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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여 행복자로다 / 빌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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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신명기 33:29, 빌4:4-7
제 목 : 성도여 행복자로다
설 교 : 백장흠 목사 (독립문교회)


  우리는 희망과 새로운 축복을 약속하는 2003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한 해를 어떻게 살려고 계획하셨습니까? 우리교회는 2003년을 “행복한 성도 좋은 교회” 라는 표어를 정하고 한 해를 멋지게 살려고 다짐하여 봅니다. 오늘 주신 본문 신명기33:29절에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라고 하시는 말씀을 드립니다. “독립문 성도여 너는 행복자로다.” 이 말씀을 듣기 전에 여러분 마음에 다짐하고 또 다짐할 게 있습니다.

1) 나는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친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우리의 환경이 광야라도, 산골이라도, 대도시의 빈민이라도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주어졌습니다.

2) 행복은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자신 안에 있다고 하는 겁니다.
내 마음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아동 연구소 소장인 버나드 림랜드는 “가장 행복한 사람들은 남을 돕는 사람들이다.” 라는 사실을 발견하여 보고 하였습니다. 이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은 제 각기 자기가 잘 아는 사람 열명의 명단을 적고 그 명단에 사람들이 행복한지 그렇지 않는지 표시하도록 요청 받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명단을 다시 한번 훑어 보고 각 사람에 대해 이기적인지 않은지를 표시하였습니다. 결과를 분류하면서 림랜드가 발견한 바 ‘행복하다’ 라고 표시된 사람은 한결같이 ‘이타적’이라고 표시된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행복은 자기 마음에 있다는 말입니다.

3)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행복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친 백성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 살게 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하게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4) 행복은 자신이 만들어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축복하시지만 행복은 자신이 만들어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셨는데 인간이 그 복을 누리지 못하고 불행하게 산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행복하게 삽시다. 행복은 배우는 게 아닙니다. 지식으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이 세계에서 ‘행운아’라고 말하는 괴테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행운아라고 말한다. 사실 외부적인 조건이나 환경을 보아서는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나더러 솔직하게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행복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하루도 없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였습니까? 하루라도 행복하다고 생각한 일이 있었습니까? 이제는 계속하여 날마다 날마다 행복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행복해야 합니다. 가정도 행복해야 합니다. 부부간에 행복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행복해야 합니다. 교회 생활에도 행복해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행복해야 합니다. 조각가가 무엇인가를 만들 때에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것을 조각하는 것 같이 인생도 행복의 상을 조각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까?


1.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라고 빌립보서4:6에서 말씀합니다. 염려한다면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는 분들 중에는 교회에 나와도 믿지 아니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다가 놀라운 사건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왕위를 버리고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의 길을 걸어간 모세 지팡이 하나로 기적을 행하여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넌 사람이 모세입니다. 백성들이 원망할 때에도 잘 참고 견딘 사람입니다. 그런데 민수기20:12절을 보면 ‘네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는 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 믿습니다.” 라는 고백이 없다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순종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믿음은 100% 순종입니다. 하나님은 ‘반석을 향해 명하여 물을 내라(민20:8)’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지팡이로 반석을 ‘꽝꽝’ 두 번 쳤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말로 하는 게 쉽습니까, 지팡이로 치는 게 쉽습니까? 쉬운 방법이 있는데 왜 어려운 방법을 택하였습니까? 불순종, 이게 불신앙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신앙생활도 어렵게 하는 분이 계십니다. 자기 의사대로 해야 하고 자기 마음에 맞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거역하기도 하고 반항합니다. 순종이 믿음입니다. 순종하는 게 쉽습니다. 왜 불순종 합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믿겠다던 말은 어디 가고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까? 그게 더 어려운 게 아닙니까?
믿음은 순종입니다. 성경에서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세요. 아브라함이 “주여 믿습니다” 라고 말하거나 “할렐루야”, “아멘”을 자주 한 게 아닙니다. 그도 사람인지라 실수도 있었고 허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창세기15:6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무엇을 믿었다는 말입니까? 왜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 하였습니까? 교회에 나갔다는 말입니까? 그는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나도 아들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하갈을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기도 하였습니다. 행위가 거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가 한 것은 순종입니다. 아들을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모리아에 가서 제물로 드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믿음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고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순종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그의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겠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런 믿음이 있어야 행복합니다. 순종하면 편안합니다. 순종할 때에 기적입니다. 말 잘 듣는데 무슨 문제입니까? 순종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은혜 안에서 낙관적인 생각으로 사는 겁니다. 낙관은 믿음이 있을 때 생깁니다. 염려하지 않습니다. 가나안으로 향하여 가던 이스라엘에게 홍해가 보입니다. 홍해를 보는 이스라엘이 죽음의 강으로 볼 때에 원망이요, 불평이었습니다. 모세는 그게 고속도로로 보이니까 찬송과 기쁨이었습니다. 안병욱 교수가 지은 생활 에세이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3낙을 강조한다. 첫째는 낙천이요, 둘째는 낙생이요, 셋째는 낙업이라. 낙천은 즐기는 것이다. 삶을 즐기고, 직업을 즐기고, 봉사하는 것을 즐긴다.”

