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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 요 17: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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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주일설교
본 문 : 요한복음 17:25-26 찬송338
설 교 : 김상원 목사 (목천교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하나님을 믿고 있느냐할 때 각각 다른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왜 같은 교회에 다니면서도 다른 하나님을 믿게 됩니까? 성경이 달라서입니까? 가문이 달라서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되 어떤 분으로 알고 경험하느냐가 우리 신앙을 달라지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십니다.


1. 우리는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그런 하나님을 경험하였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잘 아십니다.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친밀한 아버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죽기까지 아버지에게 순종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얼마나 아들이신 예수님을 사랑하시는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아버지 사이는 정말 친밀하고 아름다운 관계를 이루고 계십니다. 여기는 갈등이나 불편함이 없습니다. 사랑과 자유와 기쁨이 넘칩니다.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입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말씀하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아버지가 되시는 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아버지입니까? 아버지도 얼마나 다릅니까? 비정의 아버지, 나쁜 아버지가 있습니다. 좋은 아버지가 있습니다. 훌륭한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어떤 분입니까? 아버지를 알면 사랑하게 됩니다. 아버지를 닮아갑니다. 존경합니다. 사모합니다.

아들은 얼마나 아버지를 닮고 싶어할까요? 월간 '아버지와 가정'이 만 13세 이상 18세 이하의 남자 10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33%만이 아버지를 '닮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반면 '닮고 싶지 않다'는 37%, '잘 모르겠다'는 30%로 나타났습니다. 어떤 어버지가 되어야 할지 우리에게 본이 되는 분이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나에게 있어서 아버지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십니다.

육신의 아버지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하시기 원하셨지만 자기 자녀에게 그 역할을 제대로 하는 아버지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고 그 사랑을 알게 하십니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예수님이 알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과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제대로 알게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상처가 치료되고 육신의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게 합니다.

우리는 계속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점점 더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아버지를 알아 가야 합니다. 우리가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야 육신의 아버지를 조금 알지 않습니까? 더 많이 알려면 교제가 필요합니다. 아버지와 깊이 사귈수록 더 많이 알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친밀하게 알면 잘못된 길로 가지 않습니다. 빛 가운데로 행합니다. 의의 길로 행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멀어질수록 죄를 범하게 됩니다.


3.아버지하나님을 알려면 육신의 아버지를 용서하십시오.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버지되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하나님 아버지도 그런 분이라는 인식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를 그려보게 됩니다. 아버지라는 생각이 좋은 것이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도 별로 좋은 분이 아닙니다.
우리 육신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한국의 아버지는 말이 별로 없습니다. 자녀가 성적표를 가지고 와도 '그래 알았어'하고 신문만 봅니다. 퇴근해서는 질문하는 게 '엄마는?' 간단히 한 마디 합니다. 이런 아버지를 경험한 신자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가까이 나가지 못합니다. 오래 기도하지 못합니다. 아버지하면 음? 할까봐 기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합니다. 찬양과 기도와 봉헌은 하나님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반영하게 됩니다.

자유 방임형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좋기만 하고 훈련과 책망이 없었다면 하나님을 예배할 때 버릇없이 마음대로 대하게 될 것입니다. 팔장을 끼고 다리를 꼬고는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할 것입니다.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친절하고 좋기만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장군같은 아버지가 있습니다. 가정의 독재자입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에서 보듯이 자녀들을 군인처럼 대합니다. 훈련시키고 열중 쉬엇! 차려! 잘못하면 엎드려 뻗쳐! 잘못을 지적하고 고치려는 데 열심입니다. 이런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아버지가 외출하면 '자유다'하고 함성을 지릅니다. 아버지가 돌아오게 될 때 '아버지가 온다. 빨리 치워. 빨리 정리해.' 그래서 조용해집니다. 이런 아버지를 둔 사람은 친절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사랑의 아버지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술을 마시고 오는 날에는 아내의 머리채를 쥐고 흔듭니다. 주먹으로 때립니다. 몽둥이도 듭니다. 어머니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컸던 아이들은 내가 크면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겠다며 다짐합니다. 이런 자녀는 아버지란 말만 들어도 마음의 상처가 쓰려서 거부반응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아버지라는 분에게 사랑을 받고 보호를 받고 양육을 받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가정 사역 연구소에서 조사한 자료를 보면 '나에게 상처를 주며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사람'으로 40.7%가 "아버지"를 꼽았습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20대 기독인 미혼청년 18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입니다. 전체 응답자의 53.1%가 부모에 의해 상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나는 자녀들도 아버지에게 많은 상처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녀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가르칠 때 하나님을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아버지를 제대로 알고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려면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상처를 주었던 잘못된 모습을 용서해야 합니다. 육신의 아버지를 용서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를 알지 못합니다.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안경을 벗고 하나님 아버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믿지 못하는 분들 중에는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생각 때문에 하나님도 마음에 부담스런 분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은 분이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자기 육신의 아버지 수준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에 대해서 관계가 좋지 않았던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도 똑같이 여겨서 관계가 깊지 못합니다. 예수님이나 성령님에 대해서는 잘 믿고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는 서먹서먹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라는 이름이나 성령이라는 이름이 흔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이나 성령이라는 말을 들어도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적이 없었기에 괜찮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라는 말은 우리가 너무나 많이 들어왔습니다.

영국의 청소년 자선단체인 '영 보이스'가 '옥스퍼드대학 가정교육 연구소'와 함께 10대 소년1천 4백명을 대상으로 '부모에 대한 청소년의 의식에 관한 조사'에서 밝혀진 결과입니다. 아버지의 관심을 많이 받으며 자란 소년일수록 보다 자신감이 있고 마약 등에도 손을 덜 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가지는 환경에서 자란 소년일수록 우울감이나 소외감도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로 범죄 소년들이 느끼는 육신의 아버지의 인상은 사랑과 이해를 주는 자보다 간섭하고 막아서는 폭군의 인상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믿음을 따라 목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친히 신앙의 본을 보여 주신 분입니다. 이런 아버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저의 아버지가 완전하신 분은 아닙니다. 어느 날 저는 공부를 하다가 불을 켜 놓은 채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 말은 내게 아픔을 주는 말이었습니다. 내가 공부하려다 지친 모습을 이해해 주지 못했습니다. 잘못한 것만 지적하면 좋은데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할 때 서운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나를 안아준 적이 없습니다. 나는 아버지 품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버지에게서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을 들을 때 그 말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아버지를 경험할 때 사랑한다는 말이나 인자하신 분이라는 말을 깊이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말이나 행동을 용서할 때 비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 시간에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아버지가 있습니까? 아버지를 용서하십시다. 그래야 온전하신 아버지되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같이 육신의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들을 주님께 내어 놓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님 아버지같은 온전한 아버지가 되지 못한 것을 회개하는 기도를 드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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