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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동하는 교회 / 행 9: 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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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생동하는 교회
본 문 : 행 9: 32-35
설 교 : 김창인 목사 (광성교회)


  오늘은 사도행전 9장 32에서 35절까지 있는 말씀을 가지고 "생동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생동하는 교회'를 쉬운 말로 바꾸면 '살아 움직이는 교회'입니다.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움직이지 못하거나 활동이 없다면 그것은 잠자는 교회 혹은 병든 교회 심지어는 죽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지 순례를 하다 보면 이태리 로마에 있는 바티칸 궁전에 들리게 됩니다. 그곳에 가면 바티칸 박물관이 있습니다. 또 프랑스 파리에 가면 르불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런 곳에 가면 세계에서 유명하다 하는 조각가들과 화가들이 조각해 놓은 조각품들과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천정과 벽면에 걸려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전시되어 있는지 머리를 쉴새 없이 돌리면서 걷고 또 걸어도 르불 박물관을 전부 돌아 볼 수가 없습니다. 르불 박물관을 전부 다 보려면 아마도 일주일은 걸릴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그림들 중에는 잘 못 그렸다 싶은 그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무엇인가 가슴에 와 닿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생동감이 있는 그림입니다. 그림 속에 있는 사람이 당장 걸어서 뛰쳐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당장 입을 열어서 말을 할 것 같은 모습입니다. 분명히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것을 느낄 정도입니다. 그것을 생동감이라고 합니다. 그런 그림은 산 그림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라고 전부 똑 같은 것은 아닙니다. 생동감이 있는 교회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을 따라 생동하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넓혀가는 교회 (32-)

  이사야서 54장 1절에서 2절을 보면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찌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찌어다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1절의 말씀은 과부의 자식들이 남편 있는 자식들 보다 많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과부는 포로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과부는 약하지 않습니까? 포로 생활을 하는 백성들처럼 약한 백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홀로된 여자라고 합니다. 홀로된 여자의 자식들이 남편 있는 자 즉 주위에 있는 열강 보다 더 많다는 것입니다. 비록 포로 생활을 하지만 그 자손들이 더 많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앞으로 이스라엘이 회복되어서 가나안에 다시 나라를 회복할 때에 그 주변에 있는 모든 나라보다 왕성하고 번영하는 나라가 된다는 예언입니다.

  2절을 보면 '네 장막터를 넓히며 네 처소의 휘장을 아끼지 말고 널리 펴되 너의 줄을 길게 하며 너의 말뚝을 견고히 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장막을 넓히라는 것입니다. 줄을 길게 하라는 것입니다. 할 수 있는 한 멀리까지 가서 말뚝을 박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리면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회복 즉 자유의 해방이 있고, 해방 된 후에 회복되는 이스라엘의 번영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본래 이것을 가리키는 예언이지만 이 예언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신약 시대의 교회가 세계를 향하여 교세를 확장시켜 나갈 것을 가리키는 이중적 예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전 세계로 뻗어나가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계를 향해서 뻗어 나가야 합니다. 세계 복음화를 향하여 교세를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땅끝까지 복음화 시키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가만히 팔짱을 끼고 앉아있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교세 확장에 대해서 기복신앙이니 물량주의니라고 하면서 공격이나 하고 앉아 있어도 되는 것입니까? 세계 복음화를 위해서는 교세를 확장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전 6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서 예언해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본문 31절과 32절을 보면 '그리하면 온 유다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9장을 기록하는 그 당시 벌써 유다와 갈릴리와 사마리아까지 교회가 세워졌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설명을 해 드리겠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는 고구마처럼 길쭉합니다. 남쪽을 유다라 하고 북쪽을 갈릴리라 하고 중부 지방을 사마리아라고 합니다. 유다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날마다 수가 더 하여 가더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미약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32절을 보면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을 두루 다니다가 룻다라고 하는 곳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사방에 무엇을 하러 다녔습니까? 예를 들면 예루살렘을 비롯해서 유다 지방에 가서 전도 집회를 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겠다고 많이 몰려옵니다. 사마리아 지방에 가서 전도 집회를 하면 사람들이 많이 몰려옵니다. 갈릴리 지방에 가서 전도 집회를 하면 역시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서 믿었습니다. 교세가 점점 확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전도 집회를 하러 다녔고 순회 전도를 하러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룻다까지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베드로가 가만히 앉아서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까? 식은 밥을 먹고 앉아 있었습니까? 눈코 뜰 사이 없이 전국을 순회하면서 하나님의 교회의 교세 확장을 위해서 장막을 넓게 폈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그 말씀에 의지하여 점점 교세를 확장하고 터를 넓혀 갔습니다. 이를 위해서 베드로가 그렇게 활동했다는 내용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렇게 광성교회 교세를 자꾸 넓혀가야 하겠습니다. 즉 교구를 넓혀가고 지역을 넓혀가고 교세를 넓혀 가는데 전 세계로 넓혀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가정의 복음화가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출발은 가정에서부터입니다.

