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믿음과 기도 / 마 17:14-21

  • 잡초 잡초
  • 658
  • 0

첨부 1


본문 : 마태복음17:14-21
제목 : "믿음과 기도"
설교 : 윤성진 목사 (부산영락교회)


1. 종용히 물은 질문

마태복음 10장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파송했습니다. 동일한 사건이 마가복음 6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6장 13절에 보면 파송받아 나간 제자들이 어떤 일을 했느냐 하는 것을 기술하고 있는데 제자들이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은 예수님의 파송을 받아서 전도할 때에 이미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들을 고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 제자와 더불어서 변화산에 올라가시고 난 다음 예수님께서 계시지 않을 때에 한 아버지가 병든 자녀를 데리고 와서 ‘내 자녀의 병을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제자들 같았으면 “선생님이 곧 오실 거니까 그때 데리고 오시면 되겠습니다.” 하였으면 망신을 안 당했을 것인데, 과거에 귀신을 쫓아 낸 경험도 있었고, 그리고 예수님께서 안 계시고 또 특별히 사랑 받는 세 제자가 없을 때에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치료했다면 예수님께 자랑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데리고 온 이 병자를 앞에 세워놓고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아마 아홉 제자가 번갈아 가면서 한 사람 한 사람씩 다 나와 가지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이 전혀 끄떡하지 않습니다. 이게 안방에서 된 일이 아닙니다. 큰 무리가 모인 데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던 서기관들이 있는 장소에서 이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홉 제자는 병자를 고치겠다고 땀을 흘리면서 노력해 보았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군중들과 서기관들과 제자들 사이에 변론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좋게 말해서 변론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변론이 아니라 비난이 쏟아졌을 것입니다. 이것들이 사기꾼이 아니냐, 돌팔이구만 하고 막 야유가 쏟아졌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 모든 상황을 다 보시고 들으시고 그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이때라>고 했는데, 마가복음 9장에서는 <집에 들어가시매>라고 했습니다. 병자도 나아서 갔습니다. 많은 군중들도 다 떠나갔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는 집에 들어갔습니다. 제자들과 예수님만 있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물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그때의 상황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아홉 제자는 얼마나 망신을 당했습니까? 얼마나 부끄러움을 당했습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그 위기를 모면해 주지 않았다고 하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과거에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도 고쳤는데, 그것을 믿고 고쳐 보려고 했는데 왜 이번에는 안되었습니까? 하고 예수님께 조용하게 물었습니다.


2. 믿음이 적구나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너희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너희에게 믿음이 없어서 그 병자를 치료하지 못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병자가 고쳐지지 않았다고요? 믿음이 없어서, 믿음이 적었기 때문에. 여기서 겨자씨와 산은 믿음의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서 동원된 소재들입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은 씨앗이지만 그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3~4m의 큰 나무가 됩니다. 우리의 마음에 살아있는 믿음, 믿음에 생명이 있다고 하면 산을 옮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산은 문자적인 의미가 아니라 사람의 능력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큰 문제들, 난제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참 믿음을 가진 자,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자는 어떤 문제도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산이 어떻게 옮겨집니까? 그러나 믿음의 사람에게는 산과 같이 어려운 문제도 다 해결할 수 있고, 옮길 수 있고, 넘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낙동강에 흐르는 물이 우리 집 부엌에까지 오게 되는 것은 수도관을 통해서 오게 됩니다. 믿음이 뭔가 하면 마치 하나님의 축복의 수원지, 능력의 수원지와 우리사이를 연결하는 관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이 하는 역할입니다. 이 믿음이라는 관만 튼튼하면, 막히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축복이 우리에게 쏟아지게끔 되어져 있습니다.

