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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 가노라 / 삼상 17: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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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나는 … 가노라
본 문 : 사무엘상 17장 41~49절
설 교 : 고신일 목사 (기둥교회)



"블레셋 사람이 점점 행하여 다윗에게로 나아오는데 방패 든 자가 앞섰더라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로 마주 그 항오를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사무엘상 17장 41~49절) 

<목회기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복된 주일, 거룩한 주일
교회에 나와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오늘을 살게 하시고
세상 속에 빛으로, 소금으로 살라하심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들의 허물과 죄는 용서하시고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옵소서.
우리와 함께 있지 못한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군대에 나가 있는 이들, 객지에 나가 있는 이들,
선교사로, 유학생으로, 취업으로… 여행중인 성도들
해외에 나가 있는 이들 모두에게 은혜 위에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구하옵기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이들을 긍흉히 여겨 주셔서
하루 속히 회복하여 우리와 함께 예배의 자리에서
마음껏 찬양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오늘 예배 드리는 우리들 모두에게
때를 따라 필요한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찬양에 마음을 담았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우리의 형편도 담았습니다. 하나님 받으시옵소서.
이 거룩한 예배를 위해 구석 구석에서 봉사하는 이들
초신자로부터 목사에 이르기까지…
태중의 아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은혜 받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 기둥교회에 처음 나오는 분들 가운데
우리 교회의 인사인 [할렐루야], [아멘], [승리하세요]… 등이 낯설어
적응이 안된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낯설고 어색해도 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크리스챤들이 해야할 말입니다.
학교에 가면 학교 용어가 있고, 군대 가면 군대 용어가 있고,
야구장에 가면 야구용어가 있듯이
교회에서 쓰는 특별하고도 귀한 용어들이 있습니다.
어색하더라도 해 보시고 적응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기둥교회서만 쓰는 용어도 있는데 잘 배우고 익히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들에게 "오늘 한날의 삶이 평안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아침 1부 예배를 드리고 나면
교회 식당에서 교역자들과 장로님들, 봉사하는 분…등 약 50여 명이 식사를 합니다.
그 비용이 20만원 정도 든다고 합니다.
주일 아침에 대접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매 주일 하고 있습니다.
 
지난 목요일 신문에 [황제요리 5500만원]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조선일보).
중국에서 황제처럼 식사를 즐기는 값이
한 끼에 35만 6000위안, 우리나라 돈으로 약 5500만원이라고 합니다.
우리 기둥교회에서는 50명 식사가 20만원의 비용이 드는데
14가지 요리가 나오는 한 끼 식사 값이 5500만원이라고 합니다.
개관한 지 4개월밖에 안됐는데도 이미 12명이 황제 요리를 즐겼다고 합니다.
14가지 요리로는 상어요리, 제비집, 새끼 비둘기, 콩나물 뿌리,
100여마리 잉어요리… 등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5500만원 짜리 밥은 못 먹어도 김치와 된장찌개에 밥 한 그릇이라도
맛있게 잘 먹고 건강하게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며 음식 앞에서도 맛있게 감사히 먹을 수 있는
진정한 감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세상 과학은 발달했고 문화가 달라지고 있지만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질병은 치료가 점점 더 어려워 지고 있습니다.
경제 사정은 좋아졌다고 하나 생존을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습니다.
새해, 새 대통령, 새 정권에 기대를 걸고 있으나 막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사는 것이 전쟁"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여러분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요즘 기도할 때 "하나님 이 나라에 다시는 피흘리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라는 기도를 합니다.
전쟁은 어떤 이유로든 일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이유로도 전쟁을 정당화 시켜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전쟁은 희생이 너무 큽니다.
이겨도 참혹한 것이고, 지면 파멸입니다.
여러분도 전쟁이 나지 않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이 전쟁은 아니지만
2003년의 삶에…, 2003년의 신앙생활이… 범사에 주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윗과 골리앗
 
저는 오늘 성경에 나오는 한 전쟁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삶의 싸움,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비결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삼상 17:41~49)에 보면
블레셋(Bhilistines)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엘라 골짜기에서 싸운 싸움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전쟁에는 두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옛날 전쟁에는 양쪽 군대가 줄지어 서 있고
그 가운데에서 양쪽 대장이 나와 대장끼리 결투를 합니다.
그래서 이긴 대장의 군대가 이기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요즘 전쟁도 옛날처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피흘리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 블레셋의 대표자는 골리앗(Goliath)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라고 했습니다.
보통 1규빗은 팔꿈치에서 손목(또는 손끝)까지의 길이(40~45cm)를 말합니다.
그러니 작은 사람들을 기준으로 해서 한 규빗을 30cm라고 한다면
1m 80cm에 한 뼘을 더하면 2m가 넘습니다.
서양사람은 팔꿈치에서 손목까지의 길이가 보통 40cm 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골리앗은 2m 50cm 정도 되는 키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의 머리에는 놋투구를 썼고, 몸에는 고기 비늘 같은 어린갑옷을 입었습니다.
그가 든 창의 날 무게만도 6.8kg정도였다니 그는 한 마디로 거인이었습니다.
 
