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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 / 엡 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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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피영민 담임목사
*본 문: 엡 6장 10-20절
*제 목: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


(서론)

오늘은 에베소서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의 본질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그동안 여러 번 말씀을 드렸다시피, 우리 성도의 신앙생활의 본질은 한마디로 영적인 전쟁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인 전쟁을 도저히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바로 그 순간부터 치열한 영적전쟁에 들어간 영적인 군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의 본질이 영적인 전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본문 12절의 말씀을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하고 싸워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옆에 있는 우리의 이웃과 다투고 싸우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혈과 육이 우리의 원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지금 부부가 다툼으로 인하여서 별거 중에 계신 가정이 있다면 화해하시고 다시금 합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부모님과도 불화하고 친구들과도 싸우고 계신 분이 있다면 더 이상 싸우지 마시기 바랍니다. 인간과 다투고 싸우는 일은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요, 그것은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우리의 싸움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원수를 잘못 정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1. 그리스도인의 삶의 본질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이 영적인 전쟁에 임하는 군인들을 향해서 영적인 교관이 되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6장 10절에서,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을 강건하여지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군인들이 된 우리 믿음의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강해지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처럼 여러분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강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가 이 영적인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강한 용사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늘로부터 분출되는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강해진다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조금 전에 읽었던 10절 말씀은 ‘종말로’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앞 절까지 참으로 많은 내용들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 가정을 다스리는 남편의 의무도 있고, 남편과 협력하여 가정을 돌보는 아내의 의무도 있고, 부모의 의무도 있고, 자녀의 의무도 있고, 종의 의무도 있고, 상전의 의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새로운 사람이 된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생활의 원리들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원리들을 잘 지키고 행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종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그 좋고 편하고 안락한 교수직을 포기하고 왜 이곳의 담임 목회자로 오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우리 교회에 하늘로부터 임하는 초자연적인 폭발적인 에너지가 강하게 역사하는 부흥을 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교수 생활을 오래 하더라도 그러한 성령의 역사를 볼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뜨거운 강남중앙침례교회에서 사도행전 2장과 6장에 나타난 성령의 놀라운 폭발적인 부흥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서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에 나타난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오늘날 우리 교회에도 틀림없이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그런 능력 없이는 치열한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시고, 그 역사를 위해서 날마다 교회에 모여 뜨겁게 부르짖는 우리 모든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날 어떠한 교회는 성도가 2만명, 3만명이 모이는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 교회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 교회에 성령의 강한 역사가 없으면 그 숫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군중속의 고독이라고 더 심한 무력감과 허탈감을 그들은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강하게 분출되는 교회의 성도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큰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는 이 일에 하나가 되기를 원합니다.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는 거룩한 사역에 하나가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질 줄로 믿습니다. 바로 이 일에 우리 모두가 한 마음이 되기를 원합니다.

앞으로 남은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세상의 근심과 슬픔으로 인하여서 영적인 나태자요 실패자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언제까지나 비실비실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하루하루를 아무런 생각도 없이 되는대로 사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시간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는 인생의 시점의 어는 한 기점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교회의 역사가 시작된 2,000년 동안 이러한 성령의 에너지가 폭발적으로 분출된 것은 몇 번밖에 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21세기의 벽두에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가 이런 성령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분출되는 역사를 꼭 보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내년도 교회의 표어를 “은혜와 진리가 만나는 교회”라고 결정하였습니다. 이 표어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폭발전인 은혜가 함께 만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역사를 꼭 경험하는 은혜와 진리가 만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2. 우리에게는 강건해져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왜 강건해져야만 할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4가지 이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의 원수인 사단의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단의 세력은 고도의 조직적인 세력을 자랑합니다. 이 세력은 조직적인 폭력 집단입니다. 한 마디로 영적인 조폭입니다. 그리고 사단의 밑에는 졸개들이 있습니다. 본문 12절을 보면,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명칭은 사단의 밑에 있는 귀신들의 계급을 의미합니다. 이 고도의 계급을 가진 것이 바로 사단의 세력입니다. 사단의 세력은 참으로 강한 존재입니다. 때로는 우는 사자 같기도 하고, 때로는 옛 뱀이라고도 했고, 또 때로는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요 매우 강한 자라고 성경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자는 배가 고플 때에 크게 웁니다. 그때에 사자는 입을 크게 벌리고 아무것이라도 먹겠다고 무섭게 덤비게 됩니다. 그 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지금도 우는 사자와도 같은 마귀의 무서운 세력이 삼킬 자를 찾으려고 두루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단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우리 믿음의 성도가 비실비실 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사단의 세력은 대단히 교활합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을 보면, “마귀는 살인한 자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하였으며, 고린도후서 11장 14절에서는 사단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1절을 보더라도 마귀는 궤계를 사용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마귀란 존재는 참으로 교활하고 간사합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는 마귀의 직업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이라”고 증거합니다. 마귀가 지금 공중의 권세를 잡고, 우는 사자와도 같이 돌아다니는 것은 바로 우리의 영혼을 죽이기 위해서라는 무서운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마귀는 우리를 망하게 하고 죽이는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이 세상에서 살기를 더 좋아하고, 이 세상의 것들 속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맛보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계속해서 이 세상에서 즐기십시요. 그러나 그러한 삶을 계속해서 살다가는 틀림없이 우는 사자와도 같은 잔인한 마귀의 밥이 되는 날이 오고야 맙니다. 언젠가는 크게 후회하는 날이 온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우리는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세력에 맞서 싸우는 우리의 존재는 어떠합니까? 대단히 연약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사람이 체력이 강해도 나이가 들면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무하마드 알리를 보십시요. 한때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라고 큰 소리를 치면서 세계 혜비급계를 평정한 전설적인 복서입니다. 전성기에는 그 누구도 이 사람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이 선수가 주먹을 잽싸게 날리면서 멋지고 강한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몸 하나도 주체하지 못하는 실로 나약하고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그 쉬운 성냥불 하나라도 제대로 켜지 못하는 매우 연약한 존재가 되고 말았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나이 들고 늙으면 반드시 약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있는 역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이 아무리 세상의 지식을 많이 쌓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박사 학위를 10개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나이 들고 늙어서 치매가 걸리면 그 많은 지식은 없어지게 됩니다.
어떠한 사람이 택시를 타고 가다가 목적지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지금 자신이 종로를 가는지, 동대문을 가는지 그 방향을 완전히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택시를 몰고 가는 기사에게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저, 기사 아저씨, 지금 제가 어디를 가고 있습니까?”. 그러자 이 택시 기사가 깜짝 놀라면서, “아니! 손님, 언제 이 택시를 타셨습니까?”라고 반문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마 이와 비슷한 경험을 여러분도 많이 하셨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도 나이 들면 기억이 희미해지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하늘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꼭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힘의 능력이 반드시 필요한 줄로 믿습니다.

