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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 영혼의 인테리어 / 눅 11: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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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누가복음 11:24-26
제 목 : "내 영혼의 인테리어"
설 교 : 박근호 목사 (구미영락교회)


지난 주간 지구촌 뉴스의 초점은 노벨상 수상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 가운데 화제의 인물은 올해의 노벨 화학상을 받음으로서 일본에 그 부문 3연 연속 수상의 신화를 이어간 서른 세살의 일본인 다나카 고이치 씨였습니다. 지금 일본 열도가 이 일로 인해 흥분과 감동의 도가니라고 합니다.

몇일 전 노벨 물리학상도 일본 모 대학 교수인 한 과학자가 받았는데 그때는 이런 반응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냥 받을 수 있는 자가 받았다는 차분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다나카 씨가 박사도 아니고 석사도 아니며 또 유수한 일류대 출신도 아닌 지방대학 출신이며 시마즈 제작소라는 중소기업의 연구소 주임으로 일하는 연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역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140여명 중 138명이 박사이거나 대학교수였는데 그는 그런 출신도 아니고 더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전공은 전기공학인데 자기 전공과는 다른 화학상을 수상한 것입니다. 그는 회사에 취업해서부터 화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노벨상을 탄 겁니다.

보통 사람의 승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내실 있게 살아간 한 인생의 개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에겐 그 어떤 화려한 간판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고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일본인들은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 온 일본 열도가 흥분의 도가니가 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학사학위 정도로는 취업이 어려워 석사에 박사까지 받고도 제 길을 못 찾는 사회적 학력 낭비현상이 심하지 않습니까? 무늬만 대학생인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한 대학졸업자가 입사후 전공을 바꿔가며 연구해서 노벨상을 탈 수 있게 하는 일본의 과학교육 수준이 놀랍습니다. 그가 근무하는 회사가 중소기업이긴 하지만 130년의 전통에다 대학보다 더 학구적인 연구풍토를 가지고 있다니 얼마나 놀랍습니까?

요즈음 우리나라 의대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과가 성형외과라고 합니다.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병원이 성형외과라는 얘기입니다. 성형외과가 성행하는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떤 시대입니까?
서울 사는 어느 여집사님이 경험담입니다. 어느날 보니깐 자기가 사는 동네에 성형외과가 들어와 있더라는 겁니다. 시내 한복판도 아니고 사람이 붐비는 곳도 아닌 우리 동네에 어찌 이런 병원이 들어섰을까 신기한 생각이 들어서 이 집사님이 '우리 동네에서 저 병원 문을 두드릴 사람'을 한번 떠올려 보았답니다. 그런데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떠오르는 얼굴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빠삭한 또래의 다른 여집사에게 그런 자기의 느낌을 털어놨더니 그 여집사가 대뜸 '어디 딴 세상에서 왔느냐'며 웃더랍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요즈음 왠만큼 산다는 집치고 딸 얼굴 뜯어고치지 않는 집 없고 보톡스 주사 안 맞는 사람이 없다'라는 겁니다. 이 집사님이 '보톡스 주사'라는 말을 처음 들어서 그게 뭐냐고 물었더니 '주름살 펴는 주사'라고 하더랍니다. 원래는 그게 독인데 그걸 이용해서 각진 턱도 갸름하게 하고, 울퉁불퉁한 근육질 다리도 매끈하게 하고 주름살을 펴게 해서 눈가의 세월도 싸악 지워진다는 겁니다.

사실 요즈음 TV를 보면 아나운서나 탈렌트들 중에 표정이 어딘지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것을 느끼실 겁니다. 그게 다 피부를 당기고 턱을 깎고 입술을 도톰하게 만드는 성형수술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긴 이왕이면 예뻐보이고 젊어보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입니다. 이 사회가 예쁨과 젊음을 특별히 대접하는 그런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지금 맞고 있는 이 성형 열풍은 일종의 광기라고 밖에 볼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외모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마술에 한꺼번에 걸려있습니다. 얼굴에 무슨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자기만의 매력을 가진 얼굴들인데 그런 얼굴에 칼을 대서는 아무 개성도 없는 이른바 '표준 얼굴'로 바꾸는 이런 바보같은 짓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이게 올바른 시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까?

