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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사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 / 히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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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전준식 목사 
제목 : 천사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
본문 : 히브리서 1장 4절-14절


요즈음은 대형 쇼핑 몰이 인기가 있고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 시켜주는 것 같습니다. 소비자들이 대형 쇼핑 몰을 찾는 이유는 크게 3가지 이유일 것 같습니다. 24시간 문을 연다는 잇점도 있을 뿐만 아니라 물건이 다양해서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고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대형 쇼핑몰을 가장 선호하는 이유는 물건값이 다른 데 보다 싸다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형 쇼핑몰에 가서 자기가 원하는 물건이 있으면 그 물건을 사서 주차장에 세워둔 승용차에 싣습니다. 그리고 곧 바로 집을 향하여 가는 것입니다. 쇼핑 몰에서는 이웃에 사는 사람과 대화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저는 이런 쇼핑몰을 보면서 우리 한국교회는 교회 쇼핑 몰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교회 쇼핑 몰에 가서 자기 마음에 드는 교회를 선택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선택하는 기준을 보면 대형 쇼핑 몰에 가서 물건을 사는 것과 거의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에 대하여 만족을 줄 수 있어야 사람들이 모이는 대형 쇼핑 몰처럼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조건에 부합되는 교회를 선택합니다. 그 중에 하나가 대형교회를 선호하는 것입니다. 대형 교회는 대형 쇼핑몰과 비슷합니다. 편합니다. 예배 시간을 정확히 지켜줍니다. 자기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습니다. 때문에 대형 쇼핑 몰처럼 남들과 대화 할 이유도 없습니다. 예배만 드리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예배 마친 후 서로 자기 갈길 가려고 주차장에서 서로 싸우기도 하지요. 대형 쇼핑 몰의 물건이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듯이 메시지가 자기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싫은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로서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찜찜하니까 예배를 드리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공동체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지만 결국은 개인이 예배드리는 것에 만족을 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만 한 마디로 자기 유익을 위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오늘 한국 교회의 예배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천사와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고 있습니다. 전혀 비교 할 수 없는 대상을 히브리서 기자가 비교하고 있는 이유를 우리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천사라는 단어를 들으면 직감적으로 다가오는 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것은 천사는 나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마귀는 나의 것을 빼앗아 가고 나에게 나쁜 일들을 일으키는 존재에 반해서 천사는 늘 좋은 것 평안함을 준다는 신뢰입니다. 그래서 누가 도움을 주기를 원할 때 우리는 천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휴대폰에도 천사. 이메일에도 천사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사회 구호단체 프로그램에 천사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도움의 손길을 바라고 있습니다. 엊그제 어느 형제가 저에게 보낸 글에도 저보고 천사 같은 모습이라고 하더군요. 또 어느 이단에서는 자신이 하늘의 천사를 동원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한국 교회 많은 성도들이 그 곳으로 몰려가 한국 교회에 많은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곳에 신비함 때문에 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 곳에 가는 이유는 신비함보다는 천사가 나의 문제를 도와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천사를 만나러 그 이단 집단에 가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 가운데에는 천사를 만나러 오늘 이 곳에 온 사람들 가운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런 사람은 잘 못된 신앙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천사가 자기를 도와 주는 것처럼 신앙을 가지면 나의 신앙의 대상이신 그 분이 나의 문제를 해결 할 것이라는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나에게 마음의 평화와 위로가 있다는 것을 기대하고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병들었을 때 물질의 궁핍함을 겪고 있을 때 천사가 나를 도와 주듯이 도와 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제가 얼마 있으면 사법고시 시험을 치룰 형제 자매들에게 여러분의 시험에 합격이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병든 자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치유 될 것입니다. 라고 말하면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물론 이것은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시면서 배고픔을 해결 해 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믿는 것은 분명 신앙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신앙의 전부라고 하면 우리는 절대로 잘 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 6절

천사는 우리를 도와 주는 존재지만 결국 천사가 존재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히브리서를 읽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의 처한 삶은 어떤 삶입니까? 유대교 공동체에서 이탈한 사람들입니다. 그로 인하여 고통받고 고난 받은 삶의 연속입니다. 이때 이들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마음은 하루 빨리 이 고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힘이 들고 어려운 나머지 누구라도 좋으니 이 어려움을 해결 해주기만 하면 좋겠다 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천사가 나를 도와 준다면 나는 천사에게라도 달려가겠다는 분위기이었겠지요. 그 천사에게 달려가 내가 경배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천사는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천사도 예수님께 경배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경배가 무엇인지 알아 봐야 할 것입니다. 경배는 한마디로 예배입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구약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레위기 9장 2-4절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요구하는 것과 일반 백성에게 요구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제물의 종류가 다르다는 것이 눈에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 아주 중요한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론에게는 여호와 앞에 드리라는 것이고 일반 백성에게는 취하여 가져오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백성들이 명한 대로 그대로 순종하니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23절
모세와 아론이 성막에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세와 아론이 성막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나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온 백성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제사와 예물은 달랐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직접 드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사를 직접 드리지 않은 일반 백성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물이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그리고 그 기능이 서로 다르다 할지라도 이런 것들은 예배의 참된 기준이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예배의 참된 기준은 무엇입니까? 순종입니다. 서로 다른 예물을 가진 아론과 그 백성들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모두가 순종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주님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선에서만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천사를 섬기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숙한 믿음은 이제 예수님께 순종하는 제사를 드리는 것임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성도들이 도움을 드립니다. 엄마가 아플 때 같은 구역 집사님이 찾아가 밥도 해주고 아이도 돌봐 줍니다. 그런데 이런 도움이 자신에게 습관이 되어버리면 어떤 누구도 그 사람을 도우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도움을 받으면 다음에 일어나서 자기도 그렇게 봉사하고 남을 찾아가 봐야지요.

