는 데서 출발합니다.

겸손은 자기를 아는데서 출발합니다.
사람들은 지식을 구하기 위하여 돈을 투자하고 시간을 투자하고 전력을 다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노력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섭렵했다 할 지라도 자아를 알지 못하는 자라면 무식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식을 구하기 전에 자신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바르게 아는 사람이라면 생각, 삶이 달라질 것입니다.
왜요,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자라는 것을 알게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종이 됩니다. 스스로 섬기게 됩니다. 섬기는 것이 부끄럽지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쓰십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뽑아 쓰신 것도 천하 만민보다 심히 온유하고 겸손하였기 때문에 쓰신 것입니다.
민12:3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존 웨슬리는 "크리스천에게 겸손의 옷처럼 잘 어울리는 옷은 없다. 겸손의 의복은 유행을 타지 않는다. "
"모든 덕이 겸손에서 시작된다. 어떤 권력이라도 겸손이 없는 권력은 위험하다."

빅토리아 시대의 유명한 저술가 존 러스킨은 "위대한 이의 첫번째 시험은 겸손의 시험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이란 "나는 교만하다"라고 자기 평가를 내릴 때에 겸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향해 그렇게 판단해 보십시오 ‘알고보니 나는 참 교만 한 사람입니다’


2. 겸손은 능력있는 사람이 가지는 성품입니다.

흔히 나약한 사람의 성품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것이 능력입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이 겸손합니다. 은혜 충만케 받은 사람이 겸손합니다.
능력을 받은 사람이 겸손해 집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강하여 지기를 원합니다. 돈, 명예, 권세로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강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인도 캘거타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던 테레사 수녀는 원래 유럽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에서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인도 캘거타 빈민들의 처절함을 보고 28세 때에 저들과 함께 살기 위해 수녀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 습니다. 그래서 조국 알바니아를 버렸습니다. 육신의 부모를 버리고 교사직을 버리고 젊음을 버리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버렸을 때 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겸손은 우리 가운데 능력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능력은 비움, 버림, 포기, 주님, 닮음에서 옵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충만 성령 충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주님으로 충만하시고 겸손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겸손한 자의 특징

1. 배우는 자세가 있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배우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배우지 않을려고 하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부족함을 느끼는사람이 배우려 합니다.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 . . 겸손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5절에서는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라고 했습니다.
누가 장로들에게 순복할 수 있습니까?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어른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자기를 지도하는 사람에게 순복할 수 있습니다. 교만한사람은 순복하지 못합니다.
가끔 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면 대통령과 함께 하는 회의 장면들이 나오는데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든지 열심히 받아적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배우겠다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도 어떤 성도는 열심히 기록합니다. 이런 사람의 의도는 배우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가득한 것입니다.
배우는 자세, 이것은 겸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내 멍에는 쉽고 가벼움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배우는 것을 좋아 하는 사람은 시간이 남아서가 아닙니다. 배우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시간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궁극 적인 문제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2. 겸손은 자신을 낮춥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에 가보면 콘스탄틴대제 때 어머니 마리아를 기념하여 말구유 자리에 세운 기념 예배당이 있다. 요즘에도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들은 으례히 그 예배당에 깐 번 들어가 보는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기념 예배당은 꽤 큰 편인데 출입구는 하나 뿐이며 그 문이란 것도 아주 좁고 낮아서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위대한 진리를 발견하게 해 줍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는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뻣뻣이 서서 들어가면 꽝 부딪힙니다.
우리가 교회 나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 만나려고 나왔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나온 사람이 뻣뻣하다면 스스로 부딪히는 행동을 하는 것임 허리를 부드럽게 하십시오.
구부리십시오. 구부려 인사 하십시오.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산양 두 마리가 우연히 강 위에 놓여 있는 통나무 위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나무다리는 너무나 좁아서 뒤로 돌아 올 수도 없고 서로 비켜나갈 수는 더욱 없는 다리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 밀쳐서 강물에 빠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 산양들은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 이런 경우 산양에게는 특이한 성질있는데 즉 한 마리의 산양이 몸을 굽히고 다른 한 마리 산양이 그의 등을 타고 지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현명한 태도입니까?. 한쪽이 굽힘으로 인해 둘 다 무사히 건너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이런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먼저 밟혀 주는 것은 지혜로움입니다. 서로 사는 길입니다.


