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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름다운 매듭 / 행 10:4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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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아름다운 매듭 (2001/12/30)
본 문 : 행 10:44-48
설 교 : 박봉수목사 (상도중앙교회)


21세기로 진입하는 시점에서 현 세계의 지성이라 손꼽히는 24인이 함께 참여해서 [시간 박물관]이란 책을 펴냈습니다. 이 책의 첫 번째 장의 제목이 '시간의 창조'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인간이 시간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것을 어떻게 체계화하게 되었고, 이것을 어떻게 삶에 적용해왔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의 편집인으로서 저자를 대표하는 학자인 움베르토 에코라는 분은 모든 인류의 문화 안에 공통적으로 시간의 창조가 있다고 확인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류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 바로 시간의 발견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가장 독특한 문화적 특징이다."  그렇습니다. 인간만이 시간의 흐름을 감지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잴 수 있는 도구를 발명해 냈습니다. 바로 시계입니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의 매듭을 만들어 냈습니다. 바로 달력입니다. 그러면서 그 시간의 흐름의 매듭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바로 생일, 무슨 띠, 몇 세기 같은 것들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개나 돼지와 같은 동물들은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어제, 오늘, 내일과 같은 시간의 매듭을 지을 줄 모릅니다. 물론 그 시간의 매듭들이 주는 의미도 찾을 줄 모릅니다. 그래서 동물의 세계에는 역사가 없습니다. 수천 이 흘러도 역사가 남지 않고, 더 중요한 것은 문화를 발전시켜가지 못합니다. 천년 전에 사는 모습이나 오늘 모습이 동일합니다. 그리고 천년 후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다릅니다. 시간의 매듭을 만들고, 그 매듭마다 의미를 부여하고 삽니다. 그 의미들이 쌓여서 역사가 되고, 그 역사가 흘러가면서 삶의 모습 곧 문화가 발전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시간의 매듭을 잘 짓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발전에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시간의 매듭을 잘 짓지 못하면 그 사람의 삶은 발전이 없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매듭을 잘 지으면 그 사람의 삶은 나날이 발전이 있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한 해를 마감하는 2001년의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2001년은 내게 어떤 해였는지,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 해였는지 정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해의 마무리를 잘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어야 합니다. 이것이 2001년이라는 시간의 매듭을 잘 짓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행 10장의 마무리 부분입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인도를 따라 고넬료의 가정을 찾게 되고, 성령의 역사로 그 가정에 머물며 말씀을 전하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온 가족들이 세례를 받고 구원받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좀 색다른 관점에서 묵상하게 됐습니다. 오늘 본문이 한 사건의 매듭을 짖는 장면입니다. 베드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한 사건을 아름답게 마무리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을 작은 단위의 시간의 매듭으로 볼 때 베드로는 아름답게 매듭을 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말에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생겨난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끝은 전부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마라톤을 뛰는 선수가 처음부터 선두에 서 달렸습니다. 42키로까지는 역대 다른 기록과 비교해 볼 때 최고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42키로 지점에서 기권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람은 그 동안 아무리 잘 뛰었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끝이 중요합니다. 용두사미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작심하고, 혈서를 쓰고 시작해도 마무리 매듭을 짓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가 아름답게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아름답게 매듭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베드로의 사역 시작에서부터 마지막까지 함께 하셨고, 그 마무리 매듭도 역사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44절을 보면 마지막 장면에서 더욱 풍성하게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매듭을 짓기 위해서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뜻대로, 내 판단대로, 내 감정대로 마무리하게 되면 그 마무리가 아름답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의 욕망, 그동안 쌓였던 감정에 사로잡혀서 그 마무리가 추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점에 관해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갈 3:3을 보면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하여 이제 육체로 마치겠느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령의 인도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변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의 뜻을 앞세우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르기보다는 자기의 욕망을 앞세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될 때 그 매듭은 추해집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시작했으면 성령으로 마쳐야 합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매듭의 필수적인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아름다운 매듭을 짓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


첫째, 감사입니다.