한쪽에서는 주장합니다. 자신감이 없던 사람이 얼굴을 뜯어고침으로써 자신감을 얻는다면 그건 단지 육체적 성형이 아니라 정신적 치유행위가 되는 것이라고... 그러나 인간의 자신감이란 게 작은 눈을 큰 눈으로 바꾼다고, 콧대가 세워진다고 금방 회복될 만큼 단순한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머지않아 여성의 외모에 대한 생각과 기준이 바뀔 것이라는 겁니다. 여성 스스로가 자신감을 회복하게 됨에 따라 스스로 자신들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지 몸을 뜯어고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닌 겁니다. 잠언 기자가 뭐라고 했습니까?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 어떤 여인이 진주보다 더 귀한 여인입니까? 그는 잠언의 마지막을 이렇게 맺습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을 인하여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모를 바꾸는 데 있는 게 아니더라는 겁니다. 고운 것? 다 거짓된 겁니다. 얼마나 덧씌우고 두드리고 그려넣은 것입니까? 아름다운 것? 다 헛된 겁니다. 그러므로 진정 아름다워지려면 조급한 마음으로 얼굴을 뜯어 고칠 게 아니라 속을 채워가야 하는 겁니다. 내면은 가꾸지 아니하고 외모만 신경쓰는 세상은 건강한 세상이 아닙니다.

주님은 오늘 말씀에서 '영혼의 집'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본문의 '집'이라고 하는 것은 '건물'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의미합니다. 24절에 보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그랬습니다. 이건 회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회개는 자기중심이란 귀신을 쫓아내고 성령으로 모시어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서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회개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고 마는 경우가 적지않다는 겁니다. 회개했다고 뉘우치고 눈물흘리는 순간은 갖는데 어느 순간에 다시 옛사람의 모습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더 심하게 망가진 모습으로...

회개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번 돌아섰으면 뒤돌아보지 말고 새로운 방향으로 향해 나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자꾸 되돌아서는 겁니다. 어느새 과거의 자기로서 살아가는 겁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주인이 바뀌지 않은 겁니다. 아니 쫓겨났던 옛주인이 다시 돌아온 겁니다.
회개가 일시적 현상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귀신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이 다른 것에 의해 즉 새로운 영에 의해 사로잡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귀신이 더 강한 힘을 갖고 돌아와 옛 집을 점령하게 된다는 겁니다.
보십시오. 이 집은 깨끗하게 소제되고 수리되어 있습니다. 소제되고 수리되었다는 말은 새로운 손님을 맞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새주인을 맞고 새생활이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손님을 맞질 않습니다. 그냥 비어져 있습니다. 그러자 나갔던 귀신이 다시 돌아와서는 그 집이 여전히 비어있는 것을 보고 '자기보다 더 악한 일곱 영들'을 데리고 들어오게 됩니다. 여기 '일곱 영들'이란 표현은 악과 부정의 전체성과 완전성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그러니 그 집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그 인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 주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하늘백성들은 끊임없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생활을 해야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기 전, 주님을 모시기 전 사탄의 지배를 받던 존재였습니다. 우리 속에서 우리를 주관하던 것은 사탄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고 반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실존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탄이 쫒겨나고 성령께서 우리를 주관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 중심에 내주하시며 우리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새사람이 되게 하신 겁니다. 이런 실존적 역사가 일어나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구원의 역사 중에 쫓겨난 사탄이 결코 쉽게 포기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사탄은 쫓겨난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순순히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늘 24절 말씀처럼 자꾸 돌아옵니다.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자꾸 컴백을 하는 겁니다. 자꾸 와서 틈새를 엿보는 겁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집이 비어있는 겁니다. 성령께서 그 안에 존재하시질 않는 겁니다. 그랬을 때에 저가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 거함으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 안에 채워져 있어야 할 것이 채워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새주인을 온전히 모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지금 우리 영혼의 집의 상태는 어떤 모습입니까? 무엇으로 그 집이 채워져 있습니까? 어떤 모습으로 단장되어 있습니까?... 현대는 인테리어 시대요 디스플레이 시대입니다. 보이고 보여주는 시대입니다. 아주 아름답게 치장하고 가꾸고 드러내는 시대입니다. 성형 열풍도 그런 시대적 흐름 중의 하나입니다.

