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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화과 나뭇잎과 가죽옷 / 창 3:1-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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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무화과 나뭇잎과 가죽옷
성경>창3:1-10, 21
찬송>188, 189
설교>이정우 목사 (장산교회)


●사람은 종교적인 존재

세상 대부분의 나라와 민족은 그들 나름의 종교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종교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를 기본법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종교를 가지기를 원하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 많은 종교 중에 왜 기독교라는 종교는 가지게 되었습니까? 체질에 맞아서? 절보다 가까이에 있으니까? 다른 종교보다 조금 더 고상한 것 같아서? 부모님이 이 종교를 택하고 믿어서?

우리는 오늘 우리가 왜 기독교인이어야 하는지, 이 시간에 우리가 왜 다른 곳에 있지 않고 이 곳에서 예배를 드려야만 하는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는 많은 종교들 중의 하나입니까? 아니면 유일한 종교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종교가 다 같다고 말합니다. 무엇을 믿든지 궁극적인 목적은 모두 다 똑 같다고 말합니다. ‘사람 선하게 살다가 자기 수양 잘하고 죽어서는 좋은 세상에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기독교가 많은 종교들 중의 하나라면 저는 기독교를 믿지 않겠습니다. 우리나라의 토속적인 종교도 많은데 왜 서양에서 들어온 외래종교를 믿겠습니까? 종교가 다 같은 것을 추구하고 그 목적이 다 같다면 우리의 문화와 정서에 이미 익숙한 민족적인 종교들도 많이 있는데 왜 외국 종교를 믿겠습니까? 요사이 ‘신토불이’ 외치는데 종교도 우리의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기독교가 우리 문화와 달라 얼마나 많은 갈등을 일으켰습니까? 대표적인 것이 ‘제사문제’ 아닙니까? 아직도 이 제사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기독 신앙을 가지는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부모들이 예수 믿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 중에 이 제사 문제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기독교이어야만 합니까?


1. 인생의 근본 문제를 정확하게 말해주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알아야 해답도 얻을 수 있습니다.

주중에 우리교회 강도사님 한 분이 더 필요해서 이력서를 받아보고 접견을 했습니다. 이 강도사님이 치아를 교정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가, 그리고 다 커서 초등학생 아이가 있다고 하더니 이제 와서 웬 치아를 교정한다고 하는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사정을 알고 보니 치아 때문이 아니라 두통 때문이었습니다. 편두통이 있는데 신경과, 내과, 외과를 찾아가도 엉뚱한 이야기만 하고 근본 원인을 알지 못하더랍니다. 그런데 우연히 이(齒) 치료할 일이 있어 치과를 찾았더니 치과의사가 하는 말이 “머리 아프지 않으십니까?”하고 묻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프다고 했더니 이를 교정하지 않으면 계속 두통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이를 교정했더니 이제는 그 두통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가지고 있는 근본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답을 하는 종교는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그 해답도 정확하게 제시하는 종교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은 본래 행복하게 창조되었습니다. 최초의 사람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에덴동산에는 보기에도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었고, 또 먹기에도 부족함 없이 맛있는 과실나무가 많았습니다.(2:9)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행복은 그런 것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진정한 행복은 그 에덴동산에 하나님이 계신 것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바로 알았고 경배하고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은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다 먹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에 대해서는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를 보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저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고 하셨지. 저 실과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금하신 유일한 것이야. 우리 이 실과를 안 먹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자”

그런데 사단이 하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묻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동산의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셨냐?”
하와가 대답합니다. “아니야, 하나님이 모든 실과를 다 먹으라고 말씀하셨지. 그러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는 먹지 말라고 하셨어. 그것을 먹으면 죽는데”
사단이 말합니다. “결코 죽지 않아. 하나님이 너희에게 그것을 먹지 말라고 한 이유는 그것을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되기 때문이지”

하와는 결국 그 나무의 열매를 먹었고 그 열매를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했습니다. 그 결과 사단의 말대로 눈이 밝아지기는 밝아졌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눈이 밝아 하나님처럼 된 것이 아니라, 볼 필요가 없는 것에 눈이 밝아졌습니다. 7절 말씀에 그들은 눈이 밝아져 자기 몸이 벗은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때부터 아담과 하와는 불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불행해져버린 아담과 하와의 모습을 보십시오. 8절에 하나님을 피합니다. 10절에 그들은 수치감과 두려움에 싸입니다. 17절에 아담은 수고의 땀을 흘려야 겨우 먹고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16절에 하와는 잉태의 고통을 받게 되었고 남자 때문에 고통 받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제 이 아담과 하와의 불행은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고전15:22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었다’고 말씀합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인간들은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모든 죄의 열매와 이제 그 죄의 열매가 떨어져 싹이 나고 가지가 자라 열매 맺은 모든 것들까지 다 겪으며 고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간의 불행이 어디에서 시작되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죄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망이 우리 위에 와 있습니다. 여러분, 이 사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망이 그에게서 왕 노릇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항상 사망이 그를 따라 다니기 때문입니다.
죽을 것이 정해진 사람은 어디를 가든 행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바로 인생의 불행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바로 가르쳐 주는 종교입니다.

2. 기독교는 죄가 가져다 준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앞에서 인생의 문제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진단하였습니다. 그 진단에 따른 처방 또한 기독교는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원인은 몰라도 결과는 다 알고 있습니다. 불행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는 몰라도 불행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이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보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1)종교적인 노력-신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간의 노력은 사단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높습니다.