  제가 먼저 시무하던 교회에 홍순용 집사라고 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 분이 결혼하여 부인과 함께 아들 딸 낳고 잘 살면서 열심히 장사를 했습니다. 주일 낮 시간과 저녁 시간은 말 할 것도 없고 수요일날 저녁까지라도 문을 닫고 예배드리러 나왔습니다. 남포동 거리 좋은 자리에서 장사를 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 때 그 교회에 부임했더니 환갑이 넘은 담임 목사님이 계셨는데 저에게 전부 심방을 맡겼습니다.
  집집마다 심방을 하다가 그 홍집사님 집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가정의 형편을 듣고 싶어서 물어 보았더니 홍집사 자신은 본래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인되는 여자 아가씨만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어느 곳에 가다 보니 그 아가씨가 괜찮아서 점을 찍었답니다. 그리고는 그 아가씨를 좇아 다녔습니다. 너무 좇아 다니기에 그 아가씨가 만나주었습니다. 만나 보았더니 '예수'의 '예'자도 모르는 생짜였습니다. 그러니 아가씨가 상대하려고 하겠습니까? 그래도 자꾸 추근거리고 따라오기에 "당신이 나를 만나려거든 반드시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십시오"라고 하였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것을 못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홍씨 총각이 열심히 교회에 나왔습니다. 한 달을 나오고 두 달을 나오고 석 달을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자꾸 부모에게 가서 인사를 하고 약혼식을 하자고 하였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약혼식을 하던 때였습니다. 그러자 이 아가씨가 "턱도 없는 소리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6개월을 나와서 학습을 받아야 하고 또 다시 6개월을 나와서 세례를 받은 후 우리 교회 목사님께 주례를 받아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홍씨 총각이 열심히 나와서 학습을 받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목사님께 허락을 받고 목사님 주례 하에 결혼을 했습니다.
  그쯤 되다 보니 처음에는 교회를 전혀 몰랐다가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믿음에 대해서 강아지가 눈을 뜨듯이 눈이 떠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재미가 붙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열심히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일에는 가게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수요일에는 일찍 문을 닫고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다가 교회와 좀 먼 곳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리고는 가까운 교회에 나갔습니다. 나중에 만나서 들어보았더니 그 분이 그 교회에서 장로가 되어서 그렇게 모범적으로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의 '예'자도 모르던 생짜 집안에 아가씨 하나가 들어가더니 남편을 예수 믿게 하고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를 모시고 나왔습니다. 시형들과 시누들을 다 모시고 나왔습니다. 완전히 그 집안을 복음화 시켰습니다. 이렇게 내 가정을 복음화 시켜 나가다 보면 교회 장막 터가 넓어지고 세계를 향해서 교세를 뻗어 나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내 가정부터 시작하여 내 동네, 우리나라와 민족의 복음화 그리고 세계의 복음화를 위해서 장막을 넓혀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생동하는 교회입니다. 즉 세계를 향하여 교세를 넓혀가는 생동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둘째, 치유하는 교회 (33-34)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행한 사역은 세 가지입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신 교육과 복음을 전파한 전도와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신 치유입니다. 이 세 가지 사역은 오늘의 교회도 해야만 하는 사역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중에서 치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치유하는 교회'는 '고쳐주는 교회'라는 말입니다. 교회는 고쳐 주는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에 나아갔다가 자꾸 병이 들면 큰 변이 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에 누가 나오겠습니까? 우리 교회만 나왔다 하면 병 고침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즉 고쳐주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육신의 병 고침을 받는다고 못박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병원에 가서 고칠 병은 병원에 가서 고치십시오. 그러나 병원에서도 못 고친다고 하는 하나님만 고칠 수 있는 병이라면 나와서 금식도 하시고 철야도 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질병 속에 있을 것입니다. 그 뜻이 이루어지게 되면 죽어 죽어 하던 사람도 살아나는 기적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 전부 살아난다는 것은 아닙니다.
  육신의 병만 병입니까? 정신적으로 잘못되어 삐딱한 정신병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즉 정신은 온전한 것 같은데 삐딱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정신에 이상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마음이 병든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또 믿음이 병든 사람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인격이 병든 사람 역시 많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병든 가정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우리 교회에 나왔다 하면 믿음이 고침을 받아 바로 믿고, 정신적으로 잘 못 되었던 것이 고침 받아 바로 되고, 인격이 병들었던 사람들이 고침을 받고, 생활이 병들었던 남편이 고침을 받고 바람을 피우고 엉뚱한 짓을 하던 그 생활이 변화되고 고침 받는 것이 얼마나 복됩니까? 이처럼 고쳐 주는 교회가 역시 복된 교회입니다. 이런 교회가 바로 치유하는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룻다에 있는 교회가 바로 치유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 나왔다 하면 모든 병이 고침을 받고 온전한 인격, 온전한 신앙, 온전한 생활, 온전한 가정을 이루는 치유하는 교회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33절에서 34절을 보면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가 중풍병으로 상위에 누운지 팔년이라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이스라엘 전국을 순회 전도 한 다음에 룻다에 왔습니다. 룻다에 와 보니 8년 동안 중풍병을 앓고 있는 애니아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중풍병은 뇌로 올라가는 동맥의 핏줄이 막히는 병으로 뇌가 죽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반쪽이 죽어져서 쓰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일어나 앉히면 겨우 앉고 눕히면 눕는 것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고통과 불편은 말 할 것도 없고 시중을 들어주는 온 가족이 함께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룻다에는 이런 불행한 사람, 이런 불행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사정을 알고 그 가정을 찾아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온전해졌고 병 고침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고칠 수 있는 병은 병원에서 고치면 되지만 중풍병은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는 병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가정에도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는 병은 예수님이 고쳐주셔서 여러분들 가정에 우환이 떠나고 건강해지고 기쁨이 충만해 지고 웃음꽃이 만발하기를 바랍니다.

