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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한가지를 기억하라 / 벧후 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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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한가지를 기억하라 (2001년 12월 30일) 
본 문 : 베드로후서 3:8-13
설 교 : 임대식 목사 (평화교회)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좋은 일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그것이 계속되지 않을 뿐이다. 어제 맨 끈은 내일 허술해지기 쉽고 그냥 두면 풀어지고 만다. 나날이 끈을 여미어야 하듯이 사람도 결심한 일을 나날이 거듭 여미어야 변치 않는다.”

우리 동양의 고전인 채근담에 나오는 말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서 있으니, 생활을 반성하며 살라는 이러한 말이 더 실감이 납니다. 사실 반성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동물 세계에는 없습니다.

더욱이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에 실수할 수 있으며 그러기에 반성이 꼭 필요합니다. 후회와 반성은 다릅니다. 후회는 과거 지향적이고 반성은 미래와 연결됩니다. 우리는 후회가 아니라 반성을 통해 내일을 열어 나가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얼마나 잘못하고 실수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반성하고 뉘우치고 새 길을 걸어 가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성탄절에 배포한 2002년도  새 달력으로 묵은 달력을 바꾸어 달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2001년도 달력아, 너는 정직하게 살면서, 네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고, 갈 때면 깨끗이 떠나는데, 과연 나는 어떻게 한 해를 살았는지, 네게 부끄럽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후회가 아니라 반성의 계기로 삼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루의 일은 그날 저녁 눕기 전에 생각해 보고, 한 달의 일은 그달 마지막 달에 가서 결산하고, 한 해의 일은 마지막 달에 정리하며, 일생은 하나님 앞에서 총 결산하게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님들, 이 한해를 돌이켜 보고 결산하면서, 나는 육신의 일을 잘 했는데, 신앙의 생활은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내 자신과 가족은 기쁘게 잘 살아왔는데, 진정 하나님은 얼마나 기쁘시게 해 드렸는지요. 나를 위해서는 충성했는데, 하나님의 일에는 과연 얼마나 충성했는지 반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일의 우선 순위를 다시금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나의 삶과 나의 의를 구하는 한 해는 아니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때, 이 모든 것을 더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는 얼마나 믿고 확신하며 살았는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이렇게 연말에는 우리 삶을 반성하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동시에 벗어버려야 할 것, 털어 버려야 할 것은 묵은 달력을 아낌없이 내다 버리듯, 그렇게 벗어 버려야 합니다.

후회없는 과거 없고, 두려움없는 미래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후회와 두려움은 이 불완전한 세상을 불완전하게 사는 사람들 누구나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묵은 해와 더불어 꼭 잊어버리고 털어 버려야 할 것은 정리해야 합니다.

즉 지난 날 실패했던 일, 남을 미워했던 일, 슬펐던 일, 손해봤던 일 등등은 빨리 어린아이처럼 잊어 버려야 합니다. 훌훌 털어 버려야 합니다.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성공된 내일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43장 18절에서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느 분은 “사람이 매일 손을 씻고 세수를 하듯이, 마음을 씻어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개 신경과민증이나 기타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들은 과거에 집착하며, 잊어버릴 것을 속히 잊어버리지 못하고 털어 버릴 것을 털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병고와 씨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단은 과거에 집착하게 만들며, 성령은 미래를 향하게 하고, 꿈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지난 날 잘못된 일들을 속히 잊어버리고, 새 마음 빈 마음으로 새 해를 맞이하여 복된 내일을 열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연말에 우리가 가져야 할 생활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일에 대한 소망과 꿈을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무한히 펼쳐질 미래에 대한 열려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 신앙인들이 바로 이 소망 속에 살아갈 것을 주님이 원하시고 계신 줄 믿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에는 어두운 날이 많습니다. 올 한 해도 우리 가정에, 그리고 신문 지상에 어두운 그림자와 소식으로 얼룩진 한 해였니다습. 햇빛이 가리워 지고 어두움이 오는 때가 이 자연 속에 있는 것처럼, 밤이 오고 먹구름이 몰려오는 삶의 상황도 우리에게 닥쳐 옵니다.

