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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눈을 들어 바라보라 / 창 13: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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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3:14-18
눈을 들어 바라보라
임대식 목사 (평화교회)


언젠가 물고기 양식장에 갔었는데, 거기서 주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참 뜻 깊었습니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부화된 물고기 새끼들을 기르지만 몇 달 지난 후에 보면 어떤 고기는 살도 찌고 잘 컸는데, 어떤 고기는 잘고 발육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궁금해서 그 이유를 알아보았더니, 살이 찐 고기들은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사람과 가까이 하면서 던져주는 먹이를 잘 받아먹는데, 발육 상태가 안 좋은 고기들은 사람의 그림자만 비쳐도 달아나고 나뭇잎 떨어지는 것만 보고서도 놀라 도망가더라는 것입니다.

사실 물고기뿐 아닙니다. 이렇게 두려움과 소극적인 태도로 세상에서 숨고 피하며 사는 사람은 결코 성공적인 인생을 살지 못할 것입니다. 두려움과 의심을 물리치고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 밝게 소망 속에 사는 사람이 인생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14절 말씀을 보면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하늘로서 나리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역사가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 눈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 눈으로 이 땅만 바라보면 짜증나는 일, 낙심되는 일, 한숨만 나오는 일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 주시는 힘을 나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주시는 소망과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미래를 나의 미래로 삼을 수 있습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면 약속의 땅, 축복의 땅이 보입니다. 믿음의 눈을 열고 보면 세상이 환히 열리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라고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은 우상의 도시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너는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음성을 듣고, 알지 못하는 땅을 향해, 알지 못하는 미래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길을 떠났습니다.

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풍성한 생활을 하게 되니 문제가 하나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데리고 왔던 조카 롯과의 사이에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짐승들이 많아지니 아브라함의 종들과 조카 롯의 종들 사이에 먹일 풀밭과 물이 모자라 다툼이 잦아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더 이상 갈등이 심각해 지기 전에 롯에게 독립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지혜롭게 분가를 시켰습니다만, 자식처럼 기른 조카 롯과의 사이에 다툼이 있은 뒤 할 수 없이 헤어진 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대단히 섭섭한 일이었습니다.

롯은 자식이 없던 아브라함에게는 양아들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마도 아브라함은 롯을 자기 유업을 이을 상속자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롯을 내보내야 했으니 무척 낙심이 되고 가슴이 아팠을 것입니다. 떠나는 롯을 보고 아브라함은 상심에 빠졌습니다.

게다가 이기적인 롯은 길러준 삼촌을 전혀 생각지도 않고 네가 어느 쪽으로 가겠느냐 아브라함이 제안했을 때, 말로라도 양보하는 기색이 없이, 냉큼 나는 기름진 요단 땅 쪽으로 가겠습니다 하고 자기 실속만 차리고 떠나버렸으니 오죽 섭섭했겠습니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훌훌 떠나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야속했겠습니까?

우리도 이 세상을 살아 가노라면 이런 때도 만나게 됩니다. 쓸쓸하고 적적하고 억울하고 손해보고 한탄스러울 때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럴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버리지 아니하셨듯이 우리를 버리지 않으실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바라기는 우리 성도님들,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라” 이 말씀대로 사시는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바라보아야 합니다. 롯처럼 현실의 이익에만 집착하지 말고, 믿음의 눈을 뜨고 소망의 눈을 열며 사랑의 눈을 들어 바라보아야 합니다. 롯처럼 탐욕의 눈을 뜨지 말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그래서 힘을 얻고 능력을 받아 약속의 땅, 축복의 땅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을 열면 하나님의 축복이 보일 줄 믿습니다. 소망의 눈을 뜨면 미래가 보일 줄 믿습니다. 우리가 사랑의 눈을 열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사실 “너 있는 곳에서 눈을 크게 뜨고 동서남북을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지만, 사실 볼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조카 롯에게 풍요로운 땅을 양보하고, 돌아본 나머지 척박한 땅 사방은 누런 먼지나 풀풀 날리는 광야 뿐이었습니다. 그 쓸쓸한 마음속에는 냉혹한 광야만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눈을 크게 뜨라”고 지시하시고, 그 먼지를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후손을 이 먼지처럼 많게 번창시켜 주겠다(16절).”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씀인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보잘것없는 먼지를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평범하고 하챦은 먼지 속에서 약속되었던 것입니다. 먼지 속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힘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인 줄 믿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창세기 15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느 날 밤에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천막 밖으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하늘을 우러러보게 하셨습니다. 보면 볼수록 수많은 별들이 찬란히 빛났습니다. 하나님은 “저 셀 수 없는 별처럼 네 자손을 축복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별의 축복입니다. 밤하늘에서 어두움을 보지 않고 무수한 별을 보는 것, 이것이 믿음의 눈입니다. 곧 하나님이 지시하는 꿈을 따라 사는 인생을 사는 복된 모습입니다.

광야의 먼지 속에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거룩한 뜻을 발견하는 믿음, 어두운 밤하늘에서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꿈을 보는 믿음, 이 믿음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며, 바울은 이 신앙을 이어받는 우리 믿는 이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 곧 먼지의 축복, 별의 축복을 이어받은 자들이라고 선언 합니다.

