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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 위에 신앙인격을 겸비하라 / 엡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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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위에 신앙인격을 겸비하라
천안외대 김홍진 목사
에베소서4:1-6


  여러분께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대답해보십시오. 자, 신앙과 인격이 비래 할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신앙이 성장할수록 인격이 성숙해질까요? 어떻습니까? 답은 정확하면서도 간단합니다. Yes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을 자신에게 적용시켜 보십시오. 내 신앙이 성장할수록 인격이 성장하고 있는가? No 입니까? 왜 그럴까요? 신앙이 문제이거나 인격이 문제이거나, 둘 중에 하나 일 것입니다.

  친구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 성격과 인격이 괴팍한 사람인 자기가 은혜를 받아 구원을 받고 목사가 되었는데, 인격은 잘 변화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었지만, 부름 받아 구원받았지만,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인격의 변화가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신앙이 있다면 인격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신앙이 성장할수록 인격도 성숙해야할 것입니다. 저의 이 말에 동의하시면 아멘합시다. <아멘> 저는 그것을 신앙인격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인격이 부족한 것에 대해 권면 하는 말씀입니다. 당시 에베소 교회에는 1절에 보면 복음을 받아 거듭났지만 신앙인격의 결여로 서로 용납이 없고, 갈등이 생기고, 원수를 맺고, 하나 되지 못하는 분열과 다툼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2절에 부르심을 입은 자의 신앙인격이 어떠해야 할 것을 권면 하고 있습니다. 자, 구원받은 크리스찬의 신앙인격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첫째, 부르심을 입은 크리스찬의 신앙인격의 모습은 겸손입니다.

  2절에 볼까요? 뭐라고 했습니까? "모든 겸손과" 그랬습니다. 부르심을 입은 크리스찬의 신앙인격의 모습은 겸손이라는 것입니다. 겸손한 모습을 가진 크리스찬의 모습이 그립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성숙한 신앙인격의 소유자입니다.

  기독교가 인류에 공헌한 최대의 언어 중 두 가지를 든다면 하나는 사랑이고, 또 하나는 겸손일 것입니다. 성 어거스틴도 말했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유산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에 어거스틴은 대답하기를 첫째는 겸손입니다. 둘째는 무엇입니까? 둘째도 겸손입니다. 셋째는 무엇입니까? 셋째도 겸손이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겸손이란 단어는 "마음을 땅에 누운 만큼 밑바닥까지 내려라"는 뜻입니다. "비천할 정도로 마음을 낮추라"는 말입니다. 로마서 12장 16절에도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라"고 했습니다.

  겸손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교만입니다. 교만은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게 보이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그러기 위해 이들은 말이 많습니다. 교만이란 원래 "떠벌리다"라는 말에서 온 단어입니다. 교만이라는 단어를 헬라어 원어에서 보면 "카우카오마이" 얼마나 단어도 교만하게 생겼습니까!

  왜 겸손해야 합니까? 예수님처럼 살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보실까요? 주님은 하늘에서 땅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이 주님이 겸손을 좋아하시고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청년들이 범하기 쉬운 죄 중에 하나가 이 교만입니다. 믿음 위에 용기도 있습니다. 담대함도 있습니다. 성취의 능력도 있습니다. 비전도 있습니다. 그러나 간혹 자신의 분수와 위치를 벗어나 교만에 빠질 수 있습니다. 청년들이 믿음 위에 겸손의 인격을 겸비하면 얼마나 멋있을까요? 청년들이 믿음 위에 이 겸손의 인격을 덧입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청년 여러분, 나의 마음을 낮추지 못하여 내 교만한 마음의 돌에 걸려 넘어지는 자가 얼마나 있었던가요? 우리의 마음을 땅바닥까지 낮추어 남이 즈려밟고 가게 하는 겸손의 옷을 입으시기를 부탁합니다.

  둘째, 부르심을 입은 크리스찬의 신앙인격의 모습은 온유입니다.

  2절에 "모든 온유로 하고" 그랬습니다. 온유는 성숙한 신앙인격을 소유하기 위한 필수적인 마음입니다. 부르심을 받아 구원받은 크리스찬이라면 신앙이 성장할수록 온유한 사람이 되거 갑니다. 신앙생활을 할수록 온유해지십니까?

  온유는 프라우테스라는 헬라어로 이 말은 "흥분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심령의 고요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온유에는 아집이나 고집이나 자기 욕심에 사로잡힘이 없이 온화하고 상냥한 마음을 말합니다. 온유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지칭합니다. 그는 얼구만 보아도 평안합니다. 소위 편안한 사람입니다. 마음에 독기가 없고 평온한 사람,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있고, 얼굴에는 편온함이 있는 사람입니다.