손가락 만한 관, 작은 믿음은 그만큼 작게 쏟아지고, 한 아름드리 큰 관은 폭포수처럼 쏟아질 수가 있습니다. 크게 믿으면 크게 받고, 작게 믿으면 작게 받고, 안 믿으면 못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믿음 가지지 말고 큰 믿음 가지셔서 크게 받고 많이 받고 넘치게 받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에는 크게 두 가지의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을 얻게 하는 구원론적인 믿음이 있고, 또 하나는 은사적인 믿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이 있습니다. 제자들에게는 구원론적인 믿음이 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믿음, 은사적인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어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능력에 내 믿음의 파이프를 연결하여 은사적인 믿음으로 태산같은 어려움이 우리에게 온다고 할지라도 넉넉하게 해결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믿음만 있으면 다 된다고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보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빌립보서 3장 13절에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누가복음 1장 37절에는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마가복음 10장 17절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믿음만 있으면 태산같은 문제도 해결하고 옮기고 넘어갈 수 있다고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에 기록된대로 믿음으로 승리하는 사람들의 예를 들어보면 그것이 증명되어 집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지 않고 하늘에 올라갔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방주를 만들어서 모든 세상사람들이 다 홍수 때문에 죽을 때 자기와 가족은 구원함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100세에 아들을 낳습니다. 도저히 낳을 수 없는 자식을 낳게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칠 때 이삭을 번제로 태워바친다고 할지라도 다시 이삭을 부활시킬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삭을 바쳐서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습니다. 믿음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다.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여리고 성이 멸망당할 때 가족들과 함께 생명을 구하게 되았습니다. 믿음으로 전쟁에서 이기기도 하고, 믿음으로 사자의 입을 막기도 하고, 믿음으로불의 세력을 면하기도 하고, 믿음으로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고, 믿음으로 아기가 없는 사람이 아기를 낳기도 하고, 믿음으로 순교의 자리에 가기까지 했습니다. 성경의 모든 기적과 축복은 믿음을 통하여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나의 모든 죄 값을 치르시고 나를 죄 가운데서, 죽음에서, 사단에서, 지옥에서 구원하셨다는 구원론적인 믿음을 가지고 구원을 확신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가서 여기서 끝나지 말고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하나님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실만큼 전능하신 하나님, 창세기 1장 1절을 믿으면 모든 성경이 다 믿어지게끔 되어져 있습니다. 이 천지가 얼마나 광활합니까? 이 천지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힘이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글자그대로 ‘전능’ 안 했겠습니까? 처녀의 몸에서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신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한나가 고백한 것처럼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 가난하게도 하고 부하게도 하시는 하나님, 낮추시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시는 하나님, 이런 하나님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믿는 사람에게 그 믿음의 관을 통해서 그 능력이 나타나게 하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에 보면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예수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이 하신 그 일도 우리가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하나님의 하신 일, 예수님의 하신 일이 나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면 이런 능력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이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구원론적인 믿음만 가지지 말고 은사적인 믿음도 가지셔서 나에게 닥친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여주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게 있는 문제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돈의 문제, 질병의 문제, 자녀의 문제, 부부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교회를 다녀가신 간증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그들은 표면상으로는 물질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부부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실패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질병의 문제가 있었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바로 믿고 나니까 그 문제는 다 믿음 안에서 해결되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는 문제는 다른 문제가 아닌 믿음의 문제, 이 믿음만 있으면 그 안에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주신 것은 그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시는 줄 믿습니다. 오늘 이 믿음, 이 은사적인 믿음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여년 전인 1983년 5월 7일 ‘신중철’ 씨가 귀순을 했습니다. 그의 간증에 의하면 휴전선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데 안개가 자욱해서 “야! 저 안개 속으로 지나가면 남한까지 내려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은 이상하게도 안개를 볼때 그런 마음이 들어서 마치 지남철에 끌리듯이 남쪽으로 내려왔다는 거예요. 귀신도 통과하기 힘들다는 그 무진장한 지뢰밭을 무사히 통과해 내려왔습니다. 일반적으로 귀순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곳에서 살 수 없는 형편이라든지, 가족이 없다든지 하는 사람들이 내려오게 되는데 이 분은 아내도 있고 두 자녀도 있었습니다.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신중철 씨가 내려온 것이 우리나라로 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였어요. 그러나 사실을 다 알고보니까 자기 발로 순수하게 내려왔습니다. 자기는 지남철에 끌리듯이 내려왔다는 거예요. 8월 13일날 서울시민 환영대회가 있었습니다. 꽃다발을 전달하기로 한 아가씨가 갑자기 사고가 나서 오지 못했습니다. 본부에서는 그 옆에 있는 사람에게 나와서 꽃다발을 전달하라고 했는데 신학교 잘 다니는 ‘이선화’ 라는 처녀가 지목되어 꽃다발을 전달하게 되었습니다.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면서 신중철 씨와 시선이 마주쳤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하고 나니까 신중철 씨는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에게는 북에 두고 온 아내가 있습니다. 또 두 아들이 있습니다. 이런 정신적인 갈등 때문에 도저히 삶을 지탱할 수 없습니다. 술과 오락에 빠졌습니다. 하루에 평균 술을 42잔을 마셨답니다. 담배를 4갑을 피워야만 정신적인 갈등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계속해서 신앙생활 해보자고, 교회한번 나가보자고, 예수 믿어 보자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무신론사회에서 얼마나 훈련을 받았겠습니까? 그리고 강인한 군인정신을 가지고 있어서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내가 하루는 꾀를 냈습니다. “당신 교회 가서 예배드리는 한 시간만 앉아있으면 내가 그 날은 10만원의 용돈을 줄 테니까 가서 예배한번 드리자” 고 했습니다.

