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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래도 또 꿈을 꿉시다 / 창 37:18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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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그래도 또 꿈을 꿉시다     
본 문 : 창세기 37장 18-20절                           
설 교 : 장영일 목사 (범어교회)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1. 그래도 또 꿈을 꿉시다!

또 마지막 주일이 왔습니다. 참 빨리도 옵니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세월이 가는 걸 본 사람도 없는데 세월은 잘도 갑니다. 아이들은 쑥쑥 자라게 하는 세월이지만 어른들은 팍팍 늙어지게 하는 세월입니다. 갈수록 세월이 무서워집니다.

이 해를 시작할 때 나름대로 저마다 꿈을 갖고 계획을 세웠지만, 많은 기회들을 놓쳤고 혹은 힘이 모자라서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포기한 것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세월이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너무 빠르게 변화를 가져다줘서, 그것들이 아픔이 되고 시련이 되어 우리에게 상처를 남기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지난 송구영신 예배에서 우리들은 "담을 뛰어 넘읍시다"는 말씀을 통하여 각오를 하고 나름의 꿈을 갖고 시작했었는데 아직도 다 넘지 못한 담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 담들을 볼 때마다 좌절감과 한계를 느끼며 시름에 잠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그래도 또 꿈을 꿉시다. 아직도 넘어야 할 담들을 향하여 포기하지 맙시다. 또 해봅시다. "역사는 도전하는 자들의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지 않습니까?

구약의 요셉은 꿈꾸는 자들의 가장 중요한 모델입니다. 요셉의 일생은 꿈 때문에 시작하였는데 그 과정은 모진 역경뿐이었습니다. 꿈 때문에 가족에게 미움을 받았고, 결국 형제들에 의해서 타국의 종이 되어 모진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종으로만 끝나지 않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는 죄수가 되어 감옥에서 오랫동안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가 보았던 그 꿈을 잊지 않고 계속하여 되새김질하며 인고의 세월을 이겨나갔습니다. 그러는 중에 그는 자신이 꿈꾸는 자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꿈을 해석해주는 능력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옥중에서 바로의 신하들의 꿈을 해석해주었고, 그 일로 인하여 나중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자리까지 나갔고, 그 일로 결국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나무는 뿌리의 길이만큼 자란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도 꿈의 크기만큼 자랄 것입니다. 물론 우리들의 꿈들이 한 모양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 꿈이 이루어지는 길도 다양 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남들의 성취를 보면서 열등감이나 좌절감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봄에 심어서 가을에 거두는 씨앗이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가을에 심어서 이듬해 봄에 거두는 씨앗들도 있답니다. 산수유 나무가 바로 그렇답니다. 일반적으로 곡식은 북주며 메가꾼다고 하는데 마늘은 북주지 않고 뿌리담을 파헤쳐야 알이 굵게 맺힌답니다.

저마다 꿈을 이루어 가는 길들이 각양각색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올해 이루지 못했다고 포기하지 말고 또 새 해를 향하여 또 꿈을 꿉시다.


2. 꿈을 이루려면

꿈을 이루어 가는 길은 다양하지만 몇 가지 공통된 것들이 있습니다.

1) 버릴 줄 알아야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시인 신 경림 선생이 평생 고집스럽게 농사만 지으며 사는 재야 시인 전 우익 선생을 만나 들은 한 토막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 우익 선생의 신간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2002, 현암사)의 서문에 실린 글입니다.

그가 나무와 풀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으로부터 세상살이의 이치를 배우고 사람 사는 도리를 깨닫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무와 풀은 그의 스승인 셈이다. 함께 단양의 적성산성엘 갔을 때, 그는 누렇게 빛이 바래 머지않아 떨어질 잎들을 잔뜩 달고 있는 상수리나무와 자작나무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나무 좀 보세요. 춥고 먼길을 가자니까 될 수 있는 대로 간편한 몸가짐을 해야겠어서 잎을 다 떨궈버리는 걸 말예요. 사람한테는 왜 저런 지혜가 없을까요."

그는 책 안에서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 "잎을 훌훌 털어 버리고 엄동을 맞을 비장한 차비로 의연하게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 . . 고난의 길을 뚫고 가려면 간편한 몸차림을 하라는 가르침"(p.19)이라고.

성경에서도 같은 교훈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히 12:1)

사도 바울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3-14)

버림의 가장 참된 모델은 "예수님의 버림"일 것입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2) 수용할 줄 알아야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타인이나 세계를 수용할 줄 모르면 꿈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이 수용은 타협이나 변질을 뜻하지 않습니다. 요셉의 경우에서 보면 그는 환경을 수용했습니다. 형들의 미움이나 종이 되는 과정이나 누명을 쓰는 사건에서 그는 자포자기하지 않았습니다.

누에가 고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섯 번 잠을 자고 다섯 번 허물을 벗은 다음에야 고치를 짓는다고 합니다. 이런 인고의 세월과 그 과정을 수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중국의 시인 노신의 글에 "한응대지발춘화"(寒凝大地發春華)란 말이 있습니다. 얼어붙는 한겨울의 추위가 봄꽃을 더욱 화려하게 피우리라는 뜻입니다. 꽁꽁 어는 겨울은 겨울대로 수용하고 뇌성과 소낙비 나리는 여름은 여름대로 수용해야 좋은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수용은 또한 순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할 때도 있습니다. 요셉의 전과정이 그랬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심지어 동생을 죽일 계획도 꾸몄습니다. 그러면서 요셉의 꿈을 조롱했습니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 꿈이 어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20절)

그러나 요셉은 그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태도를 잃지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더 나아가 수용의 중심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비로소 하나님께 순종하게 되며 삶의 환경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나중 옥중에서 다른 사람의 꿈을 해석할 수 있었던 것도 그는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했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꿈을 이룬 요셉의 신령한 힘이었습니다.

새 해에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3) 감사할 줄 알 때에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요즘 기업체 입사 시험이나 대학 임학 시험에서 면접을 매우 중요시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비록 잠시지만 그의 표정과 태도를 통하여 사람됨을 평가하려는 뜻일 것입니다. 우리가 사람을 대하면서 가장 상큼하고 즐거운 때는 그가 감사할 줄 알 때입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 할 줄 아는 사람을 대하면 우리 마음이 밝아집니다.


그와 달리 표정에서나 말투에서 늘 부정적이고 찌푸린 사람을 만나면 정말 기분이 나빠집니다. 고마움을 느끼지도 못하고 표현도 못하는 사람을 만나면 정말 재미없습니다.

어느 사회이든 간에 긍정적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쓰임을 받습니다. 다음은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의 간증입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창 45:7-8)

감사는 최상의 언어입니다. 인격의 꽃입니다. 그 꽃이 꿈을 새롭게 만들어 갈 것입니다.

우리가 한 해를 마치면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음을 인정하며 찬양합시다. 그러면서 새 해에 또 꿈을 꿉시다. 비록 올해에 이루지 못한 실패한 것이라도 또 꿈을 꿉시다. 실패를 수용하고 욕심을 버리고 감사하며 새 해를 준비하면 반드시 우리는 새로운 꿈을 가지고 새롭게 도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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