  천호동 가까이 큰 병원에 원목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분이 엊그제 찾아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목사님 생전에 이런 일은 처음 당해보았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인데요?" "제가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났었습니다" 자기는 병원 원목으로 오기 전에 큰 교회에만 있었기 까닭에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 본 일도 귀신을 좇아낸 일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날 경우 겁이 먼저 납니다. 그래서 귀신들린 사람이 석달 넉달 동안 잠을 한잠도 못 잤다고 합니다. 눈이 시뻘개져서 길길이 뛰고 의사들에게 달려들고 힘은 장사였습니다. 결국 큰 골칫거리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에게 배당이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간절히 기도를 했는지 모른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귀신을 좇아내지 못하면 무능한 목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생결단을 하고 기도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귀신이 나갔습니다. 예수의 이름 앞에 악신은 아무리 악해도 감당하지 못하고 나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환자가 이틀이고 삼일이고 푹 자더라는 것입니다. 자고 일어났는데 그렇게 정신이 깨끗해지고 온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전도가 잘 되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귀도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그 놈의 마귀가 가만히 내버려두었으면 그 사람 본인도 예수님을 안 믿고 다른 사람도 예수님을 안 믿었을 텐데 공연히 그 사람을 미치게 하는 바람에 그 목사님이 귀신을 좇아냄으로 말미암아 그 본인도 믿고 보는 사람도 믿게 되었습니다. 결국은 마귀도 하나님의 일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도 사람을 망쳐 놓고 못살게 구는 것 같고 한 때는 자기가 승리하는 것 같지만 주님이 능력으로 역사 하실 때 마귀의 궤계는 박살이 나고 억눌렸던 사람이 자유를 얻고 그것을 보는 사람마다 믿고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승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마귀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기만 하면 귀신 병에 들렸든지, 정신이 잘 못되었든지, 인격이 병들었든지, 믿음이 병들었든지, 가정이 병들었든지, 생활이 병들었든지 고쳐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 믿음 생활을 한다면 전부 고침을 받아 온전한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치유하는 교회가 생동하는 교회입니다.

