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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버리고 갑시다 ① / 고전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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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버리고 갑시다① 
본 문 : 고린도전서 13장 11절
설 교 : 성완석 목사 (여수시민교회)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 고린도전서 13장 11절 말씀 -


  세상 사는 일이 갈수록 힘들어집니다. 우리 가정들이 무너져 갑니다. 가정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인데 이 가정이 본래의 의미를 점차 잃어버리고, 많은 가정이 깨어지고, 이혼이 급증하고, 결손 가정들이 늘어납니다. 자연히 자녀들은 방황하게 되고, 병들어 가게 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겨운 환경 속에서 홧병을 안고 살아갑니다. 화병의 증상이 처음에는 억울하고 분하고, 그러다가 점차적으로 불안해지거나 초조해지고, 우울해지고, 머리가 아프고 얼굴에 열기가 오르거나, 어지럽고 입이 마르기도 하고,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치밀어 오르고, 목이나 가슴에 덩어리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소화가 안 되는 증상도 나타나는데, 결국에는 만사가 귀찮아지는 의욕상실이 온다고합니다. 그래서 죽고 싶어지기 까지 합니다. 어른이 된 이후에 환경이나 사람 때문에 이런 홧병이 생기기도 하지만, 특별히 어릴 적 경험했던 것이 원인이 되어 생기는 성인 아동의 문제도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당연히 어른이 되었는데,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어른이 되었는데도 어렸을때의 성숙하지 못한 모습이 쉽게 떠나가지 않아서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더라는 거예요. 모습은 어른 같은데, 진짜 어른이 되지 못했더라는 거에요. 우리는 육적으로 어른이 되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끊임없이 자라나야 하는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야합니다. 히브리서 6:1에는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라고 했습니다. 육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진짜 어른이 되야한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한평생 사는 기간이 길어야 80,90년입니다. 그런데 그 짧은 일생을 살면서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인생인데, 아주 어렸을 적에는 먹을 것만 있으면 됩니다. 좀 자라면서 친구와 장난감이 소중하고, 더 자라면서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사업이든지 직장이든지 무엇인가를 이루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를 생각하게 되고, 가졌던 것을 버리고 또 다른 것을 취하고, 다른 것 얻기 위해서 이전에 가졌던 것을 버리고, 이런 생활을 반복하면서 가치관을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완전은 없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갈등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이런 저런 갈등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실수도하고, 시행착오를 해 가면서 인생을 배워 가는 것입니다. 성숙한 삶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많은 세월이 필요하더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인생이 그런 것이라면 믿음의 사람이 다른 것이 무엇이냐? 우리는 인생의 마지막에 무엇이 있는가를 미리 알고 미리 깨달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노년에 얻을 수 있는 결론을 젊을 때 얻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축복 받은 거예요. 앞서 사는 거예요. 일찍 알고, 일찍 깨달을수록 보람있는 인생을 살수 있고, 후회하지 않는 인생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와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도 어렸을때에는 말하는 것, 깨닫는 것,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 같은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말, 깨닫는 것, 생각하는 것을 버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벌써 또 한해가 저물어가는데, 이 해가 가기 전에 버릴 것 버리고 가야합니다. 쓸모없는 쓰레기들, 내 마음 속에, 내 생활 속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되는 것들, 불편한 것들, 우리 생활을 더욱 어둡게 하고, 힘들게 하고, 연약하게 하고, 뒤로 물러나게 하고, 실패하게 하는 악한 요소들을 내 속에서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출발 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 빛나는 새해가 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새 해가 될 수 있습니다. 후회하지 아니하는 복된 새해가 될 수 있습니다. 해가 바뀐다고 저절로 인생이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에요. 저절로 바꾸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오늘도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추어 보고, 버릴 것 버리고 가시는 복된 앞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같이합시다. "버릴 것 버리고 갑시다" 아멘!