때론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부모님이, 공들여 쌓아온 인생의 탑이 어느 날 아침 우리의 눈앞을 캄캄히 가리우면서 무너질 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때는 아무리 햇빛이 밝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인생 자체가 캄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더 찬란한 빛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이 주시는 소망의 빛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이 주시는 소망의 빛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그 빛을 즐기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 궂은 날이 없다면 맑은 날을 감사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어두운 날이 없다면 밝은 해를 보는 즐거움을 찬송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만약 이 세상에 밝은 날만 있고, 궂고 비오는 어두운 날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벌써 오래 전에 사막으로 변해버렸을 것입니다.

병들 때가 있어서 건강할 때를 감사하게 되고, 고통의 날이 있어서 형통의 때를 찬송하게 되고, 깊은 계곡이 있어서 높은 산을 올라가는 축복을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밝은 낮을 감사하며 찬송할 것입니다. 그러나 캄캄한 밤이 길다고 해도, 이 어둠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으며 긴 밤도 찬송으로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의 기도가 더디 응답된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정을 너무나 잘 아시며, 내가 염려하는 것보다 더 큰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나를 살피고 계십니다.

때때로 올 한해 이루고 마감해야 할 일이 잘 매듭지지 않았다고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큰 계획과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시며, 믿음으로 이겨 나가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이 시간에, 성도님들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 한해를 생각하시고, 소망 가운데 새 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밝은 날이 많았던 분들은 하나님께 진정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캄캄한 어두운 밤을 헤메는 성도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어두운 긴긴 밤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사랑의 손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피묻은 손을 뜨겁게 다시 한 번 꼭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소망의 삶을 간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한가지 또 중요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고 성경은 강조합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여기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늘도 애를 태우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 히브리서 13장 8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하나님의 시간에서 우리는 몇가지 진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이 하나님의 시간은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줍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9절 말씀입니다. 그것은 죄인 하나라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얻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자비의 시간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에스겔 18장 32절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은 한 사랑하는 자식을 구원하려고 하루가 천년같이 천국 대문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산과 들과 시내를 건너며 밤새워 헤매고 다니십니다.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하나님의 시간은 바로 하나님의 자비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둘째로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하나님의 시간은 하나님의 인내를 보여줍니다. 11절 말씀과 같이 “이 모든 것이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사는 성도가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십니다. 거룩한 행실은 세상에서 구별되는 성도의 모습을 말합니다.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사는 성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생활 태도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영적으로 변화를 받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성도의 변화를 위해서 하루가 천년같이 그리고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과 어울려 허송세월하는 것이 더 재미있고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내하시는 하나님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그리고 본인 자신은 영적으로 성장하려고 하기 보다는 언제까지나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 하면서 영적으로 기저귀에 싸여 요람에 누워 주어지는 젖이나 받아먹고 살기를 원합니다.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이 성경의 질문은 우리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셋째로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희망을 보여줍니다. 12,3절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의 시간은 역사를 통해서 흘러왔고 지금은 급하게도 최후의 목적지를 향해서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것은 지상의 성도들 만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6장 9절 이하에 보면 순교자들의 영혼이 고대하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2절에 기록된대로 만물이 신음하며 구속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그 날을 위해서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이 하루같이” 기다리려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하나님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이 곧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하나님의 자비의 시간, 인내의 시간, 희망의 시간 안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야 할 태도는 너무나 분명해 집니다. “이 한가지를 잊지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시간이 있을 때, 시간이 주어질 때 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때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성도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우리는 신앙의 옷깃을 여미며 열심을 내고, 저 북녘 땅에서도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을 노래하며 찬양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온 세상에 전쟁의 소문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며 살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2002년 새 해를 허락하시고 우리 생명을 연장시켜 주심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내가 참여하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려는 열심의 자세로 새 해를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 시간을 가장 서툴게 쓰는 사람이 항상 시간이 없다, 시간이 짧다고 불평한다 하는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은 시간입니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씩 공평하게 주어졌습니다. 이 시간은 돈으로 살 수도 없고 팔 수도 없습니다. 남에게 빌려 줄 수도 없고 빌어서 쓸 수도 없습니다. 천만금을 주어도 단 1초의 시간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 생활을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 중에서 다음에 주님을 만나면 “아이구, 주님. 세상 일이 오죽이나 바빴습? 정말 정신 없이 살아 왔습니다. 이렇게 빨리 주님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사정좀 봐 주세요” 이런 민망한 넋두리를 늘어 놓을 사람이 혹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께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평생동안 시계를 만들어 팔던 사람이 이제 늙어서 그 아들에게 영원히 기념될 시계 하나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초를 가리키는 초침은 금으로 만들고, 분을 가리키는 분침은 은으로 만들고, 시를 가리키는 시침은 동으로 만들었습니다.

