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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한대로 갚으리라 / 마 16: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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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마태복음 16:21-28
말씀: 행한대로 갚으리라
설교: 윤성진 목사 (부산영락교회)


어느 교회의 목사님께서 병이 들어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온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목사님 살려주세요, 우리 목사님 건강케 해 주세요” 하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너희 목사님 살려 주겠다, 그런데 너희들의 생명을 얼마씩 모아서 모아지는 것 만큼 살게 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자기의 남은 생명 중에서 얼마만큼을 떼어 주어야 된다고 하니까 아무도 자기의 생명을 떼어 줄 마음이 없어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한 교인이 “제 생명 중의 5분을 떼어서 목사님에게 드리겠습니다”. 또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또 한 사람이 “저는 10분을 떼어서 드리겠습니다” 모두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몇 분씩 드리겠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저는 10년을 드리겠습니다” 고 합니다.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자기의 귀한 생명을 10년이나 되는 긴 세월을 목사님에게 드리려고 하는가하여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물으니까 그 사람이 머리를 긁으면서 “제 아내의 생명입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나누어 줄 수도 없지만 우리에게 있는 생명을 남에게 떼어 준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은 생명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돈이 귀합니다, 명예가 귀합니다, 지식이 귀합니다, 별별 것이 귀하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만 제일 귀한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이 있고서야 물질이 소용이 있고 생명이 있고서야 권세가 있는 것이며, 생명이 있어야만 지식이 지식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지 생명이 없으면 다 소용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사람의 생명이 제일 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

이 세상에 생명만큼 귀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을 주고 우리의 생명과 바꾸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귀한 생명을 주님을 위하여 드릴 때, 25절에 보면 <찾게 된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24절과 25절 26절 27절을 보면 한절 한절이 독립되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 말씀을 살펴보면 전부 연결이 되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하면 십자가를 지고 쫓아야 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말은 죽는다는 말입니다. 25절에 보면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제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육신의 생명을 잃어버릴 각오를 하면 <제 목숨을 찾는다>고 했는데 이 생명은 곧 영원한 생명이요 하늘의 상급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6절에 보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가장 귀한 것이 목숨이지만 그러나 27절에 보면 이 목숨을 제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주님 따라가기 위해서 바쳤던 사람들은 나중에 그 행한 대로 주님께서 일일이 갚아주시겠다고 연결되어 있는 말씀으로 27절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했습니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올 때가 언제입니까? 그것은 바로 재림의 때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서 육신의 생명을 드리면 더 귀한 것, 더 가치있는 것, 더 영원한 생명을 찾게 될 것인데 주님께서 재림하여 오시는 그날 그 생명과 그 상급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세상에서 내 육신의 생명이 가장 귀한 것이지만 그것을 주고서라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영적인 생명이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기업이라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 하늘의 상급이 가장 귀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구원받는데 우리가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졌습니까? 우리가 예수님 오시라고 했습니까? 우리가 구원받는 길을 알았습니까? 구원받는데는 우리가 할 일이 없고 또 일할 수도 없습니다. 내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계획하시고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기로 작정하시고 때가 되어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는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시고 우리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천국가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상급은 행함으로 받습니다. 복음을 전하다보면 농담삼아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 먹지 말라, 하지 말라, 보지 말라, 가지 말라’ 하지 말라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먹을 것 다 먹고, 마실 것 다 마시고, 볼 것 다 보고, 갈곳 다 가고, 할 일 다하고 난 다음에 죽기 전에 예수믿고 천국 가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해서 구원받는다고해도 일생동안 예수믿고 헌신한 사람, 또 생명까지 바친 순교의 삶과 어떻게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같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행한대로 갚아주리라>고 약속했습니다. 많이 행한 사람은 많이 행한 대로, 생명을 바친 사람은 생명을 바친 그 값어치대로 주님께서 다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가 불가운데서 끄집어 낸 것 같은 부끄러운 구원받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서 열심히 노력하고 힘쓰셔서 하늘나라에서 갚아주시는 큰 상급을 받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누가 압니까? 갑작스럽게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죽기 전에 모든 죄 회개하고 예수님 믿겠다는 것은 보장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은 단순히 예수님 믿고 천국이나 가서 살라고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일하라고 구원해 주었습니다. 일하여서 상급받고 하늘나라에서 영광스럽게 살아가라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고 이 땅에서 살게하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구원받아 천국만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예수믿는 대로 바로 천국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아무리 복되게 행복하게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는 그 영광과 그 아름다움에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몰라서 여기에 좀 더 살려고 하지 사실 하나님의 나라를 안다고 하면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에 바로 가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단순히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 아니고 천국에서 영광스럽게 상급 받으면서 하나님앞에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살 동안 하나님의 일을 행하여서 더 많은 하나님의 은총을 천국에서 누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그냥 사는 것으로 만족합니까? 