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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자연 사랑 / 눅 10:2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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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자연 사랑”  (2003.1.5)
본 문 :  눅10:25-28
설 교 :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우리는 새해를 맞을 때마다 새해의 소원과 목표를 세우곤 합니다. 저는 10년 전인 1992년 새해를 맞으면서 새해의 소원과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정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하나님께 드리며, 이웃에게 가까이 이웃과 나누며.” 저는 새해를 맞을 때마다 이 소원과 목표를 되새기곤 합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 목표를 정해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자연 사랑”입니다. 저는 지난 주일 성 프랜시스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마음에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실 저는 최근 사도 요한에 대한 설교와 송명희 시인에 대한 설교와 성 프랜시스에 대한 설교와 한경직 목사님에 대한 강연을 하면서 마음에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그분들을 바라보면서 처절한 부끄러움을 느끼면서도 그분들을 본 받고 싶고 따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받곤 했습니다. 그분들을 바라보며 그분들처럼 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의 삶은 한 마디로 사랑의 삶이었습니다. 특히 성 프랜시스는 예수 사랑에 미친 사람이었고, 이웃 사랑에 미친 사람이었고, 자연 사랑에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탄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우리 주님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것을 두 가지로 나누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했고 그것을 다시 세 가지로 나누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자연 사랑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사랑하라 이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22:37-40).

사랑은 생명의 시작이고 중심이고 마감입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명은 사랑에서 시작하고 사랑으로 만들어지고 사랑으로 마감합니다. 사랑은 생명의 색깔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색깔도 사랑이고 예수님의 생명의 색깔도 사랑입니다. 세상을 위해서 자기 아들을 버리신 버림의 사랑이 하나님의 생명의 색깔이고, 양들을 위해서 자기 생명을 버리신 죽음의 사랑이 예수님의 생명의 색깔입니다. 진한 피로 물든 사랑의 색깔이 바로 예수님의 생명의 색깔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산 사람들의 생명의 색깔도 사랑입니다. 사랑은 생명의 색깔입니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생명은 사랑을 받으므로 만들어지고 사랑을 하므로 자라게 됩니다. 결국 사람은 사랑하므로 아름다워지고 사랑하므로 행복해집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므로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금년도 저의 삶의 목표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자연 사랑”으로 정하고 싶습니다. 우리 강변교회 성도들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자연 사랑”을 새해의 삶의 목표로 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 사랑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 사랑에 빠져서 살았고 성 프랜시스도 예수님 사랑에 빠져서 살았고 송명희 시인도 예수님 사랑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송명희 시인은 온 몸과 영혼으로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싶어라 내 마음 다하여 모든 것 다하여 그 무엇보다 더 그 누구보다 더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녹기까지 사랑하고 싶어라.” 그리고 하루에 다섯 시간씩 기도에 파묻혔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온 몸과 영혼을 다해 주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는 때로 밤을 새워가며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이렇게 기도하곤 했습니다. “오, 나의 하나님, 오, 나의 하나님!” 다른 말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때로는 “오, 나의 전부여!”라고 속삭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말년은 주님과의 깊은 기도와 교제에 빠진 삶이었고 주님을 너무나 닮고 싶은 사랑의 삶이었습니다. 주님의 아픔과 고통까지 몸에 지니기를 간절히 소원했습니다. 주님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처럼 몸에 십자가의 흔적을 지니고 2년 동안 고통 중에 살다가 주님처럼 벌거벗은 몸으로 수치스럽게 죽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주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이른 새벽 한 시간 주님께 기도 하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고 싫어합니다. 세상과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새해에는 주님을 보다 뜨겁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이고 싶습니다. 주님 사랑에 빠지고 싶습니다. “네가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시는 주님의 질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주님을 조금이라도 더 닮고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생명도 빛나고 아름답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둘째 이웃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이웃 사랑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사도 요한도 성 프랜시스도 한경직 목사님도 이웃 사랑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성 프랜시스는 모든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그의 사랑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물론 산적 같은 흉악한 자들에게도,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아니 이단들에게도 미쳤습니다. 그는 발악하며 대드는 문둥병자를 향해서도 “사랑하는 나의 형제여!”라고 부르며 그를 사랑으로 품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도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품으면서 살았습니다. 자기를 핍박하던 일본 사람들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었고 자기를 미워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용서와 사랑으로 품었고 포악한 독재자들에게도 긍휼과 자비의 모습을 나타내 보였고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온유와 친절과 사랑을 베풀면서 살았습니다. 그의 가슴 속에 하나님의 긍휼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과 종교와 정치적 이념을 초월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의 사랑에 감복하고 그를 생각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신현균 목사는 그를 “뵙기만 해도 감격의 눈물이 볼을 적시게 하는 분”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이웃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너무나 사랑하지 못합니다. 아니 나와 다른 문화권에서 사는 불행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정죄까지 합니다. 새해에는 이웃을 보다 뜨겁게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웃 사랑에 빠지고 싶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를 하신 다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명령에 “주님, 제가 가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저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고통과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런 소원을 가지고 지난 화요일과 어제 토요일 오후 외국인 노동자의 집과 내국인 노숙자의 집을 찾아가서 쌀과 고추장과 고기와 김치와 떡과 한과 등을 전하고 격려했지만 임명희 목사님 부부나 김해성 목사님과 이선희 전도사님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부족하고 너무 부끄러운 것뿐입니다. 우리가 이웃 사랑을 힘쓰면 우리들의 생명도 빛나고 아름답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셋째 자연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우리 개신교는 그 동안 자연 사랑에 대해서 너무 등한시 했습니다. 너무나 나 자신만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 만을 너무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좀 이기적이 되었습니다. 로마 캐톨릭 전통에는 자연 사랑이 깃들 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된 전통이 아닙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와 사랑의 손길이 나타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만 사랑하시지 않고 자연 만물을 세밀하게 섭리하시며 사랑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들의 각 짐승에게 마시우시니 들 나귀들도 해갈하며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시104:10-15).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자연 만물과 사람에게 골고루 임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먹이시고 입히실 뿐 아니라 공중의 새들도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입히신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사랑하십니다. 구약 성경은 자연의 위치를 매우 높게 자리매김했습니다. 자연을 마치 사람들처럼 말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사람들과 함께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는 살아있는 존재들로 묘사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시19:14).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찌어다.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찌어다.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광풍이며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목과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과 방백이여 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시148:3-13). 성 프랜시스의 사랑은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미쳤습니다. 프랜시스는 온갖 짐승들과 새들을 향해 형제 자매라고 불렀고 해와 달과 별들까지도 형제와 자매라고 부르며 그들을 향해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설교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자연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연을 학대하고 파괴하고 있습니다. 동물과 식물을 아프게 하고 공기와 물과 흙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만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새해에는 자연을 부드럽게 보살피고 사랑하고 싶습니다. 물을 사랑하고 공기를 사랑하고 동물과 식물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요나단 에드워즈처럼 윌리암 워즈워스처럼 나도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며 자연과 더불어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자연 사랑을 힘쓰면 힘쓸수록 우리들의 생명도 빛나고 아름답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자연 사랑에 빠지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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