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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앞으로 함께 나아갑시다 / 빌 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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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앞으로 함께 나아갑시다
성경 : 빌립보서 3:12-16
설교 : 한종희 목사 (관성교회)


이 바울의 미래 지향적인 삶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아니, 우리가 더 진지하게 물어야 할 질문이 있다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분과 저가 정말 미래 지향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이 우리가 오늘 본문 앞에서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첫째는 현재에 대한 창조적 불만을 가져야 합니다. 현재에 대한 창조적 불만을 가져야 합니다.
자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12절의 말씀을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다같이 12절 시작,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집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라” 저는 이 고백이 창조적 불만을 대표하는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창조적 불만 왜 중요합니까? 이 창조적 불만이 있을 때 새로운 발명이, 새로운 연구가, 새로운 사역이 시작 될 수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 입니다마는 월트 디즈니의 이야기, 자기 딸이 어렸을 때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동네의 공원을 갔습니다. 그 동네 공원은 매우 지저분했고 깨끗하지 못했고 위험하기조차 느껴졌습니다. 이 정도 밖에 공원을 만들 수 없는가? 이 창조적 불만, 어떤 과학적인 탐구도 할 수 있고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원에서 미래의 꿈을 꿀 수 있는 어린이들만의 천국을 만들 수는 없을까? 이것이 디즈니랜드가 디즈니 월드의 소위 Think park의 그 비젼이 탄생하는 순간 이였든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지금 에버랜드도 가고 그러는 거에요. 우리아이들이 다, 그날 그의 비젼 때문 이였습니다.

  미국의 그 청소년 사역으로 크다란 영향을 끼쳤든 데이빗 윌크선 이라는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한국말로도 십자가와 깡패라는 그런 제목으로 그의 전기가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은 본래 필라델피아 근교 펜실바니아 주에 전원 목회를 성공적으로 하던 목사였습니다. 교회가 자라갑니다 확장됩니다. 그의 설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과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그의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가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을 주목했습니다. 그것은 뉴욕의 그 도시 한 복판에 소위 Inner city에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마약에 빠지고 있는 청소년들, 또 폭력에 이끌려 가고있는 비참한 청소년들의 모습이 보도되던 순간 갑자기 그는 그 텔레비전을 껐습니다. 그리고 그는 텔레비전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하나님 저 청소년들을 그대로 버려두어야 할까요? 제가 무엇을 하면 좋습니까? 그리고 이것은 계속적으로 그의 마음속에 기도의 부담이 되기 시작했고, 한 날 드디어 그는 중요한 결단을 내립니다. 그는 교회를 사임하고 뉴욕의 다운타운 험악한 도시 한복판으로 갑니다. 그리고 청소년 사역을 시작합니다. 이것은 미국정부와 수많은 사람들의 그 시선을 끌었고, 소위 미국의 도시 안에 청소년을 돕기 위한 대대적인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청소년들의 인생을 바꾸는 위대한 혁명적 운동의 시작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의 마음속에 싹트기 시작한 그 창조적인 불만, 이대로 좋을까? 이것이 전부일까?

사랑하시는 여러분, 창조적 불만의 반대 개념이 뭘까요? 창조적 불만의 반대, 우리는 그것을 현실 안주의식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소위 Status quo mentality , 현실 안주의식 입니다. 뭐 이만하면 되었지 뭐, 그냥 여기서 만족하고 살면 되었지, 그러나 이것이 위험한 생각인 것을 아십니까? 그때부터 인생은 늙는 것입니다. 후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도 그렇고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미래에 대한 확고한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자 오늘 본문에 나타난 14절, 아주 유명한 구절이죠? 14절을 우리 다같이 읽겠습니다. 14절 시작,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네, 푯대를 향하여, 골을 향하여 목표를 향해서 푯대를 향하여, 바울은 그가 예수를 만난 후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한 어떤 푯대가 목표가 설정되었든 것입니다. 그 푯대를 향해서 나는 간다!

  그 푯대는 다른 말로하면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이다. 부름! 이것이 바로 소명이죠.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 소명이에요. 소명은 불러주심 입니다. 부르심, 바울은 그 소명을 보고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인생이 그 부르심 앞에 소명 앞에 순종하고 인생을 다 살고 주님 앞에 섰을 때 그가 누릴수 있는, 받을 수 있는 상급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바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나는 그 목표를 바라보고 가고 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부르실 때, 단순히 구원을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구원만을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옥만 안가기 위해서 불러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 구원을 받았다는 것, 죄사함을 얻었다는 것, 그것은 놀라운 것이지만 그것은 출발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왜 구원받았을까요?

  주께서 저와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시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겨주시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것, 이제 여러분과 저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그 놀라운 부르심, 불러주신 그 일을 하도록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그 구원에 근거한 그리고 소명에 근거한 인생의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번 달에 우리교회 추천 도서로 소개했든 오스키니스의 소명이라는 책, 읽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첫 페이지가 어떻게 시작됩니까?