선물을 받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이거 거꾸로 된 것이 아닙니까? 분보다는 시가 더 중요하고, 초보다는 분이 더 중요한데, 왜 금은동의 순서를 바꾸었습니까?” 그때 아버지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1초를 아낄 줄 모르는 사람은 1분을 가질 자격이 없고, 1분을 아낄 줄 모르는 사람은 1시간을 가질 자격이 없단다.”

아버지의 교훈을 가슴깊이 새기고 그 아들은 의미있고 보람있는 일생을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우리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가지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애쓰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우리에게 2002년 새 해를 허락하시는 줄 믿습니다.

더욱 열심히 살고, 더 부지런히 살고, 더 소망 가운데 살고, 더 하나님의 일에 힘쓰기로 다짐하면서, 한 해의 문을 닫고 새 해를 여는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1년 12월 30일

베드로후서 3:8-13
한 가지를 잊지말라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좋은 일을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그것이 계속되지 않을 뿐이다. 어제 맨 끈은 내일 허술해지기 쉽고 그냥 두면 풀어지고 만다. 나날이 끈을 여미어야 하듯이 사람도 결심한 일을 나날이 거듭 여미어야 변치 않는다.”

우리 동양의 고전인 채근담에 나오는 말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서 있으니, 생활을 반성하며 살라는 이러한 말이 더 실감이 납니다. 사실 반성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동물 세계에는 없습니다.

더욱이 사람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에 실수할 수 있으며 그러기에 반성이 꼭 필요합니다. 후회와 반성은 다릅니다. 후회는 과거 지향적이고 반성은 미래와 연결됩니다. 우리는 후회가 아니라 반성을 통해 내일을 열어 나가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얼마나 잘못하고 실수했는가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반성하고 뉘우치고 새 길을 걸어 가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성탄절에 배포한 2002년도  새 달력으로 묵은 달력을 바꾸어 달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2001년도 달력아, 너는 정직하게 살면서, 네 사명을 끝까지 잘 감당하고, 갈 때면 깨끗이 떠나는데, 과연 나는 어떻게 한 해를 살았는지, 네게 부끄럽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후회가 아니라 반성의 계기로 삼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하루의 일은 그날 저녁 눕기 전에 생각해 보고, 한 달의 일은 그달 마지막 달에 가서 결산하고, 한 해의 일은 마지막 달에 정리하며, 일생은 하나님 앞에서 총 결산하게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님들, 이 한해를 돌이켜 보고 결산하면서, 나는 육신의 일을 잘 했는데, 신앙의 생활은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내 자신과 가족은 기쁘게 잘 살아왔는데, 진정 하나님은 얼마나 기쁘시게 해 드렸는지요. 나를 위해서는 충성했는데, 하나님의 일에는 과연 얼마나 충성했는지 반성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일의 우선 순위를 다시금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먼저 나의 삶과 나의 의를 구하는 한 해는 아니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할 때, 이 모든 것을 더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는 얼마나 믿고 확신하며 살았는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이렇게 연말에는 우리 삶을 반성하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동시에 벗어버려야 할 것, 털어 버려야 할 것은 묵은 달력을 아낌없이 내다 버리듯, 그렇게 벗어 버려야 합니다.