행복하게, 풍요롭게, 더 배우고, 또 권세를 가지고 살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 아닙니까? 자녀들을 학교에 보냅니다. 학교에 가방만 들고 왔다갔다 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공부 잘하여서 상도 받고 칭찬도 받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단순히 천국에만 가서 사는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축복받고 상급받고 더 영광스럽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크로스웨이 성경연구를 하다보면 참 매력적인 그림들과 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행함으로 구원받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그러나 행하기 위하여서 구원받는다”. 다시 말하면 구원받기 위해서 행함이 필요없지만 행하는 사람이 되게하기 위하여서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많은 행함을 통하여서 하나님 나라에서 상급받고 영광스럽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 15절에 보면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심으로 나를 살리신 것은 이제는 나를 위해서 살지 말고 나를 위해서 죽어주신 그 예수님을 위해서 살도록 하기 위하여서 우리를 살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사느냐하면,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일해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급받도록 하기 위해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행함을 통하여서 하나님은 뜻을 이루시고 우리는 상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순교자들은 이 상급을 믿은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상급을 얻기 위하여 가장 귀한 생명마저 바쳤습니다. 하늘의 상급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했던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생명까지 버릴만큼 소중하게 생각하고, 믿고, 보았기 때문에 기꺼이 순교를 했습니다. 하늘상급의 가치를 알고 행하여서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 앞에 영광스럽게 상급받으며 설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갚아주실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 만큼만 알 수 있는데 그 이상 알려고 하면 안됩니다. 예를 들면 가인의 아내가 누구인지, 이런 것들을 자꾸 캐다가 실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인의 아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우리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런 것은 몰라도 괜찮아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게 되는 상급을 다 보게되면 우리에게 돌아올 상급이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보여주지 않고 상급이 있다고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 아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생명을 바치면 하늘나라에서도 가장 가치있는 것으로 갚아주실 줄 믿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가치없는 것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세례요한을 보세요. 세례요한은 이 세상에서 여인이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 라도 저보다 더 크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도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가치없는 것보다 더 가치가 없어요.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가치있는 것은 어떤 것일까 상상해 보면 가슴이 기쁨으로 뛰지 않습니까? 가장 귀한 것으로 상급받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는 행하는 자에게 상급주시는 것을 거듭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상급 주시는 하나님이시고 또 상급주시겠다고 계속해서 약속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예수믿고 천국가면 되지, 상(賞)에 뭐 그렇게 연연하느냐”고 아주 고상한 척 하는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으로 믿어야 되느냐,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의 존재와 그의 속성은 상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상을 기대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그 영광스러운 상급을 바라 볼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편 62편 12절에 보면<주여 인자함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잠언 12장 14절에는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 또 로마서 2장 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한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불의를 쫓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고 환난과 곤고로 하신다> 고 했습니다. 계시록 22장 12절에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장차 하나님 나라에 오는 성도들에게 다 나누어 주려고 하나님의 손에는 상급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 우러러 하늘을 바라볼 때 주님께서 서 계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주님의 모습과 상급을 바라볼 때 너무 기뻐서 사람들이 돌로 자기를 치는 아픔도 잊어버릴만큼 하늘의 상급에 매혹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상급이 이렇게 크고 이렇게 놀랍다는 사실을 늘 생각하고 주님을 위해서 행하는 성도들 되셔서 갚아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더 많은 것을 받을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언제 갚아주십니까?

언제 갚아주십니까?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갚아 주십니다. 순교자들은 순교를 하니까 이 세상에서 받을 수 있는 시간적인 기회가 없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다 받게 됩니다. 그러나 순교자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이 땅에서도 상급을 받습니다. 왜 <이 땅에서>라는 말을 하지 않고 주님께서 오실 때 받는다고 하고 있습니까? 이 세상의 상급은 맛보기 정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백화점이나 큰 마트에 가면 맛보는 음식 있지 않습니까? 음식을 조금 요리해서 맛을 보여주는데 양에 차이가 있지 맛은 판매하려는 상품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장차 우리를 위해서 예비해 놓으신 그 상급은 양도 다르고 맛도 다르고 완전히 다릅니다.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상급을 이야기하지 아니하고 하늘의 상급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상급에 비하면 이 땅에 있는 맛보기의 상, 세상적으로 받는 물질, 건강 등의 상들은 상도 아닙니다.

