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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확실한 미래때문에 불안하십니까? / 출 15: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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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불확실한 미래때문에 불안하십니까?
본 문 : 출애굽기15:22-27
설 교 : 김홍진 목사 (천안외대)


  한 때 이런 말이 유행했습니다. "머리카락 없는 남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머리 속에 든게 없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귀 뚫은 남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귀가 꽉 막힌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과거가 있는 남자는 용서할 수 있어도 미래가 없는 남자는 용서할 수 없다"

  우리는 지나 온 시간을 과거라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을 현재라 하며, 앞으로 올 시간을 미래라고 합니다. 우리는 좋은 미래를 맞이하기 위하여 열심히 공부도 하고 일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미래는 어떻습니까? 확실한 미래를 계획하고 살고 있습니까? 미래의 놀라운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며, 미래를 위해 현재를 성실하게 준비하며, 미래에 놀라운 일을 성취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생기있게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막연한 미래, 캄캄한 미래,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답답하고 불안해하십니까?

  미래를 설계하고 미래를 가장 많이 생각하고 사는 시대가 아마도 청년의 시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청년의 시기에 내가 대학생들을 매일 만나면서 받는 상담 중에 가장 많은 주제 중에 미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합니다. 막연한 미래 때문에 답답해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믿지 않는 학생이든 믿는 학생이든 공통의 문제입니다.
 
  오늘은 불확실한 시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주신 말씀입니다. 본문은 불확실한 미래처럼 보이는 현실에가 가장 현명하게 미래를 인도함 받는 모세가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서 어떻게 확실하게 인도함을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미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미래를 가장 복된 장소로 인도하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아멘)

  출애굽기 13장 17절에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불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래서 18절에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택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길을 인도하십니다. 애굽에서 나오게 하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입니다.

  본문 22절에 보면 홍해에서 인도하여 수르광야로 인도하십니다. 드디어 마라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선택함을 받은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인도는 광야 길을 갈 때도 있습니다. 마라에 와보니 쓴 물만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앞길은 훈련의 과정인 광야도 있고, 연단의 과정인 목마름의 과정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의 앞길을 인도했듯이 우리의 앞 길도 인도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데 그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앞 길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미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붙잡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1868년에서 1894년까지 영국의 수상을 지낸 W.E.글래드스톤이 어느 날 한 대학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당시 영국은 경제악화 사회혼란 등으로 미래가 불투명했습니다. 그러나 글래드스톤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며 희망을 역설했습니다. 강연 후 한 학생이 "그러면 원로께서는 미래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씀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글래드스톤은 천천히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사람들 마음 속에서 하나님이 사라져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여러분, 미래가 불확실합니까? 모든 사람은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인도해줄 하나님이 없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미래에 안내자로 삼으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미래를 계획하시며 미래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십니까?

  잠언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할렐루야?

둘째, 미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인도받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백성들이 광야 길을 오다가 목말랐습니다. 마라에 왔는데 물을 먹어보니 얼마나 짠 물 이었든지 써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때 백성들이 모세를 원망합니다. 물이 없어서 인도하는 모세를 원망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받지 못하면 백성들에게 몰매를 맞아죽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 모세가 25절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한 나무를 물어 던지니 쓴 물이 단물로 변하여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순간 순간 기도하면서 인도함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인도해주시지 않으면 모세는 백 번도 더 몰매를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여러분, 미래가 불확실합니까? 미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미래를 매일매일 인도하심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은 가장 선한 방법으로 응답하시고 우리의 미래를 인도하십니다.

  지난 10월에 학생들을 데리고 서운산에 등산을 했습니다. 한참 올라갔습니다. 배가 고파서 산 속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정상을 위해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4거리가 나왔습니다. 선발대는 먼저 갔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아니면 차라리 돌아갈까?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죠? 핸드폰을 했는데 산 속이라 터지질 않습니다. 그래서 한쪽 길을 선택해서 갔습니다. 한참 갔는데 또 그 자리입니다. 그래서 다는 쪽 길을 선택해서 갔는데 한참 갔는데 또 그 자리가 나옵니다. 저와 학생들은 당황했습니다. 학생들은 저만 쳐다봅니다. 4거리에서 다 모아놨습니다. 이 때 학생들도 당황했나 봅니다. 계곡이기 때문에 정상은 보이지 않고 하늘 만 보입니다. 날씨도 좋지 않기에 조금 으시시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걱정스러웠는지 한 학생이 기도하자고 그래요. 그래서 사거리에서 학생들과 함께 통성기도를 했습니다. 내 참 등산하다 길거리서 통성기도를 하기는 처음입니다. "주여 이리갈까요 저리갈까요 차라리 돌아갈까요" 하여튼 그런 기도를 하고, 그리고 다시 한 쪽 길을 선택해서 올라갔습니다. 정상을 찾았습니다. 학생들이 환소성을 지릅니다. 그 때 한 학생들이 하는 말이 걸작입니다. "우리가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길을 인도하셨어요."

