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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빛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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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마 5:14-16
제 목 : 빛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2002년 1월 6일)

예수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을 보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분에 대한 가장 놀랍고 영광스러운 진술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실 때 예수님은 어떤 특별한 기독교인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아주 영성이 뛰어나고 탁월한 지도자들만을 향해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기독교인들을 보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실 때 거기에는 여러 가지의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먼저는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빛의 자녀’들과 ‘어두움의 자녀’들로 나눌 수 있는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은 ‘빛의 자녀’라고 하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순간에 우리는 이미 빛이 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 선행을 많이 쌓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 비로소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이미 빛이 되었다는 사실을 예수님은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달리 말해서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순간에 우리 영혼의 내면에는 위대한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첫 번째 날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자 빛이 온 누리에 비쳐오기 시작하면서 창조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처럼, 오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어두움과 혼돈과 공허 속에 있는 존재들이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들어옴으로써 빛을 받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에는 어두움이었던 우리에게 빛을 주셔서 빛이 되게 하신 데 대해서 놀라움과 감사와 감격이 먼저 있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 믿는 자들을 보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실 때 그것은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추어 환히 밝힐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인 너희들 밖에 없다’고 하는 의미가 그 말씀 안에 있습니다. 15세기부터 일어나기 시작해서 18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사상으로 계몽주의 사상이 있습니다. 이 계몽주의 사상은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사고를 최고선으로 여기며 그러한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의 계발로써 인간 사회를 더 발전시키고 더 밝게 할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만, 이 계몽이라는 말이 영어로는 'enlighten'으로서, 빛을 비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이성의 계발과 합리적 사고와 과학적인 학문이 인간의 정신을 밝히고 인류 세계를 밝힐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만, 그러한 신념은 실패가 되고 있음을 인류역사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어두워져 있는 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것은 기독교의 진리밖에 없으며, 그 빛을 비추는 역할은 오직 그리스도인들밖에는 할 수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을 달리 말하자면 이 세상의 소망은 교회와 기독교인들 밖에는 없다는 말이 됩니다. 어떤 탁월한 정치가나 어떤 뛰어난 철학자가 우리 인간사회의 어둠을 물리치는 빛이 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부터 이미 세상의 빛이라는 존재로 부름을 받았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빛을 세상에 비출 수가 있겠습니까? 먼저는 우리가 어떤 선행을 하고 어떤 실천운동을 하기에 앞서서 우리 자신이 ‘좋은 등불’이 되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 이 말씀에서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그 당시 이스라엘 가정에서 사용되던 등불을 염두에 두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좋은 등불이 되려면 먼저 기름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등잔불을 켤 때 올리브 기름을 등잔에 부어서 사용했습니다만, 성경에서 이 기름은 흔히 성령을 상징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빛을 발한다고 할 때 그 빛은 우리 자신의 능력이나 우리의 이성과 지혜로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말한 계몽주의들은 인간의 이성과 지식으로 빛을 발하고자 했습니다만, 그 빛은 진정한 빛이 되지를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성도들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 성령충만하게 될 때 거기서 빛은 발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좋은 등잔불이 되기 위해서는 불을 붙이는 심지가 잘 손질되어야 합니다. 등잔불을 켤 때 심지가 너무 짧거나 너무 타버리면 제대로 불은 안 붙고 연기와 그을음만 나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심지를 손을 보고 새롭게 갈아야 하는데, 우리 신앙생활에서 주님과 교제하며 기도하는 시간이야말로 이 등잔의 심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도와 교제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의 뜻을 분별하여야 합니다. 인간적인 열심이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과의 영적인 교제를 통해서 주님의 뜻을 늘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금년에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빛을 발하는 삶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고 주님과 영적인 교제에 더욱 힘씀으로써 좋은 등불로 준비되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등불을 말 아래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이 생활과 분리된 이원론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기름이 가득 채워지고 심지가 잘 손질되어 환하게 빛을 내는 등잔이 있다 하더라도 그 등잔을 큰 말 아래 숨겨 둔다면 그 등불은 어두운 방에 조금도 유익을 주지 못하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 믿는 자들의 신앙은 교회에서만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세상속에서 그리고 생활 속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이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두는 것과 같은 일인 것입니다.

  금년도에 우리 연희교회의 표어는 “빛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입니다만, 금년은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삶 속에서 무언가 구체적인 실천을 행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믿는 자 한사람 한사람이 비록 작은 존재들이지만 우리 각 사람이 이 어두운 사회를 밝히는 작은 불빛이 되고자 하는 소원을 갖고서 작은 일에서부터 착하고 선한 일을 실천해 나간다면 장차 한국교회의 부흥으로 큰 빛이 비추어지는 그런 날도 올 수 있으리라는 비전을 가지고 함께 나가는 새로운 한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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