안다고 즐기는 게 아니라 모르고도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둘째는 낙생이라 하였습니다. 생을 즐긴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생애에는 부모가 있고 친구의 우정이 있고 자유의 노래가 있다, 희망과 신념과 용기가 있다는 겁니다. 셋째는 낙업이라 하였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즐겁고 좋더라는 말입니다. 소명감으로 하는 일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미래에 소망을 갖고 슬픔과 절망은 사라지고 낙이 있다는 게 믿음입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맡기는 겁니다. 맡기니까 염려할 이유가 없습니다. 맡길 수 있다는 것과 맡길 수 있는 데가 있는 게 믿음입니다. 어떻게 맡깁니까? 기도로 맡깁니다.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룁니다(빌4:6)’ 답답할 때에 찾아가서 하소연이라고 할 데가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예전에 시집살이로 고달플 때에 딸들은 친정어머니가 멘토였습니다. 그러나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 누구를 찾아갑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의 멘토요 지도자이십니다. 예수 앞에 나옵니다. 그 분에게 모든 것을 아뢰며 간구합니다. 그 때 주께서 들어주십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럼으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 아버지께 아뢰고 기도하면 구한대로 이루어 주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데가 있기에 염려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살면 행복합니다. 행복합시다.


2. 뜨겁게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빌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하였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사랑하고 사랑 받으면서 살아야 행복입니다. ‘행복은 내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혹은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갖는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병들지 아니하고 건강한 게 행복이다’ 라고 하는 이도 있을 겁니다. 그보다는 사랑을 할 때에 행복합니다. 헤르만 헤세의 ‘어거스터스’라는 작품에 나오는 얘기 중에 어떤 집안에 아기가 없어 몹시도 초조하게 기다리다가 드디어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온 집안에서 기뻐합니다. 그 어머니는 말로 다 할 수 없을만큼 기쁩니다. 그 때 신비한 노인이 산모에게 아들 낳음을 축하하면서 이 아이를 위해 한 가지 소원을 하면 들어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산모는 딱 한 가지인데 무엇을 요구할까 하다가 아들은 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아이가 되었으면 해서 그렇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이 아이가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온통 사랑을 독차지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그 노인이 다시 나타나서 묻습니다. 이 아이에 대하여 만족하냐 물으니 이 때에 어머니는 말하기를 “우리아이는 온 집안은 물론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듣고 삽니다.” 그 뒤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게 당연하게 생각하고 버릇도 없고 게으릅니다. 아들은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고 높여주기만을 기다립니다. 모든 것을 당연히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다른 이와 잘 어울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발 부탁하노니 아이의 생각을 바꾸어 주세요.” 이제는 사랑을 받으려고 할 게 아니라 다른 이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다른 이들에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했답니다. 사랑은 받는 것만이 아닙니다. 주는 게 사랑입니다.

사랑하기에 불행해졌다는 사람 들었거나 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혹 사랑을 받으려고 하다가 불행해질 수는 있습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인간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랍니다. 스텐포드 대학에서 여러 쌍의 부부를 골라 연구해 보았답니다. A그룹과 B그룹으로 나누어서 A그룹은 매일 10차례이상 부부가 같이 허깅도 하고 대화면서 살게 하였고 B그룹은 일체 신체접촉을 금하고 대화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A그룹은 건강 상태도 좋았고 행복하고 수명도 길어지더랍니다.

여러분, 건강하고 장수하고 싶으면 사랑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소재로 행복을 만들어 가져야 합니다.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의 가족이, 남편이나 아내가 원수입니까? 그래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헌신입니다. 희생이라는 말입니다. 거미는 교미한 후에 수컷이 암컷에게 잡혀 먹힌다고 합니다. 왜? 암컷이 알을 만드는데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하기 위해서랍니다. 자기는 죽고 새끼와 어미가 살아가라고 희생합니다. 이게 사랑입니다. 이기주의에는 사랑이란 단어는 없습니다. 이타주의가 되어야 사랑이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섬김입니다. 문제는 섬김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왕따’라는 말을 아실 겁니다. 왕따가 무엇입니까? 따로 노는 사람입니다. 집단적으로 따돌림을 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왕따는 성격적으로 다른 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왕따가 되지 않으려면 방법이 있습니다. 지혜로와야 합니다. 일을 잘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잘 하는 체 해도 문제입니다. 남을 대접하려고 하고 섬기려고 하면 따돌림 당하지 아니합니다. 섬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은 허물을 가리워 주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불행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답니다. 첫째는 완벽주의자들입니다. 다른 이들의 약점도 잘 봐주고 넘어갈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랍니다. 경쟁의식으로 살면 평안함이 없습니다. 셋째는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넷째, 작은 일에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다섯째, 매사를 의심의 눈으로 보는 사람입니다. 믿어주고 믿어줄 만큼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여섯째,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랑하고 살면 행복합니다. 행복합시다.


