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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옛 사람을 벗어 버립시다 / 엡 4: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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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윤성진 목사 (부산영락교회)
본문: 에베소서 4:17-32
제목: 옛 사람을 벗어 버립시다.


송년주일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복주시고 지켜주시고 은혜와 평강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금년에 국가적으로는 태풍 루사로 인해 246명이 목숨을 잃었고, 5조 원이 넘는 재산이 손실되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금도 컨테이너 박스에서 겨울을 지내는 수재민들이 있습니다. 북한 경비정이 서해 북방한계선을 침범하고 기습공격을 하여서 해군 고속정 한 척이 침몰되고 장병 6명이 전사해서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습니다.

북한이 핵시설통제해제를 선언하고 8 천여 기의 폐연료봉 저장시설의 봉인을 해제하고 핵무기 개발에 급속히 접근하고 있어서 주변국가들과 우리들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반미(反美) 시위가 일어나는 것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반한(反韓)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국가와 개인적으로 힘든 일들이 많았지마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서 오늘날까지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4강에 오르는 신화를 만들었습니다. 온 국민들의 열화같은, 응집된 힘을 보면서 우리는 민족의 가능성을 다시 한번 체험했습니다.

16대 대통령 선거도 평안한 가운데 잘 치뤄졌습니다. 송년주일과 더불어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고, 힘들고 어려웠던 일은 다 잊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하여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뱀은 몸이 커질 때마다 허물을 벗습니다. 그런데 몸에 상처가 나서 허물을 벗지 못하면 그 뱀은 죽고 맙니다. 우리의 신앙도 벗어버릴 것 벗지 못하고, 끊어버릴 것 끊지 못하면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한 해를 보내는 송년주일에 지금까지 벗지 못했던 것 다 벗어버리고, 끊지 못했던 것 다 끊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하여서 주님의 형상을 옷입을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22절에 보면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나의 옛 사람이 어떤 모습인지 발견하고, 벗어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여 벗어버릴 것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끊어버릴 것을 과감히 끊어 버리고 희망찬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벗어버릴 것을 한 마디로 말하면 17절에 있는 것처럼 <이방인의 허망한 마음과 행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믿지 않았을 때의 상태 즉, 옛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1. 무지의 옛 사람을 벗어 버립시다.

이방인의 특징, 옛 사람의 특징은 첫째로 무지함입니다. 모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지(無知)란 과학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무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이 여기서 말하는 무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자기를 못박는 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자기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모르기 때문에, 무지하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로 40년 뒤에 예루살렘은 초토화 되었습니다. 돌 하나도 돌 위에 놓이지 아니하고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2천 년 동안 나라없이 떠돌아 다니는 신세가 되었고, 누가 죽여도 항거하지 못하는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히틀러가 유태인 6백 만 명을 가스실에서 죽였습니다. 그들의 기름을 짜서 비누 만들어 쓰고, 그들의 머리털로 솔을 만들어 썼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심판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용감하게 못박아 죽였습니다. 무지가 죄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심판을 모르기 때문에 저리고 있지, 하나님께서 꿈에라도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심판을 보여주면 예수님 안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무지가 죄입니다.
하나님은 모르는 것을 핑계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권능이 만드신 모든 만물 가운데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핑계치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서 ‘나는 하나님을 몰라서 못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못 들어서 못 믿었습니다.’하고 핑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염(殮)을 합니다. 요즘에는 주로 장의사에서 이런 일을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 많으신 어른들이 염을 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병원에 계시던 분들도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집으로 모셔와서 집에서 임종을 하시게 했습니다. 집 밖에서 세상을 떠나면 객사(客死)라고 해서 조상신이 못된다고 하여 집에서 세상을 떠나게 했는데, 요즘은 오히려 집안에 계신 어른이 임종이 가까워지면 병원으로 모셔가는 것을 보면 세상이 많이 바뀌었음을 알게 됩니다.

