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바로 그 분이시라 / 행 13:23-41

  • 잡초 잡초
  • 369
  • 0

첨부 1


제 목 : 바로 그 분이시라
본 문 : 행 13:23-41


오늘 본문 말씀은 선교여행을 출발한 사도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어느  안식일에 유대인의 회당에서 최초로 하신 설교이며,주제는 바로 그 분이 바로 메시야이시라는 것입니다.

사실 신구약 66권의 주제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교회의 머리도 예수 그리스도시요,가정의 주인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역사의 주인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 이 새대는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삽니다. 아니 자신이 모든 것이 주인인 것 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만사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주인을 잃고나니 만사가 또한 제멋대로 입니다. 뿐만아니라 목자잃은 양과 같이 갈바를 알지못하고 헤매이고 있는 가련한 인생들이 되고 만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백성들을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목자없는 양과 같다'고 하시면서 측은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복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하는 모든 일은 헛될뿐이요,부질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먼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하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알지못하고,예수님과 가장 까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먼 생활을 하였습니다.

(예).옛날 맹사성이라는 분은 세종때 우의정,죄의정을 지낸 정승인데 청념결백하기로 유멍한 분이었습니다. 그가 잠간 고향인 온양에 다녀온다는 소문을 듣자 그가 통과할 길가에 사는 주민들은 그를 위해 길을 보수해 놓고 예정된 날 그를 환영하려고 모여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는 맹정승은 나타나지 않고 한 촌로가 소를 타고 태연스럽게 그들 앞을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화가난 군중들이 촌로의 무례함과 당돌함을 책망하면서 통행을 못하도록 제지하였습니다. 그들도 그럴만 합니다. 사또 지나가라고 닥아논 길에 거지가 먼저 지나가는 꼴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때 촌로를 수행하던 하인 한 사람이 앞에 나타나 흥분한 군중들에게 하는 말이 '당신들이 기다리는 맹정승이 바로 이 분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초라한 촌로가 바로 그 유명한 맹정승인줄을 몰랏던 것입니다.

만왕의 왕되시는 우리 예수님께서 초라한 모습으로 마구깐에 오시고,초라한 목수로 삼십년 동안을 유대사람들 가운데 계셨지만,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 이심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알지 못할 뿐만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조롱하고,멸시하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무지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도 예수님을 핍박한 자로써 그들의 입장을 측은히 여기며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당신들이 기다리는 메시야 이심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다윗에게 약속하신 아들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23절에 보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제2대 왕으로 하나님의 총애를 받은 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일찌기 다윗에게 '네 자손이 영원히 네 위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선지자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태어나 다윗의 위에 앉아서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사9:7절에 보면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사야 이후 700년을 내려오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시고,이사야 선지자로 하여금 예언케하신 메시야의 강림을 간절히 기다려 왔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에 있는 유대인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선지자의 예언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였고,오늘 사도 바울이 체험한 메시야가 바로 그 부분이시라고 전하여도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무지와 교만과 가장 어니석고 불행한 일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과 같이 주님을 옆에 모시고도 모르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않될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알고,섬기고 있다면 주님의 원하시는 일에 이렇게 게으르고 나태할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반성하며 성탄을 마지해야 할 것입니다.
정말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동방 박사들과 같이 주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2.세례 요한이 증거한 그 분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본문 25절에 보면 "요한이 그 달려 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으니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 하였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세례 요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증거하였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는 말라기 선지자 입니다. 이후 약 400년동안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암흑기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단절된 캄캄한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칭찬이든 책망이든 말씀을 자주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선지자도 끊어지고,말씀도 단절된채 장장 400년을 내려온 것입니다. 그러니 저들의 심령이 얼마나 컬컬해 있고,얼마나 기다렸을까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반면에 그들의 심령이 얼마나 무디었고 병들어 있었던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 혜성 처럼 나타는 분이 바로 세례요한 입니다. 얼마나 반가왔던지 사람들이 사방으로 부터 구름떼 처럼 모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혹시 메시야가 아닌가 하고 마음 속으로 은근히 기대를 걸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나는 메시야가 아니라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러 온 선발대요,메시야는 내 뒤에 오실터인데 나는 그의 신들기도 감당치 못할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역사상 탁월한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내가 찾는 분이 이 분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걸어 보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제아무리 훌륭한 분이라고 할찌라도 완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직 참 하나님이시요,참 사람이신 분으로써 하나님과 우리 사에에 중보자가 되시며,하나님이 보내신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세례 요한은 말하기를 요3:30절에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세례 요한과 같이 나는 항상 죽어지고 주님만을 나타내며,주니만을 높이고 자랑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이러한 자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강으로 함께해 주시는 것입니다.