  왜 온유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온유하셨고 온유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성품을 말할 때 마태복음 11장 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5절의 산상설교에서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라고 축복하셨습니다.

  한국 교회에 성령충만한 증거가 잘못된 것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그랬습니다. 성령충만하다고 쉬쉬쉬 솨솨솨 하는 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왜 그리 성령이 건방집니까! 성령은 거룩하고 온유하신 분입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골로세서 3장 11절에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온유로 옷 입어라"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 삭막한 세상에 마음이 따뜻한 온유한 크리스찬이 그립지 않습니까? 고독과 심적으로 가난한 세상에 정감있는 마음이 온유한 크리스찬이 그립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몇 년 해왔습니까?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신앙의 연륜이 늘어나면서 여러분은 자신의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십니까? 더욱 온유한 자심의 모습을 보고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날이 갈수록 거칠어집니까!

  크리스찬이라면, 신앙생활의 연륜이 늘어갈수록, 말씀을 읽고 믿음 생활의 진전을 볼수록 우리의 마음은 더욱더 온유해져야합니다. 믿음이 성장할수록 우리의 인격은 더욱 성숙해져야 합니다. 이제 어제보다 지금 더 온유해지면 됩니다. 지난 해보다 올해는 조금 더 온유해지면 됩니다. 부드러운 크리스찬, 평안한 크리스찬, 얼굴에 따뜻한 미소를 간직한 크리스찬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부르심을 입은 크리스찬의 신앙인격의 모습은 오래 참음입니다.

  인내는 인간을 성숙에 이르게 하는 보화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미덕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오래 참음입니다. 부르심을 입어 구원받은 크리스찬은 이제 신앙이 깊어질수록 인내를 배워야 합니다. 오래 참음은 인격을 성숙하게 만듭니다. 성숙한 신앙은 인내의 인격을 소유해야 합니다.

  오래 참음, 즉 인내(마크로뒤미아)의 뜻은 "성나게 하는 자극에 직면해서 성급하게 보복하거나 즉석에서 혼내주지 않고 자제하는 느긋한 성질"을 말합니다. 노하고 화내는 것의 반대입니다. 인내할 때 그 사람은 성숙한 사람입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 치고 인격이 성숙한 사람이 없어요. 은혜를 받아서 성령충만 하지만 화를 한 번 내버리면 성령충만은 순간 사라집니다. 인내할 때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오래 참으면 그 사람은 덕 있는 인격자가 됩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비록 정치는 잘못 하지만, 성숙한 신앙인격의 소유자입니다. 한 번은 밑의 하관이 이 대통령의 잘못된 정치만 골라가면서 앙금앙금 대통령의 마음을 씹어가며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가 다 끝날 때까지 말 한 마디도 안하고 참고 기다리면서 비판이 다 끝나자. 이 대통령이 말하기를 "요즘 우리 집 강아지가 밥을 잘 안먹는단 말이야" 인내는 사람을 보호해줍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오래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도하면서도 인내하지 못하는 사람을 빗대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한답니다. "하나님 내가 인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지금 당장 주시옵소서"

  인격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만 해보면 압니다. 하나는 칭찬을 해봅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면 교만한자입니다. 또 하나는 그 사람의 단점을 지적해봅니다. 인내하면 성찰하는 자는 성숙한 자이고 화를 내는 자는 아직도 먼 자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참으로 신앙을 가지 사람은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압니다. 인내한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말입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응답도, 기도의 결과도 인내하면 기다릴 줄 압니다. 사람과의 관계이든, 하나님 앞에서이든 인내할 수 있을 때 성숙한 신앙인격자가 됩니다. 인내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인내할 때 하나님의 역사 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청년 여러분, 이제 인내의 인격이 필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든, 사람들 앞에서든, 개인적인 문제 앞에서든, 믿음을 가진 자라면 이제 오래 참는 인격을 겸비해야 합니다. 오래 참는 인격을 간직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복의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넷째, 부르심을 입은 크리스찬의 신앙인격의 모습은 용납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크리스찬이라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달라야 하는 신앙인격이 무입니까? 본문 2절에 보면 사랑으로 오래 참아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용납처럼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까요? 용납이란 단점과 모순과 허물을 수용해주는 것입니다. 용납은 타인을 나의 마음으로 받아주는 것입니다.
  용납을 할 때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2절에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고 했습니다. 사랑으로 용납하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그의 단점까지 이해하는 것입니다. 모순을 수용하는 것이 용납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자를 받아주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이 용납은 서로 해주는 것입니다. 홀로 용납해도 나의 수용을 그가 받아주지 않으면 하나될 수 없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줄 때 용납이라고 합니다.