예전에 어른들이 염을 할 때 보면 시신의 구멍들을 다 막습니다. 귀를 솜으로 막으면서 “못들었다고 해라, 못 들었다고 해라.”하면서 귀를 막습니다. 눈을 막을 때는 “못 봤다고 해라, 못 봤다고 해라.”하면서 막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지 실은 그렇게 하는 분들도 잘 모릅니다. 예전부터 어른들이 염할 때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냥 따라서 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모르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하나님이 그에게 물을 것입니다. <왜 나를 믿지 않았느냐? 왜 나를 섬기지 않았느냐? 왜 예수를 믿지 않았았느냐?>고 물으실 때에 “못 들어서 못 믿었다.”고 해라, “못 보아서 못 믿었다.”고 해라고 죽은 사람에게 염하는 사람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참 우스운 이야기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못 보았다고, 못 들었다고 핑계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만물 속에 하나님의 존재와 권능이 다 보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몰라서 충성 못했습니다. 몰라서 믿지 않았습니다. 몰라서 헌신하지 못했습니다.”하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예수님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상급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알면 아는 것만큼 풍성한 삶을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무지의 옷을 벗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을 배우고 연구하고 체험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고, 또 알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호세아 6장 3절에 보면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했습니다. 6절에서는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무라고 지도를 합니다. 그러나 자식이 그 부모의 마음을 잘 압니까? 모릅니다. 그럴 때 부모는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번제보다도 하나님을 아는 것을 더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의 옷을 벗어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풍성히 알기를 원합니다. 그것도 체험적으로 알기를 원합니다. 배우고 연구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2002년에는 그렇게 못했을지라도 이제 다가오는 2003년 내년부터는 더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배워 나가리라,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리라고 다짐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마음이 굳어진 옛 사람을 벗어 버립시다.

옛 사람의 마음은 굳어진 마음입니다. 굳어진다는 말은 <돌같이 된다>는 말에서 나온 말입니다. 마음이 굳어져서 아예 돌이 되어 버렸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석고처럼 되어버렸다는 말입니다. 간경화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경화(硬化), 영혼의 경화는 영원한 죽음을 가져 옵니다. 구약성경에는 이 말을 대신하여서 <강퍅하다>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바로(파라오Pharaoh)의 마음이 강퍅해 졌습니다. 바로의 마음이 굳어졌습니다. 바로의 마음이 그렇게 강퍅해 지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들리지 않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까?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기적을 보여주었지마는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저 홍해바다에서 수장될 때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은혜스러운 이야기를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습니다. 사랑의 이야기를 들어도 감동하거나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습니다. 헌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나도 헌신해야 겠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건 성경에나 있는 이야기고, 특별한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넘겨버리는 무반응의 마음, 바로 그 마음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굳은 마음>인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기독교의 모든 역사는 말씀을 통해서 일어나는데 말씀이 안들어가게 되면 그 마음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한 번 들을 때에 반응하지 않고 그냥 묵살해 버리고, 두 번 들었을 때 또 무시해 버리고, 세 번 들었을 때에도 무시해 버리면 점점 그 마음이 굳어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드러운 밭처럼 말씀을 받아들이고 감싸 안을 때에 신앙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반응을 하고 있습니까? 굳은 마음을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에 반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작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마음이요, 새 마음인 것입니다. 굳은 옛 사람의 마음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민감하게 잘 받아들이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감각없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립시다.

