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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별을 바라보라 /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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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그 별을 바라보라
본 문 : 마 2:1~12
설 교 : 박조준 목사 (갈보리교회)


인류 역사 이래 놀라운 사건이 많이 있지만 가장 크고 놀라운 사건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사건일 것입니다. 이것은 사건 중의 사건이요, 이적 중의 이적입니다.

왕 중의 왕이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의 구유를 선택하여 찾아오셨던 그 밤, 하늘은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천사들은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고 하늘의 별이 움직였습니다.
베들레헴 지경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천사들의 전해 준 소식을 듣고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가 만나게 되고, 동방 박사들이 멀리서부터 산과 강의 위험을 극복하고 예루살렘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동방 박사들이 그 많은 어려움과 위험을 극복하면서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에 찾아왔을까요?

오늘 주신 말씀 2절과 11절을 보세요.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박사들이 멀리 동방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찾아온 가장 중요한 목적은 메시야에게 경배하는 것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어떻게 아기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2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했습니다.
박사들은 예루살렘에 오기 전에 동방에서 별을 보았습니다. 그 별은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는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응답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알리셨기 때문에 그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경배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세상에 탄생하셨는데 예루살렘은 너무 조용했다는 것입니다. 멀리 동방에서는 메시야의 나심을 알았는데 베들레헴에서 가장 가까운 예루살렘의 시민들은 예수님이 나신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여기에 찾아온 동방 박사들은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렇게 먼 곳에서부터 찾아왔습니다. 이 동방 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의 자리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었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거리상으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느냐 하는 것이 예수님을 만나는 일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역사합니다. 하나님은 동방에서 영혼의 구원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던 동방 박사들에게 메시야의 나심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별을 볼 줄 알았던 것을 보아 그들은 천문학자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농부에게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장사하는 사람에게는 상인들이 돈 바꾸는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위대한 비밀을 풀어 주시는 하나님께서 천문학자인 동방 박사들에게 하늘의 별을 가지고 예수님의 탄생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별을, 태양을, 자연을, 인류의 역사를 사용해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동방 박사들에게 나타난 그 별은 그들에게 메시야의 나심을 알리기 위해서, 그들의 발걸음을 메시야에게로 인도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로 메시야에게 경배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의 사자들을 별처럼 사용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을 알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께 와서 경배하도록 역사하십니다.
동방 박사들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라고 말했습니다. 이 별은 예수님의 별입니다. 우리도 별이 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 때 우리는 주님의 별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그 별 자체라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주님의 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만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나심을 알리는 이 별이 동방 박사들에게 예수님의 나심을 알리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서 베들레헴에 나신 아기 예수께로 그들을 인도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 아기 예수께 경배했을 때 그들을 아기 예수 계신 곳까지 인도했던 그 별은 사라졌습니다. 그 별은 주님을 증거하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그리고는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 거기서 별의 사명은 끝났기 때문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하나님께서 계시의 방편으로 보여 주신 별을 보고서 그들의 고향을 떠나 주님을 찾아가는 놀라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만나려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절을 보세요.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라고 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보고 나서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예루살렘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별의 메시지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별이 증거하려고 했던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어서 예루살렘까지 찾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상징을 보면서 그 실체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우리 강단에 이렇게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그저 '강단에 십자가가 서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십자가는 오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보고 십자가를 사랑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우리가 성만찬에 참여하면서 떡과 잔을 듭니다. 그런데 나 위해 몸 버리시고 나 위해 피흘려 주신 주님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만나보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지난 주일저녁에 우리 교회에서 세례식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세례 받은 의미가 무엇입니까? 상징은 그 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동방 박사들은 별의 메시지를 알았습니다. 별의 증언을 이해했습니다. 그 별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그 별이 증언했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에게 경배하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까지 온 것입니다.
동방 박사들이 그들의 고향을 떠나 예루살렘까지 온 것이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요사이는 여행 수단이 발달해서 먼 거리도 쉽게 왕래할 수 있습니다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먼 거리를 여행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숱한 고난과 희생을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산을 넘어야 했고, 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또 사막을 지났을 것이고, 무서운 바람도 경험했을 것입니다. 노숙도 했을 것이고, 맹수의 위험도 당했을 것입니다. 집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염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관심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메시야를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동방 박사들은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주님께 나아갈 마음의 준비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우리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무엇을 하십니까? 내 영혼이 구원받고 주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거기에 따르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겠다는 마음의 굳은 다짐이 있습니까?

