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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큰 믿음대로 되라 / 마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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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네 큰 믿음대로 되라
본 문 : 마 15:21~28 
설 교 : 박세종 목사(소망감리교회)

21C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무엇이라고 부를수 있을까요?

마음속에 염려가 있는 사람들! 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몸에 난 상처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빨리, 신속하게 치료를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근심, 걱정, 염려는 괴로워 하면서도 치유 받으려고 하질 않습니다. 육체의 상처보다 마음의 상처가 더 무서운 것인데 말입니다.
근심 또는 걱정, 염려라는 말은 영어로 anxiety인데 마음을 갈라 놓는다 또는 마음을 찢어 놓는다 라는 의미입니다.

잠 17:22절에서는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염려나 근심은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지나친 근심은 신경질환을 일으킵니다.
지나친 근심은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지나친 근심은 우리의 육체를 지치게 하고 병에 걸리게 합니다.
지나친 근심은 우리의 건강을 찢어 놓고 수명을 단축시키게 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염려한다고 너의 키를 한자나 더 크게 할 수 있겠느냐"하시면서 "네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불필요한 염려가 왜 일어납니까?
왜 근심이 생기는 것일까요?


첫 번째로> 의심이 근심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근심이 많은 것은! 염려가 많다는 것은! 그 만큼 하나님을 의심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제자들을 보세요!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던 중에 강한 바람을 만나서 호수에 풍랑이 일어나며 어려운 일이 생기자 난리 법석을 떨면서 아!∼ 이제는 우리가 다 죽게 되었다.
왜 죽어요?
우리 주님은 사람을 죽이시는 분이 아니라 살리시는 분이신 줄 믿으시면 아멘 합시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요 11:26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요 3:16에서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바로 그 배에 같이 타고 계신데 죽기는 왜 죽어요! 왜? 죽어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같이!
주여! 내가 믿나이다
주여! 나의 작은 믿음을 용서해 주옵소서.
큰 믿음으로 나를 찢어 놓는 근심을 물리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근심은 욕심 때문에 생겨납니다.

최진실씨가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 최고의 배우니까 예쁘니 안예쁘니를 논할 필요가 없겠죠 CF한편에도 몇 억의 개런티를 받으니 갑부에 속할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첫번째의 생명도 아들을 낳았고 이번에는 두 번째 생명이 곧 출산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무엇이 부족하겠습니까?
미모면 미모. 돈이면 돈. 자식이면 자식
그런데 왜 피눈물을 흘리면서 온세상을 벌컥 뒤집기라고 하듯이 자청해서 인터뷰까지 해가면서 찢어지는 것입니까?
바로! 욕심입니다.
욕심이란 이미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욕심이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을 소유하려는 것입니다.
욕심이란 나누어 주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만족이 없으니 악랄한 정도로 끌어 모읍니다.
그래서 금하신 것까지 가지려 하니 어디에서 그 누구에게 나누어 주겠습니까?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찢어진다는 말입니다.
약2장에서는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였습니다.
하박국2:5에서는 "욕심은 그 넓이가 음부처럼 넓다"
시 166:14에서는 "광야에서도 욕심을 크게 발한다"
욕심엔 끝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약 4:2에서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한다" 주라! 그리하면 후이되어,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우리에게 안겨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도 내것을 나누어 주면서 갈라진 것이 하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누어 주다가 찢어진 상처들이 깨끗하게 치유받는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 그러면 우리 사이를 갈라 놓으며 나의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이 근심과 염려를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첫 번째로> 잘못된 방법부터 버려야 합니다.

