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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것들을 생각하라 / 빌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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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빌립보서4:8-9
제 목 : 이것들을 생각하라
설 교 : 정근두 목사 (울산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함께 이 복된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요즈음도 TV시청료가 2,500원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돈을 제가 내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겠습니다. 저희도 TV가 있으니까 달라는 대로 요금은 내지만 다 내기에는 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청하는 비율로 내면 저는 한 달에 500원만 내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일주일 동안 뉴스 한 두 차례 보는 정도이고 모든 일이 끝난 주일 밤에 연속극 하나, 그것도 시간이 나면 보는 정도이니 2,500원은 좀 비싸지 않습니까? 하루에도 네 시간 이상 보는 사람과 한 주간에 두 시간도 채 못 보는 사람에게 꼭 같은 시청료를 요구하는 것은 아무래도 부당한 느낌입니다.

하긴 그 외에도 여인천하를 몇 차례 시청하다가 의도적으로 지금은 끊었습니다. 늘 칼싸움하며 땅따먹기 하는 왕건보다 재미가 있긴 했는데 그 내용이 신앙은 그만두고 정신건강에 도움이 안되겠다고 판단하고 끊었습니다. 질투, 야심, 음모 등이 주류를 이루는 그 내용이 별로 도움될 것 같지 않아서 말입니다. 자주 보면 나도 모르게 "뭬야?"가 나올 것 같아서 끝을 낸 것입니다. 자주 보고 생각하다보면 따라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8절에서는 성도들을 향해서 "좋은 생각"을 하도록, 9절은 "바른 행동"을 하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그리스도인은 행동하기 전에 잘 생각하기를 먼저 요구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당대의 세계제국 로마의 문화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빌립보 시민들은 불신의 사람들로서 부도덕적인 것들을 거리낌없이 행한 신들을 예배하던 사람들입니다. 음란의 신들이 저들의 본이 되었으니 이들에게서 선한 것을 조금이라도 기대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보면 알 수 있는 대로 그들의 신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신들입니다. 우리 인간의 희로애락과 욕망을 다 가지고 있는 신들입니다. 특히 다산과 번영의 신들을 향한 예배는 여 사제와 더불어 음란한 성행위를 갖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의 신들은 살인과 거짓말과 도적질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살인과 거짓말과 훔치는 일을 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부패한 사회에서 새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이 지켜야 할 행동규범은 어떠해야 할까요? 바울은 지금 본문에서 그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바울은 지금 4장 1절에서 한 명령을 계속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바울은 지금 성도로서 주 안에 서는 구체적인 방법을 여러 가지 명령형으로써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먼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삶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 "종말로"라는 말로서 이제 그동안 하던 명령형 권면을 끝맺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서는 마지막 구체적 권면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웅변적인 어조로 고상한 도덕적 표준을 제시하는 일련의 연속적인 권면을 단숨에 쏟아놓고 있습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도 당시 빌립보 성도들이 살았던 세상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빌립보 성도들도 본래 비기독적인 가치관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또한 거짓말을 하고 도적질을 하고 살인을 하고 간음을 자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사람들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빌립보서 4장에서 제시합니다. 한 마디로 "그러므로 주 안에 서라"는 명령으로 표현합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명합니다. "항상 기뻐하라"고 명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명합니다.

이제 우리가 읽은 부분, 8절과 9절에서는 웅변적으로 고상한 삶의 규범을 제시합니다. 공동번역으로 보면 더 분명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지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지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을, 이 모든 것을 여러분은 골똘히 생각하십시오"

여기서 명하는 바는 다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절마다 "무엇이든지"라는 말이 여섯 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게다가 개역 성경에는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라고 "무슨"이란 말을 또 두 번 반복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8절은 명하고 9절은 "너희가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고 명합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한 두 가지 명령만 실천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깊이 생각하므로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신앙인은 좋은 생각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바른 행동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비록 이 목록이 헬라적인 윤리와 일치한다고 해도 크게 상관할 바는 없습니다. 기원이 명백히 기독교적이건 그렇지 않던 간에 세상에서 인정되는 최상의 것을 이 구절에서는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최상의 것을 추구한다고 해서 세상에서 요구하는 최상의 가치들을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든지 훌륭한 사람들에 의해서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도 장려될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기원이 어디에서 발견되었다 하더라도 참되고 정직하고 올바르고 순수하고 사랑스럽고 좋은 평판을 받는 모든 것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은 최고의 예술과 훌륭한 문학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고 위대한 음악에 감동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훌륭한 건축물도 세울 수 있습니다. 사람은 비록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는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지만 그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아직도 남겨두신 하나님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감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러면 그리스도인이 품고 살아야 할 좋은 생각은 무엇입니까? 그 목록 첫째는 무엇입니까?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이든지 참되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에든지 참된 것을 여러분의 마음에 품고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참된 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좁게 한정하면 참된 것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복음진리만이 참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를 하는 사람들은 진리를 억누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의 자유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든지 무엇이든 믿을 수 있는 자유가 아닙니다. 참된 진리를 믿을 수 있는 자유가 바로 종교의 자유가 발생한 자리입니다. 우상 숭배자는 하나님에 관해서 거짓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참된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관한 바른 진리입니다.