19절에 보면 <옛 사람은 감각이 없는 자>입니다. <감각이 없다>는 말은 <죽은 자와 같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체면도 없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부끄러운줄 알아야 하는데 부끄러움을 모릅니다. 이것이 옛 사람이고, 또한 오늘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최소한 외식(外飾)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외식한다’는 말은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모습을 안 보이기 위해서 외식을 하는 것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감각이 없는 자>는 아예 그 마음도 없는, 완전히 죽어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공자(孔子)가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가다보니 어떤 사람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큰 길 한 가운데서 변을 보고 있었습니다. 공자는 아무 말없이 지나쳐 갔습니다. 또 가다보니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길에서 조금 벗어 난 곳에서 변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이게 무슨 짓이냐고 그 사람을 나무랐습니다. 제자들이 의아해서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길 한가운데서 변을 보는 사람은 나무라지 않고, 길 가에서 변을 보는 사람을 왜 나무라십니까?”. 공자가 대답했습니다. “길 한 가운데서 변을 보는 사람은 이미 내가 말을 해도 안되는 사람이다. 부끄러움도 모르는 그 사람에게는 내가 아무리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고, 길 가에서 변을 본 사람은 그래도 조금 양심이 남아있으니 말을 하면 고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말을 한 것이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 상태가 얼마나 어려운 상태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죄를 마음대로 짓습니다. 마음대로 죄를 짓고, 죄지은 것을 자랑까지 합니다. 그래서 계속하여 방탕한 삶으로 빠져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모르고, 죄를 지어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것이 옛 사람의 감각없는 삶입니다.
내 마음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이제 감각없는 옛 사람의 옷을 벗어버리고, 죄에 대해서 민감하고, 죄를 아파하고, 후회하고, 새롭게 살아가리라고 다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을 책망하고, 남의 허물을 들추어 내는 것이 아니라, 내게는 그런 점이 없는가를 돌이켜보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8절의 원문을 순서대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다, 저희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다,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 때문에, 저희 마음이 굳어지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 말을 정리하면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와 마음의 굳어짐과 감각이 없기 때문에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하고 자신의 마음이 굳어져서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고, 죄를 지어도 감각이 없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는 사람입니다. 허망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구습을 쫓아 옛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온갖 불행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는 데서 오게 됩니다. 여기에서 허망한 삶이, 구습을 쫓아가는 삶이 파생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에 대한 무지의 옛 사람을 벗어 버리리라 다시 한번 결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고 연구하고 체험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더 알리라 다짐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음이 굳어진 옛 사람, 돌과 같은 강퍅한 마음을 벗어 버리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감동하고 눈물흘리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삶을 살아 가리라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에 대하여 감각이 없는, 죄를 지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옛 사 사람을 벗어 버리리라, 죄를 부끄러워하고 죄 지은 것을 아파하고 토설하는,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리라고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생명에 연결되어져서 풍성한 삶을 누리고, 어둠의 삶을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거짓말을 버립시다.

벗어 버리라는 말 대신에 <버리고..>라는 말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25절에 보면 <거짓을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해서 읽어보면 <거짓을 버린다>는 말은 <거짓말을 버린다>는 말입니다. 29절에 보면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31절에는 <훼방하는 것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입으로 짓는 죄를 버리라는 말입니다. 거짓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더러운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도는 남을 훼방하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별명이 <아멘>입니다. <아멘>은 <진실하다>는 말입니다. 진실하신 하나님, 진실하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진실해야지, 인격이 거짓되고, 거짓된 말을 한다면 안되는 일입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거짓말 하는 사람은 "마귀의 자식"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힘써야 할 부분이 <진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힘써야 할 부분이 <진실한 인격, 진실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거짓된 말을 했다고 할지라도 이제는 거짓을 버리고 새해를 맞이해야 됩니다. 거짓말 하는 습관들을 이 송년주일에 다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훼방하는 말, 훼방하는 습관도 버려야 합니다. 더러운 말을 하면 내 마음이 더러워지고, 내 입이 더러워지고, 남의 마음 속에 쓰레기를 뿌려놓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훼방하면 하나님의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그리고 그 훼방이 꼭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길을 갔습니다. 가다가 할머니가 다리가 아파서 할아버지에게 업어달라고 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업고 가는데 등에 업힌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힘들어 보여서 “영감, 내가 무겁지요?”하고 물었습니다. 그 말에 할아버지는 “암, 무겁지. 무거울 수 밖에. 할멈 머리는 돌대가리고, 얼굴은 철면피고, 가슴은 강심장인데 어찌 안무겁겠소.”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한참가다가 할아버지가 힘들어 보여서 이번에는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업고 갔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멈, 내가 생각보다 가볍지?”하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럼요, 가볍고 말고요. 왜 안가볍겠수. 당신 머리에는 든게 없고, 허파에는 바람이 들었고, 속은 비었으니까 가벼울 수밖에 없지.”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할머니에게 했던 그대로 고스란히 할아버지에게로 돌아 온 것입니다.
이처럼 훼방하면 가족일지라도 그대로 받게 되는데 남이야 오죽하겠습니까? 남을 훼방하고, 비난하고서 어떻게 그 사람에게서 칭찬받을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는 거짓말을 버립시다.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십시다. 훼방하는 말은 더더욱 하지 마십시다.

야고보 선생은 <말에 진실하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경건, 그 사람의 믿음은 다 헛것이라>고 했습니다. 금년에 혹시 거짓된 삶을 살았다면, 거짓말을 했다면, 지어내어서 말한 것이 있다면, 남을 헐뜯은 말, 더러운 말, 다 회개하고 벗어 버리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분(忿)을 버립시다.