동방 박사들은 메시야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애썼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1절을 보세요.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했습니다.
동방 박사들은 예루살렘에 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이 사람이 모르면 저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저 동방에서부터 온 사람들인데요,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시니까 으레 수도 예루살렘에 나셨을 줄 생각하고 찾아왔는데 유대인의 왕이실 뿐 아니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왔는데도 예루살렘은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고, 예루살렘 시민 누구도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아, 우리가 찾아왔던 왕이란 별 볼일 없는 왕인가보다. 공연히 고생만 했군. 이제 돌아가자"라며 다시 동방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있다고 해서 그들이 그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동방 박사들에게 별을 통해서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셨습니다. 그런데 그 메시야에 대한 세상의 반응이 어떻든 박사들에게는 하나님의 계시에 응답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들려주시고 그리스도를 알게 해 주셨다면 이제 우리는 전인격으로 그것에 응답해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관심이 없으니까 우리도 그분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였습니까? 오늘의 이 역사가 그리스도를 거절하기 때문에 우리도 그리스도를 거절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우리에게 별을 보이셨고,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한 존재와 메시야 되신 주님께서 우리 위해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음과 그분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이 놀랍고 영광스러운 복음을 주셨다면 우리에게는 우리의 전부를 걸고 응답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십니까?"
동방 박사들은 이 질문을 서슴없이 했습니다. 그들은 모르면서 아는 체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어디엔가 가면 유대인의 왕을 만날 수 있겠지"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물으면서 찾아다녔습니다. 묻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대답이 주어집니다.

오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면서도 이 위대한 복음의 진리에 무관심하고 있습니까? 모르시면 누군가를 붙들고 물어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물어 보십시오. 이 동방 박사들에게서 도를 구하는 열정과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1. 그 별은 동방의 박사들을 예수님께 인도하였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까지 올 때에는 자기들의 생각대로 왔습니다. 유대인의 왕이 새로 나면 의례히 유대의 왕국인 예루살렘에서 낳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대로 한 것은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사실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찾아갔기 때문에 헤롯왕의 마음이 격동하였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무죄한 어린이들이 무참히 학살되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베들레헴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안내의 배후에도 헤롯의 흉계가 따랐습니다. 무서운 위험이 내포되었습니다.
그런데 동방의 박사들이 결국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된 것은 별의 인도 때문이었습니다. 별의인도를 받을 때 아무런 위험도 없이 따라가게 되었고 결국 아기 예수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기 본문에 보면 '그의 별' 혹은 '그 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나는 길이요" 한 말은 "오직 나만이 그 길이다"는 강한 뜻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많은 길 중의 한길이 아니라 하나밖에 없는 길이십니다.

사람들은 연습도 하고 실패도 하지만 하나님의 세계에는 연습도 없고, 실패도 없고, 한 번 하시므로 완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의 하시는 일도 완전하시고, 그가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도 완전하십니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간을 생활할 때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어디든지 인도하십니다.

오늘 이 땅 위에 사는 사람 중에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 잘못된 길에서 허덕이는 사람, 자기 생각대로 가보는 사람, 내친 걸음이니 다음은 생각지도 않고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크리스마스 아침에 우리를 바로, 그리고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그 별,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 그 별은 동방박사들을 예수님께 머물게 하였습니다.

