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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가? / 행 2: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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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가?
본 문 : 행 2:21~24
설 교 : 이희재 목사 (예함교회)

 
전도를 하다 보면 불신자들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왜, 예수님만 꼭 믿어야 합니까? 다른 종교도 있는데 아무 종교나 믿으면 될 것 아닙니까? 어느 종교라도 잘 믿어 선하고 착하게 살면 다 천국이나 극락에 가지 않겠습니까? 하는 이런 질문들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종교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목적이니 내 마음이 편한 것을 선택해서 신앙생활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예수를 믿다가 타 종교로 개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한번뿐인데 죽고 나면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 죽음후의 세계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그냥 인생을 멋지게 마음대로 살다가 죽겠다고 말을 합니다.

여러분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까?

다른 종교처럼 일년에 한번만 찾아가도 되는 좀더 편한 종교생활을 두고 왜? 굳이 매 주일마다 예배드리고 수요예배, 구역예배, 철야예배, 매일마다 새벽예배를 드려야 하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까?

저는 이 시간 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여러분에게 말씀을 해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에덴에 동산을 만드신 후 흙으로 자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으신 다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어 하나님을 반역하여 땅으로 쫓겨나게 되면서 들어온 가시와 엉겅퀴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미움입니다. 자기자신을 미워하고 형제를 미워하고 이웃이 이웃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마귀가 인간에게 심어준 가장 파괴적인 무기가 미움인 것입니다. 때문에 아담의 첫째 아들 가인이 둘째 아들 아벨을 밭에서 돌로 쳐죽여 이 땅이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미움의 결과는 인간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미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체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서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는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몸 찢고 피 흘린 대속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지은 죄, 사람 앞에 지은 죄, 알면서 지은 죄 부지 중에 지은 모든 죄까지도 친히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심으로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원수 된 담을 다 헐어 버리시고 하나님과 우리에게 사랑으로 하나 되게 만들어 주셨으며

뿐만 아니라 우리의 병과 연약함을 대신 짊어 지심으로 질병으로 고통 당하는 우리에게 치료를 베푸시고 슬픔대신 기쁨을 주신 사랑을 우리는 기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를 통해서 우리 모든 저주를 짊어지게 하시고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총과 형통의 축복을 주신 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해 보십시요.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어 장사 된 바 되고 사흘 만에 부활 하심으로 사망과 음부를 제하시고 천국 가는 문을 환히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 속에 바로 받아들이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소설 속에서 그리고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드라마를 구성하는 사랑의 한 장면이 아닙니다. 현재 고통 당하고 미움이 꽉 들어찬 세상에 사는 우리들이 예수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우리 생애 속에 체험할 수 있는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를 점령하고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또한 우리 가운데에 부어 주신것입니다. 로마서 5장 5절에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것을 우리 마음속에 성령으로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것을 깨닫고 나면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기를 미워하고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것 같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 불만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자신에게 대하여 만족함을 느끼시는 분이 있습니까?

자기의 얼굴 모습을 미워하는 사람도 있고 몸매가 아름답지 못해서 자신의 몸매를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모난 성격을 미워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운명과 삶에 대해서 심한 좌절과 절망감을 가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용납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이 세상에 불만이 꽉 들어차고 슬픔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나면 /그 사랑 속에서 내 자신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시니 나도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에베소서 5장 1절 2절에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만 사랑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로 3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주님은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웃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사업의 실패로 인해 자기 자신의 능력을 한탄하고 낙심하고 절망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 보고 여보시요, 이웃을 사랑하세요. 그러면 그러죠! 나는 비록 절망에 처해 있지만 이웃을 사랑하겠습니다. 라고 말을 할까요? 웃기네 너나 많이 사랑해!라고 고함을 칠 것입니다. 지금 자기자신이 미워서 절망하는 마음이 가득 차 있는 사람에게 이웃을 네몸 같이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다면 그가 이웃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났기에 나를 사랑하고 내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때에 이웃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죄를 짖고 버림받아야 하며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인 내가 하나님께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되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내가 이웃을 사랑해 주어야 하고 이웃을 용서해 주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한번은 주님 앞에 모세의 제자인 바리새 교인이나 사두개 교인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여자를 잡아와서 그를 공격하고 돌로 쳐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을 향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 죄를 짓지 않는 의인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들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비난하고 공격하고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는/ 내가 더 큰 죄인이요. 내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있는 티끌만 자꾸 보고 흉을 보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우리는 생각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요한1서 4장 20절로 21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32절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왜? 예수를 믿어야 합니까?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났기에 / 자기 자신을 스스로 미워하는 것을 극복하고/ 이웃을 미워하는 것을 극복하고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으로 이 세계를 사람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주며 /행복이 넘치는 세계를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은 흔히 말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의식이나 형식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사랑의 역사를 말한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를 믿어야 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지으셨고 또 소유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내 생명도 나의 현재와 미래도 내 것이 아니라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시편 89편 11절에 "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 2장 6절로 7절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 세상의 주관자시요 주인이시며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존재임을 알지 못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축복을 받으며 살고 있으면서도 축복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모르고 산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 몸도 내 것이요 내 인생도 내 것이며 지금 내가 가진 재물도 지식도 명예도 권세도 자기의 능력으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서 보게 되면 내 생명도 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것이며, 운명도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기의 일상적인 삶과 직장도 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위대한 축복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창12:1-2)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 "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복의 근원으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시고 사역 전체를 통해서 복 주셨습니다. 

