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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찢어지지 아니하는 축복 / 요 21:1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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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찢어지지 아니하는 축복
본문 : 요한복음 21 : 1 - 11
설교 : 강구원 목사 (갈보리교회)


예수님은 죽으신 지 사흘만에 무덤에서 부활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40일 동안이나 생전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 하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던 못 자국을 확인 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했습니다.

후에 예수님께서 도마에게 나타나셔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서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도마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할 때 예수께서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제자들의 상황은 급변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어느 정도의 미련이야 있었겠지만 예수님에 대한 기대와 소망은 물거품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처음에 하던 자신들의 생업으로 돌아가는데 빨랐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들의 생업으로 돌아간 제자들을 찾아 날이 새어갈 무렵에 갈릴리 바다에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곳에서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는 물음에 제자들의 대답은 “없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시키는 대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에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시라”고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배에서 육지와의 거리는 오십간(약 50m)쯤 되었으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왔습니다. 지금 갈릴리 바다에 가면 이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50m쯤 되는 거리에 큰 기둥을 기념으로 박아 놓았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제자들이 겨우 끌고 온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려보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 백 쉰 세 마리나 되었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찢어지지 아니하는 축복’은

Ⅰ. 하나님 말씀을 듣는 데부터 옵니다.

본문 21장 5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말씀을 잘 들어야 다음 순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을 듣는 자세가 매우 중대합니다. 듣지 않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7절에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타계에서 진리를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계시종교의 특색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욥기21장 2절에 『너희는 내 말을 자세히 들으라 이것이 너희의 위로가 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잠언28장 9절에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1장 10절에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2장 20절에 『네가 많은 것을 볼지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지라도 듣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7장 23절에는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47절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로마서10장 14절에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독교인은 복음을 듣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성도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합니다. 눈이 나쁘거나 육신의 불편함도 괜찮은데 듣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불교는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공자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안다고 합니다. 희랍인들은 말하기를 인간이 진리를 타고났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믿으라고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그렇게 가르치지 아니합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외부로부터 듣지 못하면 완전히 진리를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롬 10:17). 이것이 계시종교의 특색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조작품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 최귀의 선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곧 성경을 듣는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듣는다는 말은 곧바로 바른 설교를 듣는다는 말과 등식 관계를 가집니다.
‘찢어지지 아니하는 축복’은

Ⅱ. 하나님의 말씀(복음, 설교) 앞에 정 직한 자기 고백에서 옵니다.

본문 21장 5절에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인간을 고백하라는 말입니다. 무엇인가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아무 것도 없는 자신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존재론적(存在論的)으로 인간의 기원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형태론적인 모방이 아니라 인간은 하나님의 신격 곧 하나님의 의와 지와 거룩하심으로 지음받았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은 그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에게서 최고로 표현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9절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고 했습니다.

2) 본질적(本質的)으로 인간은 타락한 죄인입니다.
인류의 조상 하와의 죄로 말미암아 영육간에 불행이 왔습니다.
창세기 3장 16-19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컹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후로 인간은 버려진 고아와 같은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23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영육간에 모든 기관의 기능이 완전히 부패되고 마비되고 오염되었습니다.
디도서 1장 15절에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했습니다.

3) 가치론적(價値論的)으로 볼 때 인간은 전적 무능력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14절에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죄와 허물로 인하여 죽었고 하나님에게서 이탈되어서 구원될 방법이 없게 되었습니다.
욥기 14장 4절에 『누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낼 수가 있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죄를 범함에 있어서 통제 당하지 아니하고 자유로 죄를 범하고 또 그것을 기쁨으로 알고 있습니다. 죄는 언제나 얼마간의 쾌락을 동반합니다. 죄에 쾌락이 없다면 죄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쾌락은 필수적입니다. 사실 육체적 쾌락을 제어할 수 있다면 엄격한 의미에서 죄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정직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세리는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도 못하고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이렇게 기도 했습니다(눅18:13). 이것은 하나님 앞에 자신이 죄인인 것을 고백하는 태도입니다.
큰일을 해 본 사람은 자기 힘이 아닌 줄 압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하나님 앞에 솔직히 자기 무능을 고백하는 태도입니다.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다고 하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난 자들의 한결같은 정직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은 살았으나 죽은 것입니다. 따라서 죽은 자의 기능은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것입니다.
‘찢어지지 아니하는 축복’은

Ⅲ. 하나님의 말씀(복음, 설교)을 믿는데 서 옵니다.

본문 21장 6절에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는 삶입니다. 헬라어 원문에 믿는다는 동사 "피스듀오( )"는 거의가 독자적인 단어로 사용되지 않고 반드시 전치사를 동반하는데 예를 들면 엔( , in…안에), 에이스( , on, to.∼에게로), 디아( , for∼통하여, 위하여, 때문에)다시 영어로 번역하면 believe in Jesus Christ, belive on him, belive for Jesus Christ 입니다. 이 말은 예수 안에서, 예수에게로, 예수를 위하여, 예수 때문에 등은 예수를 빼놓고는 믿음은 생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그를 의지하는 마음이 곧 믿음입니다.