여러분 '아바타 성형수술'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아바타(Avatar)'란 말은 화신(化身) 곧 '몸을 바꾼다'는 뜻인데 인터넷 속의 '나'가 바로 '아바타'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알몸에 가까운 '낯 뜨거운' 속옷 차림의 아바타로 사이버 공간을 헤매다가는 왕따를 당하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이 아바타에게 명품 브랜드 옷을 입히고 얼굴을 성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아바타 성형과 인테리어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는 전문 디자인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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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서 아바타를 가꾸는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바타 하나를 가꾸려면 2000∼3000원 정도가 듭니다. 커트, 염색 등 아바타의 머리를 치장하는데 500∼2000원이 듭니다. 그리고 옷은 10원에서 4500원, 장식 악세사리는 500원에서 1000원 정도... 그리고 단순한 치장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기본 캐릭터를 고치는 '아바타 성형'도 인기가 있어서 사이버 머니로 한 30만원이 있어야 성형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해서 얼굴을 바꾼 사용자도 전체의 30% 정도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 이런 세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이고 그 고귀함이 진정한 고귀함인가 하는 것입니다. 서울대 사회학과 연구실습팀이 전국 여섯개 대학 교수팀과 함께 대학생 2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을 했는데 거기 소위 '명품 소비의식' 항목에서 이런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명품을 구입해 봤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3.2%가 `구입 경험이 있다'고 했고 모조품을 구입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응답자는 62.4%였습니다. 그러니까 97.2%가 명품에 관심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왜 구입했느냐'는 질문에는 `질이 좋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고 이어서 `명품의 이미지와 디자인', `서비스', `유행', `사회적 지위' 등의 이유 때문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명품 오리지날을 구입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 중 84%는 `명품 구입 후 만족했다'고 답했고 '불만족했다'는 응답은 3%에 그쳤습니다. 또 '향후 명품 구입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절반에 가까운 45%가 `필요하면 구입할 것'이라고 답했고, 38%는 `돈이 있다면 구입할 것이다' 그리고 2%는 `앞으로는 명품만 구입할 것'이라고 응답을 했습니다. `구입할 생각이 없다'는 응답은 12%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돈이 없을 때 사고 싶은 명품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43%가 포기한다고 답했지만 20%는 '살 때까지 돈을 모은다', 4%는 '신용카드로 일단 구입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도 시대의 조류에 발맞추어 명품을 하나 갖고 삽니다. '까르띠에'라는 시계인데 저도 하나 차고 집사람도 하나 찹니다. 한 300에서 500만원 정도하는 시계입니다. 그런데 진짜는 아니고 가짜, 이미테이션입니다. 제것은 인터넷 중고장터에서 엉겹결에 3만원에 산 것이고 집사람 것은 모양이 예뻐서 제가 10만원 주고 하나 사준 겁니다. 그런데 제 것은 작아서 차지 못하고 그냥 벗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니 명품을 차신 분들은 '우리 목사님네도 나와 같은 명품을 차는구나' 하고 동질감을 느끼시기 바라고, 명품을 못차신 분들은 '우리 목사님 명품은 짜가구나' 그렇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들 정신건강에 좋습니다. 이게 바로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는 바울의 목회비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목회가 쉽지 않은 겁니다. 이 수준에도 맞춰야 하고 저 수준에도 맞춰야 하고... 어떻게 보면 삐에로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외형의 장식에는 신경을 많이 쓰면서 정작 내면의 장식에는 소홀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형을 하고, 명품을 걸치고, 집의 인테리어에 신경쓰며 살아도 정작 자신의 속사람에 대해서는 얼마만큼 신경을 쓰고 가꾸고 사느냐는 겁니다.
때때로 집정리 하나 안해놓고 외모에 신경쓰며 나돌아다니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얼마나 넌센스적인 이야기입니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그냥 생긴 게 아닙니다. 자기 몸부터 잘 가꾸어야 그 다음 가정을 돌볼 수 있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고, 천하를 평정할 수 있는 겁니다.

