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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 / 갈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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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곽주환 목사 (구로중앙교회)
제목 :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 
본문 : 갈라디아서 4:1-7 


세월이 흘러서 벌써 2002년의 마지막 주일이 되었다. 특별히 연말이 되면 세월이 빠름을 실감하게 된다. 2002년의 한 해 동안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셨는가 궁금하다. 2002년을 정리하고 2003년으로 넘어가는 이 때에 우리는 어떤 생각으로 새해를 맞이해야 할까?

2002년 한 해를 되돌아보면 아마도 우리의 잘못한 일들만 생각날 것이다. 순간적으로 화를 내었던 일, 사소한 일로 싸웠던 일, 남에게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했던 일, 더욱 진실되게 살지 못했던 일, 등 많은 죄책감이 우리를 짓누를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일을 생각할 때마다 용서의 은총 속에 사는 사람들이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갖고 나가서 모든 것을 다 허비하고 돌아왔다. 아버지는 탕자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탕자의 모든 것을 용서해 주셨다. 모든 것을 받아 주셨다. 지난 날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죄책감이 나를 짓누르지만, 우리는 용서의 은총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42세된 김집사가 있었다. 그는 늘 어두움의 그림자가 그 얼굴을 떠나지 않았는데 그런 이유가 있다. 어린 시절의 가정 형편은 어려웠다. 그러던 중에 열 아홉이 되던 나이에 가슴에 불꽃을 일으키는 여학생을 만났다. 스물 한 살이 되도록 사랑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사소한 일로 언성을 높이다가 김씨는 자신도 모르게 여자의 뺨을 때렸다. 그 순간 여학생은 충격을 받고 울음을 터뜨리며 뛰쳐나갔는데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뛰어가다가 처참한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후로 계속해서 김집사는 그 여인으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려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를 지을 수가 없었다. 결혼을 해서 아이 둘을 낳아도 마찬가지였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처녀귀신이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김집사님에게 하나님에게 용서받은 확신이 생겼다. 성령께서 죄책감을 말끔히 씻어 주시고 용서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확신이 생겼다. 그는 변화되기 시작했다. 어두움의 그늘을 빠져 나오게 되었다.

2002년은 마무리하는 오늘 지난 날에 나의 잘못한 점이 있는가? 하나님께 회개하고 용서받은 기쁨으로 2003년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어느 여인이 병원을 찾아와서 가슴의 통증을 호소했다. 그러나 아무리 진찰을 하고 종합검진을 해도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남편이 잘 해주고 아이들이 그 어머니를 위해 효도했으나 여인은 항상 불안했고 삶은 파괴되어 갔다. 어느 날, 그 여인은 상담 치료사를 찾아가 자신을 상담했다. 그는 상담 치료사와 상담을 해 가는 동안 자신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다. 술고래였던 아버지는 걸핏하면 집에 들어와 어머니를 때렸고, 아이들을 폭행했다. 동네 사람들 보기도 부끄러웠다. 아이는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 결심을 했다. "죽어도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겠다!" 세월이 지나 성장한 아이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잊고 살았다. 그러나 마음 속에는 알 수 없는 증오가 서려 있었고, 그 증오는 독버섯처럼 자리잡아 그 여인의 사람을 풍성케 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용서한다는 고백과 함께 여인은 고침을 받았다.

지난 날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일이 있으면 회개하고 용서받고 2003년을 시작하자.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용서해 줘야할 사람이 있으면 깨끗하게 정리하고 용서하고 2003년을 시작하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날을 생각할 때에 우리의 부족함을 솔찍하게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지난 날을 생각할 때에 나를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찬송가의 가사데로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지난 날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반드시 지금까지 도우신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은혜를 기억하기 원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셨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을 너희가 알게 하리라." 우리는 주일을 지킨다. 주일을 지키는 큰 이유가 무엇인가?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돌탑을 쌓도록 말씀하셨다. 강 밑바닥에서 돌을 가져다가 돌탑을 쌓으라. 이 돌을 쌓게 하신 이유는 지난 날에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말고 기억하라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리라." 하나님은 지난 날에 도우신 은혜를 기억하기 원하신다.

2002년 마지막 주일을 지나는 오늘 우리는 지난 날에 도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지난 날에 지은 나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어떤 죄악도 용서하야 주실 줄로 믿는다.