이 세상은 마치 서론과 서막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있어 어머니 뱃속은 이 세상에 비하면 얼마나 좁고 불편합니까? 그 좁은 뱃속에서 크고 잘 생기고 지능지수가 굉장히 높은 아기로 있다고 한들 뭐가 소용이 있습니까? 이 세상에 나와서 잘 커야 되지, 사산되어 나온다고 하면 어머니 뱃속에서 아무리 건장하고, 아무리 잘생기고, 아무리 IQ가 높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늘나라에 비하면 이 세상은 잠깐입니다. 한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합니다. 서막과 같은 여기서 아무리 잘 살아도 영원한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상급이 없으면 참으로 비참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잠깐 사는 이 세상에서 다소 불편하고 갖출 것을 다 갖추지 못하고 살아도 천국에서 상급받으면 그 사람이 정말로 성공한 자요 행복한 사람인줄 믿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같은 분은 이 세상에서 참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습니다. 고문당하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왜 그같은 고난을 당하고 옥 중에서 순교 당했습니까?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예비된 상급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는 자기의 생명을 아까워하지 아니하고 하늘나라의 상급을 쌓기 위해서 생명을 버렸습니다. ‘5종의 나의 기도’ 라는 설교를 보면 얼마나 애절한지 몰라요. “소나무는 살아있을 때 찍어야 그 가치가 있고 백합화는 아주 한창일 때 꺾어야 그 향기가 있는 것처럼 나도 늙어서 하나님 앞에 내 생명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젊었을 때 이 생명을 주님을 위해서 드리겠습니다. 나에게는 일사각오, 한번 죽는 것 그것만 나에게 있을 뿐입니다“ 하고 일제에 항거하며 신사참배에 반대하여서 생명을 버리지 않습니까?

온갖 처참한 고문을 해도 굴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경찰은 이런 꾀를 내었습니다. 이것 만은 못하겠지 하고 긴 널빤지에 큰 못을 쫙 박아 뒤집어 놓고는 주목사님에게 ‘이 못 위를 걸어가든지 아니면 신사참배를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주목사님은 두 말하지 않고 바지를 걷고 못 위에 올라섰습니다.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영문 밖에 비치누나> 목사님이 지은 찬송을 부르면서 주님가신 길이기 때문에 나도 어찌 못 가겠느냐고 피를 흘리면서 못 위를 걸어갑니다. 여러분들 한번 상상해 보세요. 한쪽 발을 디뎠습니다. 다른 발을 올릴 때 그 체중 때문에 발이 못 가운데로 푹 들어가게 될겁니다. 다른 발을 떼었습니다. 또 이 발을 뗄 때에 그 하중(荷重) 때문에 다른 쪽 발이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발에 못 찔려본 일 있습니까? 하나만 찔려도 빼면 쭉 하고 온 몸이 빨려 나가는 듯한 통증을 느끼는데 못이 수도 없이 박혔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고통이 어떨지 감히 상상이 되지도 않습니다. 주목사님은 그렇게 사력을 다해서 끝까지 갔습니다. 다시 돌아서 오려고 하니까 일본경찰이 깜짝 놀라서 됐다고, 그만 하라고,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많이 맞았던지 혼자서 면회하러 걸어나오지도 못 할만큼 그렇게 맞았습니다. 그렇게 온갖 극악하고 처참한 고문을 다 당하다가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과 이런 어려움을 당했습니까?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면서 이 땅에 있는 이 생명, 잠시있는 이 생명 내가 버리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럽게 설 것임을 믿는 이 믿음이 그를 생명까지 버리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갚아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상급받기 위해서 생명까지 버리는데 나는 무엇을 주님을 위해서 드리고 있습니까? 가장 귀한 생명을 드려서라도 받아야할 상급이 하늘나라에 있는데 우리는 이 상급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헌신하고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생명을 버려서라도 이 상급을 사려고, 이 상급을 얻으려고 하는데 나는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땀과 봉사를 얼마나 아까와하고 있습니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이제 믿음을 지켰으니 나를 위해서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고 있는데 내게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상급이 예비되어 있습니까? 준비되어져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갚아주시는 하나님께 상급받기 위해서 가장 귀한 생명까지 드렸습니다. 우리들도 이 상급을 바라보면서 나의 가장 귀한 것을 주님을 위해서 드리며 살아가는 성도들 되셔서 하늘나라에서 큰 상급받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행하니까 복을 받습니다. 떠나는 것,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 당시에 자기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는 것은 생명을 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떠나는 행함을 행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너의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에도 순종하여 행했습니다. 이것은 주의 종, 즉 목회자를 만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짐승을 잡듯이 각을 떠서 불에 태워서 번제로 드리라고 했는데 어떻게 사람으로서 자기 자식을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너무 감격하셔서 <내가 아브라함에게 반드시 복주며 복주고 번성케 하며 번성케 하리라>고 약속해 주었고 그는 생애 속에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아브라함이 받을 축복이 얼마나 큰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다윗을 보세요.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성전을 짓겠다고 마음만 먹었는데도 하나님은 그 행위를 보시고 <그래, 내가 너의 집 지어주마>하고 그의 왕권을 얼마나 튼튼하게 만들어 주었습니까? 사렙다 여인을 보세요. 흉년 중에 자식하고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했던 그 빵을 만들고 있는데 하나님의 사람이 와서 그 빵을 내게 먼저 달라고 합니다. 