요한복음 6장 29절에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한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찢어지지 아니하는 축복’은

Ⅳ. 하나님의 말씀(복음, 설교)을 믿고 행하는데서 옵니다.

본문 21장 6절에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던질 때 믿고 던졌습니다. 던지라는 명령에 즉각 결단했습니다. 복음에 순종한 결과 얻어지는 축복입니다.

1) 감당할 수 없는 기적적인 축복입니다.
본문 21장 6절은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힘만 의지할 때는 밤새도록 잡아도 한 마리도 못잡았는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결과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잡혔습니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었습니다(요 21:9). 예수님께서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요 21:10). 그렇다면 제자들이 틀림없이 생선을 잡은 것입니다. 제자들이 목적하던 것을 얻은 것입니다.

2) 양적인 포만의 축복입니다.
본문 21장 11절에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이라고 했습니다. 그 그물에는 더 이상 담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자기의 그릇에 가득담아 주심입니다. 즉 우리의 삶을 가득 채움입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들과 우리의 생업이 더 이상의 것이 없도록 주심입니다. 더 이상의 대용품이 없도록 형통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3) 질적으로 양질축복입니다.
본문 21장 11절에 『…큰 고기…』라고 했습니다.
작은 고기도 있을 것인데 유독히 큰 고기라고 했습니다. 타에 돋보이는 축복입니다.

4) 객관성 있는 축복입니다.
본문 21장 11절에 『큰 고기가 일백 쉰 세마리라…』고 했습니다. 대충 대충 본 것이 아닙니다. 결과를 더욱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세어보았습니다. 그 누구에게나 명명백백하게 잡은 고기를 공개할 수 있는 153마리입니다.

5) 찢어질 수 없는 축복입니다.
본문 21장 11절에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고기가 아무리 많이 잡혀도 그물이 찢어지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은 찢어지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은 훔쳐갈 수 없습니다. 사람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소멸될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을 듣고 그 복음 앞에 정직하고 그 복음을 믿고 순종한 결과 기적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람왕의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나아만 장군의 위엄 있는 갑옷 속에는 살이 썩는 문둥병의 비참함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이 세상 현실의 참상입니다. 그런데 나아만 장군 집에 포로로 잡혀온 계집종이 있었습니다. 그 계집종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는 자였습니다. 그는 장군의 부인에게 우리 주인께서 사마리아에 계신 하나님의 선지자 앞에 섰다면 문둥병을 고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계집종의 말은 곧 복음입니다. 나아만 장군은 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선지자 앞에 섰습니다. 엘리사는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에게 죽을 병에서 구원 얻는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것은 요단 강물에 일곱 번 들어가서 씻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에서 구원 얻는 복음입니다. 이 말을 들은 나아만 장군은 화를 내면서 본국으로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오랫동안 병상에서 병이 낫는다는 이 기쁜 소식을 듣고 막상 와 보니 치료방법이 자신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실망했습니다.
적어도 나아만 장군이 생각하는 치료방법은

①저가 내게로 나아와서
②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나아만 장군의 생각은 죽을 병에 걸려 있는 바로 영적 문둥이 생각입니다.

이사야 55장 8-9절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는 요단 강물이 약효가 있는 줄로 착각하고 요단 강물 보다는 자기 나라에 있는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강이 더 낫지 아니하냐고 했습니다. 내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복음을 받지 아니하면 여전히 영적으로 문둥이입니다. 결국 경거망동하는 나아만은 그의 종들에 의하여 요단 강물에 몸을 잠갔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자의 말대로 일곱 번 담그고 나서 어린아이 살같이 깨끗하여 졌습니다. 결국 요단 강물에 약효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하여 여섯 번까지 여전하게 하시다가 일곱 번째 완전히 치료되게 하셨습니다.

언제나 내 생각은 사망입니다.
복음은 이 내 생각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부인하고 복음을 듣고 자기자신의 적나라한 죄인 된 모습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면 햄버거 파는 곳이 많습니다. 어느 날 수요예배를 마치고 목사님 한 분이 우리 눈에 익숙한 햄버거가 아닌 처음 보는 햄버거 가게로 저를 인도했습니다.
그 햄버거 집 이름이 in and out 이었습니다. 이 햄버거 집의 상호는 다름 아닌 신명기 28장 6절에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You shall be blessed when you come in and you shall be blessed when you go out)

이 말씀에서 in and out을 착안했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153마리는 우리 나라 상품 중에 단일 품목으로 최고의 시장 점유를 가진 모나미 볼펜에 153이란 숫자가 적혀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기독실업인(Christian business man)들의 축복에 대한 쟁취의식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기가 많이 잡힌들 그물이 찢어지면 헛수고이듯이 우리의 삶도 찢어진 그물처럼 되지 아니해야 합니다.
이러한 형통한 삶의 조건을 본문에서 찾아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주시는 찢어지지 아니하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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