사울과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은 골리앗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놀랐고, 크게 두려워했습니다.(삼상 17:11)
 
● 이스라엘의 대표자는 다윗(David)이었습니다.
다윗은 그때 소년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3절을 영문성경으로 보면 
"~you are only a boy"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 소년 다윗은 "하나님의 군대"를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을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에게 가서 자기가 골리앗을 상대해 보겠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2m가 넘는 거인 골리앗과 어린 소년 다윗이 싸우겠다고 하니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양을 지킬 때 맹수들을 물리친 이야기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는 확신으로(삼상 17:37)
골리앗을 상대해 보겠다고 조릅니다.
 
 
유일한 무기
 
마침내 사울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윗의 출전을 허락했습니다.
그러나 골리앗을 상대해 보겠다는 소년 다윗에게
갑자기 싸울 준비를 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히고 놋투구를 머리에 씌우고
갑옷을 입혔습니다.(삼상 17:38)
다윗은 분명히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을 믿고 나가겠다고 했는데
사울은 자신의 갑옷을 입혔고 투구를 씌웠습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이고, 보통 사람들의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면에 나타난 것들을 믿고 인정합니다.
자기의 힘의 갑옷, 자기의 지식의 투구, 자기의 신분의 군복을 의지하고 삽니다.
그런가하면 다른 사람의 [힘의 옷]을 입으려 하고
다른 사람의 [지식의 투구]를 써 보려 하며
다른 사람의 [신분의 군복]을 입어 보려합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런가하면 우리는 곧잘 남의 옷을 탐냅니다.
남의 신분을 탐냅니다. 남의 재능을 탐냅니다. 남의 재물을 탐냅니다.
어떤 때는 못이기는 척하면서
슬그머니 남의 옷을 입어보고 그 자리에 앉아 보려고 합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에서도 이런 일 때문에 비극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군인들이 권력을 탐하고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가
마지막에는 감옥까지 갔던 일들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자신의 나이와 위치, 환경에 맞게 생활하지 않고
어른들의 흉내 낼 때 그런 학생들을 탈선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남의 것을 탐내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다윗은 자기에게 일부러 입으라고 갖다 준 갑옷과 투구가
몸에 맞지 않자 벗어 던지는 용기를 가졌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은 입지 말고
입었다면 벗을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벗을 줄 알았던 다윗을 본받아야 합니다.
 
신앙에, 생활에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은 벗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경제생활도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형편에서 입을 수 없는 것을 입으려 하고
자신의 형편에서 먹을 수 없는 것을 먹으려 하고
자신의 형편에서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합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줄 아는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비록 왕의 갑옷을 입고 투구를 썼으나
그것이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벗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시냇가에 가서 돌 다섯 개를 주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주울 수 있는 돌 다섯 개를 우습게 생각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돌 다섯 개 같은 것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단정해 버립니다.
여러분이나 제게는 돌 다섯 개 정도는 얼마든 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습게 여기고 무가치하게 여기는 그런 것들이
우리의 환경에는 얼마든 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팽개쳐 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공부하는 학생 가운데
"나는 공부방이 없어서 공부를 못합니다"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런 학생은 공부방이 있어도 공부 못합니다.
공부방이 없고 책상이 없으면 밥상이라도 놓고 공부하면 됩니다.
 
다윗은 다 벗어 던지고 자기가 가질 수 있는 것…, 
자기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
그것을 가지고 골리앗 앞에 나갔습니다.
 
골리앗은 자기의 육체와 공격용 무기를 믿고 큰소리 쳤습니다.
반면 사울은 자기의 몸에 걸친 갑옷과 투구를 의지해서
그것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다윗에게 입히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는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최선의 무기를 사용했습니다.
물매는 그 상황에서 다윗이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하고 유일한 무기였습니다.
물매는 과일을 따거나 짐승들을 퇴치하는데 사용하는 막대기입니다.
막대기 끝에 천이나 가죽을 달고 그 안에 돌을 넣고
돌려서 던져 목표물을 맞추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물매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 있었습니다.
사사기 20장 16절에 보면
물매를 사용하는 데 숙달된 사람은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출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골리앗이 크고, 다윗이 작더라도
물매를 가진 다윗은 골리앗을 만날 필요가 없었습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크더라도, 다윗이 아무리 작더라도
둘이 손을 잡고 힘을 겨룰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냥 물매를 가지고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물매를 가지고 자신의 앞에 온 다윗의 모습을 보고 골리앗은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왔느냐"라고 크게 분노했습니다.
곧 자신이 놀림을 당하고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자기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기는 믿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소홀히 여깁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하지 않고
마치 감나무 아래 누워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이 노력은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무엇인가 해 주겠지"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복판에 계시는 하나님
 