3. 배우는 대로 실천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배우는 대로 실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교만한 사람의 자세입니다.
지식으로 하나님을 배우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신학을 많이 알고 있고 성경을 많이 외우는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그렇습니다. 실천없는 신앙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런데 겸손하지 않는 사람이 실천하는 법이 없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실천하지 못했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고 실천하지 못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겸손히 하나님의 말슴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사람은 믿음의 성장이 빠릅니다.
많은 성도들의 모습속에서 귀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순수하게 말 없이, 열심히 믿음생활하고, 봉사하는 사람의 신앙은 남모르게 빨리 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자라기를 바라는 자는 그렇게 해 보시기 바랍니다. 순수하고 말없는 열심과 봉사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4. 겸손한 사람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기도합니다. 우리는 보통 기도는 게을러서 못한다 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말하면 그것은 교만해서 안 하는 것입니다.
흔히 기도는 능력이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도 기도를 안합니다. 왜 안합니까? 자신의 실력으로 해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경험으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교만해서 기도 안 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기도하셨습니다. 에수님이 얼마나 바쁘십니까?
그럼에도 기도했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기도의 응답이 빠릅니다.
남에게 청탁을 하는 사람이 그 태도가 뺏뺏하고 건방지면 일이 잘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겸손하게 구하는 자에게 자에게 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여 호와는 겸손히 부르짖는 자를 잊지 않으신다"고 했습니 하나님은 그 앞에 무릎을 꿇는 자에게만 그의 위대하심을 보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5. 겸손으로 일해야 합니다.

흔히 일 좀 하기 시작하면 교만해지고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시는 사람이 많습니다.
본문 5절에 보면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옷을 입을 때 두루마리를 입습니다 그리고 일할 때에는 치근덕거리기 때문에 허리를 묶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겸손으로 하라는 겁니다.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의 역사를 세웁니다.
지금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웃과 사회를 위해서 도울 수 있는 힘이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부끄럽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산다면 그는 누구 앞에서나 존경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혼자 일등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채점은 절대평가를 하신다고 믿습니다.
일등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일등을 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일등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아멜렉과 싸울 때 모세는 산에 올라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이 승리하고, 모세의 손이 내려지면 아말렉이 승리하므로 아론과 훌이 모세의 두 손을 들어 주어 이스라엘로 승리케 했습니다. 기도하는 모세만 큰 사람이 아니라 모세의 손을 들고 있는 아론과 훌도 함께 훌륭한 사람입니다.


6. 겸손한 자를 높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실 때에는 먼저 그 마음을 낮추시는 일부터 시작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도록 그 마음을 낮추십니다.
낮추되 주안에서 낮춰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 때문에, 주님의 은혜를 많이 받은 것을 감사해서 낮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스스로 낮춰야 합니다.
자기 감정, 기분으로 하는 것으로는 안됩니다.
낮추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낮춰주시는 것은 높여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부러 낮추시려고 하기 전에 스스로 자기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야 말로 지혜롭고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을 낮추는 자를 우리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야고보서 4장 10절에서도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고했습니다. 하나님은 낮은 마음을 원하십니다. 스스로 낮추지 않으면 하나님이 낮추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광야로 40년 동안이나 인도하신 것은 그들의 마음을 낮추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너무나 잘 먹고 배부르고 우양이 번성하고 은금이 많아지고 아름답고 큰집을 짓고 살면서 부유해졌을 때 마음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될까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을 낮추시고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광야에서 미리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닥아왔으면 하나님의 훈련으로 깨닫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 후에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있게 될 줄 믿습니다.

마태복음 18장 3-4절에서도 주님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말씀에 은혜를 받게 됩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게 되면 영안이 밝아지고 깨달음이 옵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이 깨달아 지고 따라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게 되고 더욱 더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게 되고 따라서 감사와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뭇을 깨닫게 되고 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어 충성스러운 자가 됩니다.
마태복음 5장 3절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겸손한 주의 백성들이 되셔서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케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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