제가 얼마 전부터 향수를 쓰고 있습니다. 전에는 왠지 사치스러운 것 같고 해서 누가 선물을 해도 쓰질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내가 향기를 발해야하는 사람'이라는 자기확인 같은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알아보니 한 3만원 정도면 적어도 1년은 쓸 수 있으니 하루 10원 정도의 투자 밖에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향수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향을 뿌려놓고 그 향을 맡으면서 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 나는 그리스도의 향기다. 이 향기만큼 좋은 삶의 향기를 이웃에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뿌려야지...'

우리가 이런 일상적 영성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신는 신발의 이름만큼 내 발걸음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울까... 내가 차는 시계의 값어치만큼 나의 시간관리는 하나님 앞에 멋진 것일까... 내가 사용하는 화장품의 브랜드만큼 나의 영혼다듬기는 하나님 앞에 어여쁜 것일까... 내가 끼고 있는 반지의 변치않음만큼 나의 하나님을 향한 약속은 신실한 것일까...'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 영혼의 집에 삶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위해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존재가 되도록 그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는 겁니다.

그 비결이 바로 성령충만이요 말씀충만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사탄은 늘 컴백합니다. 'I will be back', 그건 터미네이터가 늘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헝클어뜨려놓고 엉망진창이 되게 합니다. 한번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오늘의 나의 삶이 헝클어져 있습니까? 어지럽습니까? 그건 우리 영혼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고 말씀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별 수 없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주님은 무리 중의 한 여자가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라고 외칠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대꾸하십니다. 여인의 외침은 외모에 초점을 둔 것이었습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다...' 그러나 주님의 외침은 내면에 초점을 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영혼이 채워져 그 말씀을 지키며 사는 자, 그가 복이 있다...' 관점이 다르고 초점이 다릅니다. 우리의 삶의 관점과 초점은 어디에 맞춰져 있는 겁니까? 육체입니까, 영혼입니까?...

요즈음이 한 해 중 가장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둘러보는 사방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다음 주 화요일에 갖는 청량산 산행에 많이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건 저들이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저들이 성형을 압니까, 꾸밈을 압니까. 그냥 하나님의 섭리에 순응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겁니다. 가까이 다가서보면 결코 아름다운 것만은 아닙니다. 늙어갑니다. 쇠하여 갑니다. 그러나 거기에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겉꾸밈이나 저항없이 창조주의 섭리에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도 그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관심사를 좀 바꾸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의 영혼을 세상 것이 아닌 하늘의 것으로 채워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세상이 주는 순간의 쾌락보다도 위로부터 오는 진정한 희락을 누리는 삶을 맛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무엇보다 '내 영혼의 인테리어'에 신경을 쓰시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다 헛될 뿐'입니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 그가 진정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이제 머지않아 겨울이 다가옵니다. 겨울 전에 우리 영혼의 집을 한번 대청소하십시다. 구석구석 더러운 것들, 쌓인 먼지들, 찌든 때들을 훌훌 다 털어내십시다. 그리고 성령을 모시고 말씀으로 그득 채워진 영혼으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들을 다 털어버리고 복된 삶을 살아가십시다. 그리해서 여러분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좋아지는 은총을 누리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3절 말씀처럼 주님과 함께 일하고 주님과 함께 힘쓰는 여러분되셔서 이런 복된 은총이 오늘과 내일에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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