2)철학적인 노력 - 인생이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그러나 결국 철학의 마지막 결론은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 더 헛갈리게만 만든 것입니다.

3)이념, 주의 - 정치 이념 등. 그러나 우리는 이미 많은 실망을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사회제도에 정치제도에 소망을 거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4)선행-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는 사람은 막연하게 ‘선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낙심하게 됩니까? 어떤 사람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고 더욱 악해지기로 작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5)과학-사람의 머리를 발전시켜 더욱 좋은 세상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50년 전, 100년 전보다 우리는 훨씬 더 과학적인 세상에 살고 있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근본이 변하지 않은 가운데 행하는 모든 것들은 다 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이 모든 노력은 한 마디로 헛됩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도 범죄한 인생의 고통을 해결해 보려는 아담과 하와의 노력이 보이지 않습니까? 이들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래서 가렸습니까?
여러분이 아담과 하와라고 생각하고 이 상황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조심스러워 어찌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적어도 하루에 서너 벌 이상 치마를 만들어야 했을 것입니다. 바쁘게 뛰어 다녀야하는 날이면 10벌도 모자랐을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자기 나름대로는 도를 닦고 수련을 한 사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만들어 낸 그 많은 이론과 종교와 노력들이 고작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만드는 것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것은 돌아서 버리면 다시 수치와 죄로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이 헛된 수고와 이 헛된 수고의 미혹에서 여러분이 모두 다 빠져 나오시기 바랍니다.


3. 기독교는 사람의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교를 가질 때 구원받기 위해 종교를 가집니다. 구원이란 인간에게 찾아온 죄의 결과인 이 사망의 저주 아래서 건짐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건짐을 받기위해서는 인간보다 능력이 많은 존재의 힘이 꼭 필요합니다.
본래 구원이란 말이 건진다는 뜻입니다. 물속에 허우적거리면서 빠져가는 사람을 누가 건질 수 있습니까? 아무나 들어갔다가는 함께 죽게 됩니다.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사람의 도움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당한 사망의 저주에서 누가 건질 수 있겠습니까? 인간들은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공부를 하고 수련을 해도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역시 허우적거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롬3: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같은 동일한 죄인이면서 인생을 건져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사람으로서 각 종교의 교주의 역할을 하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이들이 하는 역할을 한 마디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15:14)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하면 인생의 불행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의 답을 오늘 성경 말씀이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21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누가요? 하나님이. 그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여호와’

이것이 바로 기독교입니다. 기독교가 다른 많은 종교와 구별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유일한 종교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인간이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이 다 할 수 있으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맡겨두셨을 것입니다.
인간은 노력하면, 수양을 하면 혹 지금보다는 조금 더 선하게 살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인생을 근본적으로 불행하게 만들어 놓은 이 죄 문제를 조금도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무능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예)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깊은 구덩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구덩이는 깊고 그 어떤 도구도 없어 살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외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그 길을 지나다가 이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덩이에 와서 아래를 쳐다 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길을 똑바로 보고 다녀냐지 이렇게 주의력이 부족해서 어떻게 하겠소 앞으로는 좀더 조심해요!”하면서 일장 훈계를 하고는 그냥 가 버립니다.
또 죽을 힘을 다해 외쳤습니다. “살려주세요” 이 소리를 듣고 또 어떤 사람이 다가 왔습니다. 이 사람은 안됐다는 듯이 동정어린 눈길로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합니다.
“잘 궁리를 하다보면 혼자 힘으로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혼자 힘으로 나와 보도록 하세요.” 그리고는 가버립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소리를 듣더니 달려와 보고는 측은히 여겨 금새 밧줄을 내려 자신이 직접 내려와서 그를 건져주는 것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공자입니다. 둘째 사람은 석가모니입니다. 셋째 사람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죄의 수렁에서 직접 찾아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기독교는 할 수 없는 인간이 만든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찾아오신 종교입니다.


4. 가죽옷의 비밀

오늘 성경에서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무화과 나뭇잎 치마를 대신해서 주신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가죽옷이었습니다.
이 가죽옷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기 위해서 어떻게 했겠습니까? 가죽옷이 생기려면 짐승이 죽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짐승이 죽지 않고는 가죽옷은 없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한 가지 원리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어떤 한 생명이 나를 위해 희생되어야 내가 살 수 있다는 법칙입니다.
구약 성경은 바로 이 법칙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에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의 죄를 속하는 제사를 드릴 때 그들은 꼭 짐승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짐승은 아무것이나 되는 것이 아니라 정결한, 흠없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사람으로서 정결한, 그리고 흠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미 말씀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나님은 이 ‘정결한 짐승’으로 자신의 아들 예수를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를 희생하여 인간의 죄를 영원히 덮을 수 있는 가죽옷을 만들 작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어린 양 짐승으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세례요한 이라는 사람은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맺으며 - 무화가 나뭇잎으로 계속 치마를 만들겠는가 아니면 가죽옷을 입겠는가?

(롬 8:3)에『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공자나 석가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근본 문제를 말하는데 있어서는 이들보다 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세상의 헛된 종교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더 이상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을 덮을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이제 믿음으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만드신 가죽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주님으로 인하여 변하고 우리의 죄악의 수치과 두려움이 영원히 가리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 속에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 아 멘 -(주후 2002.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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