셋째는, 앞으로 악한 날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차츰차츰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언제인지는 저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초대교회 때보다는 2,000년이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초대교회 때에도 매우 가까이 왔다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2,000년이 지난 지금은 그만큼 훨씬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지면 사단이 일시적으로 놓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단이 놓이면 전 세계적으로 대 배교의 현상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고 교회를 떠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심히 핍박할 것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에 환란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마귀의 발악이 크게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이르기를 ‘그 악한 날이 이를 것이다’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악한 날에 우리가 능력이 없으면 넘어가고 맙니다.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도 마귀와 대적해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의 에너지를 받아야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져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넷째는, 전신 갑주를 입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무장을 단단히 해야만 합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우리가 취해야 하는 전신갑주는 무엇입니까? 여기에 대해서 14-17절은,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전신을 무장한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쟁에 나가는 용사가 온 몸을 무장하기 위해서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들고 투구를 쓰고서 무거운 칼과 창을 든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사실 저도 군 생활을 하면서 훈련 때마다 이러한 무장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매우 시간도 많이 걸리고, 아무리 힘이 센 장정이라도 무거운 군장을 등에 매고 군화를 신고서 몇 시간 행군을 하면 곧 파김치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머리에 쓰는 투구도 처음에는 가벼워 보이지만 나중에는 그 무게가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참들은 조금이라도 가벼운 투구를 쓰기 위해서 여러 개의 투구들 중에서 고르고 또 고르는 일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을 무릅쓰고서라도 우리는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전신을 무장하고 담대히 일어서야만 합니다. 전신갑주의 무게에 눌려서 마음껏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입으나마나 입니다. 우리는 방패를 가지고 나가더라도 가급적 큰 방패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마귀의 불화살을 능히 막을 수가 있습니다. 칼을 가지고 나가더라도 우리는 가급적 큰 칼을 차고 나가야만 합니다. 칼이 무겁다고 해서 연필을 깎는 칼을 가지고 간다면 그 사람은 결코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그냥 집에서 파리나 잡는 것이 훨씬 더 신상에 좋습니다.

이처럼 군인이 무거운 방패와 칼과 갑주를 입기 위해서는 강한 힘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영적인 강한 용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늘의 영적인 에너지를 꼭 받아야만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의 속사람이 영적인 능력이 있어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람에게 지식이 있는 것도 멋진 일이요, 체력이 있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가장 매력적이고 좋고 유익한 것은 영권이 있는 사람인줄로 믿습니다. 특별히 오늘 저녁에 있을 마지막 집회 시간에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여 부르짖어 뜨겁게 기도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충만히 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우리 능력의 원천은 오직 기도입니다.