그래서 10만원을 받고 교회를 나가기를 시작했습니다. 나가보니까 자기가 평소에 생각할 때는 교회나가는 사람들은 좀 모자란 사람들인 줄만 알았는데, KBS사장이라든지, 대법원 판사라든지, TV에서 자주 보던 저명한 인사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아! 교회는 이런 사람들이 나오는가보다” 하고 교회를 한 6주 쯤 다녔는데 7주 쯤 되어졌을 때에 교회에서 부흥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내는 이번 기회에 내 남편이 하나님 만나게 해달라고, 식음을 전폐하고 매달려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신중철씨도 이번에 부흥회 참석해보고 하나님이 계시는 증거가 없으면 이제 안 믿겠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 부흥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이 아무리 가도 이 사람 마음이 깨어지지 않습니다. 부흥회가 끝났습니다. 끝난 다음 안수받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어서 회개의 영이 임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지었던 모든 죄가 어떻게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계속해서 계속해서 나오면서 회개하는 가운데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믿음을 허락하여 주었습니다.
바로 그날 저녁에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난 후부터 하나님의 역사가 그 가정에 시작되었습니다. 큰딸 유라가 3년 동안 병명도 알지 못하고 희귀병에 걸려서 뼈만 남아서 혼자서는 계단을 오르내리지도 못할 지경이었는데 그날 아침에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6년 간의 기나긴 방황과 고통은 예수님을 믿는 바로 그 순간에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6년 동안 얼마나 고통이 심했던지 서울대학병원에 여러번 입원도 했고, 또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언제나 두통약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바로 그 순간에 그의 간증대로 하면 마치 소나기가 쫙 오고 난 다음에 저쪽 하늘에서 막 무지개가 뜨는 것처럼 그와 같은 신선한, 자기의 두통이 싹 빠져나가면서 마음속에 영롱한 무지개가 떠오르는 것같은 신선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악성축농증으로 두 번이나 수술 했지만 완치되지 않았는데 온데간데없이 나았습니다. 지금도 그는 그때 받은 감격으로 간증하며 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 바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 바로 만나기만 하면 태산같은 문제들이 다 옮겨갑니다. 해결됩니다. 우리는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믿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내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구원론적인 믿음을 가지고 교회에 왔다갔다하는 이런 정도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론적인 믿음만 가지고 이 땅에 살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이 최고의 은혜입니다마는 구원받았을 뿐만 아니라 은사적인 믿음을 가지고 이 땅에서 하나님이 살아 계신 증거를 체험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 살아 계신 증거를 보여주면서 살아가는 능력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나에게는 어떤 믿음이 있습니까? 이 아이의 아버지와 같이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하고 믿음을 구하여서 큰 믿음, 믿어지는 믿음, 은사적인 믿음, 이 믿음을 가지고 내게 있는 크고작은 문제, 물질의 문제, 자녀의 문제, 질병의 문제, 가정의 문제, 어떤 문제도 다 뛰어넘을 수 있는, 해결할 수 있는, 옮겨버릴 수 있는 능력의 성도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기도하지 않았구나

“우리는 왜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조용히 묻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20절에<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고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21절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본문 21절에 보면 뭐라고 했어요? ‘없음’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없음’. 요즘 가로쓰기 성경에는 그 주(註)가 달리지 않았습니다마는 옛날 세로쓰기 성경, 전통적인 성경을 보면 21절에 ‘1’ 이라고 되어있고 아래에 보면 주가 달려있습니다. ‘1 어떤 사본에 21절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가 있음’ 그렇게 주를 달아놓았습니다.

같은 사건이 마가복음 9장에도 나오는데 제자들이 “왜 우리는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까?” 물었을 때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그렇게 예수님께서 못을 박고 있습니다. 산아래 있던 아홉 제자가 병자를 고치지 못했던 것은 기도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시고 변화산에 무엇하러 올라갔겠습니까? 누가복음 9장 28절에는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 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고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 기도하기 위해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높은 산에 올라 가셨을 때에 세 제자를 데리고 올라 가셨는데 아홉 제자를 남겨두고 가실 때에 그 세 제자 먹자고 도시락 가지고 갔겠습니까?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하룻밤을 지내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변화산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21절에 ‘없다’ 했고, 어떤 사본에는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했는데 21절에 이것은 필사자가 그것을 빠뜨린 것이 아닌가? 사본은 요즘처럼 인쇄하는 것 아니고 손으로 썼는데 어떤 사본에는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고, 또 어떤 사본에는 그런 말이 없어요.