로마서 4장 16절에서 22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의 생애를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두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은 희망이 사라진 때에도 바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을 그의 의로움으로 인정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라.” 참으로 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낙심해서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려깔고 쳐진 어깨로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언제나 어느때나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인생의 문제들은 우리로 하여금 땅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을 바라보게 합니다. 사실 우리가 제대로 살려면 눈을 들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문제들을 바라보고서는 힘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여기에 세상을 사는 지혜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우리가 무엇을 바로 보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 면까지 보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얼른 듣기에는 모순된 말 같지만 여기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물질 가운데도 보이는 것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가령 우리가 물 한 컵을 떠 왔다고 하면 얼른 보기에는 아주 맑고 정결한 물 같지만 그 물 한 방울을 떠서 현미경으로 드려다 보면 그 물 가운데 여러 작은 생명체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보이지 아니하는 물질을 보기 시작하기 전에는 위생을 지킬 줄 몰랐습니다. 물질 가운데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작은 세균을 볼 줄 알면서부터 급속도로 의학이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눈에 보통 물질은 다 보입니다. 그러나 이 물질을 이루고 있는 원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전자와 양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분자 알맹이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보이지 않는 물질을 볼 줄 알기 전에는 이 물질 속에 내재한 힘을 사람들이 활용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물질을 볼 줄 알 때부터 원자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그 힘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리고 우리가 가까이 있는 것은 잘 보지만 먼 데 있는 것은 잘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 데 있는 것도 볼 줄 알아야 바르게 잘 살 수 있습니다. 우리 발밑에 있는 것만 보지 말고, 먼 장래의 일도 내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눈을 들어 이 세상 요단 들판만 볼 것이 아니라 하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만 보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도 보아야 합니다. 어떤 것이든 겉은 잘 보이지만 그 속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겉뿐만이 아니라 그 속까지 보아야 합니다. 또 현재는 보지만 장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래까지도 미리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서 물질적인 세계는 육안으로 보이지만 영적 세계는 보이지 아니합니다만, 영적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보아도 그 속사람, 그 영혼의 가치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은 보이지만 온 우주를 창조하신 천지의 대주재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로 볼 수 있어야 우리가 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이 세상 나라는 육안으로 볼 수 있지만 하나님 나라는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볼 수 없는 나라를 볼 수 있어야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도단 성에 있을 때에 아람 군대가 포위를 했습니다. 엘리사의 몸종이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두려워 말아라. 우리와 함께 있는 군대가 아람 군대보다 더 많단다” 하면서 “하나님, 이 사람의 눈을 밝혀 주옵소서”하고 기도하니, 엘리사의 종은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하늘의 불 말과 불 병거가 아람 군대를 맞서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 하늘 나라의 권세, 하늘의 신비를 우리가 볼 수 있어야 이 세상 나라 일도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현세는 보이지만 내세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세를 미리 보고 살아야 현세도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우리 육안으로는 보이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미리 보아야 이 다음에 우리가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대심판의 자리도 보이지 아니합니다만, 이것도 미리 보아야 이 다음에 두려움이나 후회함이 없을 것입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소망의 눈으로, 사랑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어떠했습니까? “자, 이제 우리가 분가할 때가 되었다. 네가 먼저 선택하라. 네가 왼쪽을 선택하면 나는 오른쪽을 선택하겠다.”

그때 롯은 어떠했습니까? 10절 말씀을 보니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다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만, 롯은 눈을 들어 무엇을 보았습니까? 롯은 요단 들을 보았습니다. 풍요로운 땅을 보았습니다. 오늘의 현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보이는대로 선택했습니다.

롯은 소유를 택했고, 현재를 택했고, 물질을 택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가치 기준이요 생활 태도입니다. 롯은 속보다 겉을 보았습니다. 미래보다 현재를 보았습니다. 물질을 보았지 그 속의 도덕성은 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 인생의 결과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재산도 잃고, 사랑하는 아내도 잃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나그네가 되었으며, 결국 오명을 남기게 된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14-17)

슬픈 마음으로 롯을 떠나보내고 쓸쓸히 돌아서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바로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온 가나안 땅을 그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약속을 주신 것은 바로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보이는 것을 양보했을 때에 보이지 아니하는 것까지 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롯은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보았고, 아브람은 눈을 들어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축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데 빼앗을 자 없고, 하나님이 뺏을 때에 막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존귀히 여기는 자를 존귀하게 대하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십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마 5;5) 하시는 주님의  말씀처럼 아브라함은 온유하여 땅을 기업으로 약속받은 것입니다.

사람은 두 종류의 눈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육신의 눈이요 또 하나는 영의 눈입니다.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는 세상의 것을 보며, 영의 눈으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보이지 않는 신령한 세계를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눈을 들어 멀리 가나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소망의 눈을 들어 약속의 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눈을 들어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 이제 우리의 삶은 땅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눈 앞의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 개인의 생활에 있어서나 창립 30년을 바라보는 우리 교회에 있어서나 눈을 들어 앞을 바라보며 소망 속에 오늘을 일으켜 나가시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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