그럼, 우리들이 강건하여서 하나님의 능력을 얻기 위한 방편은 무엇일까요?
그 방법은 오직 성도의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을 보면,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지식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능력과 재주를 지닌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만인이 우러러보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하늘의 에너지가 없는 사람은 이 능력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의 에너지를 얻는 비결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제가 지금 이시간 성도 여러분께 한 가지 질문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평소에 기도를 얼마나 하고 계십니까? 혹시 여러분 중에서 기도의 줄이 끊어진지가 오래 되신 분은 안 계십니까? 지금 이 상태로 우리가 살아서는 안 될 줄로 믿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의 일이 바쁘다고 해서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시간을 등한시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는 성도의 영적인 호흡입니다. 우리의 삶 중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대화하는 기도임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니까, 첫째로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종류가 여러 가지입니다. 형태가 여러 가지입니다. 예를 들자면, 찬양기도, 고백기도, 감사기도, 간구기도, 중보기도, 방어 기도 등 참으로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를 다 할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기도는 무시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항상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루 24기간 동안 기도의 줄을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어느 한 순간 하나님께 대한 인식이 끊긴다면 그것이 바로 기도의 줄이 끊어졌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기도에 전념해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운전을 할 때에도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해야만 합니다. 운전을 하면서 불필요한 세상의 노래를 듣는 다면 그것은 기도에 큰 장애물이 됩니다. 우리는 길을 걸어가다가도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옆에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한다거나, 가게에 걸려 있는 멋진 옷에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사단은 그 순간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날마다 그리고 매 순간마다 우리는 무시로 깨어 기도하라는 성경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셋째로, 성령안에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은 우리 모두의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령안에서 기도할 때에 성령의 인도하심과 임재하심을 느끼게 됩니다. 만약에 어떠한 사람이 기도를 할 때에, 마음이 뜨겁지도 않고, 자꾸만 중언부언하고, 기도에 대한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지금 성령안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하는 사람이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할지라도 하늘의 보좌를 움직일 수 있는 기도의 능력자가 되기 위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절히 사모해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기도를 할 때에 그 사람은 성령의 은사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신령한 음성도 듣게 되고, 간구한 마음의 소원들이 응답되는 놀라운 기적들을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기도를 하실 때마다 성령안에서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안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놀라운 기도의 능력과 은혜를 항상 체험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넷째로, 우리는 깨어서 기도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은 깨어서 기도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면서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졸면서 기도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졸거나 자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시대는 영적인 전쟁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전쟁에 임하는 군인이 졸고 있거나, 잠을 자고 있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그 군인은 결코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영적인 전쟁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육적인 전쟁에 임하는 군인이 졸아서는 승리할 수 없는 것처럼, 하물며 영적인 전쟁에 임하는 군인이 졸아서는 더더욱 그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가복음 14장 3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향해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기도하지 않는 자에게는 반드시 시험이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를 향해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의 영혼이 깨어나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나처럼 점잖은 사람이 어떻게 큰 소리로 기도한단 말인가?” 라고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점잖으신 예수님께서도 통성으로 기도를 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땀방울이 핏 방울이 되기까지 열심히 기도하셨다고 명백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겟세마네의 기도라고 합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 온전히 복종하시는 참으로 신실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기도를 오늘날의 우리가 반드시 본 받아야만 하겠습니다.
다섯째, 기도에 항상 힘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계속해서 기도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기도를 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의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말고 다하라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일도 우리의 수고와 노력과 땀이 동반되지 않고서는 어떠한 결실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가을날 풍성한 추수의 기쁨을 누리는 농부에게는 먼저 지난 수개월의 시간 동안 힘쓰는 인내의 과정이 필연적으로 있었습니다. 그러한 농부의 힘쓰는 시간이 있었기에 때가 되면 풍성한 수확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실망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낙심하지 아니하고 힘을 다하여 기도하는 자에게, 기도에 항상 힘쓰는 자에게 하늘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반드시 임할 줄로 믿습니다.
여섯째, 여러 성도를 위해서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기도의 용사가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만을 위하여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옆에 있는 이웃을 위해서, 성도를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문제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특별히 기도할 때에, 우리 교회에 성령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임하여서 오순절의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고, 사마리아 성의 회개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뜨겁게 뜨겁게 기도해야만 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더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이 말씀은 아버지께로 가면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너희에게 줄 것인데, 이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내가 한 일보다 더 큰 일도 너희가 하리라는 의미입니다.

(결론)
오늘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매너리즘에 빠져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예배도 매너리즘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매너리즘은 우리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일에 커다란 장애물이 될 뿐입니다. 더 이상 편안하게 안주하는 상태에 우리가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매너리즘에 빠지면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게 되고, 하늘로부터 임하는 기도의 능력이 없이는 무섭게 다가오는 사단의 세력에 맞서 싸워 승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약한 성도라고 할지라도 무릎을 딱 꿇으면 마귀가 겁을 내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는 기도를 방해하는 신앙의 매너리즘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하나님께 나아와 겸손히 무릎을 꿇어야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결단을 내린 기도의 용사들을 향해서 우리 하나님께서 로마서 8장 37절의 약속의 말씀을 꼭 이루어 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넉넉히 이기는 승리자임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사단이 입을 크게 벌리고 우는 사자와도 같이 달려올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의 시험과 환란과 핍박이 아무리 클지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항상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여 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위기의 순간에서조차도 하나님을 향한 기도의 줄을 결코 놓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는 최후의 순간까지 오늘의 말씀을 늘 기억하시는 가운데에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분의 능력으로 늘 강건하여서 하늘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한없이 받아 누리시는 복된 믿음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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