막10:13-16절에서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6) 그 어린 아이들을 안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

예수님은 성인들에게만 제한하지 않고 어린이들까지도 축복 셨습니다.

그리고 눅 24:50절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시 제자들에게 축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

이처럼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축복의 성취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성령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는 것입니다. 모든 축복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모든 축복의 주인은 하나님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어서 많은 물질을 소유한 부자로 사는 것도 아니요, 내가 잘나서 이세상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셨기에 이땅에 살면서 행복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에 대하여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축복의 약속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자를 축복 안으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된 축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받았기에 이 땅의 모든 민족들에게 나눠주어야 합니다.

갈4:8-14절에서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하려 함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으심으로 율법의 모든 저주를 스스로 대신하여 단번에 받으심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는다고 말씀 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축복 받은 우리는 이 땅의 모든 민족에게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축복을 나누어 주는 데에는 쉽지 만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축복을 전해주다가/ 원수들의 저주, 핍박, 욕설 또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짐승에게 찢겨죽는 아픔을 격어야 했습니다. 꺼꾸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방아에 찌어져 죽어야 했습니다. 사지가 찢겨서 죽음을 맞았으며, 기름에 튀겨서 죽어갔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초대교인들은 카타콤의 동굴에서 400년 동안이나 숨어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저주와 반대되는 축복으로 대하라는 권고를 합니다.

(벧전3:9) "악을 악으로,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 

왜냐하면 갈3:13절의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저주를 받으시고 우리에게 속량의 축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기독교인들은 무조건적으로 축복만 있을 뿐입니다. 교회와 성도들은 더 이상 아무도 저주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위에서 모든 저주와 가난과 고통을 제하시고 우리에게 축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왜 예수를 믿어야 합니까? 하나님이 기쁜 마음으로 마음껏 축복하시는 축복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살기 위함이며 /그리고 그 축복을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을 통해야 만이 꿈이 이루어 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내일에 대한 꿈이 없다면 우리가 얼마나 절망적인 삶을 살겠습니까? 가장이 꿈을 잃어 버린 가정은 행복 할 리가 없습니다. 한 개인인 꿈을 잃어버렸다면 그 개인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가정과 민족과 국가는 희망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오늘 우리는 월드컵이라는 축구 경기를 통해 한민족이 한마음으로 응원을 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승리에 대한 꿈이 있고 소망이 있기 때문에 밤잠을 설쳐가면서까지 400만이 넘는 사람이 거리에 뛰쳐나와 붉은 색의 옷을 입고 목소리가 터져야 필~승 코리아를 외쳐 대면서 응원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가장 우리 사회와 가정과 개인에게 다가오는 큰 두려움은 내일에 대한 꿈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IMF때 대기업들은 희망을 잃고 이 나라 보다는 사업하지 좋은 나라를 찾아서 모든 사업장을 옮겨 갔습니다.  중소기업은 더러운 것, 힘든 것, 위험한 일에는 일하려고 하지 않는 3D현상으로 인건비가 싼 나라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2년 생활이 어려워 생활보호대상자로 선정된 사람이 모두 155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아직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이 무수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난한 외국나라 사람들이 코리아 드림을 품고 한국으로 몰려 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대학생이 카드로 차량을 사서 그 할부금을 값지 못해 연체가 천오백만원에 이르자 군부대 총기 탈취하여 은행강도 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심각한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꿈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는데도 대책은 전무한 실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에는 꿈을 잃은 백성은 망한다고 말하는데 이 민족에 진정한 꿈을 심어줄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정치가나 지도자는 이 민족에게 꿈을 심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민족에게 꿈을 심어줄 민족의 지도자나 정치가가 어디를 보아도 찾기 힘듭니다.

