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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육체의 남은 때 / 벧전 4:1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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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육체의 남은 때
본 문 : 베드로전서 4 : 1 ~ 6
설 교 : 정필도 목사 (수영로교회)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에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4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지난 20세기는 인류역사상 가장 풍파가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이후 공산주의가 전세계를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많은  나라들이 둘로 갈라지고 내전을 겪게 되었으며, 특별히 기독교에 대한 심한 핍박으로 교회들이 사라지기도 하고 문을 닫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20세기가 끝나갈 때에, 곧 세상의 끝이 오고 예수님이 재림하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말세가 되었다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이 2002년 12월 8일로 새 천년을 맞이 한지 벌써 2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인류역사의 연대를 기록할 때 BC와 AD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여기에서 BC는 주전이라는 Before Christ를 뜻하고, AD는 라틴어로 Anno Domini 즉 주후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오신 날을 중심으로 그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은 BC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예수님 탄생 이후에 일어난 사건들은 AD란 단어를 사용하여 연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은 AD 2002년 12월 8일이고, 16대 대통령선거일은 AD 2002년 12월 19일입니다.
어떻게 해서 인류역사의 연대를 BC와 AD로 표시하게 되었을까요? 이는 인류역사에 일어난 사건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사건보다 더 크고 중요한 사건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시고 구원의 사역을 하신 후 33세 때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구원의 문이 열렸고, 영생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결코 인류가 잊을 수 없는 가장 복된 사건이기 때문에 인류역사의 연대를 예수님의 탄생을 기준으로 BC와 AD로 표시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에녹은 365년을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그는 65세 때 므두셀라라는 아들을 낳고 그후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에녹이 65세에 큰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 아니라 65세가 될 때까지는 보통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고 나서 『이 아들이 죽는 날에 이 세상에 홍수심판이 있으리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그때부터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에녹의 아들 므두셀라는 969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살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던 대로 그가 죽던 해에 홍수심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이처럼 정확합니다.

인류역사가 예수님이 오신 그 이전과 그 이후가 확연히 달라진 것처럼 에녹은 65세를 분기점으로 이전과 다른 생을 살았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도 각자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날이 있습니다. 이 날은 일생 중 가장 귀한 날입니다. 언젠가 예수님을 영접한 그날은 성령으로 거듭나 새사람이 된 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날이며, 천국시민이 된 기쁜 날입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영접한 그날을 중심으로 해서 예수님을 믿기 이전과 이후로 그 일생이 구별되게 됩니다.
저의 경우는 창신초등학교 6학년 때였습니다. 친구의 전도를 받아 창신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그후 어느 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으며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정확히 구원받은 날이 몇월 며칠인지 알 수 없으나 그 이후로부터 나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날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날, 성령으로 거듭난 날, 구원받은 날,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날, 천국시민이 된 날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 중에 큰 환난을 통해 회개하게 되고 새로운 삶을 출발하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중병에 걸려서 생명의 위기를 겪었을 때 예수님을 붙잡고 그 주님을 믿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큰 사고를 통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에게 찾아오는 육체의 고난은 죄의 값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죄의 값을 청산하기 위해 받는 고난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대속함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죄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 성도들에게 육체의 고난이 있는 것은 더 이상 죄가운데 살지 말고 거룩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2-3절에서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태어나서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몇 년을 더 살게 될지 모르나 이미 끝은 정해져 있습니다. 다만 그 날이 언제인지 모를 뿐 우리의 마지막 날은 정해져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남은 때란 오늘부터 시작하여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바로 그날까지의 기간을 말합니다. 그 날이 오게 되면 누구나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아무도 그 날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자다가 가든지 병들어 가든지 어떤 사고를 당하여 가게 되든지 간에 하늘나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을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거룩하게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충성하는 사람은 칭찬을 듣고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으로 거룩하게 살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은 부끄러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행히 천국에 가기는 했으나 너무나 죄송해서 머리를 들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0 이하를 보면,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평생 신앙생활하는 것을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짓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집을 짓고 또 어떤 사람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세운다고 했습니다. 장차 각 사람의 공력을 시험하는 불시험이 올 때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은 집은 타지 않고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지은 사람은 다 타버리고 남은  것이 없어 하나님 앞에 내놓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사람은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겨우 건짐을 받은 아주 부끄러운 구원을 얻은 사람입니다. 다행히 살아 생전에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에 지옥불을 겨우 면한 사람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분들 중에는 이런 분들이 한 분도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얻지만 상급은 행한 대로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육체의 고난이 있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날이 가까이 왔다는 하나님의 싸인입니다. 육체의 남은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싸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몰랐을 때에 범한 죄로 충분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처럼 정욕을 좇아 죄 가운데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둥바둥 내 재산 지키려고 애를 쓰고 살아도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가시는 그날이 오면 내 것이 다 없어지게 됩니다. 내 집도 내 땅도 더 이상 내 것이 아닙니다. 내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것이 됩니다. 
요한 웨슬레 목사님은 설교하실 때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하실 것이다. 첫째, 나는 너에게 몇 년이라고 하는 시간을 주었는데 그 시간을 어떻게 쓰다가 왔느냐? 둘째, 나는 너에게 동산 부동산을 주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다가 왔느냐?고 물으신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음성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얼마나 오래 살았고, 얼마나 많은 재산을 모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다왔는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 교회 어떤 성도님은 재산이 몇백 억이 됩니다. 하루는 저에게 찾아와, 하나님이 많은 재산을 주셨지만 그동안 주님을 위해 한 일이 너무 없어서 지금 주님 앞에 가면 책망받을까봐 두렵다고 하시면서 어떻게 하면 좋은지 저에게 지도를 부탁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노벨상을 제정한 노벨에 대해 많이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는 1833년 스웨덴에서 태어났습니다. 화학자로 발명가로 두각을 나타내며, 33세의 젊은 나이에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여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그는 남부럽지 않은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후 3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노벨은 조간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프랑스 일간지의 한 기자가 동명이인 임을 잘못 알고 “노벨 사망하다”라는 특종기사를 신문에 실었습니다. 버젓이 살아있는 사람을 죽었다고 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다이너마이트의 왕 죽다. 죽음의 사업가, 파괴의 발명가 죽다.” 라는 기사내용이었습니다. 사실 다이너마이트는 건설공사에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했지만 불행하게도 살인무기의 재료가 되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는지 모릅니다.

노벨은 그 기사를 보는 순간 ‘지금은 내가 살아있기에 망정이지 정말 죽었다면 이 기사가 사실이 되지 않겠는가, 오늘이라도 내가 죽으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생각만 해도 아찔했습니다.
노벨은 마음속으로 크게 깨닫고,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으로 모은 전 재산을 몽땅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기로 작정했습니다. 기꺼이 자기의 전 재산을 다 내어놓고 인류평화와 번영을 위해 공헌한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주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도가 바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노벨상제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말할까요? 인색하기 그지없는 고약한 사람. 말썽만 부렸던 한심한 사람으로 평가한다면 얼마나 부끄럽고 비참하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이 일생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미래로 가는 분기점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부터 육체의 남은 때를  과거와 다르게 살아서 장차 우리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움 없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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