그리스도인들은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
사탄이 무서운 위협과 공갈로 다가와 시험할 때,
우리는 무서운 시험이나 문제를 보고 좌절하거나 낙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믿고 용기 있게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골리앗을 보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이 가진 무기도 보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갔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에 보면,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고 담대히 외쳤습니다.
그는 분명히 하나님 편에 있었고
하나님이 분명히 자기와 함께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이 계심을 믿기 때문에 예배의 자리에 나온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러분도 다윗 같은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2003년을 사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히11:1).
 
신앙생활이란
어디에 내 몸과 마음을 두고 있느냐 하는 점에서 구별이 되는 생활입니다.
"행동하는 신학자"라는 별명을 가진 본회퍼 목사님은
오랫동안 감옥에서 생활했고 마침내 나치에 의해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 목사님의 책 "옥중서신" 첫 머리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부터 말하려는 하나님은
  경계선에 계신 분이 아니라 한 복판에 계시는 분입니다.
  비밀 장소로 피신해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사건의 한 가운데에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숨어서 구경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속의 사건과 고통, 복잡한 문제… 속에 계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에 야구잡지에 소개된 이야기입니다.
미국에는 많은 프로 야구팀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우승했고 작년에도 우승했던 뉴욕 양키즈팀이 있습니다.
뉴욕 양키즈팀의 캣쳐로 [요기 베라]씨가 활약하고 있을 때
상대편 [가라기 올라]라는 선수가 뱃트를 들고 나오더니
몇 번의 연습 스윙을 하더니 땅에다가 십자가를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많은 미국 선수들이 하듯이 공을 잘 치도록 기원하는 행동입니다.
요기 베라는 심판에게 타임을 얻어 '가라기 올라'에게 항의하였습니다.
  "나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고 자네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데 
  하나님이 이런 형편에서 누구 편을 들 수 있겠는가?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이 경기를 구경만 하시도록 내버려 두세."
그랬더니 가라기 올라 선수는
  "우리 교회에서 들은 설교에 의하면
  하나님은 구경만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시는 분이라네.
  하나님은 저 관람석에 앉아 있기를 싫어하시고
  이 경기장 속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일세."라고 했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생활 속에 하나님은 구경이나 하시라고 하고
여러분 마음대로 하십니까?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분으로,
아니면 이 기둥교회라는 건물 속에 갇혀 계시는 분으로 믿으십니까?
아니면 생활 속에 힘들고 어려운 삶의 현장에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하나님은 땀과 눈물과 피가 흐르는 사건의 한 복판에 계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골리앗과 싸우는 사이에 직접 개입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2003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함께 하실 것입니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것입니다.
한 숨 쉬고 눈물 흘리는 일들이 우리들의 삶 속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순간 순간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마귀]같은 것은 두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사람이
"한 마디 물읍시다. 그렇다면 마귀가 당신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마귀를 두렵지 않다고 했는데 마귀가 당신을 두려워 할 것 같습니까?"
 
여러분은 마귀를 두려워 하십니까? 아니면 마귀를 두려워하지 않으십니까?
아니, 마귀가 여러분을 두려워 할 것 같습니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있는 자라는 것을 드러내고
당당하게 살아서 마귀가 우리를 두려워하게 해야 합니다.
마귀가 틈탈 기회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틈탈 기회를 주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범사에 감사하며 불평하고 원망하지 말라고 한 이유는
마귀가 틈탈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설령 사탄이 칼과 창과 단창으로 무장하고 다가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다윗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싸우고 견디고 마침내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헤어질 때 인사는 [승리하세요]입니다.
주안에서 범사에 담대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승리하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칼, 창, 단창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살다 보면 골리앗과 같은 것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선언하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가노라,
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노라"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우리가 가진 것이 돌덩이 같은 것밖에 없을 때도 있습니다.
골리앗과 같이 엄청난 것이 가로 막히고
우습게 여기는 막대기 같은 것 밖에 가진 것이 없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가면 이길 수 있습니다.
힘이 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으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따라서 하십니다.
 
"나는 가노라,
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노라"
 
<기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를 살게 하시고 힘있게 하루를 시작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지내 온 것도 주의 크신 은혜지만 이후의 삶이 더 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가진 것이 돌덩이밖에 없어도, 비록 가진 것이 막대기 같아서
세상이 우리를 우습게 본다 할지라도
우리 앞에 골리앗 같이 엄청난 장애가 있다 할지라도
"나는 가노라,
나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노라"
선언하며 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기게 하여 주시옵소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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