그런 무례함이, 그런 몰인정함이 어디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종이 그렇게 말씀하니까 그에게 먼저 드렸습니다. 그 행함을 통하여서 3년 6개월동안 비오지 않는 그 가뭄 속에서 사렙다 여인은 기름병과 가루독이 마르지 않는 기적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를 보세요. <다 버리고 나를 쫓으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을 때 그 말씀을 따라 쫓았을 때 그의 삶이 얼마나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았으며, 또한 하늘나라에서 누릴 그 축복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대로 산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지 한번 살펴보세요.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천대까지 복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아니하는 사람에게 3-4대까지 저주하겠다고 했는데 그 약속이 그대로 다윗의 혈통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재림하여 오시는 그날,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에서 받게 될 그 축복을 바라보면서 행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있는 복은 맛보기에도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참된 복은 하늘나라에 있는 줄 믿고 그 나라를 위해서 늘 노력하고 힘쓰고 애쓰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누가 받습니까?

누가 받습니까? 각 사람이 받는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말이 여러차례 나오고 있는데 그때 그때마다 거의 각 사람이 받는다, 그 행한 사람이 받는다고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행하여서 자녀가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말씀대로 살면 자손 천 대까지 복을 내리고 그렇지 않으면 삼, 사대까지 저주하리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역사서를 보면 다윗에게는 천대까지 복을 주어서 그 후손 속에서 예수님이 태어났습니다. 반대로 여로보암의 집은 삼, 사대 만에 멸절되고 말았습니다. 이 땅에서는 부모님 때문에 복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인이 받는 것에 비하면 부모 때문에 받는 복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각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각 사람이 이 땅에서도 받지만 하늘나라에서 받게 되는데 <각 사람>, 내가 행하면 내가 받고, 부모가 행한 것 내가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행한 것 내가 받는다고 했는데 그것은 하늘나라에서 각 사람이 받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각 사람>이 받는다고 했습니다. 전도서 11장 5절에 <청년이여 네 어릴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대로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고 했습니다. 마음대로 살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충성해도 좋고 안해도 좋다, 악을 행해도 좋고 선을 행해도 좋다, 하나님 앞에서 행해도 좋고 너의 뜻대로 해도 좋다, 믿음대로 살아도 좋고 믿음대로 살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너가 행한대로 심판하실 줄 알라.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주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신앙을 통해서 내가 복받으려고 하지 말고 내가 행하여서 내가 받는 그런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행한 대로 갚아준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행했느냐에 따라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행한 것을 몰라 줄 때도 있습니다. 사원이 하는 일을 사장이 몰라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전지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하는 일들을 다 아십니다. 하늘나라에는 두 가지 책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책>입니다.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는 목록입니다. 또 하나는 <행위의 책>입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한 모든 일들, 말하며 생각하고, 행동한 모든 것을 다 기록해 놓은 책인데 그 책에 따라서 <각 사람>에게 갚아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일한 대로, 충성한 대로, 하나님 말씀을 지킨 대로, 내가 전도한 대로, 기도한 대로, 헌금한 대로, 땀흘린 대로, 봉사한 대로, 시간되는 대로, 달란트 드린 대로, 일일이 갚아주마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얼마나 행했습니까? 그래서 행한 대로 갚아주시면 받을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상급받기 위해서 행하세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복된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을줄을 앎이라>.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세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골라서 하세요. 주님이 맡겨주신 일들은 남에게 미루지 마세요. 주님이 명령하시는 일들은 생명을 걸고 하세요. 그래서 주님앞에 섰을 때에 큰 상급받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이렇게 귀한 것이 생명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생명도 상급얻기 위하여 바치는 것이 지혜로운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원하실 때 생명도, 몸도, 시간도, 재능도, 물질도 주님께 드리는 일을 해서 갚아주시는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큰 상급받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더 영광스럽게 설 수 있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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