천사가 왜 예수님께 경배를 합니까?---- 7절

예수님이 천사를 사역자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천사가 자기에게 도움을 주신 예수님께 경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늘 도움을 바라는 사람은 성숙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사람은 늘 도움만을 바라고 자기만 쳐다 봐 주기를 바라는 때가 있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일 때입니다. 몸이 아플 때입니다. 그리고 노인이 되었을 때 도움을 받아야 하고 노인의 특성은 자기만 쳐다 봐 달라는 특성이 있습니다. 때문에 어린아이, 몸이 아픈 사람. 그리고 나이든 어른들은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것 이외에 자기를 쳐다보라고 하는 사람은 공주병을 앓고 있든지 성인 아이로서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자기를 쳐다보기보다는 남을 쳐다보고 남을 챙기는 사람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남을 챙기고 남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공주병 환자들은 모든 영적인 지도자들이 자기를 쳐다봐 주기만을 원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천사를 사모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순종을 통하여 주님께 경배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신앙인 입니까?


그러면 예수님은 천사와 어떤 점이 다릅니까?--- 8-9절

천사는 우리를 돕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돕는 분만이 아니라 우리를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다스리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이 땅에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 많은 물의를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도움의 손길을 간절히 간구해서 성공하고 출세했지만 예수님이 나의 주인 되심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천사만 바라는 사람이지 구원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우리의 생각보다 내 주인 되신 예수님의 생각이 먼저 앞서야 합니다. 내가 결정하는 것 내가 마음먹은 것들이 아무리 멋지고 훌륭해도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과 다르면 우리는 기꺼이 자기의 계획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행정관료가 되기를 원하고 판검사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저도 여러분들이 모두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고백하지 않은 생태로 행정관료가 되면 우리는 또 한번 나의 비리를 세상에 드러내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돈을 많이 버는 소망도 중요하지만 돈이 부도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돈을 많이 벌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도 소중하지만 그 돈이 헛된 곳이 쓰이지 않도록 돈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더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도움을 주시는 예수님 뿐만 아니라 나의 주인이신 예수님 또한 소중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예수님을 통치자로 고백 할 수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4절

그것은 이름 때문입니다. 그 이름이 우리의 기업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서양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여자들이 남자의 성을 따르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자의 인권을 무시한 제도일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은 이제부터 남편과 한 몸이 되었다는 것으로 저는 해석합니다. 반대로 우리나라 여성들은 성이 안 바뀝니다. 이런 우리나라 제도를 사회학적으로 해석해서 우리나라는 여성 인권을 인정하고 높이는 것으로 평가합니다. 저는 이런 해석에 반대합니다. 저는 이 제도야말로 철저히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의 문화라고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무슨 일이 있어서 이혼하게 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남성 족보에 흔적이 남습니다. 우리 나라 남성 중심의 문화는 이것을 용납하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족보에 흔적을 남기기 싫은 남성 중심의 문화가 여자 성을 그래도 갖도록 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부부가 이혼하면 자기 호적에만 남지 절대로 족보에는 남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정도로 소중한 것이 이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의 기업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연합하면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인생의 주인 이시라면 우리의 인생은 절대로 부도가 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고난 받고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내가 예수님을 믿어서 이렇게 인생이 망했다. 그러니 예수님을 버리고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업을 삼으셨다면 여러분이 인생이 어떠하든지 절대로 그 인생은 부도난 인생이 아닙니다. 그 인생은 반드시 약속이 보장된 인생입니다. 우리가 수요일마다 나누는 요나를 보십시오. 요나가 탄 배가 파손 된 것은 요나의 인생이 파손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 죽을 것 같은 인생인 요나에게 하나님은 이미 물고기를 예비해 놓으셨다고 성경은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많은 돈을 들여 다시스로 가는 배표를 산 요나지만 그 수고는 파도에 쓸려 가고 말았습니다. 부도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하나님의 사람 요나에게 하나님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다시 니느웨로 가는 길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 곳은 비록 누추한 곳이었지만 파도가 일어나도 절대로 파손 되지 않는 물고기 뱃속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다시스로 가는 호화로운 유람선을 타지 못해서 낙오된 인생 같습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화려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그 인생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으면 파손될 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의 삶이 누추하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나의 기업이 될 때 우리는 어떤 파도에서도 물고기처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10-11절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이미 계셨던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은 영원히 존재하십니다. 건물을 짓고 나서 하자 보수를 위하여는 반드시 설계도가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그 건물이 오래되어서 건물을 지은 사람이 어디에 있는 지 모르면 더 더욱 건물의 설계도가 필요합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지금 200년 동안 짓고 있는 성당하나가 있습니다. 건축과 미술의 천재라고 부르는 가우디가 설계한 성당입니다. 앞으로 100년을 더 지어야 합니다. 지금도 건축가들은 건축 설계도를 남기고 가우디의 설계도를 해석해가면서 건물을 짓고 있습니다. 만약 가우디가 살아 있다면 건물은 더 빨리 완성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향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나를 지으신 우리 하나님은 죽지 않으십니다. 때문에 우리 인생은 늦추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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