사실 박사들은 헤롯왕이 보내며 하는 말을 듣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을 바라보며 앞서 인도하는 곳으로 따라가다가 그 별이 머무는 곳에 그들도 같이 섰습니다. 그곳이 바로 아기 예수가 나신 곳이었습니다.
이제는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었습니다. '어디로 가야 새로 나신 왕을 만나게 되나?'하며 염려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 별이 머무는 그 곳에 그들도 머물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안정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완전히 자리가 잡히고 다시 움직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깊은 지식이 필요합니다. 넓은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지식과 경험이 우리의 마음에 안정을 주지는 못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그 별을 바라볼 때 참된 마음의 확정과 평안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옛날 시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찬송하리이다"(시 57 : 7)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안에 거하는 사람은 순간이라도 마음이 요동하지 아니합니다. 우리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는 순간 그 마음이 요동하였고,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을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요 15:4~7)
마음에 평안이 없이 불안해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 별을 바라보세요. 이번 세례를 받기위해, 어느 젊은 내왜가 함께 오셨는데 "댁이 어디십니까?"하고 물었더니 강북, 아주 먼 곳에서 오셨어요. 그래서 "아니 그렇게 먼 데서 어떻게 여기까지 오시게 되셨어요?"하고 말씀드렸더니, 그분들 대답니 "목사님, 저희는 목사님이 부산이나 대구에 계신다면 몰라도 인천에만 계셔도 거기에 갔을 거예요. 여기는 너무 가까워서 좋아요"라고 하셨습니다. 저 개인으로 말하면 얼마나 감격스러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별을 따르고 그 별을 바라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철인 에머슨(Emerson)은 청년들에게 "너희들의 인생의 수레바퀴를 저 별에다 이끌어 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갈보리교회 성도 여러분, 이 시간 그 별을 바라보십시다. 목사를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신앙이 튼튼히 자리를 잡아서 흔들리지 말고 굳게 서서 맡겨진 사명 잘 감당하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3. 그 별은 동방박사들에게 기쁨을 주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0절에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하였습니다. 새로 나신 아기 예수를 만나기 위하여 불원천리하고 찾아온 그들은 최후의 노정에 있어서 그 별의 인도를 보고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문자 그대로 불안한 세상입니다. 아마 인류 역사 이래 오늘어럼 불안한 시대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불안하고, 국가적으로 불안합니다. 이 불안은 빈부의 차이도 없이, 유무식의 구별도 없이 모든 인류 위에 감돌고 있습니다. 무섭게 발전해 가는 과학 기술 앞에 인류는 스스로 판 무덤의 공포 앞에 살고 있습니다. 거의 절망적인 공포와 불안입니다.

그러나 그 별을 바라볼 때 인류의 불안은 제거되고 참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 별을 보고 기뻐한 그 기쁨이야말로 참된 기쁨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불안을 몰아내고 참된 기쁨을 주시기 위해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희망이 없는 개인이나 사회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기쁨과 희망에 넘치는 새 것이 된 사실을 이류역사를 통해서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철학자 캐에르 케고르는 '소망을 잃어버린 것'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 별이 없는 생태는 비참한 것입니다.
성경에 그리스도는 '광명한 새벽별'이라고 하였습니다. 새벽별은 밤이 지나고 새벽을 맞게 될 때 유난히도 빛납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어두운 밤에 광명한 새벽별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새 희망을 가집시다.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바라보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예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귀한 예물을 아기 예수께 드렸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별을 바라보면 어떤 반응이 있습니까?

우리 가운데 아직도 참 생명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분은 안 계십니까? 크리스마스 아침에 그의 별을 바라보시고 참 생명의 길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도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마음을 확정하지 못하고 머뭇머뭇거리는 분은 안계십니까? 이 크리스마스 아침에 그 별을 바라보시며 그 별에게 여러분의 삶의 수레바퀴를 잡아매시기 바랍니다.

참 평화를 원합니까? 참 기쁨을 원합니까? 그 별을 바라보세요.
그것만이 우리의 기쁨이요, 소망입니다. 그 별을 바라보는 한 절망, 슬픔, 불안, 방황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중에 평화입니다." 이 평화와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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