26절에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라>고 했습니다.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분을 계속 품고 있으면 마귀가 틈타도록 기회를 준다는 것입니다. 분(忿)을 잘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을 품으면 마귀에게 내 마음에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 놓는 것과 같습니다. 분을 품으면 마귀가 그 마음에 들어가서 마음을 장악하고 지배하게 됩니다. 분을 내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 분을 내는지 아십니까? 진리를 위해서 분을 내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분을 냅니다. 그리고 자기의 약한 부분을 덮기 위해서 분을 낼 때가 대부분입니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보면 현장에서 큰 소리를 많이 치는 사람이 더 잘못했을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자기가 잘못한 것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소리를 지르고 윽박질러서 상대방에게 덮어 씌우려는 것입니다. 잘못하지 않은 사람은 떳떳하기 때문에 그렇게 크게 고함을 지르지 않습니다. 개들 중에 어떤 개가 잘 짖는 줄 아십니까? 힘이 없는 똥개가 많이 짖습니다. 사냥개라든지, 힘이 있는 개들은 가서 덥썩 물어버리지 잘 안 짖습니다. 진짜 강한 사람은 화를 잘 안냅니다. 큰 소리도 잘 안칩니다. 분을 내는 사람은 자기의 약점 때문에 분을 냅니다. 분이 날 때 참는 사람이 오히려 강한 사람입니다. 분을 계속 품으면 자기를 죽이고 남도 죽입니다. 분이 날 때 분을 빨리 풀어야 자기가 삽니다.

며칠 전에 하단에 사는 이 모씨가 아홉 살 된 조카딸을 녹산에 있는 자기의 농가에 데리고 가서 목 졸라 죽이고, 혹시 다시 살아날까봐서 입에다가 독약을 먹이고 암매장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6년 전, 연 매출액 7억 정도의 전기부품회사를 아버지가 동생에게 상속했을 때에 아주 분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동생도 자기를 무시하고 배제한다고 원한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댓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벼르고 있던 차에 그날 조카를 보자 죽여야겠다는 마음이 생겨서 조카를 녹산으로 데려가 목졸라 죽이고, 증거인멸을 위해 옷까지 벗겨 태워 없애 버리고, 혹시 살아있어도 다시 일어나지 못하도록 무거운 돌까지 얹어 자기 집 마당에 암매장을 했다가 붙잡혔습니다.

분을 계속 품고 있으면 마귀가 사로 잡습니다. 자기와 남을 죽게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품고있는 분이 있습니까? 원한이 있습니까? 억울한 일이 있습니까?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해가 지기 전에, 하루 넘기기 전에 분을 풀라고 했습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분을 품지말고 풀라고 했습니다.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분을 다 풀고 새해를 맞이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용서하신 것같이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나도 남을 용서하고, 용서받아야 할 일이 있다면 용감하게 가서 용서를 빌어서 용서받고, 분을 풀고, 2002년을 보내는 지혜로운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6. 도적질하는 것을 버립시다.

28절에 보면 <도적질 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꼭 남의 물건을 훔쳐야만 도적질이 아닙니다. 남에게 손해를 입힌 것, 부당하게 취한 것, 모두를 통칭하고 있습니다. 남에게 손해입힌 것, 이 해가 가기 전에 갚을 수 있는 것은 갚으려고 노력하십시오. 하나님께, 사람에게 진 빚들을 갚고 해를 넘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새 해>라는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묵은 해>의 옷을 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무지의 옛 사람을 벗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굳어진 옛 사람을 벗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죄에 대하여 감각이 없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거짓된 인격과 거짓된 말, 더러운 말, 남을 훼방하는 옛 사람, 다 끊어 버리고, 벗어 버리고 새 해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분을 내지 마십시다. 분을 내어도 오래 품지 마시기 바랍니다. 품고 있는 분(忿), 용서하지 못한 사람들, 이 해가 가지 전에 다 풀고, 용서하고, 용서받고 새 해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훔친 것 있으면 돌려주고, 손해보게 한 것 배상하고 새 해를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신앙적으로나, 육신적으로 한 살 더 먹게 되는데 우리의 삶도 그만큼 더 성숙될 수 있도록 더러운 옷들을 다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를 옷 입어서, 그리스도를 닮아서, 한 걸음 한 걸음 주님 앞으로 가까이 갈 수 있는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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