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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 중심 생활을 삽시다.(2) / 창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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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중심 생활을 삽시다.(2)
창4:1-8, 요4:23,24
윤정현 목사 (대선교회)


전시간에 예배 중심의 생활에 대해서 말씀드린 일이 있습니다. 오늘 조금 더 예배 중심의 생활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드리면서 예배자들은 청중 혹은 관객 정도로 알고 목사가 주인공인 것처럼 생각을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배의 주인공은 누구라고 했습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영화나 드라마에 주연을 출연한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또 두렵고 떨립니까? 기왕이면 히트 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평가는 누가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시대가 변했다는 이유로 예배가 점점 더 인본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라는 이름을 앞세워 그것으로 자기의 취향을 만족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즐거움과 기쁨을 인위적인 노력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예배가 이상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이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청중 중심으로 흐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예배가 변질되어 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1. 생명을 건 예배

초대교회는 예배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을 하였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들은 예배 한번 드리려고 생명을 걸었을 정도입니다. 그들이 모임을 갖고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발각되는 날에는 처형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예배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그런 진실 된 예배를 우리가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잘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가인과 아벨의 삶과 운명이 예배로 결정 났습니다. 가인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물론 아벨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들이 무엇으로 드렸는가는 둘째로 하고라도 예배를 잘 드렸는지 못 드렸는지가 어떻게 판가름났습니까? 그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셨는가 아니면 받지 않으셨는가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의 제사를 받으셨습니까?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거절하셨습니다. 그 이후 그들의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예배에 실패한 가인은 살인자가 되고 말았고 예배에 성공한 아벨은 축복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운명과 그 후손의 운명은 예배로 결정되었습니다. 예배가 그들을 다른 인생으로 갈라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도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목사님들이 주일에 설교 한편 교인들에게 하기 위해서 늦은 밤까지 말씀을 가지고 씨름하며 고뇌하는 나날을 보냅니다. 마치 방송국의 프로듀서가 프로 한편을 만들기 위해 피를 말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프로를 만든다는 말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 한번을 드리기 위해서 그같은 정성을 기울여 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인은 허술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성의 없는 예배를 드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예배의 자세가 그와 같다고 하면 분명히 우리가 예배도 가인의 제사를 거절하신 것처럼 거절하실 지도 모릅니다. 저는 목사님들이나 일반 성도들이 예배에 대한 생각은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내자, 헌금위원, 찬양대원…등 모든 예배자, 특별히 예배를 위해 땀흘리는 모든 사람들이 예배를 위해 생명을 건다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시간을 잘 지키는 것, 정성 된 예물을 준비하는 것,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하고 예배에 합당한 복장을 갖추는 것, 찬송을 부르는 것, 설교 말씀을 듣는 것, …등을 위해 아벨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제사를 드리는 일에 심혈을 기울인 것처럼 그렇게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 예배를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처럼, 교회학교교사들도 구역장들도 자신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전할 말씀을 철저히 준비하는 등 예배 진행에 있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우리 찬양대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나의 사역이 너무나 중요하다라고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걸맞은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찬양대는 음악적인 재능만 있다고 지휘를 하거나 반주를 하거나 목소리를 내는 모임이 아닙니다. 찬양대원은 믿음을 고백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과, 찬양하는 사람으로서의 구별된 삶(술·담배·마약·도박…등을 금하며, 세상에서 빛 되고 소금 된 삶을 위해 애쓰는 삶)을 위해 애쓰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그래서 세례 받은 분들이 임명되는 것입니다. 찬양대원들이 충분한 찬양연습을 하여 악보의 곡과 가사를 익혀 악보에 얽매이지 않는 찬양을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에게 본이 될만해야 합니다. 물론 찬양대원만 그렇겠습니까? 구역장도, 집사님도 교회의 중직자들도 다 같은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봉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대선의 성도들은 예배를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2. 예배는 예배답게 드려야합니다. 

하나님께 무엇을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행위가 예배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린다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듣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순종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하고 순종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헌금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자세로 귀하게 여기는 물질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기도, 헌금, 찬송이 모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내용으로 드려질 때에 이것을 예배라고 합니다.

다시 한 실례를 든다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번번이 재단을 쌓고 하나님께 재물을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돌로 제단을 쌓아놓고 양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복을 바라서 제사를 올렸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선택하사 구원하신 그 은혜를 감사함의 응답으로 제사를 드립니다.(창세기 12, 13장)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멀리 나갔다가 무사히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무엇을 받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복을 주실 때에 그에 대한 응답으로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아내고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하여 하란으로 갑니다. 광야에서 돌 베개를 하고 잠이 듭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5) 하나님께서 야곱과 함께 하시겠다는 귀한 계시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 계시를 받은 야곱은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노숙했던 바로 그 자리에 베개삼았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 앞에 경배합니다. 제사를 드립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과 약속과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과 보호에 대하여 믿음과 감사와 순종으로 응답하는 행위가 예배입니다. 옛날 유대의 제사를 보십시오. 양이나 소, 비둘기 같은 제물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물질을 드린 것입니다. 마음으로 드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다시 한번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께 나를 뵈어 드리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우리는 정초가 되면 아이들을 데리고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러 고향을 찾습니다. 그런 때에 아이들이 "할아버지가 편안히 계신지 뵈러 가는 것입니까? 아니면 세뱃돈 얻으러 가는 것입니까?" 어떤 것이 맞는 것입니까? 둘 다 옳지 않습니다. 세배는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것이 아니요, 할아버지께 무엇을 얻으러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분에게 우리를 보여드리려고 가는 것입니다. 당신께서 저를 늘 사랑하셨기에 저는 이렇게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의 손자가 열심히 공부했지만 불행하게도 시험에 낙방했습니다…… 현재의 우리를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께 어린 손자손녀를 보여드리는 것이 예절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예절입니다. 예배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뵈어 드리고 그 앞에 머리 숙여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에게 찾아 와 주시고 만나주시고 보호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응답으로 드리는 것이 예배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마음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요4:23-24).