후회없는 과거 없고, 두려움없는 미래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후회와 두려움은 이 불완전한 세상을 불완전하게 사는 사람들 누구나 느끼는 감정입니다. 그러나 묵은 해와 더불어 꼭 잊어버리고 털어 버려야 할 것은 정리해야 합니다.

즉 지난 날 실패했던 일, 남을 미워했던 일, 슬펐던 일, 손해봤던 일 등등은 빨리 어린아이처럼 잊어 버려야 합니다. 훌훌 털어 버려야 합니다. 지나치게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은 성공된 내일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 43장 18절에서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느 분은 “사람이 매일 손을 씻고 세수를 하듯이, 마음을 씻어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대개 신경과민증이나 기타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들은 과거에 집착하며, 잊어버릴 것을 속히 잊어버리지 못하고 털어 버릴 것을 털어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병고와 씨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단은 과거에 집착하게 만들며, 성령은 미래를 향하게 하고, 꿈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지난 날 잘못된 일들을 속히 잊어버리고, 새 마음 빈 마음으로 새 해를 맞이하여 복된 내일을 열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연말에 우리가 가져야 할 생활 자세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일에 대한 소망과 꿈을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무한히 펼쳐질 미래에 대한 열려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 신앙인들이 바로 이 소망 속에 살아갈 것을 주님이 원하시고 계신 줄 믿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에는 어두운 날이 많습니다. 올 한 해도 우리 가정에, 그리고 신문 지상에 어두운 그림자와 소식으로 얼룩진 한 해였니다습. 햇빛이 가리워 지고 어두움이 오는 때가 이 자연 속에 있는 것처럼, 밤이 오고 먹구름이 몰려오는 삶의 상황도 우리에게 닥쳐 옵니다.

때론 남편이, 아내가, 자식이,부모님이, 공들여 쌓아온 인생의 탑이 어느 날 아침 우리의 눈앞을 캄캄히 가리우면서 무너질 때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 때는 아무리 햇빛이 밝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인생 자체가 캄캄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더 찬란한 빛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이 주시는 소망의 빛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이 주시는 소망의 빛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그 빛을 즐기는 기쁨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인생에 궂은 날이 없다면 맑은 날을 감사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어두운 날이 없다면 밝은 해를 보는 즐거움을 찬송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만약 이 세상에 밝은 날만 있고, 궂고 비오는 어두운 날이 없었다면, 이 세상은 벌써 오래 전에 사막으로 변해버렸을 것입니다.

병들 때가 있어서 건강할 때를 감사하게 되고, 고통의 날이 있어서 형통의 때를 찬송하게 되고, 깊은 계곡이 있어서 높은 산을 올라가는 축복을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밝은 낮을 감사하며 찬송할 것입니다. 그러나 캄캄한 밤이 길다고 해도, 이 어둠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으며 긴 밤도 찬송으로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의 기도가 더디 응답된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정을 너무나 잘 아시며, 내가 염려하는 것보다 더 큰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나를 살피고 계십니다.