  용납은 이웃을 향한 최고의 대우입니다. 형제를 위한 가장 넓은 배려입니다. 그의 모순 단점 그의 허물까지 받아주는 것이 용납하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미국에 가서 최초의 신학박사학위를 취득해 돌아온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5년 동안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는 날인데 교회성도들은 마음이 찹찹했습니다. 사모님이 정신이 돌아 정신병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어서 목사님은 알고 있었습니다. 비행장에서 사모님이 먼저 도착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목사님이 내리시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목사님이 게이트에서 나오는 데 사모님이 제일 먼저 뛰어가서 목사님을 붙잡습니다. 사모님은 공항광장에서 군고구마를 치마에서 하나 꺼내어 목사님에게 드립니다. 목사님은 군구고마를 잘라서 반은 아내를 주고 반은 자기가 먹습니다.

  용납은 부족한 것을 받아줄 때 용납입니다. 잘한 모습은 누구나 받아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족해도 받아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으로 부족한 모습을 받아주는 것이 용납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이웃의 허물고 실수와 모순을 찾아내는 데는 수준급인데 그 모습을 보고 용서해주는데는 낙제점은 아닙니까? 이제 부름받아 구원받은 성도로서 용납의 선물을 전해보십시오. 주님이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받아주신 것처럼, 우리도 이웃을 조건없이 용납해야 합니다. 서로 용납하며 멋있는 크리스찬의 신앙인격을 겸비하기를 축원합니다.

  <맺는 말>

  구원은 값없이 받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인격은 선물이 아닙니다. 신앙인격은 내가 스스로 뼈를 깎는 아픔의 노력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신앙에 인격을 겸비할 때 그 신앙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나의 못난 성격 때문에 타인이 상처를 받은 경우는 없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상처를 주고 자기만 뒤끝이 없는 사람들 있는데, 자기는 뒤끝이 없지만 타인에게는 뒤끝으로 큰 상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생각하시고, "앞 끝도 없기를 바랍니다?

  구원은 받았지만 나의 미성숙한 신앙인격 때문에 예수님의 명예를 실추시킨 적은 없습니까? 신앙과 인격이 조화되지 못하여 믿지 않는 자들에게 덕이 되지 못하고 전도의 길을 막은 적은 없습니까?

  신앙인격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무단히 애쓰고 노력하여 만드는 것입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위대한 신앙인격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인격은 내가 만들어서 하나님께 보여들여야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앙을 선물로 주셨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인격을 보여들여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의 신앙에 인격을 겸비해야 합니다. 믿음 위에 겸손을 옷 입으십시오. 그 믿음은 더욱 빛 날 것입니다. 믿음 위에 온유를 옷 입으십시오. 그 믿음은 더욱 능력이 있을 것입니다. 믿음 위에 인내를 겸비하십시오. 그 믿음은 우리를 살릴 것입니다. 믿음 위에 사랑의 용납을 가미하십시오. 그 믿음은 더욱 향기날 것입니다.

  이것이 비로소 성숙한 믿음입니다. 믿음 위에 인격을 겸비한 자가 바로 성숙한 크리스찬입니다. 믿음에 인격을 겸비하여 성숙한 신앙 인격자로 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과 기도>

  내 부족한 신앙인격 때문에 이웃에게 뼈아픈 상처를 준 분은 없습니까? 믿노라 하면서 인격이 따라주지 않는 분은 없습니까? 겸손하지 못하여 믿는 자로서 교만의 탈을 쓰고 있는 자는 없습니까? 온유하지 못하여 기쁨이 사라진 분은 없습니까? 용납하지 못하여 지금도 서로 갈등가운데 있는 분들은 없습니까?

  오늘 이사간 나만이 알 고 있는 나의 부족한 모난 인격을 주님께 내어놓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모습을 주님 앞에 솔직하게 보여드리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겠습니다.

  1) 참된 인격자가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신앙 위에 인격을 덧입도록 기도하십시오.
  2) 나의 모난 인격 때문에 상처받은 자들을 위로해주기를 기도하십시오
  3) 내 신앙인격이 더욱 주님을 닮아갈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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