  얼마나 순수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가끔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4거리 같은 곳을 만납니다. 여러분은 그 때 어떻게 합니까? 이리갈까? 저리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조그만 한 일이든 큰 일이든 미래의 모든 일들에 대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모세는 한시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백성을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순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보류되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시되 혼자 책임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요청하십니다. 기도하는 백성의 삶은 하나님이 책임지셔야 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책임지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기도하는 자들이 미래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미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확실하게 인도함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불확실한 미래를 놓고 기도하면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미래를 걸어가십시오.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스릴 있는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래가 하이웨이처럼 확 열리던가요? 하나님은 그렇게 인도하지 않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기도하는 우리를 보시면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합니다.

  모세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십시오. 본문 27절에 보면, 마라에서 하나님은 엘림으로 인도하십니다. 엘림에 이르렀더니 거기에는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주가 있는 오아시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마라에서 엘림까지가 얼마나 떨어져 있습니까? 11㎞ 입니다. 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오아시스가 보이지 않기에 백성들은 마라에서 불평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오아시스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믿으면 아멘합시다. (아멘)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것을 믿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너무 천천히 조금씩 인도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인내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한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눈은 많이 보아야 4㎞밖에 못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11㎞ 앞의 오아시스를 보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앞 길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불확실한 미래로 인하여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를 보시기에 그 분이 내 인생을 인도한다면 내 미래는 확실할 줄 믿습니다. 미래가 보지지 않는다고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내 미래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인내하지 못하면서 미래에 하니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고 불평하거나 원망하고 불안해하고 답답해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내하지 못하는 근성 때문이기도 합니다. 급하고 참을성 없는 것은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 갑니다.

  한국사람이 미국에 갔습니다.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탔습니다. 운전수에게 빨리가자고 했습니다. 운전수는 빨리 달렸습니다. 그런데 원하는 장소가 아니고 이상한 곳으로 빨리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택시운전수에게 그랬습니다. "아저씨 왜 이상한 곳으로 갑니까?" 운전수는 말하기를 "손님은 빨리만 가자고 하셨지 어디로 가자고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의 급한 성격을 꼬집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나라에는 '빨리'라는 말 이외에 '싸게',  '얼른',  '속히', '퍼뜩', '후딱', '잽싸게', '불티나게', '재깍', '급히', 거기다가 현대에 와서는 '총알같이', '번개처럼' 등의 단어도 생겼습니다. 영어사전 웹스터를 집필한 웹스터는  36년동안 밤낮으로 이 일을 했습니다. 작곡가 요셉 하이든은 8백 개의 작품을 작곡했는데 가장 유명한 천치창조라는 오라토리오는 66세 되서야 8백번이라는 작품을 써본 후에야 나타난 것입니다. 인내 없이 모든 일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의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미래를 인내하지 못하여 미래를 망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8절과 9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마라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라를 보면서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엘림이 있습니다.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십시오.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보시고 그 분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인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인내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극적인 방법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의 인도하는 길은 가장 힘들어도 나에게는 가장 큰 복이 되는 길입니다.

  맺는 말

  사랑하는 청년여러분, 여러분이 미래가 그렇게 확실하게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앞길을 그렇게 인도하지 않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의 의지하는 데로 하나님은 인도하십니다.

  이제 그 하나님이 내 미래를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그 하나님을 붙잡으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내 인생의 미래를 확실하게 하실 것을 믿으십시오.

  미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에게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함께 미래를 힘차게 걸어가십시오. 그 길은 바로 불안의 길이 아니라 확신에 찬 미래입니다. 하나님은 가끔 홍해도 건너게 하실 것입니다. 때로는 광야도 걷게 하실 것입니다. 간혹 연단이 필요하여 마라에 쓴 물도 먹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하십시오.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십시오. 엘림을 준비하신 하나님, 나의 미래가 결코 불확실하지만은 않습니다.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따라가십시오.

  여러분, 이런 고백을 해보셨나요? 나중에 가서 "하나님이 인도하셨다"고 고백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나의 인생을 주관하고 있다고 믿으면서 이렇게 나의 미래를 지금 나를 인도하고 있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가 아닙니다. 아직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내 인생을 확실하게 만드실 하나님과 함께 미래를 열어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초청기도

  찬양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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