우리가 이렇게 지난 날에 지은 죄를 용서함 받고, 주님께서 지금까지 내가 주의 은혜로 사는 것은 단 한가지 이유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복음의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분명하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자들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히브리어로 아버지란 단어는 "아바"이다. 이는 첫째 공급자, 둘째 보호자, 셋째 인도자, 넷째 교육하는자 혹은 훈계하는 자의 뜻을 갖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는 공급자이시고 우리를 적의 위험에서 보호해 주시는 보호자 되시며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시는 인도자가 되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교육하시는 교육자이시다. 즉 가정의 아버지나 하나님 아버지나 아버지는 모두 교육자란 뜻을 갖고 있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주님께서 지난 과거의 문제도 해결해 주실 뿐만 아니라 내일의 문제도 해결해 주실 줄로 믿는다. 내일을 이야기하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안을 이야기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향하여 불안의 시대라 부른다. 우리 국민의 65퍼센트 이상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단지 6퍼센트만 불안하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특별히 국제정세가 얼마나 불안한가? 북한이 핵문제를 들고 나온다. 우리 주변에 범죄가 점점 심해져 간다. 노사와의 갈등 문제, 청소년 범죄, 경제적인 불안, 외도에 의한 가정의 파괴 등 불안한 요소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불안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장애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불안장애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하였다. 본래 "불안"이란 자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알람 시스템’이며 정상적인 현상이다. 정상적인 불안과 불안장애는 차이가 있다. 강도의 칼을 봐서 생기는 불안은 정상이지만, 안 봐도 불안한 것은 장애에 해당된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의 상태를 넘어서 불안장애까지 이르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특별히 IMF를 지나고 나면서 경쟁이 더 심해지는 시대가 되었다. ‘경쟁 스트레스’와 ‘성공 강박관념’, ‘고독감’ 등으로 인하여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이렇게 불안하다가 보니 점치는 집에 기웃기웃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고통을 당하던 욥도 고백하기를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하면서 고통스러운 마음을 털어 놓고 있다. 야고보서의 말씀에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러나 본문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유업이라는 뜻은 아들로 받을 상속을 의미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내일에 대한 소망이 있다. 아들로서 받을 상속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내일은 소망이다. 내일은 불안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내일이 불안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내일은 소망이다.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시는 부모님의 마음을 생각해 보라.

나는 2003년이 기대가 된다. 2004년이 기대가 된다. 2005년이 기대가 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교회를 위하여 우리 인생을 위하여 얼마나 좋은 것을 준비해 놓고서 기다리실까? 얼마나 내일에 대한 소망이 있는가?

아마도 여러분들 중에 나는 아무리 봐도 내일에 대한 소망이 없다고 스스로 절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점점 나는 절벽으로 가까이 가까이 가면서 언제가는 떨어져서 영원히 죽게 될 것이라는 절망스러운 내일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들어보라.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절벽 끝으로 더 가까이 오라고 하셔서 더 가갔습니다. 그랬더니 간신히 발끝으로 서 있는 나를 절벽 아래로 밀어 버리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때까지 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내가 지금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이 불안하고 암담해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소망을 우리에게 주실 줄로 믿는다.

이같이 우리의 어제는 지금까지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지난날에 지었던 죄를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내일은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놓으시는 기대를 갖고서 내일을 생각해야 한다. 왜 이러한 은혜를 주셨는가? 이제 우리는 율법 아래 얽매인 종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이제 후로는 우리가 더욱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자.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동하자. 하나님의 자녀 답게 자부심을 갖고서 살자.

어느 날 임금님이 궁궐 밖을 나가서 암행 시찰을 하게 되었다. 임금님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가 다리 밑에서 한 거지 소년을 보게 되었다. 임금님이 보기에 그 소년의 모습은 너무나 더럽고 초라해서 애처롭기가 그지없어서 임금님은 그 소년을 궁궐로 데려가 모든 신하들 앞에서 왕자로 삼겠노라고 공포하였다. 이제 소년은 더 이상 거지 신분이 아니라 왕자의 신분이 되었다. 그 소년은 여기 저기가 찢어져 누더기가 된 자기 옷을 벗어 던지고 화려한 장식과 좋은 옷감으로 만든 왕자의 옷을 걸쳤다. 식사도 예전처럼 구걸하지 않고도 너무나 맛있고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왕자는 자신이 이제 거지가 아니라 왕자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모든 환경이 소년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어색했다. 아침이 되자 소년은 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시중드는 신하가 당황하며 "왕자님, 어디 가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왕자가 된 소년은 "사실은 저 다리 밑에 가면 제가 세수할 곳이 있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황당한 말인가? 왕자는 아직도 자신의 신분이 거지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왕자다운 생활을 하기에는 이미 거지 생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자가 진정한 왕자로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을 완전히 바꾸고 왕자다운 행동을 익히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 우리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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