  우리는 장성한 사람입니다. 어렸을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것이 당연합니다. 이제는 어린아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린아이는 특징적인 것이 상대를 배려하지 않습니다. 감정을 여과없이 그대로 드러내 버립니다. 말하고 싶은대로 해 버리는 거예요. 솔직해서 좋은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감정을 여과없이 그대로 드러내 버리면 듣는 사람이 상처를 받게 되더라는 거예요. 자기 조절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요즈음 선거철이 되어서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말을 많이하고, 많이 듣게됩니다. 국민들도 짜증스러운 거예요. 이제는 모두가 바라는 것이 이전보다 좀더 성숙해지면 좋겠다. 이것이 한결같은 바램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정신없는 사람들은 서로 편가르기를 해서라도 자기 표를 많이 얻어보려고 합니다. 출신지역, 출신학교, 이런 것으로 편을 가르려고 해요. 어린아이일수록 편가르기를 좋아합니다. 서로 친한 사람과만 놀아요. 나와 생각이나 입장이 같으면 내편이고, 다르면 원수가 됩니다. 알게 모르게 아직도 내 속에 어린아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그랬어요. 모두에게 믿음 있었습니다. 많은 은사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고 다투는 모습을 보고, 너희는 아직 아이라고 책망을 하신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어린아이의 말을 버립니까? 히브리서 5: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자요"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고, 말씀의 은혜를 생활 속에서 체험해 나갈 때에 어린아이의 일을 벗어 버릴 수 있습니다. 단순히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 과는 다릅니다. 말씀이 나의 것으로 부딪혀 오고, 말씀 속에서 내 자신이 새로워지고, 자라나고, 말씀이 내 속 사람을 만지는 것을 체험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요. 배운대로만 안 되는 것이 인생이에요. 너무 힘겨운 것이 인생 살이예요. 그런데 제대로 훈련받지 못하고 부모가 모든 것 다 해주는 환경 속에서 오냐 오냐 자란 아이들이 막상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싸워 이겨 나가기 보다,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그냥 피할 길을 찾는 거에요. 그러다가 알코올로, 마약으로 엉뚱한 길로 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당장 모든 어려운 일들이 물러가고, 형통하게 열리는 것은 아니에요. 말씀 속에서 인생을 배워 나가고, 어려울 때 인내하는 것도 배워 나가고, 나의 고통 속에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돌보는 것도 배워 나가야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배워 나가는 믿음의 훈련, 이것을 위해 때로는 내가 원치 않는 환경도, 질병도, 어려움도 허락하실 때가 있더라! 나를 나되게 만들어 나가시더라! 나를 주님 원하시는 믿음의 사람으로, 나를 어른다운 어른으로 만들어 나가시더라! 이 과정을 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더욱 성숙한 사람 될 수 있습니다. 더 주님 기뻐하시는 믿음의 사람 될 수 있습니다. 내 마음대로 안 되어지는 인생살이 속에서 불평하지 마세요. 원망하지 마세요. 반항하고 몸부림하지 마세요. 

  우리에게 주신 고난의 기회를 더 성숙해지는 계기로 삶을 수만 있다고 하면, 우리가 한탄하고 낙심하는 그 때를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계기로 삼을 수만 있다고 하면, 분명 후회하지 아니하는 보람된 인생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공하는 인생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축복을 주는 남길 것이 있는 복된 인생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생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무슨 직업을 갖든지, 살아가는 동안 나를 잘 지켜 나가고, 믿음을 잘 지켜 나가고, 우리 가정을 잘 지켜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 앞에 설 때 칭찬받는 종으로 우뚝 서거니와 나 때문에 가정과 자녀와 후손들이 복을 받는 그런 제물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무엇보다 말 때문에 내가 실족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지 말아야 되겠노라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한 말이 다른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오랫동안 잊지 못할 상처로 남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위대한 심장학 교수로 알려진 스미스가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죽었습니다. 심장마비로 죽었어요. 그 순간 자기 영혼이 둥둥 떠있는 것 같더랍니다. 사람들이 자기 몸을 앰블런스에 싣고 병원으로 옮기더라는 거예요. 연락을 받고 온 부인이 자기 다리를 붙잡고 통곡을 하고, 의사들이 살려 보려고 전기 충격을 주어서 가슴이 벌떡 벌떡 뛰게하는 것을 몇 번 시도하더니 주임교수가 끝났다고 하고는 흰 천으로 자기 몸을 덮더라는 거예요. 아무리 소리쳐도 사람들이 듣지 못하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가 어디론가 막 가고 있는데, 도착해 보니 심판관이 거기 있더라는 거에요. 질문을 하는데, "너는 세상에 있는 동안에 얼마나 네 말로 다른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느냐?" 그런데 자기 앞에 자신의 말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쭉 나오는데, 가장 많은 상처를 받은 사람이 누구였느냐? 자기 아내더라는 거예요. 아내가 상처를 받아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 누가 나오느냐? 바로 자기 자식이더라는 거예요.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하는 거예요. 세상에서 출세하고 인정받고, 남부럽지 않은 위치에서 대접받고 살던 자신이 심판대 앞에 서 보니, 가장 가까운 아내도 자기의 말 때문에 상처받아 마음에 병이 들어 있고, 자기 자식 마저도 상처받은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는데, "내가 너에게 다시 한번의 기회를 준다" 돌려 보내더라는 거예요. 실제로 이 사람이 의학적으로는 완전히 죽은 지 4시간 반만에 의식이 다시 돌아왔어요. 이 사람이 전 세계를 다니면서 강의를 합니다. 심장학 강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말은 영혼을 살리기도 하고, 영혼을 죽이기도 하는데, 그 말 때문에 심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강의를 하고 다닙니다. 언젠가 하나님앞에 설 때에 우리도 똑같은 질문을 받게 된다는 거예요. 