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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낡은 부대, 새 부대 / 마 9:14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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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낡은 부대, 새 부대
본문 : 마태복음 9장 14-17절
설교 : 고신일 목사 (기둥교회)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뇨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마태복음 9장 14-17절) 

  <목회기도>
 
전능하셔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
복된 주일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살면서 힘들고 어려워 지친 이들이 왔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기 원하며 기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고
병들어 몸이 괴로운 이들도 있습니다.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은 이도 있습니다.
하나님, 부족한 종은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을 향한 작은 목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옵소서.
평안을 주시옵소서.
이 시간 같은 건물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어린이들, 교사들, 부천농아교회 성도들,
저들에게도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가족을 떠나 군에 가 있는기둥교회의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취업으로, 해외에 나가 있으며,
유학을 떠난 기둥교회의 많은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저들이 가족과 교회를 그리워할 터인데
하나님, 저들에게 은혜와 평가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악한 마귀 틈타지 않도록
성령께서 주장하여 주실 줄로 믿사옵고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기둥교회에 등록한 지 얼마 안 된 분이 기둥교회에 와서 <만나면 "할렐루야", 헤어질 때는 "승리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것이 제일 어렵다고 합니다. 교우들끼리 있을 때는 괜찮은데 낯선 사람들이 있을 때 "승리하세요"라고 하는 것은 왠지 싸우러 나가는 사람 같아서 이상하다고 합니다.

    "할렐루야"라는 말은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의 히브리어입니다. 이는 승리하거나 환호할 때 또는 감사할 때 하나님을 찬양하는 감탄사입니다(시148:14, 149:9, 계19:1,6). 예수 믿지 않은 사람은 좋은 일이 생기면 환호성을 지르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좋은 일이 생기면 "할렐루야! "하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립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하기 어렵지만 계층이나 모임 또는 집단에 따라 예법이 다른 것처럼 교회에서 "할렐루야!"라고 인사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군에 입대한 청년들이 100일 휴가를 나와서 "충성!"이라고 경례를 하며 인사할 때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오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군대라는 조직 사회에 들어가서 다른 예법을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좀 어색해도 앞으로 만나면 "할렐루야, 안녕하세요? 평안하세요?"라고 하고, 헤어질 때는 "범사에 주안에서 승리하세요"라는 인사를 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두 개의 비유
 
본문 마태복음 9장 14-17절에는 두 개의 비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생베조각과 낡은 옷]의 비유이고, 다른 하나는 [포도주와 부대]의 비유입니다. 이 두 개의 비유는 같은 진리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들을 말씀하시게 된 동기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찾아와 "요한의 제자와 바리새인은 모두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예수의 제자는 금식하지 않느냐"고 질문을 했기 때문입니다.
  금식은 유대교의 중요한 의식이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1주일 중 목요일과 월요일에
두 번씩 금식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계명을 받기 위하여
산에 올라간 날과 계명을 받고 내려온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혼인집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 슬퍼할 수 있느냐"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은 잔치가 한참 진행중인데 금식을 하며 슬픈 마음을 가질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 스스로를 잔치집의 신랑에 비유하셨습니다. 1주일에 두 번씩 지키는 금식 의식이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는 형식이라면 율법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새 신랑으로 오셨기 때문에 이제는 옛 종교의식인 금식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말씀으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금식에 대해서 말씀하셨고 금식하는 법도 가르치셨습니다.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태복음 6장 16절)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금식 기도한다고 다른 사람에게 표를 내지 말고 얼굴 표정도 밝게 하여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6장 1절에 보면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의 요점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든지, 구제를 하든지, 금식을 하든지 예수님만 바라보고 해야 합니다(히12:2).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보다는 사람들을 의식해서 사람들에게 칭찬 받으려고 하고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선한 일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지역이나 단체에 선물이나 위문품을 보내려면 "○○교회 위문품"이라고 이름을 밝히고 기념사진 찍고 신문에 내야 기분 좋아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금식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금식에 대해서는 경고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금식은 형식 문제가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며칠을 굶었느냐, 금식하는 사람의 상태가 어떤지…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금식하는 사람의 진심이 무엇이냐, 하나님 앞에 온전한 모습으로 다가가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다른 것과 틀린 것
 
우리 주변에는 자기의 생각과 같지 않고, 자기와 같은 방법대로 하지 않으면 모두 틀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형태를 가지고 문제를 삼고 사람을 구분하거나 비판해서는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중심입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르다고 해서 함부로 말하면 안됩니다.
 