더 나아가서 기독교인들은 어떤 경우에서라도 참되어야 합니다. 거짓과 속임수를 배제하고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5절에서 충고합니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진리는 성도들의 삶에 갑옷을 입히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거짓말로 이 갑옷을 녹슬게 할 수 없습니다. 온전치 못한 진리나 약간의 거짓으로 진리를 희석시켜서는 안됩니다. 때로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 우리에게 손해가 되고 우리 자신의 사업에 방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진리를 왜곡시키거나 진리의 일부분이라도 훼손시켜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이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 좋은 생각, 그 두 번째 목록을 살펴봅시다.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여기서 경건하다는 말은 거룩하다는 개념보다는 덕망이 있고 위엄이 있고 고상하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이 경박하고 어리석은 세상에서 기독교인은 진지함과 고상함과 존경할만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우리에게 웃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인은 이 세상에 기쁨을 가져다 주는 자들이 되어야만 하고 그 기쁨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위엄으로 충만한 기쁨이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쾌락과 향락과 즐거움을 구하는 세상 사람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억지 웃음을 자아내는 일들을 시도합니다. 온갖 코메디나 개그로서 사람들을 웃기려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의 괴로움을 잊어버리기 위한 자극제로 이런 향락을 추구합니다. 실로 어리석은 시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풍조를 배격해야 합니다.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TV를 보지 못하도록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보아도 되는 것과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을 정해 주었습니다.

아이건 어른이건 보아서 도움 안 되는 프로 가운데 하나가, 어쩌면 유일한 프로그램이 코메디라고 생각합니다. 억지 웃음을 자아내는 일은 시간을 죽이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조금도 영적인 유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건을 이루는 데에는 조금도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저는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도 제가 가장 싫어하고 보지 않는 프로그램이 코메디입니다. 우리는 무슨 일에나 진실과 위엄과 고상함을 상실해서는 안됩니다.

그리스도인이 언제나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 좋은 생각, 세 번째는 무엇입니까? "무엇에든지 옳으며" 참되고 옳은 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성품과 관계가 있습니다. 비록 이 말도 고대 희랍의 덕목 가운데 하나지만 바울은 지금 그것을 가지고 의롭다는 더 깊은 의미를 부여해서 사용합니다. 옳고 그릇된 것을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느냐에 따라서 좌우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제나 옳은 것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십시오. 신앙인은 참되고 옳은 것, 즉 의에 사로잡힌 자들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실은 의로워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 안에 있는 것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의롭지 못할 때 우리는 이 불의에 대항해서 말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자기가 고용한 사람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야 합니다. 또한 일하는 사람은 자기가 받는 보수에 대해서 합당하게 일해야 합니다. 그것이 옳은 것입니다. 하루치의 삯을 받았으면 하루치만큼의 일을 해 주어야 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것을 계획할 때, 신앙 인은 먼저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시장에서 장사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물건을 공정 가격 이상을 받고 팔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품질이 나쁜 것을 알고 그 물건을 좋은 품질인냥 속여서 팔아서는 안됩니다. 신앙인은 장사를 할 때 이익이 얼마나 남느냐는 것이 아니라 정직한 상거래를 하고 있는지를 언제나 물어야 합니다. 연말 세금 정산을 해도 정직해야 합니다. 자기가 낸 것을 받아갈 수는 있지만 남의 이름까지 가져와서 떼어달라고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는 더이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언제나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할 네 번째 좋은 생각으로서 정결을 제시합니다.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본래 이 말은 제사의식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제사에 사용할만한 제물일 때 정결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도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이 세상의 더럽고 부패한 것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채우지 마시고 그리스도의 정결과 성결로 가득 채우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체적인 순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몸을 죄악된 욕망에 내어 맡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동기와 행동에서도 순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부분이 정결하기를 바라십니다. 악에 찌든 삶에서 벗어나십시오. "마음이 정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주일마다 내가 예배에 참석하고 우리가 어려우나 힘드나 신앙생황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친히 뵙고 친밀히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정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권면 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엡 5:3-4, 8, 10).

