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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각의 변화는 성장입니다 / 고후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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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생각의 변화는 성장입니다
본 문 : 고린도후서 12:1-7
설 교 : 김학현 목사 (예은교회)


믿음이 무엇입니까? 사전적으로 일반적인 뜻은 ‘어떤 사실이나 사람을 믿는 마음(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믿음이라 말할 때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이며 창조자이신 삼위(三位)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건히 여기며, 그분의 자비와 사랑에 의뢰심을 갖는 것’입니다. 둘 다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마음은 생각의 그릇입니다. 의뢰심(依賴心) 또한 마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의지하는 생각을 말합니다.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여 의지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5절)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자신이 가지고 있던 이론(사상,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살던 교만을 버리고, 자기의 생각을 예수님에게 복종시키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생각의 변화입니다. 생각이 변한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생각이 변하지 않은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믿음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메시지는 바로 회개의 복음입니다. (마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역시 제자들의 복음도 회개입니다. (막6:12)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그런데 회개란 생각이 변화하는 경험입니다. 생각이 변하면 당연히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참된 믿음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살피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자랑과 간증

(고후12:1-10)에는 바울의 간증이 나옵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랑을 하다가 나중에야 간증을 합니다. (1절) “무익하나만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라는 말로 말문을 엽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40년 전에 경험했던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 온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은 실로 엄청난 경험을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바울의 사도권에 대하여 도전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영적 지도력을 변증하기 위해 이런 자랑을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사실에 근거한 것이기에 어리석은 짓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 자랑하기를 포기합니다. 그 이유는 (6절) “자신을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해서”라고 합니다.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닌데 너무 훌륭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곤 이어서 진짜 간증을 합니다. 세 번 가시 때문에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9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들을 자랑할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자랑을 간증으로 바꾸는 장면이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나 후반부나 모두 바울의 영적 경험입니다. 자랑도 간증도 영적 경험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반부는 자랑이고 후반부는 간증입니다. 둘은 목적이 다릅니다. 자랑은 자신을 드러냅니다. 간증은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바울의 간증은 싱겁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결국 하나님은 ‘NO’라고 응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살기로 자신의 생각을 바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간증거리가 없다고 하는데 실은 자랑거리가 없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의 생각을 꺾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랑과 간증의 차이를 모르고 믿으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알아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 허망하고 미련한 생각의 소유자입니다. 생각을 고쳐먹어야 간증을 합니다. 간증을 하는 자는 행복합니다.

배짱과 믿음

자랑과 간증이 구분이 어렵듯이 세상적 담대함인 배짱과 믿음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자랑을 하고는 간증을 했다고 하듯, 배짱을 부리면서 그게 믿음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습니다!”라고 부르짖을 때때로 많은 성도들이 배짱을 부린다는 걸 아십니까? 배짱과 믿음은 둘 다 용기라는 면에서 같습니다. 그러나 출처가 다릅니다. 자기로부터 나온 용기가 배짱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용기가 믿음입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믿음은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입니다.

반대개념인 열등의식과 겸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낮춘다는 점이 같습니다. 그러나 그 출처가 다릅니다. 열등의식 때문에 자신을 낮추는 것과 겸손한 생각 때문에 자신을 낮추는 것은 다릅니다. 할 수 없어서 안하는 것과 할 수 있는데 겸손하여 안하는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바울은 셋째 하늘에 올라갔다 온 자입니다. 그보다 더한 영적 경험을 한 사람이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랑이 되기에 그칩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다윗과 골리앗의 근본적인 차이가 무엇입니까. 다윗이 그렇게도 담대하였던 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입니다.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용기입니다. 반면 골리앗은 칼과 창과 자신의 승리의 경험을 가지고 나아오는 용기입니다.

다윗은 믿음으로 전쟁을 수행하지만, 골리앗은 배짱으로 전쟁을 수행합니다. 믿음의 힘은 하나님께 있고 배짱의 힘은 자기실력에 있습니다. 결국 승리는 믿음의 용기를 가졌던 다윗의 것입니다. (삼상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결국 다윗이 말한 대로 되었습니다.

여러분, 아직 자신의 능력, 실력, 경험, 용기를 믿고 있지 않습니까. 배짱을 믿음으로 바꾸십시오. ‘나는 할 수 있다’는 배짱도 생각이고, ‘나는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할 수 있다’는 믿음도 생각입니다. 결국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변화와 성장

자랑을 간증으로 바꾸는 바울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용기를 가지고 싸움에 나가는 다윗도 그들의 생각이 사람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채울 때 간증거리가 생겼습니다. 우리는 지금 생각의 변화라는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3,4절)입니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비록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육체의 모습으로 살지만 우리들의 싸움은 육체의 것이 아니라 영적인 전투입니다.

세상은 견고한 진입니다.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왜 성도로 살면서 축복받지 못하고, 성공하지 못합니까. 견고한 진을 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내 자랑거리만 찾고, 내 배짱으로만 사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릅니다. 승리와 축복은 자랑을 간증으로 바꾸고, 배짱을 믿음으로 갈아 끼운 자들의 것입니다. 그것은 생각을 바꾼 자들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5,6절)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너희의 복종이 온전히 될 때에 모든 복종치 않는 것을 벌하려고 예비하는 중에 있노라”

생각의 변화는 신앙의 성장을 가져다줍니다. 성장이란 단어 자체가 변화를 말함입니다. 씨앗이 새순이 되고, 새순이 가지가 나고, 가지에서 열매가 달리는 걸 성장이라 합니다. (골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복음을 듣고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내게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도 열매를 선사하게 됩니다. 이게 믿음의 원리입니다. “은혜를 깨달은”이란 무엇입니까? 깨달음은 생각의 작용입니다. 듣고 깨달으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생각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집니다. 그게 바로 열매입니다. 열매가 없는 것은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절규로 끝납니다. (7절) “너희는 외모만 보는도다 만일 사람이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줄을 믿을진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같이 우리도 그러한 줄을 자기 속으로 다시 생각할 것이라” 다시 생각할 것이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다시 생각하십시오! 자랑을 간증으로, 배짱을 믿음으로 바꾸고 믿음의 성장으로 열매를 거두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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