본문 14절에 나오는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기들과 같은 방식으로 금식하지 않는다고 비판을 했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금식을 하니까 당신도 금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산 기도를 하니까 당신도 산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아플 때 약을 안먹고 기도하니까 너도 약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억지를 부리고 강요합니다. 신앙생활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렇게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모두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문제는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감사하지 아니하고 TV에 나오는 예쁘고 멋진 배우와 똑같아지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각기 다르게 만드셨습니다. 키가 큰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작은 사람도 있고, 눈이 올라간 사람 처진 사람, 뚱뚱한 사람 마른 사람… 등 모두 다양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31).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작품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셔서 세상에 내 보내셨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를 이루는 곳이 교회입니다.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예수 이름으로 모여 하나가 되는 곳이 교회입니다. 다 같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각기 다른 사람을 만드시고, 다른 모양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편협적인 생각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으면 틀렸고, 자기가 경험한 대로 하지 않으면 틀렸다고 생각하는 오만함이 어디 있습니까!
 
"편협"(偏狹, 치우칠 편, 좁을 협)이라는 말은 한 쪽으로 치우쳐서 좁은 눈으로 바라보고 그대로 해야한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편협적인 생각은 결국 교만과 오만에 빠지게 되고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생각하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받으실 영광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존중할 수 있고…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7절에 "새 포도주는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존되느니라." 했습니다.
"새 포도주"라는 말은 "새로 만든"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다른 뜻으로는 "시간상으로 새로운"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2001년과 2002년 중에 우리는 2002년에 살고 있습니다. 2001년과 2002년과 다른 것은 시간상으로 달라진 것입니다.
 
"새 포도주"라는 것은 농장에 있던 포도를 따서 사람들이 발효시키기 위해 새로 담은 포도주를 말합니다. "새 부대"라는 것은 "새로운"이라는 뜻도 있지만 "새로워진"이라는 뜻으로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에서는 포도주를 담는 부대를 목축하는 사람들이 운반하기 편하도록 염소나 양의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부대를 가죽으로 만들어 놓았을 때 가죽에 습기가 다 빠지고 나면 가죽이 딱딱해집니다. 그 딱딱해진 상태에서 포도주를 넣었을 때 포도주가 발효되면서 팽창하게 되면 딱딱한 부대가 터지게 됩니다. 그래서 만들어 놓은 지 오래 된 부대는 물을 적시고 거기에 기름을 발라서 가죽부대를 부드럽게 한 뒤에 포도주를 담았습니다. 이미 만들어 놓은 가죽 부대라 할지라도 물을 적시고 기름을 발라야 포도주를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포도주의 발효로 부대가 팽창해서 터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아예 낡은 부대는 버리고 새 가죽 부대를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낡은 부대, 새 부대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낡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새 사람입니까? 우리는 전과 다른 것이 없는 똑같은 사람입니다. 오히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더 나이를 먹었거나 더 늙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부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것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있습니다. 마음의 그릇, 영적인 그릇이 있습니다. <낡은 부대와 새 부대>를 생각해 보면서 우리들 자신을 한번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새 부대"는 새로 만들어졌다는 의미도 있지만 "새롭게 되었다, 변화되었다, 달라졌다"라는 의미가 더 강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2002년 1월 13일 주일 예배를 참석한 여러분은 전보다 달라진 것이 있으십니까? 2002년을 맞은 우리는 빌립보서 3장 13-14 말씀대로 "뒤에 것을 잊어 버리고" 변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두 가지 얽매이는 것이 있습니다.
- 첫째는 죄입니다.
지난 날의 허물과 죄에 대해 늘 괴로워하고 마음속에 담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죄를 사해주시고 다시 묻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은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가끔 지난날의 자기의 죄악이나 범죄했던 일을 자랑삼아 얘기하는 사람을 보게 됩니다. 혹 얘기한다 할지라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날의 죄에 얽매일 필요도 없지만 지난 날의 죄를 자랑거리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 둘째는 과거의 선행에 얽매여 있습니다.
자신의 이마에 생긴 주름살처럼 연륜에서 오는 경험, 주어진 아니 쓰고 있는 감투 때문에 오는 교만, 남들에게 알려져도 좋을 만한 착한 일을 했던 경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나 그때 고생 많았어. 나 아니면 누가 했겠어. 나도 봉사 많이 했어. 내가 그랬었지." 라는 것이 지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지금 어떤 모습이냐가 더 중요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예전에 봉사 많이 하고 수고 많이 한 것을 가지고 자랑하고 벼슬한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각기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신체가 건강하여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힘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신체적으로 허약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만큼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젊은 시절에 돈도 잘 벌고 봉사도 많이 할 때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몸이 늙어 용돈도 자식들에게 받아서 사는 형편에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각기 지금의 자기 형편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 지금 얼마나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새로 맞이한 이 2002년에 우리들의 삶이, 우리들의 마음이, 우리들의 믿음이… 먼저 새로워지고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들의 믿음에 물을 축이고 기름과 버터를 발라서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각자 부대를 가졌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했습니다. 그 동일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우리는 기도 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담아 줄 새 술을 언제나 풍족하게 가지고 계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넉넉한 가죽 부대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2002년 1월이 벌써 13일이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낡은 가죽 부대를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물만 축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기름까지 발랐으나 아직 입구를 열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사람, 믿음의 문을 열지 않은 사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겠다고 결단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새 포도주를 담을 수가 없습니다.
 