그리스도인이 언제나 품고 살아야 할 다섯 번째 좋은 생각으로 사랑할만한 것을 제시합니다. "무엇이든지 사랑할만하며" 바울은 여기에서 부도덕한 성적추구대신 기독교적인 사랑으로 대치시키고 있습니다. 세상은 사랑에 대해서 거리낌없이 이야기 할 때 성에 관한 이야기를 빼어 놓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반드시 동일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여기서 성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여기에서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일, 듣기 좋은 일, 기쁜 일 전반에 관해서 마음에 담아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말하는 뜻은 무엇일까요?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그 사랑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사랑스럽고 매력적이고 상냥하고 남의 호감을 사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언제나 사랑스런 것을 마음에 품는 자들이 되십시오. 우리가 사랑할만한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베토벤의 음악을 연상하셔도 됩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사랑스럽고 즐길만한 것입니다. 그리고 켈커타에서 봉사하던 마더 테레사의 이야기도 듣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야 할 여섯 번째 좋은 생각은 무엇입니까? "무엇이든지 칭찬할만하며" 여러분의 가슴속에 무엇이든 칭찬할만한 것을 간직하고 살아가십시오. 칭찬할만한 것은 어느 것이나 성도들이 생각해도 좋은 것들입니다. 이야기할만하고, 칭찬할만한 모든 것은 성도들이 시간을 드려서 생각할만한 것입니다.

좋은 소문이 나며 좋은 평판이 나며 말하기 아름다운 일들을 추구하십시오.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만한 것은 조심하십시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할만한 것은 피하십시오. 그러나 친절을 베풀며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만한 것은 계속 추구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주일 부탁드린 대로 울산시장님을 위해서 성탄카드를 보내셨습니까? 혹 깜박하셨다면 연하장이라도 보내면서 그분의 수고를 치하하고 쾌유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다고 알려 주시면 투병의 자리에서 힘을 얻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기가 사는 동네, 속한 도시에 마땅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성도들은 과학이나 문학, 그리고 각종 예술에도 예수님이 왕 되심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지난 화요일 밤 다녀간 인천시립합창단을 생각해 보십시오. 시립합창단인데도 전부가 교회에 출석하는 신자들로 구성된 팀은 정말 칭찬할만한 했습니다.

연구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면, 봉사할만한 곳이라면, 그곳에는 신앙인들이 자리하고 있어야 합니다. 앞으로는 울산광역시 기독교 사회 봉사회 총회 같은 곳에는 우리교회 모든 봉사기관장들이 다 참석하는 새로운 문화를 일구어 가야겠습니다. 교회기관은 교회안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여기서 조직하는 것은 밖에서 사역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조직은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 우리가 조직을 갖는 것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위한 조직으로 머물고 말테고 그것은 조직해야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 인은 세상과 멀리 떨어진 산 속에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회장단 여러분 그 모임이 여러분끼리의 교제만을 나누고 끝난다면 사실 큰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단체를 만드는 것은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신앙인은 학교교실에서, 동사무소나 구청이나 시청에서, 개인 사무실과 공장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성도들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칭찬할만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던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이 품어야 할 좋은 생각, 여섯 가지를 말한 다음 바울은 마지막으로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 말로서 우리가 품어야 할 좋은 생각 목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만일 혹 잊어버린 것이 있다면 이 말에 모두 포함될 것입니다. 무슨 탁월한 것이 있든지, 무슨 기억할만한 칭찬할만한 것이 있든지 이것을 생각하라.

지금껏 바울이 말한 목록은 바울이 살던 시대 사람들이 숭상한 덕목들입니다. 기독교적인 독특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바울 자신이 성취한 것이며 빌립보 성도들에게 추천하는 덕목이기도 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을 이런 좋은 생각들에 맞추라고 요구합니다. 거기에 집중적인 관심을 쏟도록 요청합니다. 그리하여 바른 행동을 유발하기를 소원합니다. 생각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 맺습니다. 바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생각을 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품어야 할 좋은 생각의 목록을 공동번역으로 다시 한번 점검합시다. "마지막으로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지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지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을... 골똘히 생각하십시오"

성경이 말하는 좋은 생각을 품고 사는 연습을 한주간 하십시오. 설교는 듣고 그대로 끝나서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설교를 들으면 이 설교를 한주간 내 삶속에 어떻게 적용시킬 것인가? 내가 하나라도 말씀에 따라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목표를 세워서 계단을 내려 가셔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참된 것을 생각하십시오.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을 생각하십시오. 무엇이든지 옳은 것을 생각하십시오. 무엇이든지 순결한 것을 가슴에 품으십시오. 무엇이든지 사랑스러운 것을 마음에 품기 바랍니다.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을 간직하고 살아가십시오. 또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을 골똘히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제가 왜 여인천하를 끊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문정왕후나 경빈이나 난정이의 마음속에는 성경이 명하는 좋은 생각이 자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우리가 아는 이 하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보고 흠모하는 것은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기 원하는 제게 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는 듣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삶에 적용되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연속극에 깊이 중독된 사람은 어렵겠지만 주님 사랑하는 사람은 가능할 것입니다. 모두 큰 결단을 내리십시오. 여러분 가운데서도 좋은 생각 품고 성도답게 살기를 원하시는 분은 새로운 시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여러분의 가슴마다 좋은 생각을 품고 성탄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좋으신 주님의 마음을 품고 한해를 마감하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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