그래서 성경학자들이 21절을 ‘없다’고 해놨는데 사실 마가복음 9장에 있는 "기도‘ 라는 말과 연결시켜 보면 제자들이 병자를 고쳐주지 못한 것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과 세 제자는 산에서 금식기도하고 있는데 아홉 제자는 잡담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차별하시냐. 세 제자는 데려가시고 우리는 왜 이렇게 이렇게 버려 두고 가지?” 그렇게 불평을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때 그들도 능력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다가 능력을 다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병자를 고치지 못한 것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계속적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면 믿음이 떨어집니다. 계속적으로 기도하지 아니하면 능력 이 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믿음을 잘 간직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하나님의 축복을 나르는 관이라고 하면 기도는 수도꼭지와 같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콸콸 콸콸하고 쏟아지게 되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준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어집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잘 안되면 고쳐야할 것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 지혜와 그 깨달음을 가지고 우리의 삶에 적용하게 되면 다 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는 세 사람이 찾아와서 간증을 했습니다. “목사님! 기도해 주셔서 갑상선이 나았습니다. 신장이 나았습니다. 다리가 나았습니다”.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도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를 체험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기도하면 해결되어집니다. 영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VIP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그들도 기도하게 되면 돌아오게끔 되어져 있어요. “아! 천하사람이 다 예수 믿어도 저 사람은 안돼” 그렇게 포기하지 말고 안될 사람도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면 사도바울도 돌이키는데 왜 안 돌아오겠어요?

뮬러 같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5만 번의 기도를 응답 받았다고 하는데 그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이 5만 번이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까지 합치면 얼마나 될 것입니까? 그가 5명의 영혼을 놓고 기도했습니다. 한 사람이 1년 반만에 돌아왔어요. 한 사람은 5년 만에 돌아왔어요. 한 사람은 6년 만에 돌아왔어요. 그가 기도를 시작하고 11년이 되는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은 돌아오지 않다가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다음에 돌아왔습니다. 기도는 내가 기도해 놓으면 내가 살아있을 동안에 응답되든지, 내가 죽은 다음이라도 반드시 응답되게끔 되어져 있습니다. 특별히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면 눈물의 사람은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VIP를 위해서, 우리의 가족들을 위해서 계속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영혼을 구원해 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 나의 VIP에게 주는 첫 번째 테잎이 임동진 장로님의 테잎이었고, 두 번째 주는 테잎이 이명박 장로님의 테잎인데 가지고 가서 전도하기 전에 한번 씩 다 듣고 전달해 보시기 바랍니다. 끝에 가면 “내 어머니의 기도가 당시에는 허황된 것 같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 어머니의 기도가 다 이루어졌다. 4시만 되면 일어나서 기도하고 자녀들을 다 깨워서 게 기도하던 어머니의 기도가 다 이루어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난하다 가난하다 해도 자기만큼 가난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런 가난한 가운데서 자라났지만 어머니의 기도 따라서 훌륭하게 되어서 두 형제가 동시에 국회의원이 되고 또 한사람은 서울시장이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기도하게 되면 우리의 생애가운데, 우리의 다음에라도 그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지게끔 되어져 있습니다. 기도는 아무데서나 하면 되지 꼭 교회 가서 기도해야 되나? 집에서 기도하면 되지 않나?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도는 꼭 엎드려서, 꿇어 엎드려서 기도해야 되나? 드러누워서 기도해도 되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기도하러 변화산에까지 갔겠어요? 얼마든지 기도할 자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 산꼭대기까지 올라갔겠어요? 감람산까지 왜 갔습니까? 한적한 곳에 가서 왜 기도했습니까? 아무데나 눈감고 기도하면 될 것인데. 기도 한마디를 해도 기도답게 할 수 있는 장소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될 수 있는 한 교회와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특별새벽기도회에 기도다운 기도를 하기 위해서 교회나와서 기도해 보세요.

왜 아홉 제자가 병자를 고치지 못했습니까? 기도하지 않아서.
왜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까? 기도하지 않아서.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왜 베드로가 예수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까? 기도하지 않고 졸다가.
왜 시험에 빠집니까? 기도하지 않아서.
기도하면 만사가 해결되어집니다. 우리교회 비전을 이루기 위하여서 기도헌신자를 모집하려고 합니다. 일주일에 한 시간 교회 와서 기도하는 기도의 용사를 모집하려고 합니다. 다 참여하여서 기도하는 가운데 교회 비전도 이루어지고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우리의 직장의 문제, 모든 문제가 다 해결 받는 복된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 안하면 믿음 떨어집니다. 믿음 떨어지면 능력 없어집니다. 기도하면 믿음 생깁니다. 믿음 생기면 능력 일어납니다. 문제가 해결되어집니다. 기도하여서 살아있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태산같은 문제, 우리 크고 작은 문제가 우리에게 물밀 듯이 몰려온다고 할지라도 넉넉하게 해결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우리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