3.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행복합니다.

빌4:6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였습니다. 감사의 반대말을 대게 원망이라고 합니다. 탈무드에 보면 우리의 생각속에 두 개의 주머니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기억의 주머니요, 다른 하나는 망각의 주머니가 있는데 사람들은 기억할 것을 기억의 주머니에 넣고 잊어버려야 할 것을 망각의 주머니에 넣어야 하는데 너무 분주하게 살다 보니까 기억할 것을 망각의 주머니에 넣고 망각해야 할 것을 기억의 주머니에 넣어서 인간세계가 이렇게 혼란하다고 합니다.

감사는 기억할 것만 기억해야 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 나에게 잘 된 것만 기억해 보세요. 감사가 나옵니다. 왜 불평이 나옵니까? 오늘의 주어진 축복을 잊었기에 나옵니다.
감사는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불만이 있을 때에 감사가 나올 수 없습니다. 성인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겁니까?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나 금식하며 산 사람이 아닙니다. 헌금을 많이 드리거나 극기의 사람, 정절을 지킨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감사할 수 없는 중에 감사하면서 만족하게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감사는 믿음과 관계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을 보세요. 자꾸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사는 사람은 범죄하지 않습니다. 감사가 나오는 순간에 이미 행복해진 겁니다. 인생은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감사하며 행복하게 삽시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해 보세요. “나를 부르시고 구원해 주신 은혜가 감사합니다. 지금도 나를 도와 주심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옷이 몸에 좀 낀다면 그건 내가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이고 깍아야 할 잔디, 닦아야 할 유리, 고쳐야 할 하수가 있다면 이건 내 집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정부에 대하여 불평불만을 할 수 있다는 건 언론의 자유가 있다는 것이고 주차장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면 내게 차가 있다는 것 아닙니까? 난방비가 많다는 건 내가 지금 따뜻하게 살고 있다는 겁니다. 온몸이 뻐근하고 좀 피로가 왔다면 열심히 일했다는 겁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감사한 일들 뿐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 하면 믿음이 성숙해집니다.
감사하면 의미를 찾게 됩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간에도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나를 위해 살아주는 아내가 ‘고맙다, 나를 위해 저렇게 수고하는 남편 감사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우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 오시는 게 어쩐지 감사하다’ 라는 마음을 가지면 행복합니다. 공부를 잘 못했다고 탓 하기 전에 건강하게 자라는 것, 내 옆에 자식이 있다는 것 자체를 감사하여 보세요. 행복해 집니다. 없는 것 때문에 불만을 갖는 게 아니라 있는 것으로 만족하면 감사가 나옵니다. 감사하다 보면 행복합니다. 가슴 아프고 괴로웠던 예전 일을 잊어버리고 ‘현재에 내가 산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4. 항상 기뻐하면서 살아야 행복입니다.

빌4:4절에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말하다가 강조할 내용은 다시 말하게 됩니다. 바울이 삶의 원리를 말하다가 강조할 말이 생각났습니다. “기뻐하자.” 기뻐하면 행복합니다. 그래서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기쁘게 살면 건강에도 유익합니다. 우리 몸 안에 18개의 신비로운 성분을 생성해 내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게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이라고 합니다. 엔도르핀은 암세포도 죽이고 심한 고통이 있을 때 무통 효과가 있게 하는 성분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아드레날린은 세균을 생성하게 하고 건강을 해롭게 한다고 합니다. 엔도르핀은 언제 나오는가? 웃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나온답니다. 그래서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나 고혈압으로 인하여 쓰러진 사람에게는 절대로 울게 하면 안된답니다. 웃기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기쁨을 찾지 아니하고 쾌락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쾌락은 환경 따라 좌우되지만 기쁨은 변하지 아니합니다. 쾌락은 잠시 주어지지만 기쁨은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쾌락은 이후에 괴로움과 불안을 주지만 기쁨은 언제나 평안과 안식을 줍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환경의 열매가 아닙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기뻐하게 됩니다. 신앙인들의 기쁨은 세상 사람의 기쁨과는 다릅니다. 그들은 육적인 만족에서 얻는 유쾌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고 우리의 기쁨은 영적으로 얻은 감격입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천국백성입니다.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습니다. 우리가 값 없이 공로 없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께서 지금도 동행하여 주십니다. 이게 믿어져야 진정한 기쁨이 생겨납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기뻐하는 것은 의무가 아닙니다. 권리입니다. 행복해야 합니다. 2003년만이 아니라 주님 오실 때까지 행복하게 살아갑시다. 주님을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매사를 주께 맡기고 믿음으로 삽시다. 기쁨과 감사로 행복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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