술을 마시고 그저 술독에 빠지듯이 취해서 염려를 잊으려고 한다면 그 결과는 알콜중독에 빠질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절제하고 인내하라고 가르칩니다.
이 사실은 옳은 것입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안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금욕하고 절제하면 좋다는 것을 누가 모른단 말입니까?
알긴 아는데 왜 금욕이 안되고 절제가 어렵습니까?
욕심을 버려라 그러면 근심과 염려를 이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버려라 버려라 버려라 하는데 마음속에서도 다짐해 보고 입으로도 자꾸만 자꾸만 되새기는데도 욕심이 떠나질 않는 걸 어떡합니까?
사도베드로는 이렇게 교훈하였습니다.
"네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주님도 이렇게 부르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할렐루야!
기억하세요! 잊지마세요!
염려와 근심의 짐은 나의 스스로의 노력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적인 결단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예수님께도 나아와야 합니다!
교회로 나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주여! 나에게 이런 문제가 있나이다. 해결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입을 열어 고백해야 합니다.
22절을 다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이 가나안 여자도 그 지경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나왔다" 하였습니다.
우리도 나와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오만한 자리에서 나와야 합니다.
내 노력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자만과 아집의 자리에서 나와야 합니다.
누구에게 나와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와야 합니다." 이 여인도 문제 해결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왔습니다.
"교회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곤 어떻게 하였습니까?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서 외치며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여! 나에게 이런 염려가 있나이다.
주여! 나에게 이런 걱정과 근심이 있나이다.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것이 바로 "염려를 주님께 맡기는 성경적 모습입니다"
그런 사람을 향한 주님의 음성을 들어 보세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아멘!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주님 앞에 나아와 나의 근심을 다 내어놓고 괴로워 하며 슬피 울다가 위로해 주시는 주님 근심과 염려를 다 씻어 주시는 예수님의 은총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염려와 근심을 이기는 사람에겐 아주 정확한 인생의 목표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 인생의 목표를 소원, 모든 이상, vision 또 꿈이라고도 하고 사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소원의 성취를 위하여 모든 정성을 쏟는 것입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자신의 꿈과 vision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피와 눈물과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사명을 위해 생명과 정열을 뜨겁게 불사르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마음속에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일심으로 전념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한문에는 "정신일도 하사불성"
정신이 한 목표에 집중하면 무슨 일이든지 이루어진다
·우리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믿는 자에겐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아멘.
따라서 사도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외치셨던 것입니다.
혹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당신 인생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한 대답을 못할 것입니다.
또 물어보세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어떤 계획과 구체적인 방법을 가지고 계십니까?
뚜렷하게 대답하는 사람은 더욱 드물 것입니다.
이것은 살아는 있으나 뚜렷한 목표가 없다는 것입니다.
확실한 목표가 없으면 사람은 무기력해 집니다. 힘이 나질 않습니다. 또 목표를 세웠으나 그 목표가 올바르지 않으면 아무리 힘을 써도 헛수고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목표가 확실하고 올바르면 힘이 솟아나게 됩니다.
꿈이 없이 바쁘게만 살아가는 현대 사람에게 무기력이란 병은 무서운 함정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확실해야 합니다. 정확해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Africa흑인들에게 성자라고 불리웠던 슈바이처 박사는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노래를 부르는 것도 심지어 주사놓는 방법을 배우면서도 언제나 Africa의 사람들을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먹든지, 마시든지, 아니 내가 미쳤든지 온전하든지 다 주를 위해서 한다" 하면서 사나 죽으나 나는 주의 것이라는 목표가 있었기에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며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니 나의 달려갈 길 다가고 선한 싸움 다 싸우고 믿음을 지켰다"라고 한 것입니다.
슈바이쳐나 아문젠 바로 이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강열한 목표 정확한 vision. 확실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돈도 많이 벌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공부도, 인격도 뛰어나야 합니다. 재능이 뛰어나야 합니다.
성공을 해야하고, 출세도 해야 합니다.
저는 언제나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주여! 우리의 자녀들이 한국의 모든 분야에서 머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계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왜 이런 목표가 있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높이 나타나게 하려는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틴 루터King 목사님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I have a dream"
우리에게도 꿈이 있어야 합니다.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뜻을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내려는 믿음이 있으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확실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큰 믿음으로 염려와 근심을 이기며 "네 믿음대로 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소망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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