2002년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기를 결단하시기를 바랍니다. 새해가 되었습니다. 성경도 읽고, 예배도 정성껏 드리고, 주일을 주일답게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고, 감사하며, 봉사하고, 전도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야베스에게 허락하셨던 그 복에 복을 내게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야베스처럼 나의 지경을 넓혀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응답하실 만한 삶이 아니라면 어떻게 부끄러워서 입을 열겠습니까? 2002년에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라고 했고 야고보서 4장 17절에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성경책만 옆에 두고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위해 듣기 위해 행하기 위해 애쓰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는 마음을 먹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손으로 쓰시기 바랍니다. 이 2002년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필요한 사람입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필요한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살아 있기 때문에, 숨을 쉬고 있기 때문에, 예배의 자리에 나온 것만 보아도 여러분은 꼭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 하나님이 살려 두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 "있으나마나한 인간, 저 인간은 필요없는 인간"이라고 다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합니다.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는 꼭 필요한 사람이기 때문에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가슴에 손을 대고 따라 하세요. "나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나는 중요한 사람입니다. 나는 나 대로의 가치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믿고 사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이유가 없습니다. 잘나고 힘세고 넉넉한 환경에 있는 사람과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낙심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복에 복을 더하시고 지경을 넓혀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첼로 연주자 가운데 "토스카니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토스카니니는 눈이 나빠 고통을 당했습니다. 오늘날 처럼 과학과 의학이 발달되어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눈이 나쁘니까 악보를 잘 볼 수가 없었던 토스카니니는 다른 사람이 연습하는 소리를 듣고 악보를 확인하고 아예 외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적당히 연습하고 잠잘 때 토스카니니는 악보를 외우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 연주회를 앞두고 지휘자가 오지 않는 일이 생겼습니다. 단원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그래서 악보를 다 외우고 이해하고 있었던 토스카니니가 그날의 지휘자로 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19살의 첼로 연주자 토스카니니는 비록 눈이 나빠 악보를 모두 외우기 위해 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지만 지휘자로 성공적인 음악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토스카니니 자신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다른 사람보다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물론 그를 불행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토스카니니에게는 눈이 나쁜 것이 오히려 기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힘들고 어려워 다른 사람보다 나쁜 조건에 사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실망하지 말고 오히려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지경을 허락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준비하는 새 부대는 내가 물을 적시고 기름을 바르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2002년이라는 새 포도주를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해 준비하셨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부대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새 포도주를 담기 위해 새 부대를 준비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이 복된 주일 교회에 찾아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기 위해
결단하도록 도와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직도 믿음이 연약하여 결단치 못하는 심령들을
오늘 결단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새로운 마음으로 일어서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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