오히려 권력을 얻으려고 눈이 혈안이 되어서 서로 시기하고 당리 당약을 일삼고 있습니다. 전대통령의 아들은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수백억의 돈을 리베이트로 챙겨 법정에서 수치를 당하고도 시간이 지나자 또다시 권력을 쥐어 보자고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당에서는 전대통령의 아들을 공천하자니 국민의 눈이 두렵고 또 공천하지 말자니 전대동령에 대한 면목도 있고 해서 좌불안석입니다. 결국은 무소속으로 출마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정치는 이런데 이런 곳에서 어떻게 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꿈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오직 갈보리산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밖에 꿈을 얻을 수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인이 용서 받은 의인이 될 수 있는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소외당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는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 병들고 슬프고 고통 당하는 자를 치료와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가난하고 굶주리고 낭패와 실망을 당한 자들이 축복을 받고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꿈을 심어 주었습니다. 심지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까지라도 믿기만 하면 영생 천국을 얻을 수 있는 꿈을 심어준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그리스도가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기 때문에 예수 안에서 우리는 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꿈을 얻어/ 이 현실적인 생활에 눈으로 볼 수는 없고 귀로는 들을 수 손에는 잡히는 것 없을지라도/ 내일을 향하여 창조적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고 말했습니다. 희망이 사라지는 것, 꿈이 사라져 버려 실낱같은 가능성도 붙들 수 없는 상황은 말 그대로 절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절망의 가슴속에 심어줄 수 있는 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꿈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속에 품으면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우리들은 꿈을 얻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가지고 우리가 나아갈 때에 운명을 변화시키는 기적을 창조해 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이 꿈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시편 146편 5절에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 어떤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꿈은 무엇입니까? 2011년 안에 사랑실천- (실버타운 설립) 선교사 (매년20명 파송) 1000명 수용하는 (성전건축)  일만이 모이는 예함교회

이 꿈은 말씀을 통해 마음속에 이루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믿음으로 기도하면 전지 전능한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 우리 교회가운데/ 능력의 손을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꿈을 주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주사 믿음으로 살게 만들어 주심으로 /우리는 어떠한 역경과 환경도 이겨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예수를 믿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넷째로, 예수님 만이 영생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능력을 소유하였다고 할지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음입니다. 권력을 손에 쥔 권력가도 물질은 많이 소유한 부자나 가난한 자도/ 지식이 있는 자나 없는 자나 모두다 가야 하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톨스토이가 인생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큰 광야에서 강풍이 불어오는데 뒤를 돌아보니 그 강풍 뒤에 거대한 들소들이 뿔을 세워서 공격을 해 옵니다. 그것을 보고 놀라서 한 사람이 달아납니다. 들소가 뿔을 치켜들고 그 사람을 곧 찔러 죽이려고 할 때 마침 마른 우물이 있어서 뛰어 들었습니다. 그 우물 중간에 나와 있는 나무 가지에 걸터앉았습니다. 위에는 코에 김을 품으며 땅을 파헤치는 들소가 내려다보고 있고, 그는 밑을 내려다보니 우물 밑에는 독사가 바글바글 합니다. 떨어지면 틀림없이 독사에게 물려 죽습니다. 그런데 그 나무에 걸터앉아서 그 나무 뿌리를 보니까 나무 뿌리를 새앙쥐들이 와서 갉아먹고 있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서 나무가 꺽어질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무에 보니 잎사귀에 꿀벌들이 와서 꿀을 처 놓았어요. 그래서 나무 잎사귀를 따 먹으면서 꿀을 핥으면서 '아 맛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위를 처다 보아도 죽음이 있고 밑을 내려다보아도 절망이 있습니다. 현재의 삶은 언제 부러질지 모릅니다. 그런데 찰나의 시간을 나무 잎사귀에 있는 꿀을 빨아먹고 즐거워하고 있는 이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너희 인생이 무엇이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안개니라. 모든 사람은 풀과 같고 그 영화는 풀의 꽃과 같고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인간은 피할 수 없이 죽음의 공격을 받고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죽음을 무력화 시켜버린 것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으로 오셔서 완전한 하나님이 완전한 사람으로 와서 우리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사망도 음부도 멸하시고 삼일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죽음을 이기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 천국 가시기 전에 말씀하기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네가 일렀으리라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할 것이니 내가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죽음을 무력화시키고 사망의 세력을 철폐한 분이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온갖 더러운 귀신들이 이 민족과 개인 속에서 역사하기 때문에 서로 미워하고 비방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보는 우리를 희망을 잃어버리게 하고 절망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밀림지대에 파견된 어느 병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소속되어 있던 부대는 밀림 한가운데서 적들에게 포위당해서 그 병사만 살고 전멸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모두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6개월 뒤 그 병사는 홀홀 단신으로 밀림을 헤쳐 나와 구조되었습니다. 그를 발견했던 사람들은 그가 손에 꼭 쥐고 있던 지도를 보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그는 밀림의 지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살아난 거야!"

하지만 그가 펼쳐보인 종이에는 밀림의 지도가 아닌 영국의 지하철 지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의 지하철 지도를 보면서 살아서 조국에, 그리던 영국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되새기면서 그 위험한 밀림을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민족과 우리 개인과 가정이 참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 속에 미움 대신에 사랑이 넘쳐 나게 되/ 하나님의 참된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내일에 대한 꿈과 믿음이 넘쳐 나서/ 우리의 궁극적 소원인 영원한 영생천국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문에 예수를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소망이요 예수님만이 살 길인 것입니다. 예수 없이 사는 모든 것이 다 헛된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예수님을 바로 믿고/ 이 예수 그리스도를 온 천하에 전파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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