  셋째, 보여주는 교회 (35-)

  바울 사도가 고린도인들에게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였습니다. 편지를 보면 편지의 주인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편지는 편지를 쓴 사람을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편지가 되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35절을 보면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룻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애니아의 중풍병을 고쳤습니다. 그런데 가까운 이웃에 소읍이 있었는데 사론입니다. 소문이 그곳까지  퍼져서 그 곳 사람들이 룻다까지 와서 애니아를 보았습니다. 애니아를 본 후 그들은 전부 주님께 돌아갔습니다. 왜 애니아를 본 사람마다 예수님을 찾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애니아가 예수님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석가모니를 보여 주면 안됩니다. 공자를 보여 주면 안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보여 주고 예수님을 나타내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렇게 8년 동안 죽어 죽어 하던, 모든 사람들이 볼 때는 소망 없이 저렇게 고통 당하다가 저렇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애니아가 예수님의 이름을 당장 일어나 펄펄 뛰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사람들은 애니아를 통해서 예수님의 능력을 본 것입니다. 애니아에게서 예수님의 축복을 본 것입니다. 애니아에게서 예수님의 사랑을 본 것입니다. 애니아에게서 예수님이 나타나셨기 까닭에 애니아를 보았다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님을 따라 가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우리를 보는 사람마다 예수님을 믿어야 되겠다 할 만큼 예수님을 보여 주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보여주는 교회가 생동하는 교회입니다.

  프랜시스라고 하는 성자가 있습니다. 아시스의 성자로서 별명이 작은 예수입니다. 이 사람은 본래 큰 부잣집의 아들입니다.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는 거지들과 약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네들에게 복음을 열심히 전하고 그네들과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그네들을 위해서 봉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은 예수라는 소문이 났습니다. 한번은 성프랜시스가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 중에 제자들에게 "오늘 전도하러 나가자"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오늘 선생님과 함께 전도하러 나간다"라고 하면서 좋아했습니다.

  이어서 출발했는데 아시스 거리를 계속 지나갔습니다. 전도를 하러 나갔으면 "예수 믿으십시오"라고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시내를 한바퀴 돌고 난 후에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제자들이 이상해서 "선생님, 왜 전도를 안 하십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내가 전도를 했는데" "아니 언제 전도를 했습니까?"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예수님을 안 믿을 사람이면 우리가 말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야"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예수를 보여 주는 것이 없다면 말한다고 믿느냐 라는 뜻입니다. 우리들의 말, 우리들의 생활, 우리들의 인격 전부가 예수님을 나타내야 합니다. "예수님이 저렇게 좋은가? 예수님을 믿으면 저렇게 되는가? 그러면 나도 믿자"라고 해야지 말만 잘한다고 믿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여주는 것이 얼마나 큰 전도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말로 전도해서 많은 사람들로 예수님을 믿게 하면 좋습니다. 그러나 보다 더 좋은 것은 우리들의 생활을 보고 우리들의 인격을 보고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더욱 좋은 일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보여주는 교회가 생동하는 교회입니다.

  결론을 지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생동하는 교회는 첫째 복음을 가지고 세계를 향해서 넓혀 가는 교회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들고 세계로 교세를 넓혀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둘째 치유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 나왔다가 병들면 어떻게 합니까? 나왔다가 믿음이 병들어서 세상으로 떠나가 버리고, 생활이 온전하던 사람이 우리 교회에 와서 생활이 엉망이 되어서 사치하고 병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신적으로 바르게 되었던 사람이 삐딱해 지면 어떻게 합니까? 광성교회에 나왔다고 하면 이런 모든 사람들이 전부 치료를 받고 온전한 자가 되는 치유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치유하는 교회가 생동하는 교회입니다. 셋째 보여주는 교회입니다. 즉 예수님을 보여 주는 교회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 주고, 예수님의 축복을 보여 주고,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보여주는 교회가 생동하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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