어떤 부자사업가가 그가 부요 해 지기 위해서 사업에 성공하기 위해서 몰두했습니다 열심히 일했습니다. 상당한 돈을 벌었고 어느 정도 성공했습니다. 그가 이제 벤키시에서 만찬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을 때, 그러나 그는 매우 진지한 뼈아픈 이런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가 열심히 일한 이유가 있습니다. 열심히 사업을 한 이유가 있습니다. 열심히 돈을 번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돈을 벌면 내가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게 될 것이고, 그러면 내가 하든 일들을 그들에게 다 위임하게 될 것이면 내 인생은 얼마나 편안한 삶, 소위 comfortable한 Living, 편안한 삶이 될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저는 이제 상당히 돈을 모을 수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일하는 사람이 되었고 많은 일들을 그 분에게 위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인생을 살다 보니깐요 도저히 이렇게 살아도 위임할 수 없는 것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인생의 목표를 세우는 일, 그리고 그 목표를 실현하는 일만은 절대로 그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저는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소명을 성취하는 일, 그리고 그 목표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일, 그것은 아무도 대신 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오스키니스는 계속해서 어떤 얘기를 합니까 그 다음 페이지에 보면은 저 유명한 도스도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의 얘기를 하면서 한 작중인물의 입을 빌려서 이런 고백을 하지 않습니까? 인간 존재의 비밀은 그냥 생존만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위해서 사는 것, 무엇인가 분명한 것을 위해서 사는 것, 이것을 모른다면 자신이 왜 사는지 모르고 살아간다면 이런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수용하지 못할 뿐더러 종내는 그 인생을 스스로 파괴하고 말이다. 그것을 위해서 살 수 있고, 그것을 위해서 몸을 던져 죽을 수 있는 그 것, 우리는 이것을 인생의 최고순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존재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을 소명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 입니다. 소명은 사람마다 다른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전체가 공유하는 공통의 보편적인 소명도 있어요. 예를 들어서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을 성취하는 것, 복음 전도를 하는 것,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

바울은 물론 이 소명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전도를 해도 사람마다 어떻게 어디에서 하느냐 하는 소명이 또다시 달라질 수가 있어요.
  예를 들어서 베드로의 경우에는 자기와 같은 동족의 유태인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베드로의 소명 이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처음부터 달랐죠? 하나님이 그를 부르실 때부터 너는 이방인들을 위해서 내가 택했다 복음을 전해 듣지 못한 이방세계 불신세계, 나라마다 민족마다 부족마다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 바울은 그것이 자기의 소명인 것을 알았어요. 그것을 위해서 줄기차게 바울은 달려가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사업을 하면서 비즈니스 세계에서 복음을 저하는 사람, 어떤 사람은 교육계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공유하는 보편적 소명이 있지만 그 보편적 소명의 크다란 테두리 안에서 다시 하나님이 여러분과 저에게 주신 나의 달란트, 그리고 나의 은사, 나의 재능, 나의 독특한 생존의 조건 삶의 조건을 통해서 나만이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를 다시 설정해야 하는 일,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명하고도 확고한 내 인생의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골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인생의 소명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왜 우리의 삶이 앞을 향해서 나아가지 못할까요? 목표가 없어서 그래요. 목표가 없어서요. 내 인생이 정말 미래 지향적인 삶이 되기를 소원하십니까? 저는 여러분이 미래에 대한 확고한 목표를 세울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확고한 목표를 세우셔야 됩니다.

세번째로 한걸음 더 나아가서 미래를 향한 집중적 헌신을 드려야 합니다. 미래에 향한 집중적 헌신을 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를 정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 인생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이 적은 사람들만이 어느 정도 목표를 실행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성공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성취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목표를 설정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 목표설정에 도달하지 못하고 인생을 힘없이 맥 빠지게 종결 짖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 왜 그럴까요? 어디에 차이가 있습니까? 목표는 다같이 가졌어요. 목표를 설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어디에서 났을까요? 저는 그 차이가 간단하다고 생각해요. 그 목표에 헌신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목표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 땅에서 어떤 성취를 한 사람들, 어느 정도 성공을 한 사람들 귀한 가치를 남긴 사람들을 보세요. 집중하지 않는 사람 있어요? 그 목표 앞에 헌신하지 않고 집중하지 않고 그런 성취와 성공을 거둔 사람들을 여러분은 보신 일이 있습니까?
자, 오늘 본문13절에 바울 사도의 고백을 다시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자, 본문의 13절을 한번 더 같이 읽겠습니다. 다 같이 시작.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자, 바울은 목표를 설정한 다음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는 내가 오직 한 일, 여기서 오직 한 일이라는 단어를 주목해 보세요 오직 한 일, 영어성경에 보시면 One thing I do 오직 한 일, 오직 한 가지,
  이제 자기의 삶이 그 목표 앞에 집중되어 있음을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표현이 아닙니까? 오직 한 일, 오직 한 일, 그 일을 위해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며 달려간다. 네, 그리고 14절에 이제는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어떻게 한다고 그랬어요? 쫓아가노라 쫓아가노라!
  이것이 아주 강력한 감성이 들어가 있는 그런 단어입니다. 영어에는 Press on ! 아주 강력하게 집중하고있는 그런 모습을 들어내어주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본래 희랍어에서 이 단어는 이럴 경우에 쓰여지는 단어라고 합니다. 굶주린 사냥개가, 오랫동안 굶주렸어요. 그러다가 먹이를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이제는 그 먹이에 자기의 그 모든 시선, 존재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고 아마 질주할 것입니다. 자, 이 그림을 보세요 바울은 자기의 인생의 소명, 그 소명에 근거한 목표설정을 한 다음에 내가 그 목표를 향하여 뭐라구요? 쫓아가노라! 이제 그는 어떤 시련도 어떤 장애물도 뛰어넘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실현 없이 어려움의 과정 없이 목표에 도달을 한 인생들은 없습니다. 그 시련을 넘어설 수 있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여기 창조적인 모험심과 돌파의 용기가 이제 요청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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