때때로 올 한해 이루고 마감해야 할 일이 잘 매듭지지 않았다고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큰 계획과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시며, 믿음으로 이겨 나가도록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이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이 시간에, 성도님들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 한해를 생각하시고, 소망 가운데 새 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한 해를 돌이켜 보면서 밝은 날이 많았던 분들은 하나님께 진정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캄캄한 어두운 밤을 헤메는 성도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어두운 긴긴 밤을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사랑의 손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피묻은 손을 뜨겁게 다시 한 번 꼭 잡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소망의 삶을 간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한가지 또 중요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고 성경은 강조합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여기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늘도 애를 태우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 히브리서 13장 8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하나님의 시간에서 우리는 몇가지 진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이 하나님의 시간은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줍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9절 말씀입니다. 그것은 죄인 하나라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얻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자비의 시간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에스겔 18장 32절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은 한 사랑하는 자식을 구원하려고 하루가 천년같이 천국 대문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산과 들과 시내를 건너며 밤새워 헤매고 다니십니다.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하나님의 시간은 바로 하나님의 자비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둘째로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하나님의 시간은 하나님의 인내를 보여줍니다. 11절 말씀과 같이 “이 모든 것이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사는 성도가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고 계십니다. 거룩한 행실은 세상에서 구별되는 성도의 모습을 말합니다. 경건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사는 성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 자녀들인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생활 태도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영적으로 변화를 받아 살아가는 성도의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성도의 변화를 위해서 하루가 천년같이 그리고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변화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과 어울려 허송세월하는 것이 더 재미있고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내하시는 하나님을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그리고 본인 자신은 영적으로 성장하려고 하기 보다는 언제까지나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 하면서 영적으로 기저귀에 싸여 요람에 누워 주어지는 젖이나 받아먹고 살기를 원합니다.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이 성경의 질문은 우리는 다시 한번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셋째로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희망을 보여줍니다. 12,3절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하나님의 소망의 시간은 역사를 통해서 흘러왔고 지금은 급하게도 최후의 목적지를 향해서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것은 지상의 성도들 만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6장 9절 이하에 보면 순교자들의 영혼이 고대하고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2절에 기록된대로 만물이 신음하며 구속의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지는 그 날을 위해서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이 하루같이” 기다리려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하나님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이 곧 임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하나님의 자비의 시간, 인내의 시간, 희망의 시간 안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야 할 태도는 너무나 분명해 집니다. “이 한가지를 잊지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시간이 있을 때, 시간이 주어질 때 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때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성도의 삶을 열심히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우리는 신앙의 옷깃을 여미며 열심을 내고, 저 북녘 땅에서도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을 노래하며 찬양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온 세상에 전쟁의 소문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이루며 살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2002년 새 해를 허락하시고 우리 생명을 연장시켜 주심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내가 참여하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려는 열심의 자세로 새 해를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 시간을 가장 서툴게 쓰는 사람이 항상 시간이 없다, 시간이 짧다고 불평한다 하는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은 시간입니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씩 공평하게 주어졌습니다. 이 시간은 돈으로 살 수도 없고 팔 수도 없습니다. 남에게 빌려 줄 수도 없고 빌어서 쓸 수도 없습니다. 천만금을 주어도 단 1초의 시간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바쁘다는 핑계로 신앙 생활을 제멋대로 해도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 중에서 다음에 주님을 만나면 “아이구, 주님. 세상 일이 오죽이나 바빴습? 정말 정신 없이 살아 왔습니다. 이렇게 빨리 주님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사정좀 봐 주세요” 이런 민망한 넋두리를 늘어 놓을 사람이 혹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변명은 천년을 하루같이 하루를 천년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께는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평생동안 시계를 만들어 팔던 사람이 이제 늙어서 그 아들에게 영원히 기념될 시계 하나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초를 가리키는 초침은 금으로 만들고, 분을 가리키는 분침은 은으로 만들고, 시를 가리키는 시침은 동으로 만들었습니다.

선물을 받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이거 거꾸로 된 것이 아닙니까? 분보다는 시가 더 중요하고, 초보다는 분이 더 중요한데, 왜 금은동의 순서를 바꾸었습니까?” 그때 아버지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1초를 아낄 줄 모르는 사람은 1분을 가질 자격이 없고, 1분을 아낄 줄 모르는 사람은 1시간을 가질 자격이 없단다.”

아버지의 교훈을 가슴깊이 새기고 그 아들은 의미있고 보람있는 일생을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우리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가지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애쓰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우리에게 2002년 새 해를 허락하시는 줄 믿습니다.

더욱 열심히 살고, 더 부지런히 살고, 더 소망 가운데 살고, 더 하나님의 일에 힘쓰기로 다짐하면서, 한 해의 문을 닫고 새 해를 여는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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