성령으로 매듭을 짓게 될 때 언제나 우리의 마음 속에는 감사가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셨고, 하나님께서 역사 해 주셨고,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감사로 매듭짓게 해 주십니다. 성령은 언제나 우리에게 밝은 면을 보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에게 어두운 면을 보게 합니다.

예를 들어 궁사가 활시위를 당깁니다. 10발을 쏘는데 9발이 불발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이제 한 발 밖에 남지 않았으니 다 틀렸다...' 낙망하고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에게 '아직도 한 발이 남았다. 아직도 할 수 있다.' 희망을 갖게 하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게 만듭니다.
죽음의 시점이 다가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이제 너는 끝이다. 네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버리는 것이다.' 절망을 심어줍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에게 '이제 너는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될 것이다. 저 영원한 나라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 희망과 용기를 심어줍니다.
시간의 매듭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지나간 날들을 돌아볼 때 밝은 면을 떠오르게 해 줍니다. 그래서 감사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사탄은 우리에게 어두운 면을 떠오르게 해 줍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듭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성령의 작품입니다. 성령으로 매듭짓는 사람들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글을 읽다가 신앙수기 한 토막을 보게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결혼한 지 6개월 째 되던 즈음이었다. 신혼의 단꿈 속에서 나날이 행복할 줄만 알았는데 내게 고민이 생겼다. 8남매 중 7번째인 여동생이 간호사 수업을 받는 마지막 등록금 문제였다. 남편도 나의 고민을 알았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글쎄, 우리가 무슨...."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남편은 이런 제의를 했다. "우리 패물 정리하면 안될까?" 우린 장롱 밑에 깊숙이 넣어 둔 패물들을 꺼냈다. 돈이 될 만한 패물인 금 13돈을 들고 남편과 나는 동네 금방으로 갔다. 동생이 무사히 등록을 마치고 난 뒤 3개월쯤 지난 어느 휴일이었다. 오랫만에 남편이랑 시내 나들이할 일이 생겨서 나는 어린애처럼 일찍 일어나 차리고 나갔다. 하지만 막상 나가보니 번화한 서울의 거리는 어지러웠고 공기는 너무 탁해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서둘러 집에서 쉬자는 결론을 내리고 우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관문이.... 잘 잠그고 갔던 안방 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고, 방안은 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패물을 담았던 빈 상자들이었다. 바로 버릴까 하다가 별 생각 없이 원래 있던 장롱 밑에 그대로 두었었는데 그것이 삶은 조개처럼 입을 헤벌린 채 나둥그러져 있질 않는가. "아이구! 하나님 감사합니다!" 순간 온 몸에 전율을 느끼는 감사를 드렸다. 잠시 후 나는 애써 들어왔다가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하고 돌아간 검은 그림자에게 미안하게 느낄 만큼 '여유 있는 감사'를 다시 드렸다. 그 순간 따르릉, 따르릉. "언니야, 나야 언니. 나 간호사 고시 1차에 합격했어. 다 언니하고 형부 덕분이야. 고마워...."


그렇습니다. 성령은 도둑 맞은 상황 속에서도 우리에게 감사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이 감사가 한 사건의 매듭을 아름답게 해 줍니다. 또한 감사는 우리의 시간 매듭을 아름답게 해 줍니다. 요즘 방송사마다 신문 잡지마다 2001년 10대 뉴스 거리를 찾아서 보도하는 일에 경쟁적입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 힌트를 얻었습니다. 금년의 10대 감사 제목을 써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 10가지를 조목조목 써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할 사람 10인을 찾아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내, 교역자님들, 장로님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인도 안에서 감사로 한 해를 매듭지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화해입니다.

성령으로 매듭을 지을 때 언제나 화해라는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나게 됩니다. 성령은 모든 관계에 막힌 담을 헐게 해 주시고, 깨지고 끊어진 관계를 회복시켜주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사탄은 모든 관계에 담을 더 높이 쌓게 하고, 깨진 관계를 더욱 회복 불능으로 몰아갑니다.