저는 다른 사람의 간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간증에는 주관적 요소가 너무 많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반복해서 이야기 하다보면 부풀리기도 하고, 좀 더 재미있게, 실감나게 하다보면 본의 아니게 거짓말도 하기가 쉽기 때문이에요. 이 사람이 꿈을 꾼 것인지, 그저 무의식 세계에서 떠돌다가 이런 체험을 했는지, 아니면 실제로 주님 앞에 갔다가 온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이와 똑같은 말씀이 주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에도 있더라는 거예요. 같이 찾아봅니다. 마태복음 12:36-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던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누구의 말씀이에요? 주님의 말씀입니다. 변할 수 없는 주님의 말씀이 똑같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들려 주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 앞에 두려워 떨지 아니할 수가 없어요. 믿음만이 아니라 내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떻게 말했느냐? 여기에 대해 심문을 하신다고 했으니, 심각하게 점검해야 될 말씀이더라는 거예요. 별 생각없이 예사로 했던 말들까지 심문을 받는다! 은혜로 대충 감싸주시고, 안아 주시고, 그냥 넘어가실 줄 알았는데, 그래 고생 많이 하다가 왔구나! 눈물을 닦아 주실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는 말이에요. 내가 부족해서 저지른 범죄, 연약해서 지은 불순종과 거역의 죄는 용서해 주시면서도 내가 교만해서, 내 스스로를 죽이지 못하고, 별 생각없이 내 마음대로 말해 버렸던 말들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일에 대해서, 심문하시는 주님의 음성 앞에 내가 어떻게 설 것인가? 지금까지 나 정도 되는 남편 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에게 나 정도 잘해주는 남편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 했어요.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정도 자상하고, 좋은 아빠, 100점은 아니지마는 이 정도 되는 아빠 많지 않을 거라고 생각 했습니다. 성도들에게도 완전한 목사는 아니지마는, 훌륭한 목사는 못될지라도, 이 정도되는 목사라면 나무랄데 없지 않느냐는 생각, 한편으로 했었습니다. 나의 말이 아내에게 자녀에게 성도들에게 상처가 되어 주님 앞에 설 때 심문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보지 않았습니다. 최소한 말 때문에 책망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어요. 나는 늘 옳은 말만 했으니까요. 심지어 책망의 말도 성도들의 영혼을 위해서 했고, 성도들을 잘 되게 하려는 마음에서 했으니까요. 합리화 된 생각에서 벗어나지를 못했어요. 그러나 주님은 제 가슴을 사정없이 두들겨 팼습니다. "너는 세상에 있는 동안에 얼마나 네 말로 다른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했느냐? 멀리있는 사람은 그만 두고라도, 너의 말 때문에 아내가 아파했던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큰 지 아느냐? 네 자녀들이 받은 상처는 얼마나 큰지 아느냐? 너 때문에 상처받은 교인들을 생각해 보았느냐?" 주님의 음성은 더 이상 설교를 준비할 수 없도록 하셨습니다. 설교 준비를 하다말고 그냥 엉엉 울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말 때문에 상처받은 아내를 위해서, 상처받은 자녀들을 위해서, 나의 말 때문에 상처받은 성도들을 위해서... 제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저의 말 때문에 상처받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해 주세요. 그래야 제가 주님 앞에 책망받지 않습니다. 그래야 제가 마음 편하게 잘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주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완전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이 종의 말 때문에 상처받는 분들이 한 분이라도, 어린아이 하나라도 실족지 않기를 위해 애를 쓰겠습니다. 조심스럽게 살겠습니다. 나는 연약하지마는 성령님 도와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혀! 이 조그만 혀 하나가 내 인생을 좌우하기도 하지마는, 다른 사람의 인생도 좌우할 수 있습니다. 잠언 18:21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했습니다. 내 혀가 선한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악한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할 수도 있고, 낙심과 고통을 주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축복의 말도 할 수도 있고, 저주의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한마디 말하는데 10초도 안되지만 일평생 가슴에 못을 받고 고통을 주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말을 통해서 사탄의 권세를 멸할 수도 있고, 상한 심령을 싸매어 치료해줄 수도 있습니다. 절망과 낙심가운데 있는 자에게 소망을 줄 수도 있습니다. 내 혀를 어떻게 사용하시겠습니까? 이시간 같이 기도합시다. 주님 내 혀를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있다고 했는데, 내 혀를 선한 도구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내 심령이 성령에 붙들려 살게 하여 주옵소서! 내 말이 성령에 붙들려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주신 혀를 행여라도 잘못된 곳에 사용하지 않게 하옵소서! 불의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게 하옵소서! 다른 사람에게 행여라도 상처를 주거나 저주하는 일에 내 혀를 사용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 혀를 통해서 주님 영광 받으시는 열매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내 혀를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의 도구로만 사용하여 주옵소서! 내 혀가 사람을 살리는 일에만 사용되게 하옵소서! 


  ♬ 1.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하네 내 마음을 새롭게 하소서 새 부대가 되게하여 주사 주님의 빛 비추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2. 겸손히 내 마음드립니다. 나의 모든 것 받으소서 나의 맘 깨끗게 씻어주사 주의 길로 향하게 하소서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내가 원하는 한 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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