3.그들이 죽인 예수가 바로 메시야 이십니다.
  27-28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 죽일 죄를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나 빌라도에게 죽여 달라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시골 출신인 한 목수 청년이 가끔 예루살렘에 나타나서는 폭탄적인 선언도 하고,기적도 행하여 많은 추종자들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유대 관원들이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단치 않은 인물로 치부해 버렸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것이 나겠느냐'하는 것이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통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태생인 예수님까지 무시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나,선지자나,바리새인의 문중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무명의 목수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다가 예루살렘의 상류층과는 전혀 교분이 없고,겨우 가난한 자와 병든자들과 부녀들과 아이들과만 어울리는 무명인사였으며,그의 행동 반경도 주로 비정치적인 범위안에 국한 되어 있어서 크게 기대할 바가 못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인기도가 놀라웁게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다소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들을 음흉한 계략을 세워 각본대로 무명의 청년을 간단히 제거하는 일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아주 충격적인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관원들이 십자가에 달아죽인 그 청년이 밥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시고 이사야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언하신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메시야를 그토록 기다리던 사람들이 막상 메시야가 나타났을 때 그를 몰라보고 십자가에 달아 죽였으니 말입니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비극인가.....
이유는 간단합니다. 저들이 메시야를 기다린 것은 사실이지만,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시해주신 메시야가 아니라,저들 나름대로 생각한 것은 정치적인 메시야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그저 병이나 고쳐주시고,이 세상에서 남 부럽지 않게 복이나 주시는 분,그리고 내가 기도할 때 마다 내 필요나 채워주시는 심부름꾼으로 생각하고 있지나 않은지 말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도 유대 관원들과 같이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모시고 있으면서도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고,오히려 예수님을 욕되게 하며,그를 십자가에 못박는 무서운 죄를 저지르고 있을 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어야 할 것입니다.

4.죄를 사하시고 의롭다 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38-39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그 어떤 노력과 공적으로도 자신의 죄를 씻지 못하는 것입니다.
욥9:30-31절에 보면 "내가 눈녹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이 할지라도 주께서 나를 개천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이라도 나를 싫어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만이 깨끗게 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얼마전에 떠들석했던 중 성철의 죽음을 보았습니다. 그는 한 평생을 수도사로써 많은 고행을 하였습니다. 수도복이 누더기가 되도록 10년간이나 갈아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뿐만아니라 20년 동안이나 누어자본적이 없으며,속세에 내려온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행과 수도로 한 평생을 마쳤습니다.

그 결론이 무엇입니까? '산은 산이요,물은 물이라'고 하였고,'사탄이 바로 부처라'고 하였고 '나는 지옥에 떨어지나 속지마시오'라고는 불교계에 충격을 던져주고 제 갈길로 가고 만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자신의 죄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천하인간의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히9:22절에 보면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분명히 밝혀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피는 죄없는 피를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죄없는 피란 하나도 없습니다.
롬3: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수도를 해도 죄인은 죄인입니다. 물은 물입니다. 산은 산입니다. 사람은 사람입니다.

여기서 대속이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께서 죄없는 피를 등장시켜 율법이나 다른 종교의 힘으로는 속할 수 없는 죄를 다 씻어주신 것입니다. 그 피의 주인공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바울은 여기서 힘주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39절에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예수를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메시야의 대망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내 문제를 다 맡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요,죄의 고민과 죄의 멸망에서 거저주실 구세주이시요,그리고 나의 인생 전체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 세 가지를 유의해야 합니다.
첫째는 종교적인 방황을 하지말것. 돈을 의지하거나 자신을 의지하거나 사람을 의지하거나 기웃거리며 돌아다니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를 온전히 나의 구주로 받아들일 것. 다시말하면 전 인격적으로 내 중심에 주님을 온전히 모시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세째는 이 비밀을 힘써 증거할 것.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이 힘써 예수님을 전하고 가르치고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우리의 가정에 그리고 우리의 교회에 오직 예수님만을 모시고,그를 즐거움으로 섬기며,그를 자랑하며,예수님만을 높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과 함께하신 주님께서 여러분들과 항상 은혜와 평강으로 항상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일름으로 축원합니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