요즈음 형식을 벗어나서 "신세대를 위한, 구도자들을 위한 등의 이유로 "열린예배" 또는 특별한 이름을 붙인 "×× 예배"가 유행입니다. 전통적인 예배의식을 탈피하고 그렇게 하는 것을 자랑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찬송도 줄이고 기도도 줄이면서 예배전체를 연극처럼 꾸며 설교도 연극사이에 끼워 넣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예배가 아니라 집회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드려야 하는 것은 예배입니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나 예전이 없는 집회를 예배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경입니다. 우리는 큰일이건 작은 일이건 성경을 따라야 하고, 성경 말씀에 관한 한 고집쟁이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은 유행 따라 변합니다. 그러나 신앙은 유행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닙니다. 시대 풍조에 따라 요동하는 것이 교회가 아닙니다. 이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성경을 근거로 기독교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 잘 정리된 예배의 전통과 공통된 요소들이 있는데 우리는 이것들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전통과 형식을 무조건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용도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3. 예배는 하나님의 만족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성경을 통해서, 그리고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만족케 해 드리는 예배여야 합니다. 사람을 만족케 하기 위한 예배의 시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예배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본질, 즉 교리문제나 말씀을 왜곡시키는 그런 일이 아닌 한 새로운 방법과 기술, 새로운 세대의 것들은 적극적으로 수용하여야 합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예를 갖추어 절하는 "예배"(禮拜)는 받으시는 분이 누구인가에 대한 관심의 초점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4. 예배는 진지함과 뜨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예배를 크게 두 가지로 구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엄숙하고 조용한! 지나친 표현으로는 냉랭하게 느껴질 만큼 이성적이고 예식의 철저함을 따르는 조용한 예배입니다. 다른 하나는 움직임이 있어 약간은 어수선한 것 같고 지나친 표현으로는 소란스럽게 느껴질 만큼 감정 표현이 다양한 예배, 그때 그때의 감정을 드러내는 뜨거운 예배가 있습니다. 때문에 어느 것은 좋고 어느 것은 나쁘다고 구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입니다. 그러나 우리 장로교회의 예배는 "의식의 철저함"과 동시에 "가슴속의 것들을 아버지 앞에 드러내는 솔직함과 가슴 뭉클함을 드러내는 뜨거움"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대선 교회가 이같은 예배를 드리려고 노력을 하려고 합니다.

찬송 한 절을 불러도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만한 것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찬송이 뭡니까? 찬송은 제사입니다.(히13:15) 찬송은 제물이며(호14:2), 감사이기에(시109:30),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기쁨으로 찬송해야 합니다.(대하23:18)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찬송하게 하려고 지으셨고(사43:21), 제사보다 찬송을 좋아하시므로,(시69:30-31) 찬송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시33:1)

때로는 갖가지 악기를 동원하기도 하고(시150:3-5), 손뼉치기도 하고(시47:1), 춤을 추기도 하며(시149:3, 150:4), 힘있게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나 찬송을 아무 곳에서나 함부로 사람 즐겁게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시137:3-4) 더욱이 찬송은 일시적인 흥분을 위해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며 진실함으로(단4:34-37), 극진히 해야합니다.(시48:1) 이런 것을 보아 예배시간에 부르는 찬송은 온갖 재능을 동원하여 최선을 다해 때로는 박수도 하고 춤을 추는 기쁨을 담아 정성껏 극진히 불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를 듣기 위해서도 정신을 차리고 오늘의 설교를 통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가?, 어떤 말씀으로 나를 만나 주시려는가 하는 자세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중에는 "손을 들고 아멘 아멘"하며 응답하기도 하고(느8:4-6), 깨달아지며 가슴을 찌르는 말씀에는 눈물을 흘리는 진지함도 있어야 합니다.(느8:8-9)

모쪼록 우리 대선 교회는 어찌하든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아벨의 제사로 늘 열납되기를 바랍니다. 훌륭한 예배는 훌륭한 예배자가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우리 대선교회의 예배가 건강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말씀을 중심에 둔 예배! 목숨을 걸 정도의 비중을 둔 예배!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예배! 하나님께 만족을 드리려고 하는 예배! 진지함과 최선을 다하는 뜨거운 예배를 드림으로 건강한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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