먼저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십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의 죄 때문에 멀어지고, 그 관계가 깨집니다. 성령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요 16:7-8을 보면 "내가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오시면 우리 안에 있는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것이 얼마나 큰 문제인지 책망하시고, 회개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롬 8:1-2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죄 문제를 해결하여 영적인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해의 아름다운 매듭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막힌 담을 헐고, 깨지고 멀어진 관계를 회복함으로 이루어집니다.

저는 성경의 인물들 가운데 다윗을 참 존경하고 또 부러워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하여 정말 철저하게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영적인 결벽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시 38편에서 이런 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4절에 보면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18절에 보면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작은 죄라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데 얼마나 큰 방해가 되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죄 때문에 고민하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귀하여 여기시고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한 해를 매듭짓는 이 시점에서 혹시 우리가 잊고 있었던 하나님 앞에서의 죄가 있는 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죄를 아파하시고 슬퍼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 질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성령은 우리의 모든 관계를 화목하게 이끌어주십니다. 서로 용서하고 용납하고 하나를 이루게 도와주십니다. 바울은 골 3:13에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때문에 피해를 보았거나 마음이 상해있다면 그를 용납하고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 때문에 피해를 입었거나 마음이 상해있는 사람이 있다면 용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년 한해 여러분을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를 용납하시기 바랍니다. 그를 이해하시고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금년 한 해 여러분 때문에 가장 힘들었을 사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때문에 가장 마음이 아팠을 사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에게 용서와 위로의 뜻을 전하십시오. 전화도 좋습니다. E-mial도 좋습니다. 편지나 카드도 좋습니다. 마음을 담은 선물도 좋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앞에서 회개치 않고 남은 죄가 있다면, 누군가와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남았다면 결코 아름다운 매듭은 지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용기를 내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셋째, 비전입니다.

성령으로 매듭을 지을 때 언제나 비전이라는 아름다운 모습을 갖게 합니다. 여기서 비전이란 더 나은 미래를 그리고 꿈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욜 2:1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 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 이는 이상을 볼 것이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비전을 갖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 해의 매듭을 지을 때 내년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어야 합니다. 더 좋은 꿈, 더 멋진 비전을 가지고 한 해를 마감할 때 그 매듭은 아름다울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비전도 꿈도 없이 매듭을 짓는다면 그 매듭은 정말 쓸쓸하고 안타깝고 비참하기까지 할 것입니다.
은퇴하는 분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노후에 대한 준비를 차근차근해 오셨습니다. 경제적인 준비, 할 일에 대한 준비, 건강에 대한 준비, 인생의 마무리에 대한 준비를 잘 하셨습니다. 이 분은 은퇴가 아름다운 매듭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막막합니다. 이런 사람은 은퇴가 슬프고 비참하기까지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년과 앞으로의 비전을 세워놓고 계십니까?

요즘 산부인과에 임산부들이 몰려든답니다. 제왕절개 수술로 조기에 출산하려고 임산부들이 그렇게 많이 몰려든답니다. 특히 아이가 딸인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경우 정도가 더 심하답니다. 그 이유를 알고 보니 내년이 말띠 해라나요! 딸이 말띠면 팔자가 드세니까 말띠가 되기 전에 아이를 출산하겠다고 저 야단들이랍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이런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이런 시대 흐름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새해를 맞을 때 온통 이기적인 꿈들만 꾸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출세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돈을 더 잘 벌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안에서 꿈을 꿔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더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맡겨주신 일들을 더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비전을 갖게 될 때 한 해의 아름다운 매듭을 이룰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의 매듭을 묶는데 실패하고 있습니다. 원망과 한숨, 불평과 신세 타령으로 망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에게는 망년의 계절이 되고 있습니다. 너무 괴롭고 힘이 드니까 기억 속에서 2001년을 털어 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이 2001년을 저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야 합니다. 아름답게 매듭을 지어서 고이 보내야 합니다. 그러나 이 2001년은 우리 마음 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감사를 찾으십시오. 그리고 화해를 이루십시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서로 돌아보아 피차 용서하십시오. 또한 앞으로 비전을 가지십시오. 다가오는 2002년을 어떻게 맞으리라 준비를 하십시오.

아름다운 2001년의 매듭을 지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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